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스키와 초콜릿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흔히 바(Bar)에서 ‘커버 차지(Cover Charge)’라고 불리는 일정 금액에는 주문한 술과 함께 즐길 수 있는 가벼운 핑거 푸드가 포함되어 있다. 그리고 이런 플레이트에는 언제나 초콜릿이 담겨있다. 위스키를 한두 잔 비워낼수록 초콜릿 껍질도 접시 위로 수북이 쌓여간다. 와인과 치즈, 치킨과 맥주처럼 위스키와 초콜릿은 크게 어긋남 없이 두루 잘 어울리는 조합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좀 더 섬세하게 들어간다면, 초콜릿도 다크, 화이트, 밀크 등으로 세분화되며 견과류, 과일, 캐러멜, 향신료 등 어떤 부재료를 사용했는지에 따라 다채로운 플레이버가 존재할 수 있다. 마치 파인 다이닝에서 코스 요리마다 어울리는 와인을 각기 다르게 페어링하듯, 초콜릿도 그 종류에 따라 피트, 셰리, 버번 등 각기 다른 위스키를 여러 경우의 수로 페어링해볼 수 있다.
위스키 전문가인 한스 오프링가는 저서 <위스키 지식사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초콜릿이 진할수록 강한 위스키가 잘 어울립니다. 셰리 오크통에서 숙성된 몰트위스키처럼 나무 향이 강한 위스키를 권하고 싶어요. ‘달모어 12년산’이나 숙성 연수가 높은 ‘글렌파클라스’가 좋은 예죠. 밀크 초콜릿이나 프랄린, 화이트 초콜릿은 버번 오크통에서 숙성된 크리미한 몰트위스키와 잘 어울려요. ‘글렌리벳 파운더스 리저브’나 ‘글렌리벳 12년산’을 추천합니다. 솔트 초콜릿은 스모키한 위스키와 잘 어울리는데, ‘보모어 12년산’을 곁들이면 그 자체로 만찬이 완성됩니다.”
위스키 전문 매거진 <스카치 위스키(SCOTCH WHISKY> 역시 초콜릿 장인과 함께 10가지 페어링을 소개했는데, 일상 속에서 적용해봄 직한 조합을 추천하자면 다음과 같다. ‘라프로익 10년’과 민트 초콜릿, ‘발베니 더블우드 12년’과 진저 다크 초콜릿, ‘라가불린 16년’과 솔티드 캐러멜 밀크 초콜릿, ‘오켄토션 12년’과 칠리 레몬그라스 화이트 초콜릿. 이때 페어링 원리는 위스키와 초콜릿이 서로 밀리지 않으면서도 고유의 캐릭터를 상호 보완해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진한 핫초코에 ‘조니워커 레드 라벨’을 부어 데운 다음 뜨끈하게 즐기는 것 또한 어른들을 위한 근사한 초콜릿 사용법이다.
위스키와 초콜릿의 경계를 깨는 가게, ‘쇼콜라디제이’에서는 “페어링에 정해진 정답은 없다. 오히려 본인이 선호하는 맛의 조합, 취향, 어느 정도 가격대의 위스키를 즐길 것인지, 즐기는 분위기 등을 복합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종로구 내수동에 위치한 쇼콜라디제이는 이러한 섬세한 요소를 사려 깊게 고민하며 술과 초콜릿을 주제로 작업하고 있는 공간이다.
쇼콜라디제이에서 술은 부재료가 아닌 초콜릿과 동일한 주재료이다. 초콜릿과 술을 팽팽하게 긴장시킨 매력적인 메뉴를 선보인다. 2004년부터 같은 자리를 지켜온 이지연 쇼콜라티에는 “술이 들어간 초콜릿을 위스키 체이서(Chaser)로 즐겨보세요”라고 말한다. 체이서란 높은 도수의 독한 술을 연달아 마실 때 속도를 조절하고 입안을 깔끔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는 술이나 음료를 뜻한다. 스코틀랜드에서 위스키 사이에 기네스를 마시는 것처럼 말이다. 쇼콜라디제이에서는 다양한 위스키 봉봉과 생초콜릿인 리큐르파베를 맛볼 수 있다. 특히 위스키 봉봉은 ‘맥켈란’ ‘라프로익’ ‘라가불린’ 등의 위스키를 140도 이상에서 끓여 시럽을 만든 후 필링으로 채운다.
“위스키 봉봉은 술의 종류를 바꿀 때 쉼표 역할을 하죠. 앞서 마신 술을 깔끔하게 정리해주고 다음 술로 넘어갈 수 있도록 해줘요. 초콜릿을 안주로 즐기는 것과는 완전히 달라요. 초콜릿의 역할은 시작과 끝이 제일 좋은 것 같아요. 바에서 첫 잔을 하이볼로 시작하듯 술이 든 초콜릿이 본격적으로 술을 시작하게 하는 부스터 역할을 할 수 있어요. 반대로 이제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싶을 때 위스키 봉봉을 먹으면 환기가 되죠. 위스키가 도수가 높은 술이라 마시다 보면 입이 좀 피곤해지기도 하잖아요. 위스키가 들어간 초콜릿은 잠들기 전 나이트 캡으로 즐겨도 좋아요.”
이지연 쇼콜라티에는 초콜릿과 위스키의 페어링에 대해서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초콜릿과 술의 페어링에서 서로가 가진 단점을 보완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면, 저는 오히려 그 술이 가진 특징과 개성을 극대화하여 살리는 방식도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맥켈란’에 화이트, 다크 각각 두 가지 초콜릿을 페어링해보면 무엇이 더 낫다는 정답보다는 단맛의 상승과 감소를 상대적으로 비교해볼 수 있다.
초콜릿과 위스키의 페어링을 다양하게 시도해보고 싶다면 사당동에 위치한 ‘바 봉빌렛’도 괜찮은 선택이다. 서배승 바텐더는 위스키를 더 맛있게 즐기는 방법을 고민하다 초콜릿을 배워서 직접 만들기 시작했다. 기본 안주로 초콜릿을 제공하지 않고, 자신이 직접 만든 초콜릿 샘플러를 메뉴로 선보인다. 말차, 얼그레이, 치즈 등을 채운 초콜릿과 함께 피트, 셰리, 버번위스키를 조금씩 비교해보면서 취향을 발견해나가기 좋다.
초콜릿과 잘 어울리는 궁극의 위스키로 손꼽히는 ‘글렌모렌지 시그넷’이 찬장 가득 빼곡하게 채워져 있었다. 인장이란 뜻의 시그넷은 초콜릿 몰트를 사용해 만든 위스키다. 원두 로스팅하는 과정을 양조에도 적용한 무척 실험적이고 기념비적인 위스키로 2016년 국제위스키대회에서 ‘올해의 위스키’로 선정되기도 했다. 커피와 초콜릿, 오렌지 향이 은은하게 번지고 약간의 스파이시함도 있어서 초콜릿과 함께 먹었을 때 달콤함과 커피의 그윽한 풍미가 극대화된다. 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꼭 사랑하는 누군가가 곁에 없더라도 자신을 위해 완전한 위스키와 초콜릿의 페어링을 찾아봐도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