최근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매매 가격 대비 전세금 비율)이 속절없이 떨어지고 있다. 앞으로 강남·서초구를 중심으로 추가 대단지 입주 물량이 예정된 만큼 당분간 전세가율이 반등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역전세난이 더욱 심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는 점이다. 역전세난은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 보증금을 돌려주기 어려운 상황을 뜻한다. 전세가율 하락은 매수심리 위축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역전세난이 심해지면 부동산 시장이 더 큰 혼란에 빠져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KB부동산에 따르면 올해 3월 서울 아파트 전세가율은 50.9%로 2011년 12월 이후 11년 3개월 만에 가장 낮았다. 특히 서울에서도 집값이 가장 높은 강남구는 41.6%, 서초구는 45.6%를 기록하며 월간 기준 역대 최저치로 떨어졌다. 지난해 11월 전세가율이 50% 아래로 내려간 후에도 계속 하락하는 모습이다. 강남권 전세가율이 계속 하락하는 것은 매매 가격이 떨어지는 폭보다 전세 가격 하락 폭이 더 컸기 때문이다. 지난 1년(2022년 3월 대비 올해 3월)간 서울 강남구는 집값이 4.79% 떨어지는 동안 전세 가격이 무려 17.91% 급락했다. 서초구 역시 매매가가 2.78% 하락하는 동안 전세가는 13.65% 떨어졌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매매 7.58% 하락, 전세 13.53% 하락)보다 더 심하다.
현재 강남권 전셋값 하락을 주도하는 곳은 개포동 일대다. 개포자이프레지던스(3375가구)는 2월 입주를 시작하면서 전세 가격이 약세다. 이 영향으로 ‘개포래미안포레스트’ 84㎡의 전세금도 지난해 9억5000만원에서 3월 7억원으로 낮아졌고, ‘개포래미안블레스티지’ 84㎡도 같은 기간 9억5000만원에서 8억원까지 하락했다. 2년 전 이들 단지의 같은 주택형 전세금 최고가는 16억~17억원에 달했다.
개포동 영향은 다른 강남권에도 영향을 주는 모습이다. 서초구 반포동 ‘반포자이’ 84㎡도 이달 전세금이 12억원(10층)까지 떨어졌다. 2년 전인 2021년엔 최고 전세 가격이 22억원까지 올랐던 점을 생각하면 무려 10억원 하락했다. 송파구 잠실동의 상황도 비슷하다. 3월 잠실엘스 전용면적 84㎡도 8억원에 전세 계약이 체결됐는데, 2021년 11월 15억원과 비교하면 반토막이다. 2월 기준 매물 대부분이 8억원대에 올라와 있다. 심지어 강남권에서 4억원대에 거래된 전세 매물도 있다. 강남구 개포럭키아파트 전용 79㎡(8층)는 4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송파구 A공인중개업소 관계자는 “가격이 계속 낮아지는데도 전세 매물을 보러 오는 사람이 별로 없다”라고 밝혔다.
이 같은 경향은 한국부동산원 통계에서도 엿보인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1월 1일~2월 13일) 들어 전국 아파트 전세 가격은 5.25%, 서울 아파트 전세 가격은 6.94% 하락했다. 그런데 강남구(-8.49%), 강동구(-7.43%), 서초구(-7.12%) 등은 전세 가격 하락 폭이 서울 전체보다 크다. 문제는 앞으로도 강남에 예정된 입주 물량이 상당히 많은 만큼 추가 전셋값 하락 위험이 있다는 점이다.
직방에 따르면 내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은 총 30만2075가구(413개 단지)로, 올해(25만6595가구)보다 18%가량 증가한다. 지역별로 수도권은 내년 15만5470가구(183개 단지)로 올해 대비 9%가량 증가한다. 서울은 강남구, 은평구, 서초구 등 순으로 입주 물량이 많다. 대부분 재건축·재개발이 완료된 단지다. 경기는 양주·화성·평택 등 택지지구 입주 물량이 공급되고, 인천은 검단·송도 등에서 4만1917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지방은 올해보다 29% 많은 14만6605가구가 입주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년에도 입주 물량이 많았던 지역을 중심으로 입주가 이어진다. 대구 3만4638가구, 충남 2만1405가구, 부산 2만155가구 등이다.
이 중 강남권에서만 1만3000여 가구가 쏟아진다. 최근 몇 년 동안과 비교해도 상당한 물량이다. 부동산 빅데이터 업체 아실에 따르면 올해 강남구의 아파트 입주 물량은 4646가구로 지난해(768가구)보다 6배 가까이 많다. 서초구 역시 올해 3470가구가 입주하며 지난해 1188가구 대비 3배 가까이 늘어난다. 구체적으로 단지를 뜯어보면 ‘개포프레지던스자이’를 시작으로 5월 ‘대치푸르지오써밋’(489가구), 6월 ‘르엘 신반포 파크애비뉴’(339가구), 8월 서초구 ‘래미안 반포 원베일리’(2990가구)가 입주한다. 강남구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6702가구)가 내년 1월부터 입주한다지만 재건축 조합원 등의 실제 입주는 올해 11월쯤이면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문제는 2024년까지 넘어갈 강남권 입주 물량도 상당하다는 점이다. 서초 반포에서는 ‘신반포메이플자이’ 3307가구, 서울 강동에서는 ‘올림픽파크포레온(둔촌주공)’ 1만2000가구 등이 입주할 계획이다. 2025~2026년에는 입주 예정 물량 1만8425가구가 또 나올 예정이다. 외국계 자산운용사 채권운용본부에서 크레디트 분석 업무를 하고 있는 배문성 씨는 “강남 3구, 용산구 입주 물량이 가장 적었던 2011년과 2017년은 각각 3000가구 이하였다”라며 “2023년부터 강남 3구에서 역대 최다급 물량이 공급되는 만큼, 공급절벽이 아니라 공급폭탄을 걱정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강남권은 고가 전세가 많아 이 지역에서 신축 대단지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 서울 전체 전세가까지 끌어내릴 수도 있다. 실제로 이명박 정부 시절 서울 집값이 장기간 약세가 이어진 데는 2007~2009년 잠실, 반포 등 강남 중심으로 입주가 쏟아졌던 영향이 컸다. 2019년에는 헬리오시티(9510가구) 입주로 서울 전세 가격이 내려앉았다.
특히 많은 사람이 강남권 물량을 주목하지만 서북권과 동북권 물량도 체크해야 할 포인트다. 7월부터 은평구·서대문구 생활권인 디지털미디어시티(DMC) 일대에 입주 물량이 몰려 있기 때문이다. 서울 은평구 ‘DMC SK뷰 아이파크포레’(1464가구)와 ‘DMC 파인시티자이’(1223가구) 등이 입주한다. 서울 동북권은 청량리 등을 중심으로 물량이 쏟아진다. 인천 검단 등 수도권 서남부에 몰려 있는 입주 단지도 만만치 않다.
전문가들은 올해 서울·수도권 전세 시장은 ‘역전세(전세 시세가 계약 당시보다 하락하는 상황)’로 인한 시장 전체 충격을 준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00년대 들어 서울 전세가율이 가장 낮았던 시기는 금융위기 직전인 2009년(39%)이다. 비슷한 시기 강남 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는 30% 아래로 추락했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전에 전세자금 대출 제도가 없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번엔 시장 전체 충격이 나타나는 시점의 전세가율이 더 높을 거라는 지적이 많다. 전세대출이 없을 당시 역대 최고점은 64.6%(2001년 10월), 존재할 때는 75.1%(2016년 6월)다. 이 같은 이유로 전문가들은 전세가율의 위험 수준을 ‘40%’가 깨지는 시점으로 보기도 한다.
게다가 집주인들이 경쟁해야 하는 전세가는 2021년 사상 최고가에 체결된 전세 물량이다. 이때는 역사적 저금리, 임대차2법으로 인한 전세 매물 급감, 반포주공 멸실 이주(3600가구) 등이 겹치면서 전세가가 높았다. 이렇게 최고가 전세가로 체결된 계약들이 2년 차를 맞을 때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신축 대단지 입주 물량이 쏟아지면서 역전세가 커질 것이라는 우려다.
특히 새 아파트 단지의 경우 입주율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입주할 때 당첨자들이 잔금을 마련할 수 있어야 하는데 기존 집이 안 팔리거나 세입자를 못 구해 잔금을 못 낼 리스크가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잔금을 확보 못 한 건설사들은 유동성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 실제로 전국 아파트 입주율은 계속 하락하고 있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11월 전국 아파트 입주율은 66.2%로 10월(72.5%)보다 6.3%포인트 하락했다. 주산연은 “고금리와 주택 가격 하락 추세가 지속될 경우 미분양과 계약 해지, 준공 후 미입주에 따른 건설업체와 제2금융권의 연쇄 부도가 우려된다”라고 했다.
이처럼 대규모 신규 물량 및 전세 만기, 고금리 등 악재가 겹치며 역전세난이 다수 일어날 경우 갭투자를 통해 아파트를 구매한 임대인들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어 급매물이 쏟아지며 결국에는 집값 하락을 부채질하는 데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갭투자를 통해 서울에 아파트를 매입한 한 30대 남성 A씨는 “2021년 갭투자를 통해 아파트를 구입했지만 지난해부터 집값과 전세 가격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라며 답답한 속내를 털어놨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전세 가격이 지속적으로 떨어지면 자기 자본을 이용한 레버리지의 활용이 불가능해지고 만약 갭투자자가 다주택자라면 급매물을 내놓을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라며 “급매물 자체가 하락 거래를 의미하기 때문에 그 비중이 높아진다고 한다면 집값 하락 폭 증가 및 장기화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물론 지금 상황이 세입자에게 꼭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집값이 계속 떨어지면 전세 보증금 자체를 돌려받지 못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국토연구원은 최근 공개한 연구에서 집값이 매매가보다 20% 떨어질 경우 갭투자로 매매 거래된 주택의 40%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이 중 최대 1만3000가구는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해도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줄 돈을 마련할 수 없을 것이라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이는 집값이 전셋값 밑으로 떨어지는 ‘깡통전세’ 수준을 넘어 보유한 현금성 금융자산과 추가대출 가능액, 해당 주택 매매 등을 동원해 자금을 최대한으로 마련해도 보증금을 못 돌려주는 집주인이 최대 1만3000가구가 된다는 의미다. 세부적으로는 집값이 갭투자 시점 대비 15% 하락하면 보증금 반환 불가 주택은 1만 가구, 집값이 27% 하락하면 1만3000가구가 보증금을 반환하지 못할 것으로 분석됐다.
국토연구원은 특히 올해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주택이 가장 많아질 것으로 예측했다. 연구를 진행한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연구센터 부연구위원은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의무가 있는 조정대상지역만을 기준으로 한 수치라, 실제로는 더 많은 갭투자 주택이 보증금 미반환 위험에 노출돼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전세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에게 지급한 대위변제액은 지난 1월에만 17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동기(523억원) 대비 3배가 넘는 수치이며 지난해 7월 564억원에서 6개월 연속 증가 추세다.
손동우 매일경제 부동산 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