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기온이 가파르게 상승하는 계절에 가장 마시기 좋은 술은 청량감 넘치는 샴페인이다. 샴페인 병 안에서 보글거리는 기포의 숫자는 얼마나 될까? 과학자 빌렘벡이 실시한 연구에 따르면 한 병당 무려 4900만 개라고 한다. 입안을 부드럽게 감싸는 샴페인의 기포감은 미각을 개운하게 만들어준다. 샴페인의 장점은 푸드 페어링에 대한 포용력이 넓으며 언제 어떤 장소에서 마셔도 그날의 분위기와 기분을 한껏 돋울 수 있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샴페인은 언제나 옳다, 실 패 없는 보편적인 진실이다”라는 선언에 반박할 여지가 거의 없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2022년 샴페인과 스파클링 와인의 수입 규모는 약 1억달러에 육박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샴페인은 레드 와인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도수가 낮고 맛있다. 또 프리미엄한 술에 대한 MZ세대들의 취향이 더욱 세밀해지며 샴페인의 존재감이 더욱 각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희소성 있는 하이엔드 샴페인의 경우 점점 더 줄어드는 생산량으로 인해 그 가치가 급상승하며 부르고뉴 와인처럼 점 점 더 국내에서 구하기 힘들 것이란 예측도 나오고 있다. 부르고뉴의 샴페인 전문 회사 크리스탈와인그룹의 이건구 마케팅 팀장은 직접 운영하고 있는 유튜브 채널에서 “샴페인의 공급량도 줄었지만 전체적으로 샴페인에 대한 수요가 굉장히 많이 늘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가격은 상승할 것이며, 이런 현상은 2023년부터 2025년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샴페인 시장에서 떠오르고 있는 주요한 이슈들은 무엇일까?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가장 첫 번째로 지속 가능성을 뽑았다. 점점 더 많은 생산자 들이 포도밭의 미생물학적 다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화학물질의 분사 횟수와 탄소 배출을 줄이는 일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샹파뉴 지역은 2025년까지 제초제 사용 제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런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는 생산자로 무종 르루& 피스(Mouzon Leroux&Fils)를 들 수 있다. 이들이 와인을 소개하는 자료에는 와인 이야기보다 쇠뜨기풀, 민들레, 고리버들, 쐐기풀 등의 낯선 풀 이름이 가득하다.
유기농 경작을 위해 거름에 필요한 재료들을 직접 가꾼다. 포도밭 사이사이에 체리나무를 심어 자연적으로 새들을 모이게 하고, 이를 통해 곤충 개체 수를 줄여 병충해를 예방하도록 한다. 부모님의 뒤를 이어 양조를 담당하고 있는 세바스티앙은 인공적인 것을 최소화하며 테루아를 가장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와인을 추구한다. 라타비크(L’atavique) 그랑크뤼 샴페인은 흰 꽃, 버터, 배 브리오슈, 바이올렛 향과 함께 섬세한 기포와 절 제된 매력 등 우아한 샴페인의 정석을 보여준다. 라타비크라는 프랑스어로 ‘유전의, 선조로부터 물려받은’이란 뜻으로, 9대 째 샴페인을 만들어온 가문의 역사를 이어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샴페인의 종류는 크게 논빈티지, 빈티지, 프레스티지 퀴베 등 세 가지로 나뉜다. 그 가운데서도 특별하고 희소성 있는 프레스티지 퀴베 샴페인에 대한 주목도가 점점 더 높 아지고 있다. 최상급 마을의 최상급 포도로 양조하거나 빈티지가 좋았던 해에 소량 생산되어 오랜 숙성을 거친 샴페인은 시간이 흐를수록 그 가치를 더욱 인정받는다. 기보라 프로히비시옹(Guiborat Prohibition)은 이런 소신을 올곧게 지켜나가는 생산자다. 생산량을 키우기보다 소규모 구조를 지켜나가면서 뛰어난 품질의 블랑 드 블랑(샤르도네 품종 100%로 만든 샴페인)을 양조하는 것에 큰 가치를 둔다. 총 8㏊ 포도밭 중에서도 엄격하게 선별한 3㏊ 구역 안에서만 기보라 샴페인을 생산한다. 특히 최상위 품질의 샤르도네를 얻기 위해 과감한 가지치기로 낮은 수확량을 유지한다.
1946년, 1970년에 식재한 올드바인에서 수확한 포도를 블렌딩하며 밀레짐 샴페인을 선보인다. 기보라의 연간 샴페인 생산량은 약 2만5000~3만 병으로 소량 생산한다.
샴페인 양조에 사용되는 포도 품종은 샤르도네, 피노누아, 피노뫼니에 세 가지다. 샤르도네와 피노누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던 피노뫼니에 품종이 최근 샴페인 애호가들 사이에서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누군가는 피노뫼니에를 ‘미운 오리’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만큼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다른 품종과 함께 블렌딩을 했을 때만 빛나는 포도로 여겨졌으나, 최근엔 피노뫼니에 100%로 양조한 뛰어난 샴페인도 만나볼 수 있다. 클래식의 정수를 보여주는 와인바 살롱뒤부케의 박우리나라 소믈리에는 “피노뫼니에 품종은 수확 시기가 늦은 편이라 상대적으로 서리의 피해를 덜 받는 이점을 가졌다”고 말했다.
또한 “피노뫼니에 단일 품종의 샴페인은 새로운 스타일을 찾는 사람들에게 참신하게 다가올 수 있다. 최근엔 프랑스에 피노뫼니에 협회가 생기며 이 품종의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자 하는 경향을 살펴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 소믈리에는 피노뫼니에가 가진 특징을 기막히게 잘 살린 샴페인으로 엘리앙 들라로(Eliane Delalot)의 ‘임프레션 뫼니에 덱셉션(Impressions Meuniersd’Exception)’, 브누아 당보(Benoît Dinvaut)의 ‘뉘앙스 드 솔레라(Nuances de Solera)’를 추천했다. 두 샴페인 모두 개성이 강하면서도 뛰어난 맛을 지녔다고 소개했다.
만약 이런 훌륭한 샴페인과 잘 어울리는 궁극의 마리아주를 찾는다면 푸아그라를 함께 곁들여볼 것을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