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가 인공지능(AI) 챗봇 ‘챗GPT(ChatGPT)’ 개발사 오픈AI에 투자하기로 나서면서 전 세계 증시에서 연초부터 로봇주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국내 증시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월 국내 증시에 상장된 기업 2600곳 가운데 주가가 가장 많이 오른 기업 5곳이 모두 AI와 로봇 관련 기업으로 나타났다. 기업 5곳은 코난테크놀로지(268%), 오픈엣지테크놀로지(134%), 레인보우로보틱스(127%), 셀바스AI(122%), 알체라(111%)로 지난 한 달 동안 주가가 2배 이상 올랐다.
로봇은 슬라브어로 ‘노동(Labor)’인데 ‘스스로 보유한 능력으로 일을 수행하는 기기’를 뜻한다. 로봇의 종류는 휴머노이드, 산업용 로봇, 수술용 로봇, 보조 로봇, 치료 로봇, 드론, 나노 로봇, 군사용 로봇, 광산 로봇 등으로 구분된다.
국제로봇연맹(IFR)은 로봇의 종류를 크게 산업용 로봇과 서비스용 로봇으로 나눈다. 산업용 로봇은 공장 등 산업 현장에서 사람의 힘으로는 수행하기 어려운 작업을 대신 맡고, 서비스용 로봇은 소매점의 서빙 로봇이나 로봇청소기처럼 일상에서 사람을 도와준다.
로봇 시장의 성장세가 가파르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은 세계 로봇 시장이 2020년 250억달러(약 30조원)에서 2023년 400억달러(약 50조원)로, 2030년에는 1600억달러(약 200조원)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봇 시장이 성장하는 근본적 이유는 인플레이션과 코로나19로 인한 구인난에 직면한 기업들이 로봇과 자동화에 공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 자동화, 물류 자동화에 이어 휴머노이드 등을 활용한 서비스 자동화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증권가에선 로봇 관련주가 일시적인 테마로 주저앉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김종민 삼성증권 연구원은 “글로벌 생산 가능 인구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사람을 대체할 수단은 로봇”이라며 “이같은 문제를 로봇이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삼성전자가 로봇주 주가 상승에 불을 지폈다. 지난 1월 초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삼성전자를 대상으로 590억원 규모의 제3자 배정 유상증자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레인보우로보틱스 지분이 10.3%로 늘어난 삼성전자는 2대 주주로 올라섰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은 CES에서 “올해 안에 주행 보조 로봇인 ‘EX1’이 출시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투자자들은 국내 로봇주 주가가 이미 많이 오른 데다 대부분 시가총액이 수천억원대로 규모가 작아 고민이 많다. 실적도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국내 로봇주 최초로 ‘시총 1조원 클럽’에 들어간 레인보우로보틱스는 작년 1년 동안 매출액 139억원, 영업이익 15억원을 기록한 것으로 예상됐다.
로봇 대장주가 없는 상황에서 대기업의 로봇 사업이 주목받는다. 대기업의 비상장 자회사인 로봇 기업 덕분에 대기업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는 것이다. 두산은 협동로봇 제조업체인 두산로보틱스 지분 90.9%를 보유하고 있다. 두산로보틱스는 협동로봇 분야에서 작년 기준 시장 점유율이 10% 수준으로 세계 5위권이란 평가다.
두산 외에도 대기업들의 로봇 사업 진출이 활발하다. HD현대는 자회사로 현대로보틱스(지분율 90%)를 두고 로봇 사업을 진행 중이다. 현대로보틱스는 산업용 로봇과 자동화 부문에서 활약하고 있다. LG전자는 2018년 산업용 로봇 업체인 로보스타(지분율 33.4%)의 지분을 인수했다. 현대차그룹도 2020년 지분 80%를 인수한 보스턴다이내믹스를 앞세워 로봇 기술 개발에 나서고 있다.
한국 빅테크들 역시 인공지능 챗봇 개발에 속속 동참하고 있다. 네이버는 최근 진행한 연간 실적발표 콘퍼런스 콜에서 올 상반기 중 ‘서치GPT’를 출시하겠다고 예고했다. 서치GPT는 장기적으로 네이버 검색을 대체할 것으로 보이며, 초거대 AI인 ‘하이퍼클로바’를 기반으로 한다.
정의훈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네이버가 올 상반기 한국에 특화된 ‘서치GPT’ 출시를 예고했으며, 네이버는 보유한 방대한 양의 검색 데이터를 기반으로 기존 생성형 AI의 최신성 부족과 영어 기반 모델로 정확성 저하 등 단점을 보완할 예정”이라고 분석했다.
카카오도 챗GPT를 만든 오픈AI가 공개한 GPT-3 소스를 바탕으로 한국어 특화 모델인 ‘KoGPT’를 개발했다. 카카오는 역시 오픈AI가 만든 이미지 생성 모델 ‘달리(DALL-E)’를 활용한 ‘민달리’도 내놨다. 카카오는 KoGPT와 민달리를 검색에 적용하는 방안을 살피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네이버와 카카오는 검색뿐 아니라 메신저, 쇼핑, 음악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어 생성형 AI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통신사들도 초거대 AI 개발·상용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5월 선보인 AI 서비스 ‘에이닷(A.)’을 고도화하고 있다. SK텔레콤은 이를 위해 AI가 사진·음성·텍스트 등 복합적 정보를 함께 이해하도록 하는 ‘멀티모달’ 기술과 오래된 정보를 기억해 대화에 활용하는 ‘장기기억’ 기술을 적용한다.
KT는 지난해 11월 개최한 AI 전략 간담회를 통해 초거대 AI 프로젝트 ‘믿음(MIDEUM)’을 발표했다. 믿음은 챗GPT와 유사한 수준의 대화형 초거대 AI 서비스로 사전에 학습한 지식뿐 아니라 외부 지식까지 가져와 서비스에 반영한다.
해외에서는 챗GPT로 기선을 제압한 마이크로소프트가 승승장구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는 100억달러를 투자한 오픈AI의 만능 챗봇 ‘챗GPT’를 업데이트해 자사 검색 엔진인 ‘빙(Bing)’에 탑재하고 수백만 명을 상대로 사용할 수 있도록 문호를 열겠다고 밝힌 상태다. 챗GPT를 등에 업으면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시가총액은 다시 2조달러를 넘겼다.
AI 챗봇 경쟁은 갈수록 격화되고 있다. 중국의 검색 엔진 업체인 바이두 역시 오는 3월 AI 챗봇 중국판을 발표하겠다고 선언했다. 바이두는 현재 이른바 ‘어니 봇(Ernie Bot)’을 테스트하고 있다. 나스닥에 상장된 바이두 주식은 올해 들어 20% 넘게 상승했지만, 구글은 챗봇 바드가 오답을 내놓으면서 급등락을 거듭하고 있다.
이 같은 AI 챗봇 경쟁에 최고 수혜주로는 미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인 엔비디아가 손꼽힌다. 엔비디아는 그래픽처리장치(GPU) 개념을 창시했는데 AI 딥러닝 영역에서는 병렬 처리 기술의 GPU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반도체 시총 1위’ 엔비디아는 올해 들어 주가가 50% 넘게 올랐다.
4차 산업혁명으로 일컬어지는 AI, 로봇 등 전 분야에서 GPU를 통한 컴퓨팅 가속이 필수적이다. 어규진 DB금융투자 연구원은 엔비디아에 대해 “기존 고사양 게임의 구동을 위해 고성능 GPU가 사용되면서 게이밍이 엔비디아 성장에 기여했다면 최근에는 데이터센터의 가속기로 GPU가 적용되면서 데이터센터향 매출 성장세가 가파른 상황”이라며 “향후 엔비디아의 성장은 전문가용 그래픽 작업을 위한 워크스테이션용 GPU와 자율주행차를 위한 차량용 제품이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말했다.
시가총액 규모가 큰 해외 로봇주도 주목받고 있다. 증권가에서는 미국 인튜이티브서지컬, 스위스 ABB, 일본 화낙을 로봇 대표주로 꼽는다. 미국에서는 의료기기를 전문으로 하는 인튜이티브서지컬의 시총이 850억달러로 가장 크고, 산업용 로봇 분야에서는 로크웰오토메이션이 시총 340억달러로 큰 편이다.
미국 밖에서는 스위스의 산업용 로봇 전문기업인 ABB와 일본의 산업용 로봇 전문기업인 화낙이 시가총액 규모가 큰 편이다. 특히 화낙은 50년 넘게 산업용 로봇 강자로 군림해온 ‘뼈대 있는’ 기업이다. 로봇과 관련된 해외 상장지수펀드(ETF)들도 함께 관심받고 있다.
현재 주요 ETF는 ROBO(Global Robotics and Automation Index ETF), IRBO(iShares Robotics and Artificial Intelligence Multisector ETF), ROBT(First Trust Nasdaq Artificial Intelligence and Robotics ETF) 등 3종이다.
박윤예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