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에 들어 루비 시장은 다양한 요인들에 의해 진화하고 있다. 새로운 광산이 발견되면서 땅속 깊이 숨어 있던 자원이 수면 위로 드러났고, 수명을 다한 광산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변화는 수세기 동안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자리했던 미얀마 루비의 현주소다. 미얀마가 인권 유린 문제로 국제사회로부터 강력한 비난을 받으면서 미국과 유럽연합은 무역 제재를 선언했고, 다수의 럭셔리 브랜드들도 루비를 포함한 미얀마산 보석의 수입을 중단했다. 이러한 국제 정세의 흐름에 따라 보석의 가치에 대한 인식도 변화하고 있다. 더불어 미얀마의 공백을 메우기 시작한 모잠비크가 프리미엄 품질과 지속 가능한 루비의 주요 공급원으로 부상하며 ‘윤리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얀마가 남긴 부정적인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모잠비크는 그 어느 산지보다 친환경적인 채굴과 인권 존중에 깊은 관심을 쏟는 분위기다.
“루비를 선택할 때는 캐비어 고르듯이 하라”는 말이 있다. 루비의 가치에 원산지가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보석은 고유의 아름다움과 품질로 평가되어야 하지만 특정 산지가 높은 프리미엄을 누려온 관행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는 ‘피전 블러드’라는 상업 용어의 프리미엄에서도 확인된다. 수세기 동안 인류는 미얀마의 모곡 지역에서 채굴된 최상급 루비를 ‘갓 죽은 비둘기의 핏빛’으로 묘사해왔다. “순수한 적색 또는 아주 미량의 퍼플 기가 들어간 적색에 강렬한 형광을 띠는 루비”를 의미한다. 불타는 석탄이나 빨간 신호등을 연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미얀마의 루비가 동남아시아(태국, 캄보디아, 베트남)나 동아프리카(마다가스카르, 탄자니아, 케냐)의 루비보다 월등히 높은 가격을 사수해온 배경이다. 한편, 모잠비크 루비는 2008년에 니아사 국립보호구역에서 처음 발견되었지만 실제 생성 시기는 미얀마보다 약 4억 75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모잠비크가 루비 산지로 역사적인 전환점을 맞은 것은 2009년 몬테푸에즈 지역에서 고품질의 원석이 발견된 이후였다. ‘가림페이로’라 불리는 영세 광부 수만 명이 이곳으로 몰려들었고 채굴된 원석은 방콕으로 대거 이송되어 처리, 연마 및 거래되었다. 결과적으로 몬테푸에즈는 단 1년 만에 태국의 루비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공급원으로 떠올랐다. 곧이어 대기업들의 진출도 시작되었다. 2012년에는 영국의 젬필즈(Gemfields)와 모잠비크의 엠위리티(Mwiriti)가 합작해 MRM(몬테푸에즈 루비 채광회사)을 설립했고, 2019년부터는 두바이의 퓨라 젬스와 인도의 젬락이 합세하여 선진적인 채광 기술을 도입했다. 지금도 모잠비크 채굴 현장에 영세 광부들이 공존하고 있지만 기업들의 혁신적인 기술 덕분에 각종 이슈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동안 루비 시장의 공급이 안정될 수 있었다.
모잠비크에서는 현재 두 가지 유형의 루비가 채굴되고 있다. 바로 ‘무글로토(태국어로 보르 솜)’와 ‘마닝게 나이스(태국어로 보르댕)’다. 무글로토는 철분 함량이 높아 어두운 톤을 띠며 내포물이 적고 부피가 크지만 형광성이 약한 특징이 있다. 반면에 마닝게 나이스는 높은 채도를 가진 적색에 강한 형광을 자랑한다. 대부분 납작한 형태를 띠고 있으며 내포물이 많아서 연마 후 크기는 작은 편이다. 그러나 밝고 선명한 색상과 강한 형광성 측면에서 미얀마의 루비와 견줄 만하다. 이러한 특성으로 최상급은 감별서에 종종 ‘피전 블러드’로 기재되곤 한다. 퓨라 젬스의 광산에서 생산되는 루비는 주로 마닝게 나이스에 해당한다. 2023년 소더비 경매에서 컬러스톤 부문 최고가를 경신한 ‘에스트렐라 드 퓨라’ 루비가 대표적인 사례다.
퓨라 젬스의 루비 채굴 과정은 ‘카마다’라 불리는 루비가 함유된 자갈층을 채취해서 세척공장으로 운반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듣기에는 간단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퇴적물을 크기별로 분리하고 광석을 농축시키기 위해 다양한 기술을 요하는 복잡한 공학 프로세스다. 대량의 물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재활용 과정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인다(90%까지 재사용이 가능하다).
이후 선별된 혼합물에서 루비를 광학 분류 장치를 통해 분리하고 투명도, 색상 및 크기에 따라 등급을 매긴다. 최종 등급 작업은 보안이 강화된 UAE의 본사에서 전문가들에 의해 수작업으로 진행된다. 퓨라 젬스는 자갈 처리와 분류에 정밀한 기술을 적용하여 거대한 양의 광석을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를 통해 보다 효율적으로 자원을 관리하고 국제 시장에서 안정성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다.
루비의 가격은 품질과 크기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그런데 채굴 역사가 짧은 모잠비크 루비는 동일한 크기와 품질의 미얀마산에 비해 상당히 낮은 가격에 거래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퓨라 젬스는 모잠비크 루비에 대한 소비자 인식을 높이고 정확한 가치 전달을 위해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컬러스톤 카테고리를 발전시키고 럭셔리 시장에서의 입지를 강화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하고 있다. 또한 매출의 2%를 지역 사회를 지원하는 ‘퓨라 트레이닝 아카데미’ 설립에 투자하여 광업부터 농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지역 주민들에게 교육과 기술 훈련을 제공하여 지속 가능한 소득을 촉진하고 있다.
국내에서 루비는 최근 몇 년간 남편과 자녀를 잘되게 하는 보석이라는 속설이 떠돌면서 일명 ‘강남 엄마’들을 보석상으로 이끄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의도야 어떻든 루비에 대한 중년 여성들의 열망을 정확하게 파악한 성공적인 바이럴 마케팅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 트렌드가 중년층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팬데믹 이후, 밀레니얼 세대에서도 개성을 표현하는 유색 보석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산업적 혁신과 지속 가능성을 결합한 생산 시스템을 운영하는 채굴 기업들은 열렬히 환영받을 만하다. 필자가 방문한 퓨라 젬스 또한 모잠비크 내 지역 사회와 협력을 강화하고 교육 및 기술 훈련을 통해 지속 가능한 소득 기회를 제공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덕분에 과거 인권 문제로 비난받던 루비 산업의 이미지도 긍정적으로 전환되는 중이다. 유색보석 시장의 미래는 더 이상 새로운 광산 발굴에만 의존할 수는 없다. 안전한 작업환경과 친환경 공정, 그리고 지역 사회에 혜택이 돌아가는 ‘공정거래 보석’의 수요 증가에 주목할 때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 <젬스톤 매혹의 컬러>가 있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