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수는 본질적으로 “하늘이 하는 일을 빼앗아 운명을 바꾸는 것(탈신공개천명·奪神工改天命)”이다. 조선조 풍수 관리(지관·地官) 필수과목인 <금낭경>의 핵심 내용이다. 풍수를 통해서 운명까지 바꿀 수 있다는 주장이다. 땅의 이점(지리·地利)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다.
땅마다 성격이 다르다. 땅은 ‘터’의 다른 이름이다. 터마다 종류가 다르다. 굿터, 무덤터, 장터, 일터, 집터, 놀이터, 절터가 있다. 터마다 규모가 다르다. 집터에도 규모에 따라서 마을에서 중소 대도시 크게는 도읍지가 정해지기도 한다. 절터도 마찬가지이다. 규모에 따라 작은 암자에서 대가람까지가 정해진다. 그런데 이러한 터는 자연이 만들어놓은 것만을 찾는 것이 아니다.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터가 없으면 만들면 된다. 풍수의 핵심 내용이다. 앞에서 언급한 <금낭경>과 마찬가지로 풍수 관리 선발시험에서 암기를 해야 했던 풍수서가 <청오경>이다. <청오경>은 “명당은 자연적일 수도 있고 인간이 만들 수도 있다고 하였다(혹연혹위·或然或爲).” “인간이 만들수도 있다(或爲)”는 문장은 <금낭경>의 “하늘이 하는 일을 (인간이) 빼앗는다”는 말과 상통한다. 즉 인간이 좋은 땅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광복 이후 한국 풍수는 조선 왕조에서 주류였던 묘지 풍수 영역에서 벗어나지 못한 데다가, 자연적인 길지만을 찾는 데 주력하였다. 땅은 좁은데 삼국시대 이래 지금까지 좋은 터는 모두 찾아 썼으니 어디 새로운 땅이 있겠는가? 한국의 풍수가 시들해지는 ‘먼 원인(遠因)’ 가운데 하나이다. 반면에 중국·미국·유럽은 자연적인 길지(或然)보다는 인위적 조작(或爲)을 통해 땅의 부가가치를 높인다. 이른바 풍수의 ‘현대화’이다. 풍수 현대화의 구체적인 사례를 세계 양대 강국 중국과 미국에서 찾을 수 있을까?
1949년 사회주의 중국 수립 직후 풍수를 미신으로 금한다. 특히 1960년대 문화대혁명 기간에 풍수는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풍수 관련 서적과 도구들은 모두 소각되었고, 생계형 풍수사들은 맞아 죽거나 ‘조리돌림’을 당하기도 하였다. 풍수상 길지로 알려진 명문가의 봉분들은 파헤쳐지고, 유골들이 소각되고 분쇄되었다. 그 와중에서도 유족들은 밤중에 은밀히 분쇄된 유골들을 수습하여 은밀한 곳에 숨긴다(개혁개방 이후 이들은 다시 무덤을 복원한다). 마오쩌둥의 시대가 가고 덩샤오핑의 시대가 된 1980년대 중국 당국은 풍수를 ‘신흥환경지리학’으로 복권한다. 이어서 1990년대에 중국은 ‘음택(묘지) 풍수는 신앙’으로, ‘양택(주택) 풍수는 과학’으로 정리한다. 2000년대 들어와서 중국은 풍수를 ‘중국이 자랑할 만한 세계문화’로 격상한다. 중국 정부의 풍수관 변화를 유심히 살피고 권력을 쥔 인물이 시진핑 주석이다. 2005년, 절강성 당서기인 시진핑은 아버지 시중쉰의 묘를 베이징에서 시안(西安·장안)으로 이장한다. 돌아가신 지 3년만이다. ‘장안(시안)을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得長安得天下)’는 말이 전해진다. 시안에 부친 묘를 이장한 뒤 8년 후, 시진핑은 ‘중국 천자’가 된다. 필자는 2013년과 2015년 두 번에 걸쳐 시진핑 주석의 부친 묘를 답사하였다. 풍수가 말하는 명당 모델에 부합하는 길지였다. 중국 정부가 ‘음택(묘지) 풍수는 신앙’이라는 공식 견해를 밝혔기에 당시 절강성 당서기 시진핑은 음택 풍수를 활용한 것이다(사진).
시진핑 주석의 선영은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기존 땅에다 조경수로 현무·청룡·백호 등을 만들고 공간 배치를 재구성하여 땅의 기운을 배가했다. <청오경>이 말하는 “혹위(或爲)”의 결정판이다. 인간의 조작으로 풍수상 좋은 땅과 건물을 만들어 성공한 세계적인 지도자가 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이다.트럼프는 중국 정부가 ‘과학’으로 공식화한 양택(건축) 풍수를 활용한다. 풍수에 맞게 건물을 짓거나 리모델링하여 천문학적 이익을 남긴다. 풍수의 핵심 요소는 산과 물 2가지이다. 위인이 되고자 하면 명산을 택하고, 큰 부자가 되고자 하면 강과 바다를 활용해야 한다. 트럼프는 물을 택했다.
1970년대 중반, 트럼프가 뉴욕에서 부동산 개발을 시작할 때 남들이 거들떠보지 않던 땅에서 그는 성공 가능성을 찾았다. 허드슨강변의 버려진 땅이었다. 트럼프는 아파트를 허드슨강 쪽으로 시야가 트이도록 지으면 전망이 좋을 뿐만 아니라, 초고층으로 짓는다면 더 성공할 것이라고 믿었다. 풍수 자문은 미국에서 활동하던 중국계 풍수사들이었다. 강이나 바다와 같은 전망이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트럼프는 비보 풍수를 활용한다.
첫째, 출입구를 경관이 아름다운 곳, 즉 강이 있는 쪽으로 낸다. 둘째, 전망 확보를 위해 대지를 인위적으로 높인다. 셋째, 확실한 전망 확보의 방법으로 마천루(초고층)를 짓는다. 넷째, 전망을 좋게 하는 또 하나의 방법은 빌딩 벽면의 다면화이다. ‘트럼프타워’는 ‘톱니디자인’ 식으로 빌딩을 다면화한다. 다섯째, 공간이 협소하거나 외부 건물의 뾰족한 모서리 부분은 심리적 불편함을 준다. 풍수에서는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거울을 활용한다. 여섯째, 작은 숲이나 정원을 만들어 전망을 확보한다. 트럼프는 뉴욕 센트럴파크를 훌륭한 전망으로 활용하였다. 일곱째, 인공폭포 조성이다. 물이 돈의 기운을 유혹하는훌륭한 수단임을 트럼프는 잘 알고 있었다. ‘트럼프타워’ 아트리움에는 8피트 폭포수를 흘러내리게 하였다. 트럼프 부동산 풍수의 성공 방식이다.
미래 풍수는 자연에서 길지를 찾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작게는 정원 조성과 부동산 개발에서 도시 개발 그리고 국토 개조에 이르기까지 풍수의 효용은 무궁한데, 트럼프가 그 모범 사례를 보여주었다.
김두규 우석대 교수
국내 손꼽히는 풍수학자다. 현재 우석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활발한 저술활동을 통해 풍수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