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아버님 댁에 보일러 놔드려야겠어요.”
예전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월동준비란 걸 했다. 연탄을 100장, 200장씩 들여놓고 배추 한 접을 사서 김장을 담가 놔야 올겨울을 잘 나겠구나 안심했다. 매일 밤 매케한 연기를 마시며 연탄불 가느라 고생하던 시절에 나온 이 TV 광고 문구는 보일러에 따뜻한 가족애를 연결 지어 히트를 쳤다.
‘1가구 1보일러 시대’를 지나 이젠 집집마다 AI가 필수품인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올해 CES(국제전자제품박람회)는 ‘모든 곳에 AI(AI Everywhere)’가 화두였다. 가전은 물론이고 자동차, 모바일, 로봇 등 전 업종을 망라해 AI를 접목한 아이템들이 쏟아져 전 세계가 그야말로 ‘AI 온디바이스 빅뱅’을 목도했다.
삼성이 선보인 AI폰은 폰 자체에 AI를 내장한 ‘온디바이스’여서, 온갖 앱을 열었다 닫으며 이런저런 AI기능을 적용할 필요 없이 AI폰에서 바로 실행이 가능하다. 게다가, 이젠 영어를 전혀 못해도 AI폰으로 외국인과 거의 실시간으로 대화도 할 수 있다. 영어뿐만이 아니다. 13개 국어가 가능하다. ‘손안의 비서’가 생기는 셈이다.
이런 추세라면 ‘1가구 1반려AI 시대’도 머지않을 듯하다. 실제로, 얼마 전 한 방송 프로에서는 싱어송라이터 자이언티가 스마트폰 속 AI 앱을 가동해 소소한 대화부터 사업 아이디어를 얻는 것까지 AI와 함께하는 일상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인간과 AI의 사랑을 그린 영화 <Her>가 떠올랐다. 이 영화가 나온 게 2014년.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그사이 정말 영화가 현실이 된 것이다.
내년이면 대한민국은 전체 인구의 20%가 65세 이상인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다. 1인 가구가 전체 가구의 34.5%에 달하고 고령인구가 갈수록 급증세인 우리나라에서 반려AI는 노령인구의 안정적 삶을 위한 필수 인프라가 될 것이다. 이제 곧 이런 CF가 나올는지도 모르겠다. “여보, 아버님 댁에 AI로봇 한 대 놔드려야겠어요.”
곧 다가올 반려로봇 시대가 기대되면서도 마냥 장밋빛 유토피아로만 상상되진 않는다. 언젠가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은 물론이고, 당장 반려로봇으로 인해 사람 간의 관계 형성이 더욱 개인화, 분자화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보편화하면서, 사람과의 대면관계에 불편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전화 통화에 어색함을 넘어 두려움까지 느끼는 ‘콜포비아(Call Phobia)’를 겪고 있는 사람들도 생겨나고 있다. 가뜩이나 요즘 MZ세대는 결혼, 연애보다 혼자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혼놀족’이 많다는데, 반려로봇까지 생기면 타인과 관계를 맺을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편리한 기술로 무장한 AI로봇 대중화의 그늘이다.
하지만, 그늘이 무서워 빛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그 그늘을 없애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다. AI로봇으로 사람들 간의 연결성을 더욱 강화하고 관계의 커뮤니티를 더욱 다양화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문명의 이기를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도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