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파트값이 가파르게 오르며 고공행진하고 있다. 주택 공급 절벽과 금리 인하 기조까지 맞물리면서 막 출범한 이재명 정부의 부담이 커지고 있다. 부동산 정책이 첫 번째 시험대에 오르는 형국이다.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6월 셋째주(16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값은 0.36%나 오르며 20주 연속 상승했다. 이는 집값 급등기로 꼽히는 2018년 9월(0.45%) 이후 약 7년 만에 최대 상승폭이다. 현재 서울 부동산 시장이 문재인 정부 시절 수준의 급등세를 보이고 있단 의미다.
각종 규제 카드를 검토해야 할 상황이지만 실제 꺼내들기도 쉽지 않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기간 내내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겠다”고 공언했다. 노무현·문재인 정부와는 다른 길을 걷겠다는 의지를 보인 셈이다. 기존 더불어민주당 정부는 모두 급등하는 집값을 잡지 못하며 끝내 정권을 잃었다.
부동산 시장의 이목은 이에 이재명 정부가 펼칠 차별화된 부동산 정책에 쏠려 있다. 새 정부의 정책 청사진을 그리는 국정기획위원회가 일단 선택한 카드는 ‘대출 규제’로 보인다. 전세가 레버리지 역할을 하면 투기적 수요와 함께 단기간에 가계부채가 늘 수 있다고 보는 분위기다.
실제 금융위원회도 최근 국정기획위에 전세대출에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를 확대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보고했다. 가계 대출이 폭증하며 그간 DSR에 포함되지 않았던 전세 대출과 정책 모기지를 넣는 방안까지 폭넓게 고려해보겠다고 한 것이다.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에 따르면 지난 6월 18일 전체 가계대출 잔액은 5월 말과 비교해 3조 9070억원 증가했다. 지난달 한 달의 증가폭인 4조 9964억원의 78% 수준이다. 이달 영업일이 여전히 8일 남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월말까지 6조원이 늘어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최근 가계 빚이 큰 폭으로 증가한 금융사들에서 대출 목표 이행계획서를 받기로 했다. 특정 수준까지 대출을 축소하겠다는 확약서를 받아 집중 관리한다는 것이다. 은행 주택담보대출에 자본 위험 가중치를 높여서 대출을 축소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주택담보대출의 규제 실효성을 높임으로써 은행이 기업대출보다 주택담보대출의 공급을 선호하는 유인을 축소하려는 움직임이다. 은행은 자산건전성 지표인 국제결제은행(BIS) 자본 비율이 일정 수준을 초과하지 않도록 당국의 규제를 받기 때문에 위험가중치 관리를 신경 쓸 수 밖에 없다.
금융위는 국정기획위 업무 보고에 ‘지분형 주택담보대출’ 내용을 포함시키지 않기로 가닥을 잡기도 했다. 윤석열 정부 말미에 제시된 지분형 모기지는 정부와 소비자가 주택 지분을 나눠 함께 매입하는 방식이다. 이 제도는 그간 정부가 집값을 떠받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단 비판을 받아왔다.
오는 7월 1일부턴 스트레스 DSR 3단계도 시행된다. 정부는 이 같은 대출 규제 강화가 시행된 이후 추가 대책을 살펴보겠단 입장이다. 정부가 토지거래허가구역, 조정대상지역, 투기과열지구란 ‘3중 규제지역’ 카드를 빠르게 꺼내들지 않는 건 풍선효과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최근 비강남권 주요 지역인 서울 성동·강동·마포구 집값은 강남권 못지않게 상승하는 상황이다. 한국부동산원의 6월 셋째주 기준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조사에선 서울 25개 자치구 가운데 성동구(0.76%)가 집값 상승률 1위를 기록했다. 강남구(0.75%), 송파구(0.7%), 서초구(0.65%) 집값 상승률을 앞질렀다.
성동구와 마찬가지로 강남권 인접 지역인 강동구(0.69%), 마포구(0.66%) 집값도 들썩인다. 기존 토지거래허가제 규제지역인 서초·강남·송파·용산구 외에 강동·성동·마포·양천·영등포·동작구 등 10개 자치구(집값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1.3배를 넘은 지역)가 규제 지역 지정 요건을 이미 충족한 상황이다.
준강남으로 꼽히는 경기 성남시 분당(0.6%)과 과천(0.48%) 집값 상승률도 만만찮게 높다. 지난 3월 강남 3구와 용산구 모든 아파트로 토지거래허가구역이 확대 지정된 후 이들 지역 집값은 꾸준히 오르는 추세다. 이른바 규제에 따른 ‘풍선 효과’를 보이는 셈이다.
이로 인해 일각에선 서울 성동·마포·강동구와 경기 과천·분당이 규제지역으로 지정되면 서울 외곽 지역에도 풍선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강북권인 성북구(0.16%), 노원구(0.12%) 집값은 이미 오름세를 타고 있다. 물론 서울 집값 급등세가 계속될 경우 잠시나마 시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규제지역 카드를 꺼내들 가능성도 여전히 남아있다.
특히 실거주 의무를 부여하는 토허구역이 확대 지정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고준석 연세대 상남경영원 주임교수는 “전세를 끼고 매매하는 이른바 ‘갭투자’를 못하게 하는 토허구역을 확대 지정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아울러 국토교통부는 수도권 공급 확대 방안도 분주히 마련하고 있다. 공공성 강화 원칙 아래 재개발·재건축 절차 및 용적률 등 완화를 추진할 방침이다. 공공성 강화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질 지에 대해선 아직 구체적 방안이 나오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에 1기 신도시를 비롯한 노후계획도시 재정비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간 민주당 정권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이 재건축·재개발 규제 강화에 무게를 실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면모다. 다만 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재초환)에 대한 기조는 전혀 밝혀진 게 없다.
고품질 공공임대주택을 늘리겠다는 공약도 이어간다. 노후 공공청사와 유휴 국공유지를 복합 개발해 공공주택 물량을 확보할 계획이기도 하다. 우체국이나 동사무소를 새로 지을 때 건물 상층부에 임대주택도 짓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4기 신도시 개발 공약을 꺼내들기도 했다. 4기 신도시로 명명할지 여부도 아직 밝혀진 바 없지만 수도권 신규 택지를 발굴하는 작업은 계속될 전망이다. 일각에선 윤석열 정부가 지난해 11월 수도권 그린벨트를 풀어 총 8만 가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한 것에 주목한다. 당시 일부인 5만 가구 공급 계획만 나왔기 때문이다. 서울 서초구 서리풀지구, 경기 고양 대곡지구, 의왕 오전왕곡지구, 의정부 용현지구가 그 대상이다. 당시 정부는 나머지 3만 가구에 대해선 올해 상반기 안에 수도권 그린벨트를 추가로 더 풀어 공급하겠단 입장을 보였다. 어느 정도 후보군이 추려져 있는 상황인 만큼 3만 가구 공급 계획이 속도를 내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다. 3기 신도시를 비롯한 여러 수도권 공공주택지구의 토지 효율화도 꾸준히 추진한다.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는다는 기조가 있는 만큼 이재명 정부는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그대로 따르진 않을 전망이다. 정부가 정하는 집값인 공시가격은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 등 보유세를 부과할 때 기준으로 쓰인다. 공시가격이 오르면 세 부담도 커지는 구조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20년 아파트 공시 가격을 2030년까지, 단독주택 공시가격을 2035년까지 단계적으로 올려 시세의 90% 수준으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른바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다. 아예 부동산공시법(제26조 2)을 개정해 현실화율 목표치를 설정하는 걸 의무화하기도 했다. 당시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는 가운데 인위적인 인상분인 현실화율까지 더해지니 공시가격이 확 뛰고 세금 부담도 덩달아 커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뒤이어 집권한 윤석열 정부는 이에 공시 가격 현실화 계획 폐지를 추진했다. 국민의힘도 부동산공시법 제26조 2를 삭제하는 내용으로 개정안을 발의해 뒷받침하고 나섰다. 물론 의석수가 적어 실제 개정을 이뤄내지는 못했다. 그 대신 윤 정부는 집권 3년 동안 현실화율을 2020년 수준인 69%로 고정했다. 인위적인 인상분 없이 시세 변동만 반영하도록 산식 변경에도 나섰다.
이번에 더불어민주당이 다시 정권을 잡으며 부동산 시장의 이목은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이 재추진될지에 쏠려 있다. 하지만 정부·여당은 아직까진 ‘세금으로 집값을 잡지 않는다’는 기조를 명확히 하고 있다. 그렇다고 윤석열 정부처럼 아예 폐지를 추진하기보단 제3의 길을 모색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기획재정부도 부동산 가격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대책 마련을 고심하고 있다. 서울에 몰리는 수요를 지방으로 분산하기 위해 종합부동산세, 양도소득세 계산 때 주택 수에 포함하지 않는 지방 저가주택 범위 확대도 기재부가 꺼낼 수 있는 카드로 꼽힌다. 지금은 4억원 이하 지방 저가주택만 주택 수에서 빼주고 있다.
임대차 시장이 전세에서 월세 위주로 바뀌고 있단 점을 고려한 공약이 현실화 될지도 주목된다. 월세 세액공제 대상자와 대상 주택 범위를 늘리겠다는 약속이었다. 현재는 무주택 세대주이면서 연소득 8000만원 이하인 근로자가 기준시가 4억원 이하 주택을 임차할 경우 세액공제를 받을 수 있다.
이재명 정부는 국토 균형 발전에도 적극 나설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세종시를 행정수도로 만들겠다”고 했다. 임기 안에 대통령 세종 집무실과 국회 세종의사당을 건립하겠단 의지를 보였던 것이다.
이른바 ‘5극 3특’ 제도도 추진한다. 5극은 수도권·동남권·대경권·중부권·호남권 5대 초광역권을, 3특은 제주·강원·전북특별자치도를 뜻한다. 해당 지역의 대표 산업과 거점대학에 집중투자해 일자리를 만들고 정주 여건을 조성하는 게 정책의 지향점이다. 문재인 정부의 초광역 메가시티, 윤석열 정부의 5대 메가권과 2특화 벨트를 진화 발전시킨 것으로도 보인다.
[이희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