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 코파일럿, 바드 같은 생성형 인공지능이 넘쳐나는 시대에 인간은 무엇을 공부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요즈음 사람들이 자주 묻는 말이다. 호모 파베르(Homo Faber), 즉 도구의 사용은 인간의 본성이다. 도구를 발명해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해냄으로써 인간은 역량을 강화하고, 자유를 확장해왔다. 그러나 도구엔 인간 자신을 형성하는 힘도 있다. 새로운 도구의 등장은 언제나 새로운 인간을 탄생시켰다.
스페인 생물학자 후안 루이스 아르수아가의 <루시의 발자국>에 따르면, 창의 발명은 타고난 완력을 바탕 삼아 무자비하고 이기적으로 무리를 통치하는 폭군의 종말을 고했다. 약자들이 등 뒤에서 몰래 또는 멀리에서 창을 던져 그를 살해할 힘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는 대화하고 타협하는 힘의 중요성을 인간 안에서 강화했다. 불시에 죽어나가지 않으려면, 자원을 적절하고 무리 없이 배분하는 지도력과 조율 능력이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창을 든 인간은 탁월한 전사이자 대화하는 인간이었다. <일리아스>에서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는 아킬레우스, 오디세우스, 디오메데스, 아이아스 등의 영웅들이 전장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창을 휘두르는 불굴의 투사인 동시에 리라를 뜯고 음식을 나누며 대화와 토론을 즐기는 웅변가들임을 보여주었다. 영웅이 되려면, “싸움터에서는 누구보다 강력”한 전사이면서 “회의장에서는 동년배 중 가장 뛰어난”(9권 53~54행) 현자가 되어야 했다.
기술은 인간을 새로운 기술을 직접 활용하는 쪽으로만 변화시키지 않고, 전혀 상상치 못했던 쪽으로도 진화시킨다. 인간을 지구의 정복자로 만든 것은 창이 아니라 대화였다. 창의 힘에 매몰되어 창 던지기에 인간 역량을 ‘몰빵’한 공동체는 서서히 약해졌다. 대화를 통해 설득하고 합의하는 일을 더 효과적으로 해냈던 집단이 결국 창에만 의존하는 집단보다 더 오래 살아남았다.
인간과 인공지능의 결합이 우리 안에서 어떤 역량을 끄집어내어 진화시킬지는 아직 선명하지 않다. <왜 인문학적 감각인가>에서 미국 작가 조지 앤더스는 인공지능 시대에 기업이 요구하는 인간 역량을 집약한 결과, 초일류 기업일수록 기술 자체보다 경계를 넘나들며 일하는 능력, 통찰하는 능력, 올바른 접근법을 선택하는 능력, 타인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 타인에게 영향을 끼치는 능력 등을 더 강조했다. 지혜와 통찰, 이해와 설득, 소통과 협업 등 인간다움에 더 주목하는 것이다.
정보 사회에서 새로운 기술은 사회 속으로 확산하면서 빠르게 평균에 수렴한다. 누구나 쉽게 익힐 수 있다는 뜻이다. 인간의 진짜 역량은 그러한 기술을 배우고 구체적 맥락에 맞추어 실행할 줄 아는 메타 기술이다. 첨단 기술 기업인 구글은 스템(STEM, 과학·기술·공학·수학)보다 우선해서 갖추어야 할 인간 역량으로 좋은 코치 되기, 잘 듣고 잘 말하기, 타인에 대한 통찰력 품기, 동료에게 공감하고 지지하기, 비판적 사고에 능하고 문제를 잘 해결하기, 복잡한 아이디어를 서로 연결하는 능력 갖추기 등을 들고 있다.
사람들은 흔히 기업에서 즉시 써먹을 기술을 대학에서 가르쳐야 한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AI 빅뱅>에서 김재인 경희대 교수는 말한다. “대학에서 실용 교육으로 그치겠다는 건 미래를 담보로 청년을 착취하는 일이다. 지금도 이런 교육을 받은 졸업생은 비정규직, 저임금, 열악한 노동 환경, 재교육의 어려움 등을 겪는다. 미래가 없는 삶이다.”
첨단 기업은 초격차, 즉 다른 어느 사회 집단도 좇지 못할 영역에 발 딛고 있다. 그와 관련한 기술을 학교에서 가르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학교에서 길러낼 수 있는 역량은 이런 기술을 접했을 때 당황하기보다 빠르게 배우고 이해하는 힘, 낯선 사람들과 어울려 일하면서 눈치 빠르게 협업하고 소통하는 힘, 문제를 인지하고 해결하는 데 필요한 비판적이고 창의적인 힘 등이다. 기술 자체에 매몰돼 호들갑 떨기보다 기술과 인간이 어울려 어떻게 공진화할 것인지를 깊이 살펴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
챗GPT 같은 생성 인공지능이 할 수 있는 일과 할 수 없는 일부터 구별해야 한다. 김재인에 따르면, 생성형 인공지능은 기존 정보를 학습해 평균적으로 요약하는 일을 인간보다 잘한다. 지금은 별로 수준이 높지 않으나, 학습 역량이 가속해서 늘어나기에 조만간 더욱 훌륭한 결과물을 생성할 것으로 생각된다. 아울러 코딩이나 계산 같은 기존 패턴(수식)을 무한 반복하면서 인류가 할 수 없는 계산을 해내거나 새로운 결과(가령 단백질 합성물 발견 같은)를 쏟아내는 등 놀라운 성과를 보일 수도 있다.
현재 수준으로도 평균적인 지식을 이용해서 작업하는 사무직과 기술직 전체를 대체할 가망성이 높다. 가령 콜센터 같은 고객 서비스, 소셜미디어 등의 마케팅 콘텐츠 생성, 세금 계산 같은 데이터 분석 및 보고, 데이터를 활용한 도표나 도면 작업, 의료 영상 판독 및 보정, 단순 소프트웨어 개발 등은 머지않아 생성 인공지능의 힘이 빠르게 파고들 테다.
그러나 생성 인공지능은 호기심을 품고 지식의 변방을 탐구하고, 새로운 것을 떠올리면서 그 한계를 확장하진 못한다. 평균이 아니라 극한에서 사고하려는 모험심, 적당히 괜찮은 여러 가지 답이 아니라 이를 비판하고 평가해서 가장 좋은 하나의 답을 찾아내는 안목, 관계와 맥락에 따라서 적절히 지식을 조절하는 미세 감각(눈치)과 배려심, 기존 언어(형식)를 넘어서는 미묘한 느낌을 어떻게든 표현하려는 충동, 의견 교환과 대립을 통해 문제를 찾아내고 답을 얻어내는 사회성, 자기를 돌아보며 삶의 의미와 가치를 성찰하는 영성 등이 인공지능엔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첨단 기업에서 미래 인재에게 요구하는 역량과 대부분 일치한다.
이러한 역량을 기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재인은 ‘확장된 인문학’을 공부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확장된 인문학이란, 문학, 역사, 철학 등 언어에 갇혀 있는 종래의 인문학을 수학, 자연과학, 사회과학, 예술, 디지털 등으로 확장하는 새로운 인문학을 지향한다. 문과와 이과의 구분을 넘어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두루 학습함으로써 필요할 땐 언제든지 다른 분야 전문가와 대화를 나누면서 함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거나 학습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한마디로 생성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에겐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내면에 쌓아둔 게 없으면, 어디가 지식의 변방인지, 자기 안목이 어떤 수준인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자기 삶의 의미와 가치가 무엇인지도 깨닫지 못한다. 김재인은 주장한다. “인공지능이 강력해질수록 인간이 이를 더 잘 이용하려면 자기가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공부하기 싫으니까 인공지능을 시켜서 일해야겠다’라는 마음을 품은 사람과 반대로 ‘인공지능을 활용해 더 공부하고 더 많이 알아야겠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격차는 크게 벌어질 것입니다.”
장은수 문학평론가
읽기 중독자. 출판평론가.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민음사에서 오랫동안 책을 만들고,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현재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로 주로 읽기와 쓰기, 출판과 미디어에 대한 생각의 도구들을 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