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위스키에 대한 관심도가 심상치 않다. 관세청 수출입 통계에 따르면 2022년 10월까지 위스키 수입액은 전년 동기 대비 62%가량 증가했다. 한정판 위스키를 구매하기 위해 길게 줄을 서거나, 오픈런, 품귀현상 등이 일어나며 위스키는 새로운 재테크 수단으로도 각광받고 있는 중이다. 면세점에서는 희소성 있는 고급 위스키를 단독 입점시키기 위한 경쟁도 치열하다. 지난 12월 CU 편의점에는 300만원대 위스키 ‘탐나불린 1973’까지 등판했다.
이토록 과열된 위스키 전쟁 가운데 다음과 같은 화두를 던져보고 싶다. “그래서 당신의 위스키 취향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 말이다. 유명 주류 유튜버나 셀러브리티가 추천하는 위스키, 드라마나 영화 속에 등장한 제품,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보이면 무조건 사는 게 이득’이라고 언급되는 브랜드가 아닌, 본인이 직접 마셔보고 축적된 경험치를 기반으로 차곡차곡 쌓아 올린 취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자신만의 위스키 취향을 찾기에 가장 적절한 장소는 바(Bar)이다. 바텐더들은 술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와 지식을 자신만의 정제된 언어로 체화하여 가장 쉽고 정확하게 술을 소개하고 추천해주는 사람들이다. 올곧게, 정석대로, 때로는 위트를 가미하여 술을 가이드해준다. 다음 소개하는 바 리스트는 그런 든든한 존재들이 내공과 기량을 제대로 펼치는 공간이다.
청담동의 ‘보이드’ ‘제스트’ ‘엠바고’, 논현동의 ‘임바이브’, 한남동 ‘바 스왈로’ ‘바 임바이브’의 최종천 바텐더는 이렇게 말한다. “본인의 위스키 취향을 잘 모르겠다고 하시면 저는 보통 버번 캐스크, 셰리 캐스크를 조금씩 맛보여 드리는 편이에요. 그러면 손님 10명 중 9명이 ‘셰리 캐스크’를 고르죠. 일반적으로 셰리 캐스크 위스키의 특징은 너무 진하지도 단조롭지도 않으며 둥글한 캐릭터를 가졌기 때문에 위스키에 입문하기 좋죠. 친숙한 초콜릿 향도 은은하게 나고요.”
보통 위스키를 고를 때 지역, 브랜드, 숙성 기간 등을 보지만 오크 사용법 또한 꽤나 중요한 요소다. 위스키는 오크통(캐스크)에 대한 의존도가 무척 높은 술이기 때문이다. 위스키의 다채로운 향과 아름다운 컬러는 오크통을 통해 결정된다.
애주가들의 교본으로 손꼽히는 책 <스피릿>에 따르면 “오크는 물관과 체관으로 구성된 다공성의 물질이기 때문에 어떤 성분으로 채워지면 그것을 흡수해 일부분을 그 안에 품고 있다.” 버번을 제외하면 전 세계 위스키 생산자들은 사용된 적 있는 오크통을 재사용하며 그중 셰리 캐스크를 많이 사용한다.
셰리 오크통을 사용하면 위스키에 건과일 풍미가 두드러지고 버번을 숙성시킨 통을 사용할 경우 대체로 바닐라와 흰 꽃의 풍미가 난다. 미국 버번위스키는 한 번도 사용된 적이 없는 새 오크통에 숙성시키는데, 이때는 생바닐라 깍지와 쌉쌀한 나무 특유의 풍미가 풍부하게 우려진다.
수많은 손님의 취향을 간파하고 관찰해온 여러 바텐더들의 말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셰리로 입문하여 흔히 소독약, 훈제향으로 비유하곤 하는 강렬한 피트 위스키로 넘어갔다가, 버번의 세계에 눈을 뜨고, 다시 셰리로 돌아오는 사이클을 돈다고 한다. 위스키에 대한 취향이 두텁게 쌓일수록 더 섬세하고 화려한 것을 찾는다는 것을 반증한다. 위스키는 일정 부분 훈련이 필요한 술이기도 하다. 필자 역시 현재 위스키 취향 사이클은 한 바퀴를 돈 후 다시 셰리에 멈춰 서있다. 더욱 고차원적인 셰리의 세계를 탐닉하고자 두 번째 바로 향했다.
오직 3분간 위스키에 대한 핵심 내용만 명쾌하게 설명해 주는 ‘3분 위스키’ 유튜브 채널 운영자이자, 청담동 엠바고를 지키고 있는 김준수 바텐더는 위스키 좀 마신다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어마어마한 ‘정보력’과 ‘덕후력’으로 유명한 진정한 무림의 고수다. 숨어 있는, 재발견의 가치가 있는 위스키를 찾아 달라고 부탁했다.
“일반적으로 셰리 캐스크 명가라고 하면 맥캘란, 글렌드로낙, 글렌고인, 글렌파클라스, 아벨라워와 같은 브랜드가 유명한데요. 그 가운데서도 ‘아벨라워 아부나흐’와 ‘글렌파클라스 105’가 용호상박을 이룹니다. 그런데 이런 거대한 명성에 가려져 있는 숨은 진주 같은 위스키는 따로 있죠.”
이 거대한 용과 호랑이 뒤에 가려진 위스키가 하나둘 테이블 위로 올랐다. 먼저 더블 캐스크 라인인 ‘아벨라워 12년’ ‘아벨라워 14년’ ‘아벨라워 16년’을 버티컬로 시음해보는 경험은 무척 특별했다. 한때 ‘제주 특산품’이란 별명으로 불릴 만큼 면세점을 통해 유명해진 ‘아벨라워 아부나흐’보다는 덜 알려져 있으나, 모두 각자의 매력과 개성을 가진 위스키였다. 특히 부드럽고 균형이 잘 잡힌 사과 향이 나는 ‘아벨라워 12년’이 기억에 남았다. 비교 테이스팅이야말로 취향을 확실하게 발견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재발견의 가치가 있는 두 번째 위스키, ‘글렌파클라스 15년’이 등장했다. 1865년 시작된 글렌파클라스는 ‘녹색 초원의 계곡’이란 뜻으로, 특히 이 위스키는 전문가와 위스키 전문 평가 채널을 통해 높은 점수를 받은 바 있다. 더 정확한 테이스팅 노트에 따르면 “크리스마크 케이크 같은 고소한 향과 셰리의 힘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있고, 입에서는 오렌지 필, 건포도, 바닐라 등이 느껴진다.” 영국의 대처 수상이 좋아했던 위스키로도 유명한 ‘글렌파클라스 105’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덜 조명받았으나, 위스키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상당히 호평받는 위스키로 알려져 있다.
‘글렌파클라스 15년’은 개인적으로 올해 마신 위스키 톱5 안에 들 만큼 밸런스와 부드러움, 달콤함이 인상적이었다. 요즘 좋은 술을 만나면 ‘있었는데 없었다’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곤 하는데 이 위스키가 그랬다. 눈 깜짝할 새 앞에 있던 영롱한 위스키가 사라졌다. 마치 아무것도 없었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