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고를 당한 근로자가 회사를 상대로 해고가 부당하다며 다투다가 합의금을 받고 해고를 받아들이는 사례가 적지않다. 그런데 회사로부터 받은 합의금에 거액의 소득세가 부과될 수 있음을 아는 근로자는 많지 않다. 회사와 해고를 두고 오랜 다툼 끝에 상당한 합의금을 받았지만, 다시 세무서와 합의금에 부과된 세금을 두고 새로운 다툼을 이어가는 해고근로자도 적지 않다. 세무서가 김지영에게 과세처분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소득세법은 법인세법과 달리 소득세법에서 과세대상으로 정한 소득에 해당하지 않으면 소득세가 부과되지 않는다.
소득세법은 과세대상인 기타소득의 하나로 사례금을 과세 대상으로 정하고 있다. 다만 사례금의 구체적인 뜻을 정의하고 있지 않다. 국어사전을 보면 ‘사례’의 뜻은 ‘언행이나 선물 따위로 상대방에게 고마운 뜻을 나타냄’이다.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사례금의 뜻을 생각하면, 김지영이 회사로부터 받은 합의금을 사례금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회사가 김지영에게 감사의 의미로 2억원을 지급했다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법원은 소득세법상 사례금을 “사무처리 또는 역무의 제공 등과 관련해 사례의 뜻으로 지급되는 금품”이라고 정의하면서 사전적 의미의 사례금보다는 다소 넓게 보고 있다. 당사자 사이에 법적 의무나 대가관계 없이 감사의 뜻으로 지급하는 수고비 외에도 분쟁을 종결하면서 향후 상대방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부작위의 대가 역시 소득세법상 사례금에 해당할 수 있다. 현재 법원은 회사가 해고근로자에게 지급한 합의금이 해고가 유효함을 전제로 법률분쟁을 신속하고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협조한 대가라고 판단되면 그 해고합의금을 소득세법상 사례금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세무서는 김지영이 받은 합의금이 법률분쟁을 신속하고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협조한 대가로서 사례금이라 보고 김지영에게 과세처분을 한 것이다.
김지영은 왜 합의금이 사례금이 아니라 인적용역의 대가라고 주장할까? 사례금은 필요경비가 인정되려면 지출한 비용에 관한 증명이 있어야 한다. 반면 인적용역의 대가에 해당하면 지출한 비용에 관한 증명이 없더라도 70%까지 필요 경비를 인정받을 수 있다. 편의상 소득공제가 없다고 가정하면 김지영이 받은 합의금이 사례금일 경우 2억원 전액이 과세표준이 되고 세율이 38%가 된다. 반면 인적용역의 대가에 해당하면 아무런 증명이 없어도 1억 4000만원(= 2억원x70%)이 필요경비로 인정되어 6000만원(= 2억원-1억4000만원)만 과세표준이 되고 세율 역시 24%로 줄어든다. 김지영이 받은 합의금이 사례금인지, 인적용역의 대가인지에 따라 김지영의 종합소득세는 4000만원 이상 달라진다.
그렇다면 김지영이 받은 합의금은 사례금일까, 인적용역의 대가일까? 법원은 해고근로자가 회사로부터 받은 합의금이 사례금인지를 판단함에 있어 돈을 수수한 동기와 목적, 당사자들의 관계, 액수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한다. 특히 해고가 유효한지를 중요한 판단 요소로 보고있다. 해고가 유효하다면, 회사는 근로자에게 근로의 대가로서 돈을 지급할 이유가 없고 근로자로부터 인적용역을 제공받을 이유도 없다. 그렇기에 해고가 유효하다면 회사가 해고근로자에게 지급한 돈은 분쟁의 신속하고 원만한 해결에 대한 사례로 인정될 가능성이 높다. 위 사례와 유사한 사건에서 법원은 회사와 김지영이 해고가 유효함을 전제로 합의하였다고 볼 수 있고, 해고 이후에 김지영이 회사에 인적용역을 제공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는 이유로 김지영이 받은 합의금을 사례금으로 판단하여 김지영에게 패소판결을 선고하였다.
이처럼 해고근로자는 회사로부터 해고가 유효함을 전제로 해고합의금을 받으면 예상보다 큰 소득세를 부담할 수 있으므로 주의할 필요가 있다.
※ 본 칼럼은 필자의 소속기관과는 관련 없음.
허승 판사
현재 부산지방법원 동부지원(부장판사)에서 근무 중이며 세법, 공정거래법에 관심을 갖고 있다. 대전변호사회 우수법관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저술로는 <사회, 법정에 서다> <오늘의 법정을 열겠습니다>가 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4호 (2024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