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투자가 주식·부동산 투자보다 수익이 더 낫다. ‘아트 비즈니스’ ‘아트 테크’란 말이 유행이며, 대형서점에는 미술 서적들이 진열대를 차지한다. 미술품이 예술품이 아닌 상품으로 등장한 것은 오래지만 이제는 권력의 한 축이 되고 있다. 서양의 박물관(미술관) 역사는 그림을 통한 권력의 역사를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서양만 그러한 것이 아니다.
중국 미술사에서 최고의 화가로 뽑히는 인물이 동기창(董其昌·1556~1636)이다. 정치가로서 예부상서까지 지낸 그는 살아서는 미술계의 종장으로, 죽어서는 황제로부터 돈 많은 상인에 이르기까지 그의 작품 소장을 소망했다. 그는 악마의 화신이었다. 대작(代作)을 서슴지 않아 모조품이 넘쳐났다. 돈과 여색을 밝히는 데 부끄러움이 없었다. 그의 저택은 수백 칸이었고, 선박 100여 척, 전답 1만 경(頃: 1억7000만 평)이었으나 탐욕은 끝이 없었다. 성난 백성들이 그의 집으로 쳐들어가 불을 지르고 죽이려 하자 담장을 넘어 도망하여 목숨을 부지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역사는 그의 그림과 글씨만 칭찬할 뿐이다. 그의 막강한 ‘예술 권력’ 덕분이었다.
그가 남긴 그림 이론서 <화안(畵眼)>은 화가뿐만 아니라 풍수가들에게도 중요한 고전이다. 동기창은 중국의 산수화를 북종화와 남종화로 구별 짓고, 북종화가들은 단명을 하고 남종화가들은 장수를 하였다는 ‘그림과 수명의 상관관계’를 주장한다. 조선 산수화가 소치 허련도 중국 남종화의 맥을 잇는다. 남종화에서 풍수는 필수적이다. 그림에도 풍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주장이다. 바람(風)과 물(水)이 일으키는 기(氣)의 통로, 즉 기구(氣口)가 제대로 구현될 때 진정 예술품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한 예술품은 작가뿐만 아니라 그림을 소장·감상하는 이들에게까지 예술품의 혼(神)이 전달(傳)되어 부귀와 장수를 가져다준다. 이른바 ‘전신(傳神)’론이다.
“한때 주식 시장이 그러했던 것처럼 그림 투자 열풍은 ‘아트 테크’란 조어를 만들면서 중학생들까지 덤벼든다.”(이정림 ‘이림갤러리’ 관장). 이에 대해 전문가는 경고한다. “미술품 자체에 대한 이해나 공감 없이 투자 수익을 챙겨보겠다는 욕망만으로 미술 시장에 들어와서는 낭패를 겪을 수밖에 없다.”(이호숙, <미술 시장의 법칙>). 이호숙 투자전문가는 미술 투자의 성패에 큰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안목”을 강조한다. 그렇지만 초보자들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안목을 갖기란 쉽지 않다.
그런데 전통적으로 풍수에서는 안목의 방법을 제시한다. 이른바 기운생동(氣韻生動·기가 살아 움직임)한 그림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바람(風)도 물(水)도 끊임없이 움직이듯 그림 속 사물들의 기가 살아 움직여야 한다. 작품이 살아야 그는 정신이 소장자와 관람자에게 전해진다. 그 결과 작가뿐만 아니라 소장자·관람자가 기운생동한 사람이 된다. 기운생동한 그림이 되기 위한 필수 장치가 그림의 ‘기구(氣口)’이다.
상하이미술관 부관장과 푸단(復旦)대 교수를 역임한 화가 딩시위안(丁羲元·1942~)은 기구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기구는 바람구멍(風口) 혹은 물구멍(水口)으로서 그림을 살아있게 만든다. 그림을 감상할 때 기구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관건이다.” 어디서 이러한 기구를 확인할 수 있을까? 주변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1000원권 지폐이다.
그림 1은 겸재 정선(1676~1759)의 ‘계상정거도’이다. 안동 도산서원의 옛 모습을 그린 진경산수화이다. 그림 중앙에 집(서당)이 있고 삼면은 산으로 둘러싸여 접근이 어렵다. 그림 하단에 배 한 척이 보인다. 사공이 배를 끌어당겨 묶는 장면이다. 떠나가는 배가 아니고 들어오는 배이다. 배는 밖에서 조달한 생필품 우리 그림과 소식들을 가져오는 도구이다. 도산서원에 생기를 불어넣는 기구가 된다.
그림 2는 중국 송나라 이적(李迪)이 그린 ‘매와 꿩 그림(응치도·鷹雉圖)’이다. 고목의 맨 끝 가지에 앉은 매가 꿩을 노려보고 있다. 꿩이 달아날 곳은 오른쪽 하단 모서리밖에 없다. ‘걸음아, 나 살려라!’라고 꿩이 도망가는 부분이 기구(氣口)이다. 며칠 굶은 매는 꿩을 잡아야 한다. 꿩은 잡히면 죽는 날이다. 둘 다 생사를 걸고 쫓고 쫓긴다. 화면 전체가 긴장감으로 팽팽하다. 기운생동한 그림이다.
현대 작품들도 풍수의 기구(氣口)를 염두에 두고 감상할 수 있다. 그림3은 중견작가 황주리(1957~)의 ‘식물학’이다. 화면 바탕은 검은색이다. 가운데 흰색 부분을 관통하는 3개의 철책선이 보인다. 누군가 두 손으로 철책을 제친다. 비둘기 한 마리가 틈 사이로 날아든다. 고채도의 튤립 꽃들이 피어난다. 꽃 속에는 다정한 연인, 아이 업은 엄마, 빗속에서 우산을 쓰고 토라진 아내를 따라가는 남자가 보인다. 모두가 꿈을 꾼다. 이정표에 표기된 뉴욕으로, 파리로, 달나라로, 화성으로, 평화의 땅을 찾아서, 철책을 제치고 들어오는 비둘기 부분이 기구(氣口)이다.
미술 시장에서 예술성 높은 그림이 비싸게 팔리는 것만은 아니다. 다양한 변수가 그림 가격을 정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이호숙 투자전문가는 조언한다. “미술 시장에 들어왔다 할지라도 돈이 될지를 판단하는 눈보다는 작품성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것이 유리하다.” 그렇지만 “작품성”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위 그림들 사례처럼 전통적으로 풍수는 기구가 제대로 구현되었는지를 살피라고 조언한다. 그림에서 기구(氣口)의 존재 여부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다. 천천히 자세히 그림을 바라보면 기구의 유무를 살필 수 있다. ‘아트 테크’에 관심 있는 초보자들을 위한 풍수 조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