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싸고 무거운 첨단 무기는 실전에서 사치다. 가볍고 즉각 기동하는 수십달러짜리 무인 드론이 수천만달러짜리 무기를 압도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무인기 전술 가치가 부상하며 전쟁의 경제학을 바꿔놓고 있다. 세계 2위 군사 대국인 러시아에 압도될 것으로 보였던 우크라이나가 저가 무인 드론으로 기대 이상의 선전을 하면서 러시아 군시설은 물론 정유공장 등 사회기반시설까지 위협하고 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드론 전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격렬한 ‘드론전(戰)’ 양상을 띠고 있다. 드론은 전장의 군사력 균형을 뒤엎는 ‘게임 체인저’ 역할을 한다는 평을 받는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이란 전쟁에서 드론이 전장을 뒤흔드는 무기로 급부상했다. 인공지능(AI) 기술을 탑재한 기체는 한 발에 수천억 원이 넘는 미사일에 비해 매우 저렴한 가격에도 압도적으로 뛰어난 공격 능력을 수행하며 전황을 바꿨다. 일례로 러시아 폭격기 기지를 소형 드론으로 무너뜨린 우크라이나의 ‘거미집 작전’에는 대당 200만원대의 저가 드론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각국 정부가 국방 전략무기 또는 민간 첨단산업으로 드론 시장을 육성 중이어서, 글로벌 드론시장은 향후 최소한 연평균 10%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드론산업은 4차 산업을 주도해 나갈 미래기술로 클라우드 컴퓨팅, IoT(사물인터넷), AI, 생명과학, 로봇기술, VR(가상현실) 등과 융합하여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므로 산업 전반에 큰 변화가 예상된다.
사실 전쟁 전에도 드론 시장의 가파른 성장은 그 다양한 쓰임새가 기폭제가 됐다.
          드론은 조종사가 탑승하지 않고 항행할 수 있는 무인비행체를 뜻한다. 중량 250g 이하의 완구 레저용과 기체 등록이 필요한 일반형으로 구분된다.
위성항법시스템, 레이더, 라이다, 매핑(지도화), 촬영 및 데이터 전송, 비행 제어시스템 등 다양한 기술이 드론에 사용되면서 사용 분야가 더욱 다변화되고 있다.
특히 인공지능 기술을 이용해 드론이 주변 환경, 현 위치, 목표 경로를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자율 운행 결정을 내리는 단계로 진화하고 있다. 드론의 복수 제어 기능도 개선돼 대규모 군집 비행도 가능하다.
현재 드론이 가장 많이 활용되는 분야는 ‘관측·측량’ 분야다. 드론이 나서서 사람이 모두 가보기 어려운 지역의 지형과 고도, 지질 등을 조사하는 것이다. 건설, 광업, 농업 등 다양한 측량 분야에서 사용된다. 이런 분야 시장 규모만 100억달러에 이른다.
과테말라 정부가 ‘엘 미라도르’ 마야 문명탐사 작업에 중국산 DJI사 드론을 동원한 사례는 유명하다. 160만에이커(약 6474㎢)에 이르는 넓은 정글 속에 묻힌 탓에 이곳 유적들은 1960년대 본격 발굴이 시작된 다음에도 여전히 미지 공간으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드론은 정글 속 나뭇잎과 뒤엉킨 가지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기원전 800년에 존재했던 피라미드를 관측하고, 마야의 계단식 농법 흔적을 찾아냈다. 드론은 이미 남극과 북극 같은 극지에서 얼음의 변화나 극지 야생동물 관측에도 쓰이고 있고, 미 항공우주국(NASA)은 외계 행성 탐사용 드론 ‘인저뉴이티(Ingenuity)’를 통해 화성 관측 임무를 수행했다.
‘유지·보수’ 분야에서도 드론의 활약은 눈부시다. 시장 규모만 46억 6600만달러에 이른다. 특히 석유·가스 시추 시설이나 발전소 등 인간의 접근이 쉽지는 않으면서 규모는 큰 에너지 산업에서 드론은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다. DII(드론 인더스트리 인사이트)는 “드론은 굴뚝, 정유소, 송전선, 송전탑, 파이프라인 등을 점검하는 데 고유한 이점을 갖고 있다”며 “에너지 산업과 관련한 유지·보수 분야가 드론이 가장 크게 발전할 분야로 꼽힌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화물·택배나 창고업 역시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분야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월마트나 아마존 등 대형 유통사가 드론 택배를 빠르게 도입했다.
승객 수송에도 활용되고 있다. 기체의 수직 이착륙이 가능해 긴 활주로가 필요 없다. 전기로 운행해 친환경적이고, 헬기보다 저렴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포춘비즈니스인사이트는 UAM 시장 규모가 올해 50억달러(6조 8880억원)에서 2032년 146억달러(20조 1100억원) 규모로 연평균 16.6%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드론 자체를 만드는 하드웨어 시장의 경우, 이미 중국이 패권을 가져간 상황이다. 가격과 기술 경쟁력에서 우위를 지닌 중국 회사 DJI 한 곳만 해도 세계 드론 제품 시장의 7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세계 최대 드론 업체인 DJI를 필두로 중국이 사실상 세계 드론 시장에서 독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 국방 전문 매체 디펜스뉴스에 따르면, 중국 드론은 미국 취미용 드론 시장의 90% 이상, 산업용 드론의 70%, 응급 구조용 드론의 80%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DJI의 성장에는 중국 정부의 대대적 지원이 자양분이 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중국의 실리콘밸리로 통하는 선전시에선 이미 2003년 ‘통용 항공 비행 관제 조례’를 제정하고 드론 산업 육성에 나섰다. 중국 정부 차원에서 관련 지침을 마련한 것도 2009년이었다. 2014년 미국이 상업적 드론 운항 업체를 처음 선정하고, 2015년 일본이 드론 운항 규칙을 정비한데 비하면 한 발짝 빠른 움직임이었다. 속도를 내는 미·중 두 기업과 달리, 국내 UAM 사업은 답보 상태다.
국내에서도 차세대 먹거리로 떠오른 드론산업을 활성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활발하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한국 드론산업의 2024년 해외수출이 지난해 144억원 대비 62% 성장한 232억원을 달성했다. 수출지역은 미국, 캐나다, 유럽, 일본, 아랍에미리트, 인도, 카자흐스탄,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베트남 등 전 세계로 확대되고 있다. 수출 품목은 드론 라이트쇼 기체, 측량드론 기체, 비행제어장치, 드론축구 장비, 시설모니터링 서비스, 농업관리 서비스 등으로 기체, 하드웨어(H/W) 부품뿐만 아니라 S/W와 드론 활용 서비스까지 다양하다.
특히 한국 시장과 업체는 아직 규모가 작지만,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정책, 최근 선도업체의 해외 시장 개척 등으로 향후 성장을 기대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보고서에서 “국내 시장이 작아 업력이 7년을 넘는 기업의 평균 매출액도 3억 5000만원에 불과해, 오래 생존해도 중견 기업으로 발돋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드론 제조업에서 글로벌 40위 내 포함된 국내 기업은 전무하지만, 국내 일부 선도업체들도 해외 시장을 개척 중으로 향후 성장 추이가 주목된다. 대형 방산기업 한화에어로스페이스, LIG넥스원은 해외 군사용 드론시장 진출을 위해 미국 업체에 지분을 투자하거나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에이럭스, 파블로항공, 니어스랩 등 중소업체도 기술력을 앞세워 해외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손정락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당분간 방산업체의 군사용 드론 생산이 시장을 주도하겠지만 부품 공급을 중심으로 중소 업체의 성장 추이도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K-드론산업의 성장을 위해 풀어야 하는 숙제로 비행 안전성 검증, 민간시장 확대와 업체 영업실적 개선, 중국 과점업체와 경쟁할 수 있는 경쟁력 확보 등이 꼽힌다. 드론을 상업적으로 널리 활용하려면 안전 확보가 필수로 대도시일수록 드론 비행규제가 엄격해 상업 활동이 제약된다. 안전하다는 공감대가 확산되면 비행규제가 완화되고 상업적 이용이 확대될 전망이다.
업계에선 드론의 차세대 성장영역으로 ‘물리적(Physical) AI’의 부각을 주목하고 있다, 자율주행, 인공지능 탑재 로봇, 헬스케어 분야에서 사용되는 AI 등이 ‘물리적 AI’의 대표적인 분야로 언급된다. 2032년 글로벌 자율주행 시장규모는 2조 3539억달러로 드론의 16배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드론도 ‘물리적 AI’ 생태계에 포함될 것으로 기대된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드론은 로봇, 자율주행과 함께 물리적 AI의 구성요소로 정보탐색, 물리적 작업 수행능력에 기반해 다른 분야와 함께 성장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군사용 외에 상업용 시장에서 중국 드론의 사용 규제도 검토하고 있어 글로벌 드론시장에서 변화의 시발점이 될 것으로 분석도 제기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미국 외에 호주, 영국, 일본 등도 정부 기관의 중국산 드론 사용을 금지한 바 있어, 향후 통상마찰이 확대될 경우 드론시장 경쟁 구도가 변화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김성진 산업연구원(KIET) 연구원은 “결국 미국의 중국 견제는 군사나 안보 차원 문제도 있지만 자국 드론 산업을 키우려는 의도와 자국 업체들의 로비가 깔려 있다고 보인다”면서도 “중국은 국가가 산업을 직접 지원해 가며 견인해 온 반면 미국은 민간 기업에 규제를 풀어주는 방식으로 지원하기 때문에 아무리 항공 강국인 미국이라도 당분간 중국 수준을 따라가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역시 드론 배송, 드론 제작 및 서비스업 육성 등을 통해 글로벌 7대 드론 강국으로 도약하고자 지속해서 제도를 개선하고 기업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손정락 연구위원은 “드론의 물리적인 업무 수행력을 늘리기 위해서는 드론 소재, 모터, 제어시스템, 배터리 등 기반 기술이 고르게 발전하고 운영비용을 더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윤용진 카이스트(KAIST) 기계공학과
교수는 “배터리 기술 등의 발전으로 드론이 더 오래 날고 더 무거운 물체를 실어나를 수 있게 되면 관련 시장은 연간 7%를 훌쩍 넘는 성장세도 보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상 소프트웨어 기술만 개발하고 있는 한국도 드론 산업을 적극 육성할 필요가 있다”며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중국이 북한의 우방인 만큼 전쟁에 대비해서라도 드론 산업 육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병수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2호 (2025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