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의 여진이 좀 남아 있지만, 미술애호가는 기다렸다는 듯 좋은 전시를 볼 생각에 들떠있다. 올 한 해 우리를 기다리는 전시는 정말 많다. 미뤄두었던 전시들이 앞다투어 열려 달력에 표시해야 할 지경이다. 1월을 시작으로 르네상스에서 17세기, 20세기, 그리고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마치 잔칫상을 방불케 한다.
우선 올해는 역시 피카소로 시작해 피카소로 끝날 것 같다. 시대를 뛰어넘는 그가 세상을 떠난 지 50주년이 되기 때문이다. 파리의 피카소 미술관은 전을 연다. 영국 패션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을 맡아 ‘컬렉션의 색을 입다(La Collection prend des couleurs!)’를 주제로 피카소의 걸작을 현대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피카소와 스미스의 사물, 의복, 장난스러움에 대한 공통된 사랑은 작품을 새롭게 창의적으로 해석하고 화려하게 배치해 새로운 피카소로 환생시킬 예정이다.
또한 세실 드브레이와 조앤 스네치가 큐레이팅한 전시(3월 7일~8월 23일)와 함께 프랑스와 스페인 정부가 피카소 서거 50주년을 맞아 ‘피카소;1973-2023 위원회’를 구성, 피카소의 작품에 대한 미술사적 의미를 짚어보는 <21세기 피카소: 역사적, 문화적 문제> 등 약 50개의 전시와 학술행사가 우리를 기다린다.
2021년 5월 중순 개관한 파리의 새로운 명소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의 피노(Pinault) 컬렉션은 <폭풍이 오기 전에>(2월 8일~4월 24일)를 연다. 기후변화라는 긴박한 문제를 현대미술로 환기시키는 전시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1930년대 전환기의 마티스>(3월 1일~5월 29일), 마르모탕 모네 미술관은 현대미술에 의해 잊힌 <신낭만주의>(3월 8일~6월 18일)를, 루이비통 파운데이션은 <바스키아와 워홀>(4월 5일~8월 28일)로 우리를 불러세운다.
아마도 가장 많은 이가 기대하는 전시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자리한 라익스 미술관의 <페이르메르>일 것이다. 역대 최대 규모의 페이르메르전(2월 10일~6월 4일)은 그의 유존(遺存)작 35~36점 중 유럽은 물론 미국과 일본으로부터 대여해온 28점이 전시될 예정이다. 빛의 대가 페이르메르의 작품에 새로운 빛과 진실을 밝히는 일련의 연구로 그의 진면목을 다시금 새길 기회다.
르네상스의 마에스트로 도나텔로의 전시도 우리를 유혹한다. 런던의 V&A에서 열리는 <도나텔로의 전시>(2월 11일~6월 11일)는 그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르네상스 미술사의 핵으로서의 역할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15세기 이탈리아의 활기찬 예술과 문화적 맥락 내에서 도나텔로의 혁신, 협력, 후대에 대한 영향 등을 확인할 기회다. 작년 베니스비엔날레의 이탈리아국가관을 차지했던 지안 마리아 토사티의 개인전(2월 23일~7월 16일)은 밀라노의 피렐리 타이어 공장이었던 피렐리 행거 비코카에서 열린다. 영국의 로제티도 런던의 테이트 브리튼(4월 6일~9월 24일)에서 우리를 맞는다.
작가, 건축, 디자인, 영화, 수집가, 큐레이팅을 아우르는 반체제 지식인으로 알려진 중국 출신 아이 웨이웨이의 (4월 7일~7월 30일)는 런던 디자인미술관에서 열린다. 이 전시는 그의 디자인에 관한 논평과 변화하는 우리의 가치를 드러낼 것이다. 전통 공예가 중국의 도시화와 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현실을 소환한다.
20세기의 위대한 거장 중 한 명인 앙리 마티스는 순수하고 선명한 색채로 20세기 예술에 큰 영향을 미친 야수파 운동의 핵심이다. 그를 재발견할 수 있는 <앙리 마티스: 색으로 가는 길>이 도쿄 우에노 공원의 도쿄도미술관(4월 27일~8월 20일)에서 열린다. 도쿄도미술관은 이 외에도 비엔나의 레오폴드 미술관 소장품을 대여해 전시(1월 26일~4월 9일)를 열고 있다. 50점이 넘는 마이스의 작품과 구스타프 클림트, 리하르트 게르스틀, 오스카 코코슈카 등 그의 친구들 작품 100점도 볼거리다.
행위예술가 아브라모비치는 런던의 로열아카데미(9월 23일~12월 10일)에서 전시회를 갖는다. 작가로서의 역사적인 퍼포먼스를 포함해 그의 50년의 경력을 확인할 수 있다. 미켈란젤로도 비엔나의 알베르티나(9월 15일~2024년 1월 7일)에서 우리를 기다린다. 알베르티나는 10년마다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컬렉션을 공개하는데, 올해는 를 통해 약 170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5월 20일 개막해 11월 26일에 막을 내리는 베니스의 제18회 국제 건축 비엔날레도 건축가는 물론 미술애호가들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총감독 레슬리 로코가 내건 ‘미래의 실험실(The laboratory of the future)’이 주제다. 한국관은 박경과 정소익의 공동감독체제로 채운다.
최근 가장 잘나가는 건축가라면 스위스 출신의 듀오 헤르조그와 드 뫼롱(Herzog&de Meuron)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서울에선 송은문화재단 사옥으로 이름을 알린 이들의 건축전이 런던의 로열아카데미에서 7월 14일부터 10월 15일까지 열린다. 1978년 바젤에서 처음 설계사무소를 개설한 이래 많은 프로젝트에 생명을 불어넣은 테이트 모던, M+ 같은 박물관, 미술관, 음악당, 병원, 경기장 및 개인 또는 공공건물에서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는 두 사람의 완성된 건축과 아직 진행 중인 작업에 적용한 생각과 다양한 접근 방식을 조명한다.
그리스 태생의 스페인 화가로 17세기 르네상스 말 스페인 펠리페 2세의 궁중 화가였지만 매너리즘으로 치부되며 주목받지 못하다 20세기 초 독일 표현주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엘 그레코의 전시는 밀라노의 팔라조 레알레(10월 13일~2024년 2월 9일)에서 열린다. 표현주의와 입체파에 큰 영향을 준 화가의 면모를 살펴볼 기회다. 베니스의 페기 구겐하임 컬렉션(10월 14일~2024년 3월 25일)은 현대미술의 문을 열고 자신만 빠져나간 후 문을 닫아버린 마르셀 뒤샹에게 헌정하는 전시회다. 헤아릴 수 없는 전시가 우리를 유혹하지만 지면 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세상은 넓고 볼 것은 많다고 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