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3월 실리콘밸리뱅크(SVB) 폐업 사태를 기점으로 부각된 미국 지역 은행 유동성 위기가 오피스 시장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투자자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확산되고 뉴욕 증시가 한 차례 출렁이자 국제통화기금(IMF)도 최근 금융안정보고서를 통해 “각국 중앙은행들이 기준금리를 올리면서 시중금리가 상승한 결과 상업용 부동산이 상당한 압박에 직면하고 있다”라면서 “미국의 경우 전체 상업용 부동산 대출에서 자산 2500억달러 미만인 중소 은행들이 해준 대출 비중이 4분의 3에 달해 조정 위험이 상당하다”라고 지적했다.
미국 리츠협회(Nareit)의 가장 최근 데이터를 보면 올해 3월 말 기준 상업용 부동산투자신탁(REITs·리츠) 중에서도 인프라스트럭처와 데이터센터용 리츠 월간 수익률이 각각 2.7%, 2.1%를 기록한 반면, 오피스 리츠는 15% 하락해 낙폭이 가장 컸다. 상업용 부동산은 용도에 따라 다양하게 나뉘지만 크게 소매 점포·산업용(데이터센터·물류창고 등)·오피스 등으로 나뉜다.
이런 가운데 월가에서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 하방 압력에 주목하면서 특히 오피스 하락세에 주의해야 한다는 분석을 내고 있다. 미국 컬럼비아 스레드니들의 제이슨 캘런 자산구조화팀장은 “연방준비제도가 올해 3월 기준금리를 인상하기로 한 것은 이보다 더 멍청할 수 없는 결정이었다”라면서 “호텔이나 쇼핑센터를 비롯해 무엇보다 고층 오피스 빌딩 관련 대출 채권이 문제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월가 대형 투자은행들 추정을 종합해보면 현재 미국 은행들의 미국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 중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 규모는 역대 최대 수준인 2700억달러(약 353조원)에 이른다. 누적 기준으로 오는 2024년까지는 총 9000억달러, 이어서 오는 2025년 만기가 도래하는 대출 규모는 약 1조5000억달러에 달한다.
‘미국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에 따르면 현재 상업용 부동산 대출은 2조7943억달러다. 이 중 소규모 은행이 해준 대출이 전체의 70%인 1조9472억달러 규모다. 대형 은행들의 경우 2008년 위기 이후 더 까다로워진 금융 규제를 받았지만 소형 대출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에 상업용 부동산 대출을 빠르게 늘려왔다. 소형 은행들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규모는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대형 은행들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규모와 유사한 수준이다.
다만 지역 은행 유동성 위기 및 이에 따른 상업용 부동산 침체 문제와 관련해 연준 책임론이 커진 가운데 지난 3월 중순 JP모건의 듀브라브코 라코스-부자스 미국주식 담당 수석 전략가는 고객 메모를 통해 “오피스용 상업용부동산 저당증권(CMBS) 대출 만기가 2023~2024년에 몰려있는데 CRE 대출 비중이 높은 지역은행 충격이 겹친 탓에 만기 연장·갱신이 힘들어질 것으로 보이는 바, 리츠 투자에 주의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특히 오피스와 관련해 라코스-부자스 수석 전략가는 “우리는 상업용 부동산 담보대출의 약 21%가 최종적으로 채무 불이행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라면서 “상업용 부동산 중에서도 오피스(기업 사무 공간) 부문은 다년간 하락세를 보였지만 작년 이후 더 높아진 대출 금리와 시세 하락, 경기 침체에 시달리고 있으며 재택 수요 증가에 따른 오피스 수요 부진(공실률 13%)까지 감안할 때 글로벌 금융위기 수준의 압박을 받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오피스 리츠는 작년 한 해에도 수익률이 37.6% 떨어진 바 있다. 수익률이 급락한 이유는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사무실 출근 기피·재택근무 선호 현상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일례로 정보기술(IT) 기업들이 모인 샌프란시스코 실리콘밸리에서는 이미지 공유 서비스 업체 핀터레스트(PINS)가 지난 3월 말, 505 브래넌가 소재 건물을 비우고 다른 기업에 임대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올해 3월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 직원들은 ‘주 3일 사무실 출근’을 요구한 앤디 제시 최고경영자(CEO)에 “일할 곳을 선택할 권리를 달라”라며 반발하기도 했다.
다른 주요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완전히 폐지하지 못한 상태다. 디즈니와 스타벅스는 올해부터 주 4일 사무실 출근, 구글과 애플은 각각 작년 4월과 9월부터 주 3일 사무실 출근 체제에 들어가는 식으로 ‘일상 복귀 선언’ 후에도 재택·사무실 근무를 혼합해 운영 중이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상업용 부동산 중에서도 특히 오피스 공실률이 치솟은 후 다음 차례로는 시세가 급락할 수 있다는 예상이 이어진다.
우선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2년 4분기 기준 미국 주요 대도시 오피스 공실률은 18.7%로 역대 최고 수준이다. 이 밖에 무디스에 따르면 지난 2019년 이후 상위 25개 오피스 시장 공실률이 늘어난 가운데 특히 실리콘밸리로 유명한 샌프란시스코 오피스 공실률은 2019년 5%에서 2022년 말에는 19%로 가파르게 올랐다.
월가에서는 앞으로 미국 오피스 빌딩 가격이 30% 떨어질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 앞서 피치 레이팅스는 기업들이 주 3회 재택근무 체제를 이어간다면 미국 오피스 가치가 최대 54% 급락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모건스탠리 자산운용의 리사 샬럿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앞으로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본격적으로 하락할 것이며 이는 부동산을 넘어 다른 부문 손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올해 1~3월 증시가 전반적으로 작년에 비해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는 투자자들이 기업 수익성 악화 가능성과 상업용 부동산 침체 등 전반적인 리스크를 가볍게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모건스탠리 측은 미국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앞으로 몇 년 내에 40% 폭락할 수 있다고 예상한다. 이는 지난 2008년 글로벌금융위기(GFC) 이후 부동산 급락 사태와 견줄 만한 수준이다. 이와 관련해 샬럿 CIO는 “올해 이후 수조달러 규모의 상업용 부동산 대출 채권(CMBS) 만기가 돌아올 것이며 현재 일부 주요 오피스는 공실률이 절반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파급 효과가 부동산 시장에만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CMBS란 자산운용사가 투자자들을 모은 후 오피스 등 상업용 부동산 개발사에 돈을 빌려주고 그에 대한 이자를 받아 수익을 내는 금융 상품이다. 금융 시장을 통해 부동산 투자 수익을 낸다는 점에서는 부동산투자신탁과 비슷하다. 다만 대출 채권은 자산 운용사를 통해 자금을 대고 이자 수익을 받는 방식이고, 리츠는 자산 운용사를 통하지 않고 부동산 투자 회사 주식을 직접 매수하는 방식이다.
상업용 부동산 시장 위기감은 지역 정부로도 번지는 모양새다. 일례로 캘리포니아주의 런던 브리드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지난 4월 초 “우리 시 재정이 오는 2024년까지 2개 회계연도에 걸쳐 총 7억8000만달러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올해 1월 추정치보다 부족분이 약 5150만달러 더 늘어난 규모”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브리드 시장은 “재택근무 확산과 고금리 상황이 주거용뿐 아니라 상업용 부동산 대출 부담을 키우고 있는데 이것이 도시 재정 부담으로도 이어지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시와 뉴욕주 뉴욕시는 상업용 부동산 시장발 위기를 막기 위한 대책을 논의 중이다. 샌프란시스코의 경우 세금 감면과 실리콘밸리·금융지구 부흥 계획을 홍보하고 있다. 뉴욕시에서는 로어 맨해튼 일대 오래된 상업용 건물 공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를 주택으로 용도 변경할 수 있도록 한다는 규제 완화안이 시 의회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이 때문에 월가에서는 상업용 부동산 관련주 투자에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을 내고 있다. 우선 골드만삭스는 지난 4월 중순 글로벌 부동산 임대·관리업체인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티커 CWK)에 대한 투자 의견을 매수에서 중립으로 하향하고 12개월 목표 주가를 1주당 기존 15.50달러에서 11달러로 낮췄다.
골드만삭스의 찬드리 러드라 연구원은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는 레버리지가 높아 기준금리 상승에 따른 이자 비용 부담이 꾸준히 증가했고, 잉여 현금 흐름이 고르지 않다”라면서 “상업용 부동산 시장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중개 서비스 부문 매출도 크게 둔화되고 있기 때문에 올해 안으로는 실적 개선이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골드만삭스 측은 상업용 부동산 시장 침체 리스크를 감안할 때 내년에도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 실적이 눈에 띄게 나아지기 어렵다고 예상했다.
JP모건의 라코스-부자스 수석 전략가는 뉴욕 증시에 상장된 대표적인 관련 기업 중 주의해야 할 종목으로 쿠시먼앤드웨이크필드(CWK) 외에 존스랑라살(JLL), 뉴마크(NMRK), SL그린리얼티(SLG) 등을 꼽았다.
다만 미국 부동산 관련 종목의 경우 용도뿐 아니라 상품 성격별로도 수익률이 엇갈린다. 일례로 미국 부동산 상승에 베팅하는 상장지수펀드(ETF)인 ‘디렉시온 데일리 리얼에스테이트 불3X 셰어스(DRN)’의 경우 최근 1개월 수익률이 약 5% 하락했다. 반대로 하락에 베팅하는 ETF인 ‘디렉시온 데일리 리얼에스테이트 베어3X 셰어스(DRV)’는 보합세다.
두 상품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다우존스 지수 중 부동산 부문인 ‘리얼에스테이트셀렉트섹터’ 지수(IXRE)를 각각 3배, -3배로 추종한다. 다만 기초지수인 IXRE는 오피스뿐 아니라 주거용 등 다양한 부동산 업종을 담고 있다.
3배 레버리지 상품의 경우 기초 지수 시세가 오르면 수익률이 더 뛴다. 반면 기초 지수 시세가 하락하면 이후 다시 반등하더라도 낙폭이 기초 지수보다 3배 큰 상황에서 반등하기 때문에 손실 회복이 쉽지 않다는 점을 투자 시 주의해야 한다.
김인오 매일경제 뉴욕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