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펠탑이 반짝이기 시작한다. 로맨틱한 마법의 시간이다. 파리를 찾은 여행자라면 누구나 설레는 5분. 누구는 사랑하는 사람의 반짝이는 눈을 바라보며 키스를 하고, 누구는 자신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최고의 찬사를 외치고, 누구는 자신의 인생에서 가장 숭고한 마음으로 기도한다.
해가 지고 매시 정각, 5분간 반짝이는 에펠탑. 1999년에서 2000년으로 1000년의 시간이 교차하는 자정, 새로운 밀레니엄을 기념하기 위해 에펠탑의 반짝 쇼는 시작됐다. 한때는 매일 새벽 1시, 황금색 탑이 사라지고 그 빈자리에 수천 개의 전구가 별처럼 반짝이는 ‘화이트 에펠’이 명성을 얻었는데, 관광객이 한밤중에 몰리자 안전상의 이유로 지금은 추억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런데 지난 3월 4일 아직 해가 지기도 전인 오후 6시 50분, 트로카데로 광장에 모인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성과 함께 에펠탑이 갑자기 반짝이기 시작했다.
사실, 파리지앵에게 있어 에펠탑은 시대의 중요한 사건을 알리는 상징이다. 2022년 9월 9일 자정 에펠탑은 모든 조명을 끄고,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의 서거를 추모했고, 2015년 9월 18일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춤을 추며 에펠탑은 한불수교 130주년을 기념하기도 했다. 프랑스가 월드컵에서 우승했을 때도, 테러 희생자를 추모할 때도, 에펠탑은 프랑스 국민의 마음을 담아 메시지를 발신했다.
그렇다면 매시 정각 5분간 반짝인다는 원칙을 깨고, 에펠탑이 그 순간 반짝인 이유, 무엇이었을까? 바로 여성의 권리에 있어 기념비적인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Mon Corps Mon Choix(나의 몸, 나의 선택). 특별하게 반짝이는 에펠탑은 이 메시지를 전 세계에 타전했다. 여성의 ‘자발적 임신 중지(IVG, l’interruption volontaire de grossesse)에 대한 자유’가 프랑스 헌법에 보장되는 역사적 순간을 기념한 것이다. 이날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프랑스 상하원 합동회의(Congre‘ s du Parlement)에서, 헌법 제34조에 ‘여성이 자발적으로 임신을 중단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는 조건을 법으로 정한다’라는 내용을 포함한 개정안이, 찬성 780표, 반대 72표의 압도적 표 차이로 가결되었다. 이로써 프랑스는 여성의 자발적 임신 중지(우리가 통상 사용하는 용어는 낙태)의 자유를 헌법에 규정한 세계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1975년 1월 17일 여성의 임신중지(낙태) 선택을 허용함으로써 임신중지가 범죄가 아니라고 규정한 ‘자발적 임신중지에 관한 일반 법률’, 이른바 베이유 법(La Loi Veil)이 제정된 지 반세기가 지나, 자발적 임신중지의 자유가 헌법적 차원에서 보호받는 수준까지 올라선 것이다.
영국 BBC 등 일부 외신은 이미 여성의 임신중지를 법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만큼 ‘임신중지의 자유’에 대한 헌법상 명시가 실질적인 변화를 의미하지 않는다고 평가절하 하기도 한다. 하지만 2022년 6월 미국 연방대법원이 임신중지를 인정한 기존 판례를 뒤엎고, 헝가리와 폴란드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임신중지를 제한하는 등 역사 퇴행적인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상황에서, 역사의 흐름을 역행해서는 안 된다는 프랑스인들의 강력한 의지를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가브리엘 아딸 총리는 ‘프랑스는 오늘 전 세계에 역사적인 메시지를 보냈다’라고 강조했다.
프랑스 혁명 직후인 1789년, 유럽 대륙 최초의 인권 선언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De’ claration des droits de l’Homme et du citoyen)’이 국민의회에서 채택된다. 당시, 단어 ‘Homme’의 정의를 두고 많은 다툼과 피바람이 불었다. H가 대문자인 옴므(Homme)는 인간을 뜻하지만, 소문자인 옴므(homme)는 남성을 뜻한다. 인권선언이 대상으로 하는 권리의 주체가 남성만 해당하는지, 아니면 인간 모두인지, 만약 인간 모두라면 그 인간의 범위와 정의는 무엇인지, 논란과 논쟁이 가열된 것이다. 아마도 프랑스 인권선언이 대상으로 하는 인간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는 과정이 인류가 이룩해 온 인권 신장의 역사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프랑스 인권선언이 채택되고 2년 뒤인 1791년 ‘여성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주장한 선각자적인 여성 운동가가 있었다. 당시 인권선언이 여성을 배제한 데 반기를 든 것이다. 당시로서는 급진적인 사상과 행동 때문에 1793년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올랭프 드 구즈(Olympe de Gouges)가 바로 그다. 그녀는 프랑스 인권선언의 옴므(Homme) 대신에 팜므(Femme)를 사용함으로써, 모든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가장 보편적인 생각을 230여 년 전 외쳤다. 여성이 남성에게 복종하도록 창조되었다는 루소의 주장을 반박하며, 남성과 여성 간의 사회적 계약으로서 결혼을 주장한 ‘여성 권리선언’의 마지막 문단은 인상적이면서 해학적이기까지 하다.
구즈의 외침처럼, 프랑스 대혁명 시절 이미 여성의 참정권에 대한 주장이 제기되었지만, 프랑스가 여성에게 참정권을 허용한 건 유럽에서도 가장 늦은 1944년 4월 21일이다. 그만큼 오랜 기간 사회적으로 치열한 논쟁이 있었기에 여성의 권리에 대한 프랑스인들의 사상은 탄탄했고, 그러한 기반 위에서 오히려 지금 세계를 이끌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가 추구하는 보편적 가치는 이미 1789년 선언되었다. 그 가치가 구현되고 후퇴하지 않도록 제도적 보장을 하는 과정이 역사적 성장이다. 혁명 후 왕정복고, 제국제정과 다시 공화정을 오가며, 혁명이 추구한 보편적인 가치를 구현하고 확대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치열하고 어려운지를 역사적으로 체험한 DNA가 프랑스인들의 피에 흐르고 있다고 본다. 그런 점에서, 이번 프랑스 헌법이 채택한 여성의 자발적 임신중지에 대한 자유는 여성의 승리이면서, 한편으로 인권이 향상되고 인류가 행복해지는 사회를 제도적으로 구현하고자 하는 우리 모두의 승리라고 확신한다.
올랭프 드 구즈는 1793년 11월 3일, “여성이 사형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면, 의정 연설 연단에 오를 권리도 당연히 있다”는 말과 함께 단두대에서 처형되었다. 프랑스 정부 차원에서 11월 3일 에펠탑을 소등해, 선구자적으로 인간의 평등을 외친 그녀를 기리는 건 어떨까?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