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의 강자와 빠른 추격자의 대결.
지난해 주요국 증시의 하락장 속에서도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규모는 80조원을 돌파하면서 투자자들의 관심은 오히려 확대되고 있다. 이에 국내 ETF 시장에서 전통의 강자로 군림해오고 있는 삼성자산운용과 빠른 추격자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대결이 올 한 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말 기준 두 회사의 ETF 시장 점유율 차이는 4.31%포인트로 5%대가 무너졌다.
특히 올해는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기업들의 실적 악화 예상 등 좀처럼 호재가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주식보다 안전 종목으로 분류되는 ETF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모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만큼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경쟁은 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두 회사 모두 향후 장기 투자에 보다 적합한 상품을 내놓겠다는 계획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두 회사의 전략에서 차이를 엿볼 수 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2022년 12월 기준 삼성자산운용의 ETF 순자산가치총액은 32조9505억원으로 국내 1위를 유지했다. 점유율은 41.97%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순자산가치총액은 29조5674억원으로 점유율 37.66%, 양사의 점유율 차이는 4.31%포인트다.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국내 ETF 시장 점유율은 2020년에만 해도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났었다. 하지만 2021년 들어서면서 격차가 한 자릿수로 줄어들더니 지난해 초에는 6.99%로 7% 선이 무너졌다. 이후 이 간극은 조금씩 좁혀지는 추세다. 지난해 5월 4.39%포인트로 5% 이내로 좁혀진 점유율은 11월 3.34%포인트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12월 양사의 점유율 차이는 4% 포인트로 마무리 지었다.
삼성자산운용은 2002년 국내 업계 최초로 KODEX200을 상장한 후 20년간 업계 1위를 지켜왔다. 거래소에 상장된 ETF 수는 153개로 전체 시장의 22.97%를 차지한다. 국내에 가장 먼저 ETF를 상장한 만큼 해외형 ETF, 채권형 ETF는 물론 인버스, 레버리지와 같은 파생형 ETF 모두 국내 최초로 선보였다. 그만큼 국내 투자자들에게 삼성자산운용의 인지도는 상당히 높다. 평균 거래대금은 1조5584억원으로 전체 시장의 74.91%를 차지하는데 이는 인버스와 레버리지 같은 파생상품 거래가 많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대표 상품인 KODEX200의 현재 순자산총액은 5조5666억원으로 출시 이후 단 한 번도 1위 자리를 놓친 적이 없다. 삼성자산운용이 걸어온 길이 곧 국내 ETF의 역사라고 해도 과한 표현이 아닐 정도로, 국내 ETF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데 일등 공신 역할을 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자산운용이 빠르게 움직여온 만큼 국내 ETF 시장을 선도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삼성자산운용보다 늦은 2006년 국내 ETF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테마형 ETF, 해외 ETF 등 다양한 상품을 비롯해 해외 진출을 기반으로 무서운 성장세를 이어왔다. 2011년 국내 운용사 중 최초로 홍콩거래소에 ETF를 상장하기도 했고, 2018년에는 미국의 글로벌X를 인수, 해외 투자 규모를 빠르게 늘렸다.
현재 미래에셋자산운용은 미국과 캐나다, 홍콩, 일본 등 10여 개국에서 ETF를 운용하고 있다. 이에 국내 운용사 중 처음으로 전 세계에서 운용하고 있는 ETF 규모가 2021년 말 기준 100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현재 운용 중인 ETF는 지난해 12월 기준 153개로 삼성자산운용보다 1개가 더 많다.
대표 ETF도 해외형이다. 2020년 12월 상장한 ‘TIGER 차이나전기차 SOLACTIVE ETF’가 대표적이다. 이차전지 산업 성장에 빠르게 올라탄 TIGER 차이나전기차 SOLACTIVE의 순자산가치총액은 현재 3조원으로 국내 3위를 기록 중이다.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모두 장기적인 수익률을 끌어올려 투자자들의 노후를 책임지겠다는 점에서 목표에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삼성자산운용은 지난해부터 채권형에,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글로벌 테마형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삼성자산운용은 지난해 23개의 ETF를 상장했는데 주식형이 12개, 채권이 6개, 혼합자산 4개, 기타 1개로 주식형이 여전히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기타로 분류된 것은 KODEX KOFR금리액티브(합성)이고 혼합자산의 경우 ‘타깃데이트펀드(TDF)’와 채권 비중을 높인 한 종목 추종 ETF였다.
그만큼 채권을 비롯해 특정 시기를 겨냥한 TDF를 출시함으로써 향후 확대되는 연금 시장 대응에도 나서고 있다. 즉 상승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테마형보다는 장기 투자에 적합하고, 하락장에서 손실 방어가 가능한 종목 위주로 새로운 ETF를 출시했다. 삼성자산운용 관계자는 “단기적인 테마형 상품보다는 장기적으로 트렌드가 될 수 있는 상품 라인업 구축에 힘을 쓰고 있다”며 “또한 해외, 채권, 연금쪽 상품을 강화해 장기 수익률 강화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4월 삼성자산운용이 출시한 KODEX KOFR금리액티브의 경우 국내외 긴축 공포, 기준금리 인상으로 투자심리가 얼어붙는 상황에서도 상장 후 104영업일 만에 순자산총액 3조원을 돌파하기도 했다. 국내 ETF 역사상 최단 기간에 가장 많은 자금을 끌어들인 ETF로 남았다.
반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지난해 21개의 ETF를 출시했는데, 이 중 주식형은 14개, 채권형 3개, 혼합자산 3개, 기타 1개였다. 역시 해외 비중이 높았다. 추종 시장이 해외 또는 국내&해외 혼합인 ETF가 총 14개로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주식형, 해외형이 많은 만큼 테마 ETF가 주를 이뤘다. 다만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테마 ETF란 단기간에 뜨는 산업보다는 향후 지속적으로 성장이 예고되는 분야를 뜻한다. TIGER 글로벌사이버보안INDXX, TIGER 미국나스닥넥스트100 등의 ETF가 대표적이다.
또한 미래에셋자산운용의 테마에는 안정적인 장기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배당 ETF’도 포함된다. 지난해 미래에셋자산운용은 TIGER MKF 배당귀족을 비롯해 TIGER 미국S&P500배당귀족을 출시하며 하락장 속에서 갈 곳 잃은 투자자들의 자금을 빨아들였다. 미래에셋자산운용 관계자는 “우리의 방향성은 연금과 글로벌, 테마”라며 “장기적으로 투자할 수 있는 글로벌 우량 자산, 글로벌 메가 트렌드 상품을 발굴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지난해 하반기 들어서는 ‘TIGER CD금리투자KIS(합성)’에 3조원에 가까운 자금이 유입되면서 점유율을 끌어올렸다. CD금리투자KIS(합성)는 양도성예금증서(CD) 91일물 수익률을 추종하는 국내 최초의 금리형 ETF다. 매일 이자가 복리로 쌓이고 은행예금과 달리 쉽게 현금화가 가능해 은행 파킹통장을 대체하는 ‘파킹형 ETF’로 주목받고 있다. 6월 기준 이 상품의 순자산총액은 약 4500억원이었지만 길 잃은 투자자금을 빠르게 흡수하면서 5개월 만에 3조4000억원 규모로 확대됐다. 이 상품은 현재 삼성자산운용의 KODEX200에 이어 국내 ETF 순자산 기준 2위를 기록하고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장기적인 관점으로 투자 수익률을 극대화하겠다는 점에서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의 목표는 비슷하지만 달성을 위한 전략에는 차이가 있다”며 “퇴직연금을 굴리고 싶은 투자자라면 이 점을 잘 비교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는 누구도 예측하기 힘든 증시가 이어질 것이 예상되는 만큼 수익률을 극대화하기 위한 ETF 출시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며 “양 사의 경쟁이 보다 치열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ETF 시장은 지난해 처음으로 80조원 규모를 넘어섰지만 삼성자산운용과 미래에셋자산운용 쏠림 현상은 과거보다 심해졌다. 두 운용사의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79.63%로 77.94%였던 2021년 대비 1.69%포인트 높아졌다. KB자산운용과 한국투자신탁운용의 점유율이 각각 8.87%와 3.89%를 기록했으며 뒤를 이어 키움투자자산운용(2.35%), NH아문디자산운용(1.86%), 한화자산운용(1.84%), 신한자산운용(0.94%) 순이었다. 2021년과 비교하면 점유율 확대에 성공한 자산운용사는 KB자산운용과 NH아문디자산운용, 신한자산운용에 불과하다.
업계 관계자는 “2021년의 상승장, 2022년의 하락장을 모두 경험한 상황에서 향후 ETF 시장은 안정적인 수익률에 보다 초점이 맞춰질 것”이라며 “다만 ETF 시장은 선점하는 자가 유리한 만큼 국내 ETF 시장의 문을 열고 주요 시장지수를 추종하는 상품을 보유한 삼성자산운용과 테마형 ETF를 갖고 있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쏠림 현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원호섭 매일경제 증권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