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노르웨이 기반 로봇 회사 ‘1X’는 2350만달러 규모의 시리즈A2 투자를 마무리했다. 이번 투자 라운드가 주목받은 이유는 오픈AI 스타트업 펀드가 주도했기 때문이다. 앞서 오픈AI는 초기 단계의 AI 기업에 투자할 목적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를 비롯한 파트너사와 공동으로 1억달러 규모의 스타트업 펀드를 조성한 바 있다. 2014년 노르웨이에서 설립된 1X는 휴머노이드 로봇을 제작하는 회사다. 지난해 미국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이브(EVE)’를 개발했고, 올해 여름 AI 기술과 연동된 안드로이드 로봇 ‘네오(NEO)’를 출시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정보기술(IT)·로봇 업계에서는 인공지능(AI) 회사인 오픈AI가 하드웨어(로봇) 기술 기업에 직접 투자하는 것은 대규모 언어모델(LLM)을 실제 존재하는 물리적 세계로 적용하기 위한 행보로 보고 있다. 생성형 AI 생태계가 확장되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디지털 공간 내에서 생산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언어모델을 로봇에 적용할 수 있다면, 자연어 명령만으로 로봇을 조종하거나 창작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실제로 최근 로봇 분야에서는 AI와 융합해 궁극적으로 인간의 개입을 필요로 하지 않는 ‘무인화’를 표방하며 기술 개발이 빠르게 이뤄지는 추세다. AI 기술이 엄청난 양의 정보를 처리하는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플랫폼, 애플리케이션까지 모든 영역에서 진일보를 이뤄낸 덕분에 발전 속도가 유례없이 빨라졌다는 전언이다. AI와 같은 기반 기술의 발전은 조만간 물리세계에서 스스로 활동할 수 있는 로봇의 출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키우고 있다.
‘챗GPT’에게 ‘거울을 활용해 로봇(드론)으로 셀카를 찍어 달라’고 요청하자 컴퓨터 코드가 작성되고 로봇이 이를 즉각 실행한다. 나무 블록을 활용해 회사 MS 로고를 형상화하도록 챗GPT에게 명령하자 코드를 전달받은 로봇팔이 빠르게 로고를 만든다. 지난 3월 MS의 ‘자율시스템·로보틱스’ 연구팀이 공개한 영상의 일부다. MS가 이처럼 최근 AI 챗봇 ‘챗GPT’를 활용해 로봇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하자 로봇업계에 적잖은 파동이 일었다. 영화 <아이언맨>에서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주문을 실행하는 AI ‘자비스’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가능성을 제시한 셈이기 때문이다.
사실 그간의 로봇 프로그래밍은 엔지니어(사람)가 로봇의 언어로 코딩해 명령을 입력하고 로봇의 피드백을 관찰해 수정하는 작업을 반복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었다. 말 그대로 업계에 ‘파괴적 혁신’을 가져올 기술이 등장한 것이다. MS 연구팀은 사람이 로봇에게 말로 명령을 내리면 챗GPT가 이를 로봇 언어로 프로그래밍하는 것을 집중 연구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는 시작에 불과하고, 앞으로 언어 기반의 로봇 제어가 로봇공학을 실험실에서 벗어나 일상에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IT업계에서는 챗GPT로 생성형 AI 기술 상용화에서 먼저 치고 나간 MS가 ‘AI 로봇’ 경쟁에서도 우위를 선점하기 위해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구글은 스스로 프로그래밍할 수 있는 로봇을 테스트 중이다. 구글의 초거대 AI ‘팜(PaLM)’을 기반으로 개발된 언어모델을 통해 조작자가 명령어를 입력하면 로봇이 코드를 직접 작성해 처리하는 방식으로 알려졌다. 로봇 연구에서 앞서가는 미국 대학에서는 최근 ‘생성형 AI’를 탑재한 로봇이 인간의 명령을 수행하는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최근 미국 카네기멜런대 로봇연구그룹(BIG)은 그림을 그리는 로봇 ‘프리다(FRIDA)’ 개발에 성공했다. 고도화된 AI를 탑재해 마치 사람처럼 생각하고 한 획 한 획 그림을 직접 그려내는 로봇이 개발된 것이다. 사용자가 원하는 그림을 말이나 사진으로 설명하면 팔처럼 생긴 로봇이 아크릴 물감으로 천천히, 대담한 붓놀림으로 그림을 그려낸다. 로봇이 물감을 쓰고 일일이 붓질을 하며 인간과 함께 작업한다는 점에서 오픈AI가 개발한 달리(DALL-E) 등 시장에 나온 이미지 생성 AI와 차별점이 있다. 인간의 마지막 보루로 여겨지는 ‘창의성’의 영역에 도전하는 로봇이 등장한 셈이다.
오혜진 카네기멜런대 로보틱스학과 교수는 프로젝트 책임연구자(PI)를 맡아 모든 기술 개발을 주도했다. 프리다는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다. 다만 아직 실제 판매 가격이 정해지지는 않았다. 생성형 AI와 로봇의 차이점에 대해 연구팀은 “생성형 AI가 찍어내는 그림들은 프린트할 수는 있지만 페인트로 그릴 수는 없다”라면서 “프리다와 생성형 AI의 차이는 마치 비대면 줌 미팅과 대면 미팅의 차이와 같다”라고 비유했다.
그간 로봇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는 시도는 꾸준히 있었지만 대부분 그림을 그리는 것(창작)보다는 엔지니어링을 통해 주어진 이미지를 로봇으로 ‘찍어내는’ 기술에 가까웠다. 프리다는 AI를 접목해 이 문제에 접근했다. 오픈AI의 챗GPT와 유사한 방식의 AI 모델을 활용해 로봇이 붓질을 통해 이미지를 그리는 방법을 시뮬레이션하고, 기계학습을 활용해 작업 진행률을 평가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프리다는 AI 분야 중 하나인 계획(Planning) 방식을 사용해 사람이 그림을 그리는 것처럼, 처음에는 조금 모호할 수도 있는 ‘생각’을 천천히 구현해낸다.
그림을 그리는 AI 로봇 개발의 최대 난제는 가상과 현실 사이 간극을 줄이는 것이다. 오 교수는 “프리다 시스템을 크게 시뮬레이션(상상)과 실제 작동(현실)으로 나눠보면, GPT와 같은 모델들을 사용해 그리고자 하는 그림을 상상하고, 카메라를 통한 인식으로 붓의 움직임을 정하는 과정을 거친다”라면서 “여기서 시뮬레이션 환경과 현실과의 괴리가 발생하는데 최근 프리다 로봇의 실제 데이터를 사용해 이 간격을 줄이는 데 큰 성과가 있었다”라고 전했다. 연구팀은 해당 연구 성과를 5월 런던에서 열릴 국제로봇학회 ‘ICRA 2023’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최근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의 등장은 로봇학계에도 자극제가 됐다. 이에 대해 오 교수는 “모든 분야가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않기 때문에 ‘언젠가 X가 되면’을 가정하고 하는 연구들이 많이 있다”라면서 “그런 의미에서 GPT 같은 언어모델의 발전은 여러 분야의 봇물을 트게 한다”라고 말했다. 생성형 AI가 로봇에 가장 먼저 적용될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 그는 “자연어를 사용해 자연스러운 인터페이스를 가능하게 하는 것으로, 자연어를 통한 프로그래밍까지 가능해지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로봇과 AI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로봇 학자들은 로봇에 쓰이는 인공지능 기술을 ‘로봇지능’이라고 부른다. 로봇지능이 발달할수록 더 똑똑한 로봇이 나올 수 있고, 하드웨어(로봇)에 대한 수요 자체가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AI 기술은 ▲자율주행 ▲작업처리 능력 ▲로봇의 의사 결정 능력 ▲로봇과 인간의 상호작용 ▲에너지 효율성 강화 측면에서 로봇 발전을 앞당길 수 있다. 로봇 전문가인 김주형 일리노이대 교수는 “챗GPT와 같은 자체 언어모델(LLM)들이 앞으로 더 많이 나올 것이고 로봇 분야에도 많이 적용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실제로 최근 들어 AI와 로봇 기술을 접목하는 시도가 전에 없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를 비롯해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기술력을 동시에 갖춘 빅테크 회사들이 이를 주도하고 있다.
특히 로봇이 사람을 대신해 유의미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게 된다면, 제조 물류 등 산업 전 영역은 물론 군사(안보) 지형까지 바꿀 수 있는 ‘노동혁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로봇업계 일각에서는 이를 ‘1차 로봇혁명’이라고 표현한다. G2(미국과 중국)는 ‘로봇패권’을 선점하기 위해 공격적이고, 발 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선진국들은 제조·의료·우주·물류 등 대부분의 산업 영역은 물론 군사 안보와도 밀접한 로봇을 국가경쟁력과 직결되는 ‘블루오션’으로 인식하고 있다. 특히 로봇을 둘러싼 경제 강국들의 공격적인 투자는 각국의 ‘제조업 부흥 정책’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비대면과 자동화가 일반화되면서 국방, 제조, 모빌리티, 물류, 정보통신 등 산업 곳곳에서 로봇 활용이 빠르게 확산됐다. 이러한 가운데 성장이 멈춘 선진국들이 고령화·저출산에 따른 일손 부족, 인건비 상승 흐름 속에서 로봇을 제조업을 혁신시킬 핵심 기술로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로봇 산업은 전방 산업을 보조하는 융합산업으로 자동차, IT, 헬스케어 등 산업과 시너지를 만들 수 있다. 실제로 고부가가치 산업이자 안보의 영역으로 넓어진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가치사슬 재편에 따라 산업용 로봇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다.
‘로봇 뇌’가 더 똑똑해질수록 로봇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질 수 있다. 궁극적으로는 ‘챗GPT’처럼 똑똑한 AI를 탑재한 휴머노이드를 내놓는 것이 로봇업계의 목표이자 과제다. 창업한 지 불과 1년밖에 안 된 로봇 스타트업 ‘피규어(Figure)’는 최근 휴머노이드 분야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로봇 회사다. 국제학술지 ‘EEE 스펙트럼’ 등에 따르면 이 회사는 세계 최초로 상업적으로 사용 가능한 범용 휴머노이드 로봇 ‘피규어 0.1’을 공개할 예정이다.
회사 측은 “피규어 로봇이 생각하고, 학습하며, 환경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이다. 이 로봇은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고, 시간이 지나면서 안전하지 않고 바람직하지 않은 작업의 필요성을 없애줄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피규어는 창업 후 1년 동안 IHMC, 보스턴 다이내믹스, 테슬라, 웨이모, 애플, 크루즈, 구글X 등에서 40명 이상의 핵심 엔지니어를 영입했다. 대부분 휴머노이드 로봇이나 자율 시스템 분야에서 상당한 경력을 갖춘 이들로 하드웨어(로봇 설계)는 물론 AI와 같은 소프트웨어(제어) 분야의 세계 최고 전문가들이 뭉친 셈이다. 업계에서 피규어의 ‘호언장담’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이유이다. 피규어 창업자인 브렛 애드콕은 “운 좋게도 AI, 제어, 전기, 통합, 소프트웨어 및 기계 시스템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고용했다”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피규어는 작년 12월 휴머노이드 로봇 알파 빌드(Alpha build) 버전을 제작해 서니베일 사무실에서 테스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피규어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전기 동력으로 움직인다. 160㎝의 키에 무게 60㎏의 단단한 몸을 가졌고, 한 번 충전에 5시간 동작할 수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로봇 학자이자 창업자인 오준호(레인보우로보틱스), 서일홍(코가로보틱스) 창업자는 최근 ‘챗GPT’ 등 생성형 AI 기술의 비약적 발전이 로봇 기술 퀀텀점프로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에 기대와 걱정을 동시에 표했다. 서 대표는 “AI가 로봇에 탑재되는 순간 한 단계 점프할 수밖에 없다”라면서 “가령 브레인을 클라우드에 올리고, 6G와 같은 통신을 매개로 실시간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로봇 기술이 발전할 수 있고, 이에 따른 안전과 보안 문제가 해결 과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언급했다. 오 창업자는 “로봇은 인간의 명령대로 움직이는 장치일 뿐이고 무엇보다 행위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라면서 “섣부르게 AI를 응용하고, 불확실한 상황을 실제 액션으로 옮기면 매우 위험할 수 있다”라고 경고했다.
[황순민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2호 (2023년 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