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의 수도인 빈은 유서 깊은 국제도시이자 아름다운 관광도시로 수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지만, 그 누구보다도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에게 각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도시일 것이다. 빈(Wien), 또는 비엔나(Vienna)로 불리는 이 중부 유럽의 중심지는 서양음악사에서 가장 찬란했던 시절의 중심무대였기 때문이다.
바로 그곳에서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으로 이어지는 ‘빈 고전파 3인방’이 전성기를 구가하며 ‘고전음악’의 기틀을 다졌고, ‘가곡의 왕’ 슈베르트가 이 땅에서의 고달픈 서른한 해를 견뎠으며, ‘왈츠의 왕’ 요한 슈트라우스 2세가 전 유럽을 들썩이게 만들었다. 그 밖에도 요하네스 브람스, 안톤 브루크너, 구스타프 말러, 아르놀트 쇤베르크 등등, 이 도시를 기반으로 명성과 업적을 쌓아올린 위대한 작곡가들의 면면은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이다.
어디 그뿐인가? 빈에는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브루노 발터, 카를 뵘,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레너드 번스타인과 같은 불세출의 지휘 거장들이 호령했던 슈타츠오퍼(Staatsoper·국립오페라극장), 무지크페라인(Musikverein·음악인 동우회 건물), 콘체르트하우스(Konzerthaus)와 같은 저명한 공연장들이 영광의 추억을 간직한 채 여전히 버티고 서있다. 그래서 빈을 가리켜 ‘클래식 음악의 고향’ ‘클래식 음악의 수도’라 부르기도 한다.
그런 빈이 매년 한 번씩 전 세계 음악애호가들의 이목을 끄는 날이 있다. 바로 1월 1일, 유명한 ‘빈 필 신년음악회’가 열리는 날이다. 세계 최정상의 교향악단인 빈 필하모닉(Wiener Philharmoniker·약칭 ‘빈 필’)이 무지크페라인의 대공연장인 ‘황금홀’에서 당대를 대표하는 거장의 지휘로 빈 출신 작곡가들의 왈츠, 폴카, 행진곡 등을 연주하는 이 음악회는 이제 90여 개국에 중계 방송되며 세계인의 신년 이벤트로 각광받고 있다. 어느덧 80여 년의 역사를 헤아리고 있는 이 유서 깊은 음악회의 내력을 살펴보자.
‘빈 필 신년음악회’의 역사는 당대를 대표하는 거장들과 함께한 역사라고 할 수 있다. 그 기원은 193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12월 31일, 클레멘스 크라우스의 지휘로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음악들을 연주한 공연이 시초였던 것. 그렇다. 처음에는 ‘신년음악회’가 아닌 ‘송년음악회’로 출발했고, 명칭도 ‘특별음악회’였다. 이 특별 음악회가 1941년부터 1월 1일로 날짜를 옮겨 지금과 같은 성격을 띠면서 연례행사로 자리 잡았고, ‘신년음악회(Neujahrskonzert)’라는 명칭을 정식으로 사용하게 된 것은 1946년부터였다.
초창기의 신년음악회는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의 2년간을 제외하면 1954년까지 클레멘스 크라우스의 지휘로 진행되었다. 크라우스는 빈 출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을 전후로 푸르트벵글러와 더불어 빈 필하모닉과 가장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던 지휘자였다. 1946년과 1947년에는 역시 빈 출신인 유태계 지휘자 요제프 크립스에게 잠시 지휘봉이 넘어갔었고, 1954년 5월에 크라우스가 타계한 뒤로는 빈 필의 악장이었던 빌리 보스코프스키가 바통을 물려받았다. 보스코프스키는 1955년부터 1979년까지 무려 25년 동안 신년음악회를 이끌었는데, 특히 바이올린을 손수 연주하며 악단을 지휘하여 ‘요한 슈트라우스 악단’의 전통을 부활시킨 장본인으로 유명하다. 아직도 빈에는 보스코프스키 시절의 연주야말로 진정한 ‘빈 왈츠’였다고 추억하는 올드팬들이 존재한다.
보스코프스키 이후에는 역시 바이올린 연주가 가능했던 로린 마젤이 7년 동안 지휘대에 올랐는데, 1987년부터는 매년 다른 지휘자를 초빙하는 시스템으로 전환하여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그 첫해의 주인공은 만년의 카라얀이었고,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카를로스 클라이버가 그 뒤를 이으며 새바람을 일으켰다. 1990년대에는 주빈 메타, 리카르도 무티, 로린 마젤 등이 번갈아 포디엄을 점유했고, 2000년대 들어서는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세이지 오자와, 마리스 얀손스, 조르주 프레트르, 다니엘 바렌보임, 2010년대 이후에는 프란츠 벨저뫼스트, 구스타보 두다멜, 크리스티안 틸레만, 안드리스 넬손스 등이 라인업에 가세하며 다채로움을 더했다. 이 가운데 1981년생인 두다멜(2017년)과 1978년생인 넬손스(2020년)는 이례적으로 젊은 나이에 지휘를 맡아 화제를 모았다. 최고령 기록은 프레트르(85세)가 갖고 있다.
새해 빈 필 신년음악회 지휘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빈 국립오페라 음악감독을 역임한 프란츠 벨저뫼스트가 맡았다. 2022년 빈 필의 내한공연을 이끌기도 했던 벨저뫼스트는 2011년과 2013년에도 이 음악회를 지휘한 바 있다. 빈 필은 자신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고 실력과 명성의 양면에서 충분히 검증된 지휘자들만을 신년음악회 포디엄에 세우는 전통을 고수해오고 있는데, 그러다 보니 같은 지휘자를 반복적으로 내세우는 일이 잦아 식상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한다. 무티가 6번, 메타가 5번, 마젤이 4번(1987년 이후), 얀손스와 바렌보임이 3번 등 당사자들에게는 영광의 기록이겠지만 애호가들 입장에서는 썩 달갑지만은 않은 면도 있었다. 다만 구세대 거장들 대부분이 현재 고령이거나 유명을 달리했고, 근래 지휘계의 세대교체가 가속화하고 있기에 조만간 사정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싶다. 과연 어떤 새 얼굴들이 빈 필의 낙점을 받을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