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보면 그렇지 않은 해가 없겠지만, 2010년 역시 다사다난(多事多難)했던 한 해였다. 김연아 선수의 올림픽 금메달 획득, 축구 월드컵 16강 진출 등 기쁜 일들도 많았지만 천안함 사태, 나로호 공중 폭발 등 온 국민을 슬프게 하는 일들도 많았다. 특히 세계적인 금융위기와 경기 침체의 여진은 아직도 끝나지 않고 있다. 그리스와 포르투갈이 재정 적자를 이기지 못해 IMF 구제금융을 받았고 미국은 또 다시 천문학적인 돈을 풀어 경기를 살리기로 결정했다. 한국 경제는 비교적 견고한 성장세를 보이며 2년10개월 만에 코스피지수가 다시 1900선을 넘어섰지만 해외 변수에 취약한 경제구조의 특성상 위험요소는 곳곳에 산재해 있다.
국내 경제 상황과 이슈
PIGS국가(포루투칼·이탈리아·그리스·스페인)의 소버린 리스크(Sovereign Risk), 미국의 더블딥 위험 등 불확실한 대외여건 속에서도 우리나라의 2010년 GDP 성장률은 6%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2011년 한국 경제는 4%대 성장으로 성장추세는 이어지겠지만 속도는 다소 둔화될 전망이다. 2010년 하반기부터 시작된 세계경제 회복세의 둔화로 인해 수출 및 출하 증가율이 감소하고 있다. 경기 회복의 과정에서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됐던 기준금리가 이제는 물가 상승 부담으로 돌아오고 있어 인상이 불가피해 보인다. 풍부한 달러 유동성과 한국 경제의 성장에 힘입은 원화의 강세 역시 경상수지에는 불리한 영향을 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는 여전히 희망적이다. 2011년에는 재정 건전화가 세계적인 이슈가 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지만 한국은 재정 건전화가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의 2010년 재정수지 적자폭이 10대 신흥국 가운데 가장 작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2009년 GDP 대비 -1.7%를 기록했던 재정 적자 규모는 2010년 GDP 대비 -1.0%를 기록할 전망이다(2010년 7월, 피치사의 ‘국가 채무 검토 및 전망’). 신흥국 재정 적자 규모의 평균이 -3.5%인 것과 비교할 때 한국의 나라살림은 상당히 양호한 수준이다.
Issue 1. IFRS의 본격 시행
유례없는 경제위기와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도 나라살림이 크게 궁핍하지 않은 원인 가운데 하나는 국내 기업들의 경쟁력 강화 덕분이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한층 높아진 기업의 재무 건전성은 금융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었다. 한편 2011년 국내 기업들에게는 또 다른 과제와 함께 도약의 발판이 생기게 될 것이다. 바로 국제회계기준(IFRS: International Financial Reporting Standards)이 2011년부터 상장사를 중심으로 전면 시행에 들어가기 때문이2010다. 전문 인력의 부족, 회계제도 변경에 따른 막대한 비용, 관계 법령의 충돌 등 아직 보완해 나가야 할 부분들도 많지만 국제회계기준의 도입은 국내 기업의 투명성을 높여 한국 기업들이 외국인들로부터 정당한 대우를 받는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재화와 자본의 이동에 장벽이 사라져 가는 국제 무역 환경은 각 나라 고유의 제도와 환경을 초월하는 단일 기준을 요구하고 있으며, 국제회계기준의 도입은 바로 이러한 추세에 우리나라가 동참하게 됐다는 것이다. 국제적인 재무 정보의 정합성과 비교 가능성을 높이고 동등성을 확보함으로써 국내 기업들의 대외 신인도를 향상시켜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는 방편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
Issue 2. 코스피 지수의 MSCI 선진지수 편입 여부
2011년 한국 증시에서 기대되는 또 다른 호재는 코스피의 MSCI 선진지수 편입이다. 2011년이면 MSCI 선진지수 편입에 일곱 번째 도전이다. 한국 경제의 위상과 코스피의 유동성 등을 감안할 때 벌써 이루어졌어야 할 선진지수 편입이지만 외국인 등록제 폐지, 외환거래 자유화 등에서 합의를 이루지 못해 편입이 미뤄지고 있다. 우리 정부나 한국거래소의 입장에서도 국익 보호 차원에서 무리한 양보를 할 수는 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FTSE 선진지수와 S&P 선진지수 등에 한국이 이미 편입돼 있는 상황에서 MSCI 선진지수에 코스피가 편입돼 있지 않다는 것은 지수를 산정하는 측의 입장에서도 적지 않은 부담이 될 것으로 판단한다. 일곱 번째 도전인 만큼 전향적인 노력으로 MSCI 선진지수 편입이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FTSE 선진지수 편입이 공식적으로 이루어진 2009년 9월, FTSE 지수를 추종하는 유럽계 자금이 한 달 만에 3조원 가까이 코스피로 유입됐다. MSCI 지수를 추종하는 자금의 규모가 훨씬 크다는 점을 감안할 때 선진지수 편입에 따른 자금 순유입 효과는 100억 달러가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10년 세계경제 성장률은 4%대 후반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2011년에는 4%대 초반 수준에 그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여전히 신흥국 중심의 성장세를 이어가겠지만 신흥국과 선진국 모두 성장률 측면에서는 2010년에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Issue 3. 재정건전화
2011년 세계경제의 최대 화두는 어떻게 하면 재정 건전화와 성장을 동시에 이루느냐가 될 것이다. 경기 부양을 위해 막대한 재정을 집행하였고 PIGS 등 일부 국가들은 나라 빚이 눈덩이처럼 커져 결국 IMF 등 국제기구의 구제금융을 받는 실정에 이르렀다. 재정수지 악화에 따른 부담은 유럽 선진국이나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여서 재정 정책 기조의 전환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미국 주택 시장의 침체, 고용 회복의 지연 등 아직 민간부문의 성장 동력이 미약한 가운데 재정 건전화로 정책기조가 전환될 경우 선진국 성장률의 둔화와 함께 대(對)선진국 수출 감소에 따른 신흥국의 성장률 역시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물론 미국에서 FRB의 국채 매입 등 통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시행해 나갈 뜻을 발표했지만 재정 집행을 통한 대규모의 추가 경기 부양책이 실행되기는 어려운 상황이어서 경기 부양의 효과는 크지 않을 수 있다.
Issue 4. 달러 가치의 변화와 상품 가격
그러나 국채 매입 등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이 2011년 세계경제에는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2010년 11월 FOMC에서 6000억 달러 규모의 2차 양적 완화 정책이 발표됐고 이 정책의 완료 시기가 2011년 6월까지로 예정돼 있어 ‘화폐전쟁’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다. 1차 양적 완화 정책이 발표되던 2009년 3월에는 대부분의 국가들이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을 환영했다. 돈을 풀어서라도 미국 경제가 살아난다면 신흥국도 그 혜택을 누릴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었다. 경기 침체와 안전자산 선호로 신흥국 화폐의 가치도 크게 떨어진 상황이어서 국제공조에 별다른 마찰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2차 양적 완화 정책이 시행될 2010년 말과 2011년의 상황은 다르다. 미국 등 선진국은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자극해서라도 경기를 부양시켜야 하는 반면 신흥국은 대부분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억제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있다. 신흥국 화폐의 가치도 상당부분 절상이 이루어졌고 더 이상의 통화 가치 절상이 경제에 부담을 줄 수 있어 미국의 양적 완화 정책에 따른 달러화 가치의 하락 가능성이 반갑지만은 않다. 결국 자국에 이익이 되는 통화 가치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진국과 신흥국 사이에 치열한 정책 대결이 불가피하며 그 결과에 따라 무역수지나 경제 성장률, 증시 상승률 등이 판가름 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 달러화 약세는 상품 가격의 상승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우선 금 가격의 지속적인 상승세가 예상된다. 달러 가치의 불안정성을 우려하고 있는 신흥국 중앙은행을 중심으로 달러 보유 비중을 줄이는 대신 금 확보에 나설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특히 세Magazine계에서 가장 많은 외환 보유고를 기록 중인 중국이 자산 다각화 차원에서 금 보유 규모를 확대할 것으로 보여 금 가격의 상승세는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판단한다. 또 이상기후의 지속, 대체에너지원으로서의 가치 부각 등에 따라 곡물 가격의 상승세도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국제 상품 가격의 상승이 한국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는 않을 전망이다. 원자재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의 특성상 상품가격의 상승이 반가울 수는 없지만 원화 가치가 꾸준히 상승하고 있어 도입 물가 상승 압력이 상당부분 희석될 것으로 보인다.
Issue 5. 스마트 및 증강현실 관련 기술의 진화
2010년에는 스마트폰이 열풍을 일으켰다. 스마트폰 시장을 얼마나 점유했느냐가 대형 IT 주의 주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하였다. 2011년에는 스마트폰을 넘어 스마트 태블릿, 스마트 TV 등으로 관련 기술의 진화가 예상되며 현재는 상상도 하지 못한 스마트 관련 제품들의 출시가 줄을 이을 것으로 기대된다. 스마트 관련 신규 제품의 출시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2차 전지 등 연관 산업에는 성장의 기회를 제공할 것이다.
2010년 스마트폰과 함께 ‘대세’를 이룬 또 다른 아이콘은 ‘3D’ 혹은 ‘증강현실’이다.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아바타'가 세계적으로 3D 열풍을 가져왔지만 이보다 개념이 넓은 증강현실은 1990년대 후반부터 연구와 개발이 진행됐던 분야다. 상상이 현실이 되는 세계를 꿈꾸는 증강현실은 스마트 관련 기술의 발달과 함께 더욱 그 영역을 넓혀갈 것으로 기대된다. 현재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증강현실 관련 기술은 위치기반 서비스가 대부분이지만 앞으로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의료 및 교육 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분야에서 관련 기술이 시현될 것으로 보인다.
경제는 거대한 유기체, 변화를 읽어나가려는 관심 필요
2011년 예상 이슈와 영향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러나 경제는 각종 요인들이 영향을 주고받는 거대한 유기체와 같아서 현재의 예상과 실제의 흐름은 전혀 다른 움직임을 나타낼 수 있다. 또 한 가지 요소에서 생긴 작은 변화가 전체 이슈들에 대한 결과를 예상과 다른 방향으로 바꿔버릴 수도 있다. 결국 이슈들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언급된 이슈들이 실제 어떻게 상호작용해 나가고 그 과정에서 어떤 새로운 이슈들이 등장하는지를 추적해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구희진/ 대신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