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집 근처 대형마트에 갔다. 천일염 판매대가 텅비어 있었고 소금제품 가격은 그 전주보다 20~30% 올랐다. 천일염 품귀현상에 소금 구매를 1인당 1개로 제한하는 마트도 생겼다고 한다. 사재기는 결국 가격 폭등으로 이어져 두 달 새 가격이 3~4배나 올랐다. 최근에는 소금 뿐만 아니라 미역, 김, 다시마 등 건어물류까지 사재기가 확산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소금 사재기를 촉발한 것은 ‘방사능 소금’에 대한 공포심이다. 일본 정부가 지난달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를 위해 시운전을 실시한 데 따른 것이다. 오염수 방류가 임박하자 대한민국이 다시 들썩이고 있다.
정부는 과학적, 국제적 기준에 맞지 않으면 방류에 반대하고 후쿠시마산 농수산물 수입도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지만, 야당은 전국에 방류 반대 현수막을 내걸고 규탄대회, 촛불집회에 나서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가 아니라 핵폐수”라거나, “핵오염수의 해양 투기 전후에 생산된 소금 가격이 다를 것”이라며 사재기를 부추기는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더 나아가 “대통령실은 용산총독부” “오염수를 직계가족과 마셔라”는 둥 선동적인 ‘아무 말 대잔치’를 연일 쏟아내고 있다. 정부와 머리를 맞대고 오염수 방류 대책을 세우고 국제적 공조, 과학적 검증 등에 나서야 할 야당은 거리로 나서 공포정치를 조장하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대장동게이트, 돈봉투 논란, 김남국 코인 사태 등 악재를 덮기 위해 후쿠시마 오염수를 빌미로 반정부 투쟁에 총력을 기울이는 것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국민들의 불안을 정치적으로 악용해 근거 없는 ‘오염수 괴담’을 확대 재생산하는 현실엔 기시감(旣視感)이 든다. 광우병 사태와 유사한 전개다. 현재까지 국내에 광우병 사망자는 한 명도 없지만 2008년 당시 ‘뇌송송 구멍탁’ ‘미친소’ 등 자극적, 선동적 구호로 대한민국은 혼돈과 광기에 휩싸였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현재의 혼란은 인체에 유해하지 않을 것이라는 과학적 결론이 정서적 불안을 잠재우지 못하는 데 있다. 먹을거리에 대한 두려움은 과학을 넘어선 심리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결국, 2008년 그때도 지금도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과의 소통이다.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국제적 기준을 준수하는 것은 기본이고 그 과정에서 국민과의 진정성 있는 소통으로 신뢰와 공감대를 쌓아야 한다. 그게 없으면, 불신과 불안 속에 근거 없는 공포만 낳을 뿐이다.
한동훈 법무장관은 “현실 국제정치 상황에서 정부가 국익을 고려한 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국익에 앞서는 것이 국민의 건강과 안전이다. 국민들의 불안을 해소하도록 이슈를 공론화하고 과학적 근거와 투명한 절차에 따라 철저한 검증과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필수다. 정부가 매일 브리핑을열어 오염수 방류 관련 상황을 국민에게 알리는 것은 잘한 일이다.
다만, 정부의 일방적인 주장을 위한 장(場)이 되어선 안 된다. 온·오프라인에 떠도는 갖가지 근거 없는 괴담, 상반된 주장, 논쟁들에 대해 과학적 근거를 토대로 투명하고 철저하게 검증된 진실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진정성 있게 설명해 공감을 얻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선동(煽動)이 아닌 과학과 진정성 그리고 공감이다.
[김주영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4호 (2023년 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