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모든 곳에 있다. 사랑은 우리 삶의 구석구석까지 파고들고, 우리 마음의 온갖 측면에 영향을 끼친다. 미국 시인 마야 안젤루의 말처럼, 외로움에 싸인 이들은 기쁨으로부터 추방된 자이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 우리 마음은 황홀해지고 우리 몸은 건강해지며 우리 삶은 행복해진다. 사랑은 우리를 더 나은 인간으로 만든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에서 사랑은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의 혼인율은 역사상 최저로 떨어져 2019년 인구 1000명당 6.1명에 불과하고, 성인의 절반가량은 혼자 살아간다. 우리나라는 더 심각하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전국 결혼 건수는 19만3000건으로, 1970년 첫 조사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고, 혼인율은 인구 1000명당 3.8명밖에 되지 않으며, 나 홀로 가구가 전체 가구의 40%를 넘어섰다.
혼자 산다고 반드시 외롭다고 할 수는 없으나, 그럴 가망성이 커진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에 외톨이 삶을 견디기 힘들다. 갈수록 연애 산업이 활성화하는 이유다. 그랜드 뷰 리서치에 따르면, 2020년 세계 온라인 소개팅 산업의 시장 규모는 약 9조2000억원에 달하고, 2028년까지 매년 5% 이상 성장하리라 예측된다. 지구 전체가 점차 외로움의 늪으로 가라앉는 중이다.
연애 비즈니스만으로 사랑의 전반적 후퇴를 막기엔 역부족이다. 미국 성인의 절반 이상은 아예 연애 시장에 발을 들여놓지 않고 있다. 구애 활동이 가장 활발할 나이인, 1980년대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의 61%는 현재 파트너 없이 살아간다. 일본 역시 20대 남성의 39.8%, 여성의 25.1%가 연애 경험이 전혀 없는 ‘모태 솔로’이고, 현재 20대 남성의 65.8%, 여성의 51.4%는 배우자나 연인이 없다. 한국도 다르지 않다. 연세대 연구팀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서울 거주 20대 남성의 42%, 여성의 43%는 한 해 동안 한 차례도 성관계를 맺지 않은 ‘섹스리스’ 상태였다.
스테파니 카치오포 미국 시카고대 의대 교수의 <우리가 사랑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생각의 힘 펴냄)에 따르면,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건전한 사랑은 영양가 있는 음식과 운동, 깨끗한 물만큼이나 인간의 건강에 필요하다. 우리 몸과 마음은 사랑을 나눌수록 더 큰 혜택을 얻도록 설계돼 있다.
사랑의 감정은 연인과 접촉할 때 분비되는 신경 화학물질의 작용에서 비롯한다. 사랑은 뇌를 도파민에 젖게 한다. 사랑에 빠지면 심장은 빨리 뛰고, 볼은 달아오르며, 포도당이 넘쳐나 신체는 활기로 가득 찬다. 연인과 포옹하는 등 매력적 상대와 접촉하면 옥시토신 분비가 촉발된다. 옥시토신은 공감과 신뢰의 느낌을 높여주어 관계 형성에 필수적이다. 사랑은 우리 안에서 정서적 유대를 형성한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진화 인류학자 애나 마친에 따르면, 사랑은 무엇보다 베타엔도르핀 분비를 촉진한다. 격렬한 운동 후 느끼는 행복감의 원천인 이 물질은 우리가 연인, 가족, 자녀, 친구 등과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게 한다. 베타엔도르핀은 통증 해소 기능을 함으로써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어려움을 완화하고, 자연살해세포의 기능을 촉진함으로써 면역 체계 작동을 활성화한다. 사랑은 신체 활력 지수를 높이고 스트레스를 낮추며 수면 질을 높여서 우리를 건강과 행복으로 이끈다.
사랑은 또한 인간 발달과 사회관계의 생물학적 토대이다. 사랑에 빠지면 쾌락 중추뿐 아니라 고차원적 뇌 영역도 활기를 띤다. 카치오포에 따르면, 사랑은 뇌의 신피질을 성장시키고 신경망 전체를 깊게 연결함으로써 다양한 감정을 발달시키고 추상적 사고와 은유적 언어를 꽃피우게 한다. 사랑은 인지를 발달시키고, 창의력을 북돋우며, 사고 속도를 높여준다.
사랑은 인류를 마음의 고수로 성장시킨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면, 우리 뇌의 겨울 신경계가 깨어나 타자를 이해하는 힘이 자라난다. 사랑은 나를 우리로 만든다. 사랑 덕에 인류는 자아 안에 타자를 포함하는 자기 확장 과정을 실현하고 타자의 마음을 짐작하는 정신화 능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이 힘은 사랑을 넘어 인간관계 전체에 두루 쓰인다.
사랑이 우정을 낳고, 우정은 공동체를 낳는다. 위험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서 사랑은 우리를 외롭지 않게 만든다. 사랑 덕분에 인류는 친구를 사귀고 적을 멀리하며, 이웃의 행동을 예측하고 장기 이익을 단기 욕망보다 우선시하는 법을 터득한다. 때로는 친구를 위해 자기 목숨을 내던지는 숭고한 희생마저 받아들이게 되었다.
마친의 <과학이 사랑에 대해 말해줄 수 있는 모든 것>(어크로스 펴냄)에 따르면, 사랑의 네트워크는 크게 4단계로 이루어진다. 첫 단계엔 네다섯 명으로 이루어진 중심 지지 세력이 있다. 부모, 파트너와 자녀, 절친 등으로 이루어진 이들은 정서적으로 가깝고, 일주일에 최소 한 번은 연락하는 사이다. 이들은 가장 힘들 때도 받아주리라는 확신을 품고 기댈 만한 사람들이다.
다음 단계에는 15명으로 이루어진 공감 집단이 놓여 있다. 우리는 이들과 늘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진심으로 공감한다. 저녁에 만나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음식과 술을 나누면서 수다 떨 수 있는 이들이다. 세 번째론 45명 내외 친밀 집단이 있다. 확장 가족과 친척, 알고 지내는 사람, 같이 일하는 동료 중 일부가 여기 속한다. 마지막엔 한 해 한 차례 정도 만나는 사람들로 약 150명 정도이다.
한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이나 관계에 동원할 자원에는 한계가 있기에 유의미한 인간관계는 최대한 여기까지다. ‘아는 사이’에 속하는 500명, 유명인사나 정치인 등 이름만 아는 집단인 1500명 등에 신경 써도 소용없다. 몸은 바빠지고 마음은 어지러울 뿐 사랑의 네트워크가 실제 커지는 건 아니다. 언제나 ‘너무 많은’은 ‘하나도 없는’과 똑같다. 핵심에 집중하지 않는 사랑은 결국 빈껍데기만 남긴다.
현대 사회에서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사랑의 위기는 범람하는 정보가 사람들 관심을 빼앗기 때문일 수 있다. 신경 쓸 관계가 너무 많으면, 사람은 무엇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사랑은 사로잡히는 집착이고, 순간에 몰두하는 강박이다. 너무 아픈 사랑과 마찬가지로, 너무 많은 사랑도 사랑이 아니다. 중심 지지 세력이 없을 때 우리는 사랑할수록 더 외로워진다. 사랑의 무능을 퍼뜨린 또 다른 요인은 번아웃이다.
<요즘 애들>(RHK 펴냄)에서 미국 작가 앤 헬렌 피터슨은 말했다. “우리가 섹스를 덜 하는 건 섹스를 덜 좋아하기 때문이 아니라 피곤하기 때문이다.” 지나친 경쟁과 가혹함에 내몰린 불안한 마음이 청년들을 사회적 발기 불능으로 만든 것이다.
사랑은 인간이 지닌 가장 강력한 능력이다. 사랑 없이 인간은 잠재력을 온전히 실현하지 못하고, 사랑을 잃은 공동체는 갈등과 투쟁, 분열과 파탄에 이른다. 사랑의 부재는 인간 위기의 기미이고, 사회 붕괴의 조짐이다. 사랑의 힘이 활성화할 수 있도록, 공동체 전체가 노력을 다해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