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세게 부는 해안의 새벽, 사람 대신 드론이 풍력 터빈을 빙글 돌며 사진을 찍는다. 눈보다 정확한 카메라가 미세한 흠집을 찾아내고, AI가 “이건 교체가 필요하다”고 표시한다. 한 대의 드론이 하는 일은 과거엔 숙련 기술자 여섯 명이 하루 종일 매달려야 했던 작업이다. 15분 만에 끝난 점검은 그날 바로 발전소의 재가동으로 이어진다. 기술은 바람보다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한국 드론·UAM 밸류체인의 강점은 이 장면에 거의 다 담겨 있다.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잃은 대량·범용으로 정면 돌파하기보다, 장기 체공·정밀검사·항공제조 같은 ‘깊은 틈새’에서 비용곡선을 꺾고 신뢰를 쌓는 전략이다.
이 흐름의 대표 주자인 니어스랩은 상용 드론을 자율 점검 도구로 바꾸는 소프트웨어로 풍력 O&M 워크플로를 재정의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지난해 Fast Company ‘가장 혁신적인 기업’(로보틱스)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혁신 리스트에서 엔비디아·OpenAI·마이크로소프트와 같은 문단을 공유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경쟁의 무게중심이 하드웨어에서 데이터·소프트웨어·신뢰로 이동하고 있음을 대변한다.
글로벌 판세의 출발선은 불균형하다. 중국은 제조·부품·가격에서 여전히 단단하다. 상업용 드론의 ‘기본값’이 된 DJI의 지배력, 카메라·모터·배터리·FCU로 이어지는 수직 통합, 공격적인 양산 단가가 그 배경이다. 특허 통계에서도 중국의 비중이 압도적이어서 가격·가용성·출하 속도에서 우위가 이어진다.
반면 미국은 인증·자본·소프트웨어에 강하다. 전동 수직이착륙기(eVTOL) 상용화를 가르는 안전 인증과 시범 운항, 조종·정비 체계까지 잇는 전주기 역량에서 선도 기업들이 레퍼런스를 쌓는 중이다. 자본 시장의 두께, 항공 규격 문서화 경험, 시뮬레이션·자율비행 소프트웨어 스택이 결합해 ‘설계—시험—인증—운항—서비스’의 속도를 끌어올린다.
한국의 좌표는 그 사이의 ‘틈새’로 평가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두산모빌리티이노베이션(DMI)은 수소연료전지 드론으로 2시간대 체공·3kg 페이로드·80km급 임무반경을 실전 성능으로 제시하며 배터리 한계를 비켜섰다.
          대한항공은 민항 구조물 공급과 드론 스웜 기반 MRO(정비) 검사로 제조–정비–디지털을 한 몸처럼 묶어낸다. 니어스랩은 비전 AI로 풍력터빈 완전검사를 15분 안팎으로 단축해 데이터 단가 자체를 낮춘다. 방산·산업 영역에선 LIG넥스원·유콘시스템이 정찰·대(對)드론·방제 등에서 라인업을 갖췄고, 물류 쪽에선 파블로항공이 도서·응급 구간의 장거리 배송 실적을 쌓았다. 통신·모빌리티 측면에선 SK텔레콤–Joby, 카카오모빌리티–Archer처럼 ‘기체+네트워크+앱’ 결합 모델이 가시화되고 있다.
다만 약점도 분명하게 지적되고 있다.
한 국내 업계 전문가는 “핵심 부품 국산화율이 30%대 미만인 품목이 적지 않아 가격·공급망 리스크를 안고 있다”라며 “다만 북미·유럽에서 보안·공급망 이슈가 부각되면서 비(非)중국 대체재 수요가 커지는 흐름이 포착되고, 한국 기업의 수출 문의가 늘고 있는 점은 기회”라고 평가했다.
한국은 장기체공·정밀검사·항공제조에서 평가받고, 부품·원가·규모의 경제에서 과제를 안은 상태다.
조환기 극동대 교수는 “따르면 핵심 부품 의존을 줄이려면 국산화와 표준화가 병행돼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인적자원과 산업 인프라 측면에서 국내 준비가 경쟁국 대비 미흡한 만큼 글로벌 밸류체인을 전제로 법·인증 간극을 메우는 협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기성 ㈜네트엔텍 대표는 이에 대해 “가성비가 맞지 않는 부품은 우방국과 협력생산을 병행하고, 전략 품목은 선택적 국산화로 가는 이원화 전략이 현실적”이라고 제언했다.
          전원·추진 체계는 밸류체인의 최상류다. 체공시간은 스펙표의 숫자가 아니라 데이터 생산성 그 자체다. 한 번 떠서 멀리·오래·안정적으로 커버할수록 재방문과 재촬영이 줄고, 현장당 원가가 떨어진다.
이 지점을 정면으로 해소하기 위해 주력하고 있는 기업이 DMI다. 연료 전지 파워팩과 전용 기체 조합으로 장기체공과 실사용 페이로드를 동시에 잡아 송배전망, 가스 파이프라인, 해상풍력, 연안 감시 같은 ‘넓고 거친’ 미션에 투입된다. 배터리 기반 드론의 물리적 제약을 연료전지로 비껴가면서 운영자는 “한 번 뜨면 충분히 끝낸다”라는 신뢰를 확보한다.
배터리 생태계에선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가 고출력·고사이클셀을 제공하며 소형 멀티콥터·하이브리드 플랫폼의 에너지밀도 개선을 위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연료공급·저장 측면에선 한화 계열과 국내 가스·수소 관련 기업들이 파워팩 서플라이 체인을 보강하며, 페이로드 전력 최적화를 노리는 중소 전원 모듈 업체들도 속속 합류하고 있다. 상류의 효율 개선은 중류의 시스템 통합 비용, 하류의 서비스 단가를 동시에 낮춘다.
          두 번째 관문은 센서·카메라·AI다. 거친 환경일수록 정확도와 반복성이 곧 돈이다. 니어스랩의 접근은 상용 드론에 자율비행 경로 설계와 비전 AI를 얹어 풍력터빈 블레이드 네 면을 약 15분만에 완전검사하는 방식이다. 6000만 화소대 카메라, 근접 촬영 궤적, 결함 자동 라벨링 파프라인이 결합해 다운타임을 대폭 줄이고, 하루 처리 가능한 터빈 수를 크게 늘린다. 여기에는 국내 머신비전·광학 기업들이 제공하는 고해상 센서 모듈과 짐벌, 라이다·열화상 페이로드 공급사들의 역할도 크다. 플랜트·송전·항만으로 적용 분야를 확장하는 과정에선 한컴인스페이스가 관제·데이터 통합 플랫폼을, 알체라 등 비전 기반 이상감지 업체가 보조 솔루션을 더해 탐지→판독→리포트→CMMS 연동의 자동화 흐름을 완성한다.
          이병석 드론시큐리티전략연구원장은 이에 대해 “보안전문 인력 양성은 한국의 차별화 포인트”라고 지적했다. 암호화·접근통제·로그 같은 ‘신뢰 설계’가 선진 고객사의 벤더 평가에서 결정적이기 때문이다.
          초저고도 공역은 지상 인프라·지형·바람·전파가 얽힌 복잡계다. 항법·통신·관제 레이어는 안전과 서비스 연속성을 좌우한다. 산업현장의 의미 있는 비행은 대부분 가시권 밖(BVLOS) 혹은 준-BVLOS다. 이때 통신망의 가용성·지연, 데이터 파이프라인의 안정성이 운영 신뢰도를 가른다. 이 구간에서 통신 3사는 필수 파트너로 자리한다. SK텔레콤은 조비 에비에이션(Joby)과의 협력으로 운항 데이터·앱·결제를 잇는 상용 스택을 설계하고, KT는 저고도 교통관리·관제 연동 실증에서 중계·네트워크 품질 표준을 제시한다. LG유플러스는 관제 SW와 연계한 드론 배송·보안 서비스에서 네트워크를 현실화하며, 지도·내비게이션 기업은 항공동선·버티포트 POI·환승 UX를 준비한다.
관제 소프트웨어 영역에서는 파블로항공이 드론·UAM 통합 관제 플랫폼을, 뷰넥스(Viewnex)와 같은 버티포트 운영 SW 기업이 지상운영·수용량 관리·안전 체크리스트의 디지털화를 맡는다.
          중류의 핵심은 제조·시스템 통합 능력이다. 대한항공 항공우주사업은 항공사이면서 민항 구조물의 글로벌 공급자라는 독특한 위치를 갖고 있다. 보잉 787 레이키드 윙팁·플랩 서포트 페어링·후방동체, 에어버스 A320 샤크렛, A350 카고도어 등 대형 OEM 프로그램에서 축적된 역량은 단순 가공을 넘어 복합재·공정·품질 인증·납기 관리까지 총체적으로 다루는 힘으로 응축됐다.
이 ‘품질의 언어’는 드론·UAM에도 그대로 이식된다. 국내에서는 대한항공이 선보인 드론 스웜 기반 동체검사에서 시각 검사 시간을 약 10시간에서 4시간으로 줄이고, 1mm급 결함을 식별하는 성과를 냈다. 방산·산업 쪽에선 LIG넥스원이 감시정찰·대드론 솔루션으로 시스템 통합력을 보여주고, 유콘시스템이 장기 레거시를 바탕으로 산업·농업·군용 기체 라인업을 유지한다. UAM 축에선 한화시스템·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Overair와 함께 복합재 로터·저소음 설계 등 주요 부품·기술 축적을 진행하고, 대한항공·KAI는 핵심 구조물·시험·정비 체계를 바탕으로 항공제조 풀뿌리를 넓히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제조–정비–디지털의 교차학습이 쌓일수록, 한국은 ‘문서화된 신뢰’를 빠르게 증명할 수 있다.
하류의 승부처는 결국 돈 버는 모델이다. 최근 한국의 강점은 “오지 않는 사고”를 만드는 예지·정밀 점검(DaaS)에서 뚜렷하다. 두산의 장기체공 플랫폼과 니어스랩의 15분 완검을 결합하면 풍력·플랜트·송전탑·철도·항만·항공 MRO에서 재방문·재촬영·다운타임이 체계적으로 줄어든다. 촬영—판독—리포트가 자동화되면, 서비스 사업자는 CMMS/ERP 연동, 예지 정비(Condition-Based Maintenance), 자산 성능 관리(APM)로 자연스럽게 올라탄다. 축적된 데이터는 보험사·리스사와의 리스크 프라이싱 고도화로 수익화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물류·보안 응용도 확장 중이다. 파블로항공은 도서·응급 구간에서 드론 배송을 상용 수준으로 끌어올렸고, 보안·경비 시장에선 열화상·라이다 페이로드와 관제 SW를 결합해 야간·해상·산악을 커버한다.
통신·지도·결제 기업이 합류하면 서비스 수준 계약(SLA)와 페널티 체계가 명확해지고, 데이터 기반의 성과형 계약(P4P)도 가능해진다. UAM 서비스 측면에선 카카오모빌리티–Archer, SK텔레콤–Joby가 각각 기체 조달 옵션과 초기 상용화 준비금을 집행하며 ‘기체–운항–앱’ 삼각 편대를 실제로 굴리는 중이다.
남명렬 고려대 교수는 “환경 모니터링과 농업 같은 민간 분야 협력이 한·중 보완 관계의 현실적 출발점”이라고 조언한다.
‘운영 신뢰도×데이터 정밀도×문서화된 품질’이 맞물릴수록, 한국의 DaaS–APM–보험 삼각 편대는 곧 ‘수익으로 증명되는 신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 드론·UAM의 승부처는 거대 양산이 아닌 깊이·속도·신뢰에서 찾아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헌규 ㈜가이온 부사장은 “고도화된 항공 모빌리티(AAM)는 여전히 블루오션이며, 지금이 기업이 전폭 성장할 산업적 배경을 마련할 적기”라고 말한다.
[박지훈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82호 (2025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