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시계장인.”
프랑스 작곡가 라벨(1875~1937)을 두고 후배 작곡가 스트라빈스키(1882~1971)가 한 말이다.
그 만큼 라벨의 음악은 정밀하고 섬세했다. 스위스 출신 토목기사였던 아버지의 영향 탓일까. 라벨은 늘 명확하고 균형이 잘 맞춘 선율을 추구했다. 너무 치밀하게 작곡해 악보는 새까맣게 보일 정도로 음표가 많았다. 그 음들을 다 살리려면 연주자들은 기진맥진했다. 라벨이 ‘규칙의 미학’을 보여준 작품이 바로 발레곡 ‘볼레로’. 똑같은 멜로디와 리듬이 무한 반복되어도 멋진 음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하나의 리듬이 무려 169번 반복된다. 리듬 1개와 멜로디 2개가 15분 넘게 반복되지만 지루하지 않다. 관악이 주도하다 현악이 가세하면서 사운드는 절정에 이르고 결국 장엄하게 폭발한다.
원래 볼레로는 18세기 스페인의 댄스 음악. 라벨은 발레리나 이다 루빈슈타인의 의뢰를 받아 작곡했다. 스페인계 어머니가 불러주던 스페인 민요에 익숙한 라벨은 전통 리듬에 색다른 매력을 입혔다. 원래 발레곡으로 쓰였으나 지금은 관현악곡으로 더 많이 연주된다. 라벨은 기존 음악의 장점을 취해 독창적인 선율을 만드는데 능했다. 그 자신도 누구의 영향을 받았는지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는 프랑스 선배 작곡가 포레(1845~1924)의 작곡법 수업을 받았다. 라벨이 사망한 이듬해 잡지 ‘르뷔 뮤지칼’에 게재된 그의 글 ‘자전 소묘’에서 “포레의 충고는 나에게 힘을 주었고, 그것은 모두 나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국적인 관현악곡 ‘셰헤라자드’에서는 그가 어릴 적부터 동경하던 작곡가 드뷔시(1862~1918)의 향기가 느껴진다.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말라르메의 문체를 음표로 풀어낸 ‘스테판 말라르메의 3개 시’는 작곡가 쇤베르크(1874~1951)의 ‘달에 홀린 피에로’와 거의 비슷한 악상이 나타난다.
세상을 따뜻하게 어루만진 작곡가
음악 동네와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라벨은 세상을 따뜻하게 보듬을 줄 알았다.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피아니스트 파울 비트겐슈타인을 위해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를 작곡했다. 오랜 연습으로 왼손 테크닉을 완성한 비트겐슈타인이 저명한 작곡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했으나 대부분 자신이 없다고 사양했다. 유일하게 라벨만이 이 제의를 받아들였다.
2년 후인 1933년 비트겐슈타인은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이 곡을 초연했다. 절망을 견뎌낸 왼손의 단단하고 아름다운 선율은 청중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세계 음악계에서 엄청난 화제가 된 이 연주회 이후 두 손이 멀쩡한 피아노 대가들도 왼손의 기량을 과시하기 위해 연주하곤 한다.
오른손 마비에 시달린 피아노의 거장 레온 플라이셔에게도 구원의 빛을 준 작품이다. 37세에 ‘근육 긴장이상증’으로 오른손에 문제가 생기면서 피아니스트의 생명이 끊길 위기를 맞았지만 플라이셔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30년 넘게 한 손만으로 건반을 두드리며 세상을 감동시켰다.
게리 그래프만도 왼손 피아니스트로 유명하다. 그도 오른손이 마비되는 시련을 극복하고 왼손 피아니스트 영역을 개척한 예술가이자 교육자, 미국 명문 커티스 음악원장을 역임했으며 피아노와 실내악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 D장조’는 한 손만을 위해 쓴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음이 풍부하다. 라벨은 자칫 빈약해질 수 있는 피아노 선율을 보강하기 위해 금관 악기의 음색을 부각시켰다. 또 타악기를 치밀하게 배치해 야성적이고 역동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40세가 넘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라벨은 전쟁의 참상을 이 작품에 녹였다. 고뇌에 찬 도입부는 어둡고 우울한 정서가 흐른다. 이어지는 행진곡풍은 전쟁의 광기를 또렷하게 표현했다. 곡 전체를 감싸는 서글픈 재즈풍의 리듬은 비극의 잔상을 오랫동안 기억하게 만든다.
이 곡으로 절망에 빠진 피아니스트를 구해준 라벨은 사람을 아끼고 사랑할 줄 알았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등 위대한 작곡가들 대부분이 괴팍한 성격이었던 반면 그는 타인과의 조화를 중시했다. 매우 사교적이어서 친구들이 많았다.
라벨 작품 연주로 정평이 난 라디오 프랑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사진제공=빈체로>
어린이를 사랑한 독신 남성
특히 그는 어린이들을 무척 좋아했다. 평생 독신으로 지낸 라벨은 친구 가족들과 어울리는 것을 유난히 즐거워했다. 특히 코데브스키라는 친구 집에 자주 놀러갔다. 친구 내외보다는 쟝과 미미라는 두 아이들과 놀기 위해서다.
1908년 라벨은 이 아이들을 위해 멋진 ‘음악 선물’을 완성한다. 바로 피아노 연탄곡 모음곡 ‘어미거위’. 연탄곡이란 한 대의 피아노에서 두 사람이 함께 연주하는 기법으로 오손도손 정겹게 선율을 만들어나간다.
몽상가이자 독특한 유머 감각을 지녔던 그는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기 위해 동화를 음악 소재로 삼았다. ‘어미거위’는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위한 파반느’, ‘난쟁이’, ‘파고다의 여왕 레드로네트’ , ‘미녀와 야수의 대화’ ‘요정의 정원’ 등 5개의 모음곡으로 구성됐다.
어린이가 연주하도록 작곡됐기 때문에 이 모음곡은 아주 단조로우면서도 평화롭다. 연주 기교도 어렵지 않고 간결하다. 아이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위해 기발하고 신선한 선율도 종종 끼어든다.
‘잠자는 숲속의 미녀를 위한 파반느’에서는 16세기 궁정춤곡인 파반느 선율이 넘실거린다. 마법에 걸려 잠자는 공주를 깨우기 위해 시녀들이 파반느의 춤을 추는 장면을 음악으로 묘사했다.
‘난쟁이’는 요술에 걸려 아주 작은 난쟁이가 된 소년의 이야기를 선율에 담았다. 난쟁이의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 보기에 부끄러워 난쟁이를 깊은 산에 버리려 한다. 하지만 재치 있는 난쟁이가 작은 돌을 길목마다 던져 표시를 해 두었기 때문에 집에 다시 찾아올 수 있었다. 그 다음번에는 아버지가 돌을 못 가져가게 하자 빵 조각으로 표시해두는데 새들이 다 먹어버렸다. 결국 난쟁이는 숲 속에 홀로 남게 된다.
마지막 곡 ‘요정의 정원’은 행복한 결말을 표현했다. 아름다운 요정의 정원에서 공주가 잠을 자고 있는데 젊은 왕자가 나타난다. 이 때 공주가 잠을 깨고 왕자가 공주의 손을 잡았을 무렵에는 무희들이 축하의 춤을 춘다.
쓰라린 실패 뒤 주변으로 시선 돌려
그렇다면 라벨의 유년시절은 어땠을까. 여느 천재 작곡가들처럼 어려서부터 음악 재능이 반짝거렸다. 7세에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14세에 파리음악원에 입학했다. 재학 중에는 피아노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1899)와 ‘물의 장난’(1901)을 발표해 천재 작곡가로 사회적 명성을 얻었다.
당시 그의 자신감은 하늘을 찔렀다. 하지만 1901년 작곡가의 등용문인 로마대상에 응모했으나 2위 입상에 그쳤다. 로마대상이란 프랑스 정부가 젊은 예술가들에게 로마 유학 기회를 주기 위해 매년 실시하던 콩쿠르로 파리음악원 학생만 지원할 수 있었다. 이 대회 실패로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은 라벨은 1위에 입상할 때까지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5년 동안 참가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이후 그의 작풍(作風)에 반감을 가진 심사위원회 거부로 응모조차 못했다. 라벨의 연이은 낙선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고 결국 논란 끝에 파리음악원장이 바뀌는 스캔들이 됐다.
하지만 쓰라린 실패를 맛본 후 라벨은 자만심을 버리고 주변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소외받는 사람과 피폐해져가는 자연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그의 음악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됐다. 그의 피아노 모음곡 ‘거울’(1905년)은 자연과 사람의 이미지를 선율에 투영해 음악 어법을 확장시켰다.
첫 번째 곡 ‘나방’은 어지럽게 엉켜서 불빛을 향해 날아가는 나방의 모습을 건반 위에 선명하게 새겼다. 죽음을 향해 돌진하는 하루살이의 서글픈 열정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두 번째 곡 ‘슬픈 새’는 여름날 무기력하게 숲을 떠돌다 정신을 잃는 새의 움직임을 묘사했다. 들뜬 느낌의 화성은 불안하면서도 신비롭다. 산업혁명이 일으킨 대기오염으로 새들이 죽어가는 현상을 비판한 작품이기도 하다.
세 번째 곡 ‘바다 위의 작은 배’는 은빛 물결 위를 유유히 떠다니는 배를 잔잔한 선율로 표현했다. 군중 속에 살지만 결국은 혼자일 수밖에 없는 외로운 인간의 자화상 같다.
일본 클래식 음악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에 수록되어 더 유명해진 네 번째 곡 ‘광대의 아침노래’는 파리 거리에서 그림과 음악을 파는 가난한 젊은 예술가들에게 바치는 곡. 시작 부분에서 장난스럽게 똑똑 끊어지는 음들은 이른 이침부터 뒤뚱거리면서 사람들의 환심을 사기위해 노력하는 광대의 고군분투처럼 느껴진다. 글리산도(손톱으로 건반 위를 훑어 내리는 연주기법)와 점점 빨라지는 박자는 필사적으로 예술과 삶을 붙잡으려는 광대의 절규로 다가온다. 갑자기 조용해지는 대목에서는 광대가 공연에 실패해 슬럼프에 빠진 것 같다. 한 때 로마대상 입상 실패로 방황하던 작곡가의 기억이 깔려있는 듯하다.
다섯 번째 곡 ‘종의 골짜기’는 파리 성당의 정오 종소리를 담았다. 인상주의 영향으로 라벨의 선율은 그림물감이 되어 나른한 오후를 깨우는 파리 성당 종소리의 이미지를 그려나간다.
이국적인 상상력과 독특한 유머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던 그의 말년은 불행했다. 1932년 불의의 자동차 사고로 뇌를 다친 것. 그 사고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없게 됐고 부분적인 기억상실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리고 5년 후 6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즐겨 읽던 1000권이 넘는 책과 아름다운 음악이 유산으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