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처음 시작한 사업은 바이오가 아니었다. 바이오는 그야말로 어쩌다 찾은 아이템이었다. 어느 날 신문을 보니 앞으로 바이오산업이 유망하다고 해서 그럼 바이오를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5명 모두 위대한 결정이라고 치켜세워 한 거였다. 한 가닥 기대는 있었다. 대우차 1차 협력업체 사장이 서 회장을 보고 투자하겠다는 약속을 했지만, 당초 예상한 금액의 10분의 1만 들어왔다. 그래서 바이오를 하긴 해야겠는데 일단은 돈을 벌어야 하니 뭐라도 해보자고 한 게 대우그룹의 주특기인 무역이었다.
어느 날 집에서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TV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서 회장의 눈에 무역 아이템이 들어왔다. 아이슬란드에서는 대구 내장을 그냥 버리는 것 아닌가. ‘저거 우리가 싸게 수입하면 되겠다’ 싶어 다음날 비행기표를 끊고 아이슬란드로 갔다. 대통령은 물론 담당 장관까지 만나 일이 성사됐는데, 웬걸 한국에서는 수입금지. 공수표만 날린 셈이다. 지금은 웃으면서 당시 이야기를 해준다.
“어쨌든 아이슬란드에 가서 대구를 제일 많이 잡는 곳이 어디냐고 물으니 택시 운전사가 그곳으로 데려다주더군요. 경비에게 대구 머리하고 내장을 내가 사겠다고 하니 사장에게 전화를 했는데, 폐기물로 버리는 걸 사겠다고 하니 솔깃해하는 거예요. 뭐할 거냐고 물어보길래 우리는 그걸 다 끓여 먹는다고 말했죠. 그랬더니 이거 국가 과제인 것 같다며 대통령에게 데려갔어요. 여자 대통령이었습니다. 대통령이 진짜냐고 묻길래 그렇다고 했더니 장관까지 다 부르고. 거기서 대구 지리탕을 끓여줬죠. 내게 독점수입권을 주더군요. 그날 저녁 현지 TV에도 나왔고 아침 신문에도 보도됐습니다. 의기양양했어요. 그런데 웬걸, 이게 한국서는 수입금지품목이었던 거죠.”
그 뒤의 일화도 흥미진진하다.
“나중에 평창올림픽 개최를 앞두고 우리 정부가 표 확보를 위해 아이슬란드에 접촉했더니 거기서 하는 말이 서정진이란 사람 잡아오라는 거였어요. 그래서 제가 거기 가서 싹싹 빌었습니다. 나중에 아이슬란드 대학과 연계해 대구 위에서 엔자임을 추출해 각질 제거용 화장품 만들어줬습니다.”
무역과 관련해선 숱한 일화가 있다. 당근이 돈 되겠다 싶어 중국에서 대량 수입했는데 세척한 뒤 물기를 제대로 제거하지 않아 썩어버리는 사태가 발생했다. 망고, 파인애플 같은 열대과일도 수입했는데 유통시장 생리를 모르니 참패. 중국에서 고춧가루를 수입하려는데 관세가 높아 다대기로 만들어 들여왔지만 그것 역시 신통치 않았고, 홍어를 수입했는데 뜯어보니 대구가 나오고. 태국에서 냉동 새우, 소파도 수입해 봤는데 잘 안됐다. <행복한 장의사>라는 영화에서 힌트를 얻어 장의용품 사업도 검토했지만 기득권 카르텔이 워낙 강력해 포기. 이때 직접 체험한다며 관 속에 누워봤다는 건 너무나 잘 알려진 일화다. 지금도 청년들에게 특강할 때 당시 얘기를 하면서 조언한다. “실패라는 말은 쓰지말라. 실패는 관 뚜껑 닫기 직전에나 하는 소리”라고. 그런 와중에 서 회장은 바이오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무모한 돌격을 감행한다. 후학들을 대상으로 한 강연에서 너무 자주 한 얘기라 식상한 면도 있지만 간략하게만 소개하면 이렇다. 서 회장은 출신 대학인 건국대 조명환 교수의 조언을 받고 샌프란시스코행 편도 티켓을 끊는다. 조 교수 멘토인 유명한 바이오 분야 교수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서 회장은 샌프란시스코라면 치가 떨릴 정도로 그곳에서 개고생을 한다. 한식은 비싸서 언감생심. 주로 먹은 게 도넛이었다. 커피가 무한 리필된다는 걸 알고 던킨 도넛을 단골로 잡았다. 평생 먹을 도넛을 그때 다 먹었다며 그 어떤 음식도 고추장 찍어 먹으면 한식 맛이 난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거의 걸인 신세다 보니 현지 홈리스와도 친구가 됐다. 듣고 또 들어도 가슴 찡한 얘기다. 돈이 없어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지고 어딘가로 도망가고 싶은 마음에 자살 결심까지 한 서 회장. 그 자살이 실패로 그치고 아내를 만났는데 눈물을 펑펑 쏟는다. 그리곤 “진심으로 미안하다, 고맙다”는 말을 한다. 직원들에게도. 누군가 그에게 성공한 이유를 물으면 이렇게 답한다.
“내가 성공한 이유는 딱 한 가지입니다. 나는 내가 똑똑한 줄 알았는데 잘 안됐고, 내 직원들이 나 때문에 고생하는 걸 알고 그들이 날 도와주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알게 됐습니다. 똑똑한 건 필요조건이지만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성공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같이하는 겁니다.”
그는 2017년 말 매일경제신문의 경제 월간지인 <매경LUXMEN(럭스멘)>이 선정한 올해의 기업가상 수상 자리에서 본인은 사업가로서 이제 초등학교 5학년에 들어선 것 같다고 말했다.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 치는 1학년, 돈을 벌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2학년, 돈 좀 벌면 애국하고 싶어지는 3학년, 후배 도와주자고 하는 4학년, 그리고 5학년은 주변 사람 보기에 ‘쪽팔리지 않게 살기’였다. 그러면서 그해 은퇴 선언을 한다. 자식같이 키운 회사, 내가 망치는 게 쪽팔리는 짓인데, 나이들면서 고집이 느는 걸 보니 어쩌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는 오래전부터 65세가 되면 은퇴하겠다고 약속하고 그걸 실천했다. 그러나 3년 뒤 그는 다시 돌아왔다. “왜 다시 회사 경영에 복귀했느냐”고 물었다. “은퇴 후 재창업하겠다고 했는데 그 꿈을 늦춘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나 한 가지 전제가 있었던 걸 내가 모르고 있었다. “환경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 소방수 역할을 하기 위해 현직에 복귀하겠다”고 한 걸.
“2023년 당시 글로벌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굵직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었습니다. 셀트리온과 셀트리온헬스케어의 합병부터 전략 제품의 승인 및 출시, 글로벌 점유율 확대에 이르기까지 지속 가능한 성장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해 빠른 판단과 의사결정이 필요했습니다.
그러면서 “작년에 역대 최대 매출액인 3조5000억원을 달성한 걸 보면 복귀 잘한 거 아니냐”고 멋쩍게 웃는다. 사실 그에게 마지막 미션이 남아있다. 미지의 보물섬인 신약을 찾아 떠나는 여정이다. 이미 어느 정도 준비는 돼 있다. 서 회장은 “항체 약물 복합체라고 하는 ADC(Antibody-Drug Conjugate), 다중항체 등 신약 파이프라인을 차질 없이 추진하고 있다”며 “올해 ADC 신약 후보 물질 3건, 다중항체 신약 후보 물질 1건 등 총 4개 제품에 대한 임상을 시작할 예정이고 2028년까지 총 13개의 신약 후보 물질 개발에 나설 방침”이라고 밝힌다. 이럴 경우 첫 신약 상업화 시점은 2029년. 이게 서 회장이 쓰고자 하는 바이오의 전설이다. 그는 “사실 신약 개발은 이제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걸로 이뤄지지 않는다”며 “그런 시대는 지났고 지금은 플랫폼이 신약 개발을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이미 5가지 플랫폼을 갖췄습니다. 화학물질(Chemical)하고 항체(Antibody)를 붙입니다. 이걸 ADC라고 합니다. 여기다가 붙이는 김에 하나가 아니라 두 개, 세 개 붙이고 면역세포까지 붙이면 그게 다중항체입니다. 그다음이 코로나19 백신 때 나왔던 mRNA 백신. 그리고 여기서 m을 뺀 RNA 플랫폼,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 몸 안에 있는 세균을 잘 조작해 약이 되게 하는 게 있는데, 그게 마이크로바이옴이고 대표적인 게 유산균입니다. 셀트리온은 이렇게 현존하는 신약 플랫폼을 다 갖고 있습니다. 여기다가 얹어 신약 테스트를 합니다.”
“신약이 6학년이냐”고 물었다. 한 템포 쉬더니 말을 이어간다.
“6학년은 계속해서 이상향을 향해 나아가는 단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내가 제일 잘하는 것을 열심히 해서 회사, 직원, 주주,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할 계획입니다. 현재 내 이상향은 바로 신약입니다. 바이오시밀러를 넘어 ‘글로벌 신약 기업’으로 도약하는 것. 이를 발판으로 글로벌 빅파머로서 본격적인 면모를 갖추는 것. 우리는 전 세계 어느 회사보다도 유능한 과학자를 보유하고 있고, 그동안 축적한 경험과 노하우가 있습니다.”
궁금해졌다. CMO 비즈니스를 하면서 사실은 바이오시밀러를 준비했듯이, 바이오시밀러를 하면서 신약을 준비했을 거라고 짐작했기 때문이다. 짐작이 맞았다. 공장 투어를 하면서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2005년에 완공된 제1공장은 1만2500ℓ짜리 세포 배양기(Bio-reactor)를 총 8대 설치했다. 2011년 완공된 제2공장은 세포 배양기가 총 6대. 규모를 키웠다. 배양기 용량이 1만5000ℓ. 그러면 2003년 준공돼 작년부터 본격 가동에 들어간 제3공장은? 총 8대의 배양기가 있는데, 규모를 오히려 줄였다. 2공장의 절반인 7500ℓ다. 이유는 자명하다. 소품종 대량생산이 아니라 다품종 소량생산을 겨냥한 포석이다. 그게 다름 아닌 신약이다.
“신약, 그건 바이오시밀러를 시작했을 때부터 했던 생각입니다. 바이오시밀러는 캐시카우예요. 돈 되는 큰 사업입니다. 그런데 이익을 더 많이 내려면 신약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서 그는 작전 지도를 꺼낸다. 작전 지도라는 것이 A4 용지 한 장짜리 현금흐름표다. 이번 분기에 얼마 팔아 얼마나 이익을 내느냐, 그걸로 뭘 하느냐 같은 것. 그래서 그는 신약 개발이란 지시를 내렸다.
“회장이란 자리는 티처(Teacher)가 아니에요. 어텐션(Attention)시키는 지휘관이지. 내가 어텐션시키는 (지시하는) 순간 1000억원은 날아갑니다. 그런데 어텐션 시키지 않으면 2000억원이 날아가지요. 내가 직원들에게 전화로 지시하면 그들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우리 회장님이 뭔가 정리가 됐구나라고요.”
서 회장은 2021년 6월 11일 ‘비즈니스 분야의 오스카상’으로 불리는 ‘EY(Ernst&Young·언스트 앤드 영) 세계 최우수 기업가상’을 받았다. 한국인으로서는 처음이고 아직까지 서 회장이 유일하다. 이 상을 받았을 때는 65세가 되면 회장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약속을 한 후라 직책이 명예회장이었다. EY 최우수 기업가상은 특출난 비전으로 성공을 일군 기업가들의 노력과 열정, 성과를 기리고 기업가정신을 퍼뜨리고자 1986년 미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전 세계 50개국 약 145개 도시에서 국가별 최고 대상자를 선정한 뒤, 이들 중 글로벌 최우수상을 다시 뽑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한국에서는 EY한영이 2007년부터 개최했다.
서 회장은 영광스럽게 이 상을 수상하면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치며 성공 사례를 만든 끝에 셀트리온그룹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제약 바이오 그룹으로 우뚝 성장한 데 자부심을 느낀다”고 소감을 피력했다. 그러면서 “2002년 설립한 셀트리온은 제가 IMF 외환위기 시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뒤 신문에서 바이오산업이 미래 유망산업이 될 것이란 기사를 접하고 무모하게 뛰어든 자그마한 벤처기업에 지나지 않았다”며 “앞으로는 후배 기업가의 성장과 성공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원래 시상식은 지중해의 휴양도시인 모나코 몬테카를로에서 거행되는데 이때는 코로나19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인지라 각국 대표인 모든 후보자가 줌으로 참석했다. 서 회장도 송도에 있는 영빈관에서 줌으로 연결했다. 유럽과 시차가 있어 수상 소식이 전해진 건 한국 시간으로 새벽. 각국의 참석자들과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다가 드디어 사회자가 최우수상을 발표했다.
“사우스 코리아… 서정진.”
EY한영 측에선 혹시 모르니 수상소감을 준비하라고 했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호명이었다. 본인도 당황스러웠는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주변에 같이 있던 직원이 축하 인사를 건넸지만 무슨 말을 하는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현관 창밖으로는 노란 정원등이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시원한 빗줄기가 잔디밭을 타닥타닥 때리는 소리가 지치고 졸린 몸을 깨웠다. 그러고 보니 셀트리온의 운명이 바뀐 그날, 2013년 5월 30일 새벽에도 이곳 송도에는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손현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