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들어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잇따라 완화하자 수도권 아파트 매매 시장이 조금씩 활기를 되찾고 있다. 매매 거래량이 작년 하반기와 비교했을 때 확실히 늘어난 것이다. 한파가 닥쳤던 경매 시장 역시 꿈틀거리고 있다. 일각에서 부동산 시장 회복을 기대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매매 가격 하락세가 계속되는 데다 여전히 금리 부담이 높아 시장이 반등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부동산 정보업체 ‘부동산R114’가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자료를 분석한 결과, 2023년 1월 수도권 아파트 매매 거래 건수는 6647건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4882건) 대비 36.1% 늘어난 수치다. 부동산R114는 이 자료를 2월 16일에 발표했다. 1월 계약분에 대한 신고 기간(계약 후 30일)이 2월 말까지 남아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매매 거래 건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지난해 6월(1067건) 이후 7개월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 1월 서울 아파트 매매 거래 건수는 1220건으로 작년 6월 이후 처음으로 다시 1000건 이상을 넘어섰다. 인천도 비슷한 상황이다. 올해 1월 인천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1163건으로 서울과 마찬가지로 7개월 만에 1000건 이상을 돌파했다. 경기 아파트 매매 거래량은 4264건으로 작년 12월(3150건)보다 35%가량 늘어났다.
거래량이 증가하는 건 정부가 1·3 대책을 통해 규제지역을 해제하는 등 조치를 했기 때문이다. 최저 연 3.25% 고정금리를 적용하는 주택담보대출인 특례보금자리론이 1월 30일 출시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 부동산R114는 “오는 3월 규제지역에 있는 다주택자와 임대사업자에 대한 주택담보대출도 허용될 것으로 보인다”며 “거래 제약이 컸던 수요자들의 부담이 해소되며 주택 거래는 용이해질 전망”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으로 수도권에서 거래된 아파트 매매 계약 5건 가운데 3건은 중저가 아파트가 대상이었다. 중저가 아파트 기준은 3억원 초과에서 9억원 이하로 설정했다. 이는 2020~2021년 집값 상승기 때 시세 10억원을 넘긴 단지들이 지난해 부동산 경기가 얼어붙으며 줄줄이 9억원 이하로 손바뀜 됨에 따른 현상이라고 부동산R114는 분석했다.
서울은 이른바 ‘노도강(노원구, 도봉구, 강북구)’ 위주로 거래량이 늘었다. 9억원 이하 중저가 아파트가 밀집돼 있어 매수세가 집중됐던 것으로 보인다. 강남 3구는 대단지나 정비사업이 추진되는 단지 위주로 거래가 늘었다.
강남 3구에선 15억원 초과 아파트 거래 비중도 소폭 상승했다. 하지만 작년 1월 기준 24억원대(전용 76㎡)였던 강남구 대치동 은마아파트가 18억원대에 거래되고, 송파구 대단지의 경우 평균 21억~23억원(전용 84㎡)에 거래됐던 단지들이 17억~18억원대에 거래되는 등 가격 내림 폭이 컸다.
경기와 인천은 3억원 초과~6억원 이하 거래가 절반이 넘었다. 경기는 2021년 최고가 대비 낙폭이 컸던 경기 화성 동탄신도시와 수원 영통구에서 3억원 초과~6억원 이하 거래가 활발했다. 인천도 서구 청라국제도시, 연수구 송도신도시와 남동구에서 아파트 거래가 집중돼 해당 구간 거래 비중이 높았다. 그러나 인천은 12억원 초과 아파트의 거래가 1월에도 살아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수도권 아파트 거래량이 이 같은 증가세를 보이지만 최근 3년 동안 거래량과 비교해보면 여전히 낮은 상황이다. 2020~2022년 1월 수도권 아파트의 평균 거래량은 2만2182건이었다. 올해 1월 거래량인 6647건은 평균 거래량의 약 30%에 불과한 셈이다.
부동산R114 관계자는 “1월 거래량을 통해 거래 회복세를 판단하는 게 시기상조일 수 있는 이유”라며 “다만 추이를 고려했을 때 지난해 하반기처럼 거래 실종으로 (거래량이) 추가 감소할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어 “현재 급매 위주의 하향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자상환 부담, 경기 불황 등을 고려하면 단기간에 매수 심리가 반전하기 보다는 점진적으로 거래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시장 분석업체 ‘부동산인포’도 집값 바닥론은 아직 이르다는 결론을 내놨다. 거래량이 늘어도 시세가 오르는 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지금은 급매나 저가 매물 위주로 거래량이 늘고 있을 뿐이라고 봤다. 거래 건수가 평년보다 턱없이 부족하다고도 우려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올해 상반기 전후로 작년 거래량(29만8000건)의 70% 안팎을 기록할 만큼 거래가 이뤄져야 한다”며 “급매물이 사라지기 직전이 바닥이라고 봐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집값이 오르려면 종전보다 조금이라도 오른 가격의 매물이 거래돼야 하지만 현재는 그렇지 않다는 해석이다.
부동산인포 측은 “현재 주택 시장은 평년 대비 거래량 감소, 높은 금리, 미분양 증가, 신규 분양 감소 등 악재가 여전히 산재하다”며 “기준금리 3.50%에서 추가 금리 인상 가능성까지 불안정한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권 팀장은 “바닥은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이라며 “수요자들은 바닥에 집중하기보다 시중 매물이 어떻게 나오고 들어가는지 봐야 한다. 저가 매물을 중심으로 매수 여부를 결정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실제 최근 미분양 아파트 숫자는 정부가 위험선으로 언급한 6만2000가구를 넘어서기도 했다.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12월 주택 통계’에 따르면 2022년 12월 말 기준 전국의 미분양 주택은 총 6만8107가구로, 전달 대비 17.4%(1만80가구) 증가했다. 1년 전만 해도 미분양 주택 수는 1만7710가구에 불과했다. 단 1년 만에 미분양 주택 규모가 4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작년 12월 미분양 물량은 2013년 8월(6만8119가구) 이후 9년 4개월 만에 가장 많아졌다. 미분양 주택은 신규 분양 주택의 1차 계약일까지 계약이 이뤄지지 않은 주택을 의미한다.
경매 시장에서도 아파트 매매 시장과 비슷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수차례 유찰로 가격이 큰 폭으로 하락한 아파트들이 등장하자 실수요자들 위주로 낙찰자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매매 시장 시세보다 저렴해진 물건들은 수십 명의 응찰자가 경쟁할 정도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다.
법원경매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 1월 전국 아파트 경매 진행 건수는 1736건으로 이 중 634건이 낙찰됐다. 낙찰률은 36.5%로 전월(27.5%) 대비 9.0%포인트 상승했다. 낙찰가율(감정가 대비 매각가)도 75.8%로 전월(75.0%)보다 0.8%포인트 올랐다. 평균 응찰자 수는 5.9명으로 비슷했다.
서울 아파트 낙찰률은 44.0%로 집계됐다. 이는 전월(17.9%)보다 2배 이상 상승한 수치다. 낙찰가율은 전월(76.5%) 대비 2.2%포인트 오른 78.7%를 기록했다. 평균 응찰자 수도 1.2명이 늘어난 5.6명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8월 이후 5개월 만에 5명대를 회복한 것이라 주목된다.
지지옥션은 “여러 차례 유찰된 아파트가 다수 소진되면서 낙찰률이 반등했다”며 “특히 이 중 재건축이나 리모델링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격 하방 압력이 덜할 것으로 예상되는 아파트에 입찰자가 몰렸다. 동시에 평균 응찰자 수도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2월에도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졌다. 2월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경매에선 동작구 상도동 힐스테이트상도센트럴파크 전용면적 118㎡가 최저낙찰가 12억2880만원에 입찰을 진행했다. 여기에는 응찰자 16명이 몰렸고 최종적으론 14억1100만원에 매각됐다.
지난해 11월 최초 경매 당시 감정가는 19억2000만원에서 시작했지만 두 차례 유찰돼 최저입찰가가 36% 저렴해지자 수요자들이 몰린 것이다. 서초구 잠원동 재건축 대어인 신반포4차도 이날 경매에서 매각됐다. 전용면적 137㎡가 감정가 39억6500만원에서 한 차례 유찰돼 최저입찰가 31억7200만원에 진행됐는데 33억5만원에 낙찰됐다.
2월 1일 열린 서울북부지방법원 경매에선 응찰자가 73명이나 몰린 물건도 나왔다. 성북구 석관동 두산아파트 전용면적 84㎡가 세 차례 유찰 끝에 감정가(9억9000만원)의 절반 수준인 최저입찰가 5억688만원에 경매가 진행됐는데 7억523만원을 써낸 입찰자에게 매각됐다.
이들 아파트들의 공통점은 모두 매각가가 매매 시장에서의 최저호가보다도 저렴했다는 것이다. 경매가 진행될 당시 힐스테이트상도센트럴 전용면적 118㎡의 경우 호가는 16억원대였다. 시세보다 2억원 낮은 가격에 낙찰된 것이다. 신반포4차 전용면적 137㎡ 역시 최저 호가는 33억원, 석관동 두산아파트 전용면적 84㎡도 8억원이었으므로 시세보다 1억원 저렴한 가격에 낙찰이 이뤄진 것이다.
경매 전문가들도 수차례 유찰로 가격이 저렴해진 물건들이 낙찰되면서 낙찰률이 일시적으로 반등한 효과가 나타난 것일 뿐 아직 시장이 살아났다고 보긴 어렵다고 분석했다. 향후 높은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경매에 넘겨지는 매물들이 더 많아질 것이기 때문에 실수요자라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주현 지지옥션 선임연구원은 “서울 아파트 낙찰률이 40%대로 올랐지만 2020년, 2021년과 비교하면 여전히 낮은 수준”이라며 “2~3회 유찰된 저가 매물들이 낙찰되면서 상승했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투자자들보다는 특례보금자리론 등 대출규제가 완화되면서 실수요자들이 움직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향후 전망에 대해선 “낙찰가율 자체는 오르기 쉽지 않을 것이다. 최근 시장에서 응찰자가 몰리는 물건도 낙찰가율은 높지 않다”며 “여전히 가격이 하락할 수 있는 심리가 강하고 고금리가 유지되고 있기 때문에 공격적으로 낙찰가율을 산정하긴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반기엔 더 많은 매물들이 쏟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희수·이석희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