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버리 칵테일(Savory Cocktail)’은 몇 년간 지속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바(Bar)의 흐름이다. 단순히 직역하면 감칠맛이 나는 칵테일이지만 내막을 살펴보면 술과 술, 액체류의 혼합을 넘어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 낸 칵테일을 지칭한다. 물론 이런 형태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타바스코를 넣은 ‘블러디 메리’, 올리브를 사용한 ‘더티 마티니’ 등의 고전 칵테일이 존재하니까. 그러나 최근에는 훨씬 과감해지고 있다. 과일과 채소는 기본이고 치즈, 참깨소스, 심지어 육류까지 흔히 요리 재료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폭넓게 사용해 한 잔의 글라스에서 단맛, 신맛, 짠맛, 쓴맛 등 복합적인 맛을 담아내고 있는 것. 지금, 바텐더들의 기술과 창의성이 날로 빛나고 있다.
이 방면으로 독보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곳 중 하나는 뉴욕의 ‘더블 치킨 플리즈(Double Chicken Please)’다. 조리법과 믹솔로지의 경계를 허문 창의적인 칵테일로 개장 1년 만에 단숨에 글로벌 어워드에 진입하더니, 지난해 ‘북미 베스트 50 바’에서는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 치즈, 구운 토스트, 토마토, 바질, 달걀 흰자를 사용한 ‘콜드 피자’는 이름 그대로 피자의 풍미를 느낄 수 있는 메뉴. 그 밖에 커피 버터, 옥수수, 호두, 야생 버섯 등으로 만든 ‘레드 아이 그레이비’ ‘일본 소바’ ‘커스타드 번’ 등 이곳의 칵테일은 모두 요리의 이름을 달고 있는 동시에 그 요리의 풍미를 담고 있다. 두 명의 창립자 GN 찬(GN CHAN)과 페이 첸(Faye Chen)이 하나의 대상을 요소별로 해체하고 다시 조합하는 ‘해킹 디자인’을 음료에 적용한 것이다. 전체 메뉴가 애피타이저, 메인, 디저트처럼 다이닝의 구성을 따르고 있는 위트도 더블 치킨 플리즈의 흥미로운 요소다.
한국에서도 물론 해킹 디자인으로 탄생한 한 잔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청담동 ‘제스트’의 ‘카프레제’를 보자. 토마토, 화이트와인 비니거, 바질을 증류한 진에 라임 코디얼 등을 더해 토마토, 모차렐라 치즈로 구성된 카프레제 샐러드의 풍미를 그대로 담아낸 상큼한 한 잔이다.
커스타드, 구운 피스타치오와 호지차럼, 코냑, 살구를 사용한 ‘커스타드 사워’는 커스타드 크림 디저트를 먹는 듯한 맛. 병아리콩을 삶은 물로 크림을 만들어 채식주의자도 즐길 수 있는 디저트를 만들어냈다.
논현동에 자리한 ‘장생건강원’은 바 주변에 위치한 상가들과의 협업으로 의미와 재미를 동시에 챙기고 있다. 분식집에서 수급받은 떡볶이 소스에 화요, 채소 주스 등을 더한 ‘떡볶이’, 닭 유통사에서 받은 닭으로 육수를 만들어 위스키, 레몬, 달걀을 더한 ‘삼계탕’, 태국 음식점에서 영감을 받아 진과 얌 소스, 라임, 방울토마토, 재스민으로 구현해 낸 ‘ 얌’까지 이름부터 맛까지 흥미로운 칵테일을 선보이고 있다. 된장, 두부크림, 위스키의 구성으로 된장찌개를 연상시키는 칵테일은 된장을 가장 진취적으로 사용한 메뉴로 평가받고 있다.
꼭 음식의 맛을 담아내는 것이 아니더라도 10년, 아니 불과 5년 전과 비교해도 바텐더들이 칵테일에 사용하는 재료의 폭은 한계를 모르고 넓어지고 있다. 훈제연어를 인퓨징한 진을 베이스로 한 마티니의 맛을 상상할 수 있는가. 놀랍게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모루노(Moruno)’에서 가장 인기 있는 칵테일 중 하나다. 고춧가루와 소금물로 김치의 맛을 담아낸 마티니, 찹쌀과 미역, 그린 커리를 사용한 칵테일은 어떤가. 이름도 생소한 향신료, 바 주변 가게에서 파는 각국의 로컬 재료까지. 완전히 낯설거나 반대로 친숙하다 해도 그동안 음료에 접목되어오지 않았던 재료들의 이색적인 사용법은 고객들의 물음표를 유발하고, 맛을 본 후엔 느낌표가 되어 돌아오고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기상천외한 재료와 방법들이 사용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발견하는 즐거움은 우리의 몫이다.
장새별 F&B 콘텐츠 디렉터
먹고, 주로 마시는 선천적 애주가. 미식 매거진에서 활동 후 현재는 스타앤비트를 설립해 F&B 콘텐츠를 기획하고 만든다.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63호 (2024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