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8년 10월 6일, 명나라 사신 기보(祁保) 일행이 태조 이성계의 무덤(건원릉)을 방문한 사건이 있었다. 건원릉을 둘러본 기보는 건원릉 풍수를 칭찬하여 말한다.
“어찌 이와 같은 천작(天作)의 땅이 있을까? 반드시 인작(人作)으로 만든 것이다.”
그해 5월 태조 이성계가 죽는다. 명나라는 기보를 파견하여 조문한다. 조문을 마친 기보는 건원릉을 구경한다. 외교상 분명 “참배”가 아니었다. “지나가는 길에 잠깐 구경하자(역관·歷觀)” 한 것이다. 왜 갓 건국된 조선의 창업자 무덤을 보고자 하였을까? 당시 중국과 조선은 ‘풍수의 나라’였다. 창업자 무덤이 어떠한가에 따라 그 나라 흥망성쇠가 결정된다고 믿었다. 구경을 핑계 삼아 창업자 무덤을 엿본 것이다. 일종의 ‘풍수 스파이’였다.
임진왜란 당시 조선을 구원하러 온 명나라 장수들은 풍수사들을 대동하고 입국했다. 풍수사들은 단순히 둔군치영(屯軍置營)과 출전(出戰) 일시를 뽑는 자문뿐만 아니라 지세를 파악하기 위한 ‘풍수 스파이’였다. 대표적인 중국 풍수사가 섭정국(葉靖國)이었다. 그는 한양 지세를 살펴본 뒤, 당시 ‘조선의 위기’를 수구(水口·동대문 쪽)가 벌어진 데서 기인한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그러한 풍수 스파이 전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풍수학자’란 이름으로 한·중·일에 포진한다.
10년 전인 2013년 필자는 당시 한·중·일 권력자로 등장한 박근혜·시진핑·아베 3명의 ‘지도자 풍수’를 모 일간지에 기고한 적이 있었다. 직접 3국 지도자의 조상 묘를 찾아 일본·중국 현장을 답사하고 나서 글을 썼다. 당시 칼럼 주제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시진핑 주석·아베 신조 총리로 대표되는 3국 지도자와 국운은 어떤 관계일까? 세 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많다. 집권 시점이 한두 달 간격으로 비슷하고, 나이도 한두 살 차로 동년배이다. 그들 모두 최고 권력자의 후손이다. (…) 그들 조상묘와 권력 향배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
그로부터 10년이 흘렀다. 박근혜 대통령은 불행했고, 아베 총리는 최장수 총리를 하다가 2022년 피격·사망했다. 시진핑 주석만 성공한 ‘천자’가 되어 앞으로 5년 더 군림한다. 그 당시 필자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고향과 선영을 찾아 베이징과 시안을 다녀와서 소개했다. 핵심 내용을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2002년 5월 24일 시진핑 아버지 시중쉰(习仲勋)이 향년 89세로 사망한다. 시중쉰은 중국 공산당 개국 원로였다. 5월 30일 베이징 서쪽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묘(革命公墓)에 안장된다. 그런데 사회주의 중국에서 드문 일이 발생했다. 정확하게 세 번째 기일인 2005년 5월 24일 아침 유족들은 시중쉰을 푸핑(富平)현 타오이촌(陶藝村)으로 이장한다. 현장 답사 결과 그 자리는 풍수가 요구하는 명당 조건에 그대로 부합하는 천하의 길지였다. 이후 시진핑 주석은 승승장구하여 천자의 자리에 오른다.’
풍수사들이 국가 지도자 선영을 살피는 이유이다. 필자는 2022년 10월 일본 야마구치(山口)·도쿄(東京)·시즈오카(靜岡)를 짧은 시간에 바쁘게 다녀왔다. 여행이 아니었다. 아베 전 총리 무덤을 확인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 무덤에 관심을 둔 것은 단순히 풍수 호사가의 일이 아니다. 그의 죽음과 더불어 잊힐 것인가, 아니면 일본의 신(카미사마·神樣)으로 ‘부활’할 것인가를 가늠할 ‘현장’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미 일본에서도 “아베 전 총리의 무덤은 어디(安倍元首相の墓はどこ)?”라는 주제로 인터넷에서 논쟁이 활발하던 터였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필자가 직접 일본 현장을 가게 된 배경이다.
일본 관습상, 사후 49일(사십구재)이 되면 묘가 조성된다. 그러나 아베 전 총리 묘는 정해지지 않았다. 가족 차원의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베 전 총리 사후 지금까지의 진행 상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2022년 7월 8일 피격·사망
7월 12일 도쿄 조조지(增上寺)에서 가족장
8월 25일 자택에서 가족끼리 ‘사십구재(사후 49일)’
9월 27일 도쿄에서 국장(國葬)
10월 15일 야마구치(山口)현 현민장(縣民葬)(사후 100일)
10월 25일 야당(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野田 桂彦)
전 총리의 국회 추도연설
왜 일본 관습을 깨고 그의 묘가 조성되지 않았을까? 일본이란 나라의 미래 국운을 엿볼 단서이다. 일본의 미래를 ‘아베의 나라’로 만들고자 하기 때문이다. 아베를 일본의 신(神) 만들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묘지가 만들어져야 한다. 물론 이러한 의도를 ‘국장과 현민장’ 자체를 반대했던 좌익·시민단체도 모를 리가 없다. 중도신문인 마이니치신문(每日新聞), 좌익인 도쿄신문(東京新聞)·조슈신문(長周新聞) 등은 “아베씨가 신격화되는 것(安倍氏が神格化されるの)”을 반대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소수 의견이다.
일본의 주류는 보수우익이다. 그들은 아마도 아베 전 수상 묘를 일본을 지켜주는 신(神)에 걸맞게 조성할 것이다. 일본 역사에서 새로운 것은 전혀 아니다. 일본을 통일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1616년 죽는다. 죽음을 앞둔 그는 유언을 남긴다. “죽으면 바로 당일 구노(久能)산에 매장할 것. 일 년 후에 닛코(日光)산으로 이장할 것.” 이유는 그가 죽어서라도 자기 영토를 위협하는 서쪽(關西) 세력을 막아주는 신(神)이 되고자 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도쿠가와 막부(幕府)는 260여 년 동안, 일본을 그들이 원하는 나라로 통치할 수 있었다. 일본 보수우익은 아베 전 총리의 무덤을 통해 1945년 이후 ‘패전국가 일본’을 지우고자 한다. 아베가 제창한 “아름다운 나라로(美しい国へ)”로 나아가고자 하는 의도를 드러낼 것이다(아베 전 총리 무덤이 조성되면 그때 또 소개하기로 한다).
일본만의 일인가? 동서고금을 통해 강한 권력자들의 무덤들은 모두 그러했다. 다음 호에는 ‘왕조 국가’ 북한 사례를 소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