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1일, 장융 알리바바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이 회사의 ‘테크 서밋’을 통해 ‘1000개 질문으로부터의 진실’이라는 뜻을 가진 ‘퉁이첸원’으로 명명된 AI 모델을 소개했다. 장 CEO는 “중국 내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자체 대규모 언어모델(LLM) 출시 경쟁을 하고 있다”라면서 “모든 IT 기업이 AI 경쟁에서는 같은 출발선에 서 있다”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우리는 현재 생성형 AI와 클라우드 컴퓨팅에 의해 주도된 기술적 갈림길에 서 있다”라며 “기업들은 모든 분야에서 경쟁을 선도하기 위해 AI 혁신을 수용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날 알리바바는 자체 개발한 생성형 AI 모델이 스마트 스피커와 기업용 챗봇 등 모든 알리바바의 제품과 서비스에 가까운 미래에 탑재될 것이라고 밝혔다. 알리바바의 AI 기술 공개에 앞서 중국 최대 인공지능(AI) 분야 스타트업 센스타임(Sense Time·商湯科技)이 AI 챗봇 ‘센스챗’을, 중국 최대 검색엔진 바이두가 ‘어니봇’을 각각 선보였다.
세계적인 열풍을 가져온 대화형 인공지능을 두고 빅테크 간 경쟁이 격화하고 있다. 오픈AI의 AI 챗봇 ‘챗GPT’ 출시 이후 생성형 AI 열풍이 불고 있는 가운데 구글,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는 물론 중국과 한국을 대표하는 IT 회사들까지 AI 경쟁에 가세하면서다.
네이버는 자체 초대규모 언어모델 ‘하이퍼클로바X’를 7월 말께 공개할 예정이다. LLM은 챗GPT(챗봇)와 같은 AI 서비스의 근간이 되는 핵심 기술이다. 네이버가 2년 만에 새로운 LLM을 공개하는 것은 올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AI 생태계 선점 전쟁’에 참전한다는 의미가 있다. 오픈AI LLM인 ‘GPT-4’나 구글 ‘팜(PaLM)’의 대항마 격인 하이퍼클로바X는 네이버가 2021년 5월 공개한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의 업그레이드 버전이다. 이미지와 음성까지 이해할 수 있는 ‘멀티모달’로 만들어진다.
그동안의 AI 연구와 개발은 이를 개방하려는 진영과 폐쇄적으로 진행하려는 진영의 대결이 구도였다. 구글의 AI 연구 독점에 대항해서 나온 것이 오픈AI다. 최근에는 메타도 자신들의 모델을 오픈소스로 공개하면서 개방에 힘을 싣고 있다. 구글도 자신의 초거대 언어모델(PaLM) 의 API(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를 공개했다. 빠르게 치고 나간 오픈AI 와 MS 진영에 대항하기 위해 각 진영이 전열 재정비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대화형 인공지능 챗GPT를 활용한 서비스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생성형 AI를 실생활에 사용하는 케이스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생성형 AI란 글, 소리, 이미지 등 기존 콘텐츠를 활용해 유사한 콘텐츠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인공지능 기술을 뜻한다.
최근 세계적인 열풍을 가져온 생성형 AI를 둘러싼 빅테크 경쟁의 본질은 ‘생태계 선점’이다. 챗GPT를 만든 오픈AI를 비롯해 구글, 메타 등 빅테크가 AI 언어모델의 API를 공유하는 방향으로 사업 전략을 짜고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기업들이 API를 공개하는 것은, 자사 모델의 활용도를 높여 응용AI 생태계를 선점하기 위한 포석에서다. 2008년 아이폰(스마트폰)이 처음 나오고 애플이 수많은 개발자들을 자사 생태계에 몰아넣어 제국을 건설한 것처럼, 이제 막 태동하는 AI 생태계를 선점하는 회사가 향후 십수 년을 호령할 수 있다는 판단이다.
IT업계에서는 검색형 플랫폼 시대가 저물고 명령형 플랫폼 선점 속도전이 시작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더 많은 개발자를 먼저 자신들의 가두리 안에 들여오기 위한 경쟁은 이미 달아오르고 있다. 오픈AI는 최근 챗GPT와 다른 프로그램을 연결하는 ‘챗GPT 플러그인’을 내놨다. 예컨대 사용자가 챗GPT에 “도쿄행 항공권을 찾아줘”라고 명령(프롬프트)을 내리면 챗GPT가 데이터에 접근해 실제 티켓을 예약한다.
여기엔 AI 서비스를 자사 생태계로 모으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 회사가 별도로 챗GPT 모바일 앱을 출시하지 않는 이유다. 이미 애플과 구글이 지배하는 경기장에서 벗어나 새로운 판에서 싸우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이를 두고 권도균 프라이머 대표는 블록체인, 메타버스와 달리 AI야말로 진정한 웹3.0이 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기존 모든 서비스에 AI를 붙일 수 있기 때문에 AI 분야에서는 별도의 ‘킬러앱’이 필요 없다는 것이다.
권 대표는 “지금의 AI 혁명은 1990년대 초 월드와이드웹 프로토콜을 처음 접했을 때만큼 큰 충격”이라며 “생성형 AI가 웹이 세상을 바꾼 만큼 많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라고 내다봤다. 그는 “컴퓨터의 역사를 보면 대형 컴퓨팅 위에서 모든 것이 돌아가다가 PC로 넘어갔고, 모바일의 등장과 함께 (모바일이) PC 앱을 대체했다”라면서 “AI는 일종의 오퍼레이팅 시스템(운영체제·OS)으로 바라봐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2017년 12월,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인공신경망학회(NIPS). 구글 리서치 연구진은 인공지능 역사에 남을 논문 ‘어텐션(attention)’을 발표해 전 세계 AI 학자들을 열광케 했다. 이날 문장 속 단어와 같은 순차적인 데이터 관계를 추적해 학습하는 인공신경망 ‘트랜스포머’ 개념이 처음으로 제시됐다. AI가 사람처럼 문장 속에 떨어져있는 단어의 속뜻을 찾아내고 맥락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듬해 6월, 오픈AI는 트랜스포머를 기반으로 챗GPT의 근간이 되는 자연어 처리 기술 GPT1을 내놓았다. 챗GPT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개발된 언어모델의 70% 이상이 트랜스포머를 통해 개발됐다. AI 학계에서는 트랜스포머를 ‘파운데이션 모델’로 부른다. AI가 언어모델을 넘어 이미지·음성 인식, 신약 개발 등으로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길을 터준 ‘게임체인저’ 연구라는 의미다.
최근 구글이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의 대대적인 ‘생성형 AI’ 선점 공세에 밀린 형국에서도 앞으로 충분히 반격이 가능하다고 평가받는 이유는 이처럼 상당 기간에 걸쳐 축적한 기초연구 역량 때문이다. 이미 보유한 연구 성과와 특허를 실제 사업과 서비스로 연결하는 것은 결국 시간문제라는 것이다.
글로벌 학술 및 특허 정보 서비스 기업 클래리베이트의 ‘생성형 AI 특허 및 연구 분석’ 결과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생성형 AI 분야에서 발표된 논문 가운데 전 세계 연구자들이 집중적으로 참고하는 ‘상위 1%’ 논문의 경우 한국은 ‘빅2’로 분류되는 미국과 중국은 물론 영국, 독일, 호주, 캐나다 등에 이어 전 세계 7위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화의 단초가 되는 특허(발명)에서 양으로는 세계 3위에 올랐지만 실제로 의미 있는 혁신기술(상위 1% 특허)은 중국의 25분의 1 수준에 그쳐 최상위권과 비교했을 때는 격차가 있었다.
분석에 따르면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는 인용 수 기준 기업별 상위 1% 연구논문 순위에서 각각 118건, 103건으로 1, 2위를 차지했다. 3위를 차지한 메타(47건)와도 큰 격차다. 10위권에 한국 기업은 없었다. 인용 지수는 해당 연구가 후속 연구의 밑받침이 됐다는 점을 나타내 학술적 성과를 파악할 수 있는 중요 지표다.
5년간 발표된 생성형 AI 관련 특허(발명) 중 인용 지수 기준 상위 1% 수준의 특허는 중국과 미국이 각각 256건, 159건으로 독보적인 위치에 올랐다. 인용 수 기준 상위 1% 특허는 매우 우수한 기술 발명으로 실제 사업으로 연결했을 때 글로벌 수준에서 유의미한 영향력을 가질 수 있는 특허를 의미한다. 구글은 상위 1%, 10% 특허에서 각각 20건, 116건으로 압도적인 1위에 올랐다. 상위 10개 기업을 미국 중국 기업이 독식하는 가운데 한국 기업 중에서는 삼성만이 상위 10% 특허를 52건 출원해 5위에 올랐지만 상위 1% 특허는 구글 등 선두권에 비해 모자랐다.
클래리베이트 분석 결과에 따르면 생성형 AI 관련 연구논문 실적 기준(인용 수 기준 상위 1% 논문)으로 세계 상위 10위권에 한국 대학은 한 곳도 없었다. 중국에선 칭화대와 베이징대 등 5개 대학 연구기관이 이름을 올렸고, 미국은 50건으로 1위를 차지한 MIT를 비롯해 4개 대학이 상위권에 포진했다. 미국과 중국 대학이 성과를 독식한 가운데 싱가포르 난양공대는 30건의 1% 논문을 발표하면서 선두 그룹에 자리했다. 반면 우리나라 카이스트와 서울대는 각각 11건과 7건의 상위 1% 논문을 발표하는 데 그쳐 차이를 보였다.
AI 분야에 꾸준히 대규모 투자를 유도해온 중국의 약진은 위협적인 수준이다. 미국과 중국은 이미 10년 전부터 AI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준비해왔다. 미국은 2000년대 초반부터 AI에서 연구의 축적을 이뤄왔고, 중국의 경우 ‘알파고 쇼크’ 이후 우수인재 영입과 해외 대학과의 적극적인 연구 교류 상당한 진전을 이뤄냈다는 평가다.
생성형 AI가 기초 과학이 아니라 응용 기술 분야임에도 한국의 산학 공동 연구 비율은 상위 10개 국가 평균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해외 공동 연구를 통한 외국의 우수 연구자들과의 협력도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흡수하는 데 도움이 되는데, 한국의 공동 연구 비율은 상당히 저조하다는 지적이다. AI 분야에 정통한 국내 학계 관계자는 “생성형 AI는 매우 다양하고 복잡한 기술이 개발되고 있어 어느 한 기업이나 대학이 이러한 다양한 분야의 기술혁신을 주도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면서 “새로운 첨단 분야를 연구하는 전 세계 대학, 기업들과 전략적인 글로벌 협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상위 그룹이 선진국에 크게 뒤처진 우리나라 연구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어디에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업계와 전문가들은 ▲혁신 생태계 구축을 위한 국가전략 수립 ▲대학·연구소·기업의 긴밀한 협조 체계 구축 ▲글로벌 공동 연구개발·기업과의 융합적 협력 ▲생성형 AI 스타트업과 AI 인재 육성 ▲연구 지식재산권 강화·응용 분야 발굴 등을 꼽는다.
우선 객관적인 데이터 분석을 통해 자국의 기술력 위상을 글로벌 수준과 비교해서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를 통해 강점을 강화시키고 약점을 보완할 수 있는 AI 생태계 전략 수립이 필요하다. 대학이나 연구기관을 중심으로 생성형 AI 관련 창업 생태계를 만들 필요가 있다. 실제로 MIT, 스탠퍼드와 같은 최상위권 대학들은 연구 성과의 영향력이 높은 동시에 상용화 관점에서도 높은 성과를 나타냈다.
반면 한국과 중국 등 주요 아시아 대학들은 상용화에서 상대적으로 저조한 영향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연구소·기업 간 협조 체계 마련도 시급하다. 상위 국가를 재빨리 따라잡으려면 우수한 결과물을 바로 상용화할 수 있는 산학 협력을 구축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연구 결과를 상용화하는 지식재산권의 확보도 중요한 요소로 꼽힌다.
실제 국내 인공지능 연구 논문은 단순히 논문 발표에 그치고 특허를 확보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언이다. AI 인력 양성은 가장 중요한 과제다. 송민진 클래리베이트 본부장은 “대학과 기업, 정부 연구기관 간의 상호 협력을 촉진하는 생태계 구축의 중요성과 시급함을 이번 생성형 AI 분야의 분석 자료를 통해서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한국 스타트업들이 챗GPT를 활용한 서비스를 무수히 내놓고 있지만 이는 경쟁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의 경우 생성형 AI 분야에서 우수한 연구 자체가 부족하고, 일부 우수한 성과를 낸 논문들이 실험실 밖으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CB인사이트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AI 스타트업(비상장기업) 가운데 기업 가치가 10억달러를 넘는 유니콘은 90개에 달했다. 그중 한국 스타트업은 한 곳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AI 전문가들은 AI 생태계 선점 경쟁에서 앞서가기 위해서는 연구·특허 등 연구개발(R&D) 기초체력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일례로 딥마인드가 2021년 네이처에 공개한 ‘알파폴드를 사용한 단백질 구조 예측’ 논문은 AI를 이용해 인간이 발현하는 거의 모든 단백질 구조를 예측하는 데 성공해 “AI가 노벨상급 성과를 냈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단백질의 입체 구조를 알아낼 수 있다면 알츠하이머, 파킨슨병 등 단백질 이상으로 발병하는 난치성 질환의 원인과 치료방법을 개발할 수 있어 피인용 횟수 전체 1위를 기록했다. IT업계에서는 AI 분야에서의 ‘빅쇼크’가 챗봇이 아니라 신약 개발 분야에서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을 만든 연구다.
이렇듯 활용 분야가 무궁무진한 ‘응용AI’ 분야의 사업 선점을 위해서는 원천 기술을 확보한 회사가 유리할 수밖에 없다. 이번 분석을 진행한 김진우 카이스트 초빙교수는 “연구, 특허(혁신)의 양적인 분석보다는 질적인 분석에 초점을 맞춰 실질적인 경쟁력을 분석한 결과 리딩그룹과 추격자 그룹의 차이가 갈수록 커지고 있는 것이 감지된다”라면서 “첨단기술 분야의 경쟁에서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시간(time)인데, 이러한 연구·특허·창업 생태계에서 한국이 한발 늦은 감이 있어 골든타임을 놓치기 전에 빨리 움직일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생성형 AI 분야의 경우 틀에서 벗어난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 세계 많은 스타트업들이 원천 기술과 특허를 갖고 이 분야에 진출하고 있다. 구글, MS, 메타와 같은 빅테크 기업들은 자국의 혁신 AI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하는 방식으로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김유원 네이버 클라우드 대표는 최근 벌어진 AI 생태계 선점 경쟁과 관련해 “AI 기술이 앞으로 여러 산업의 근간이 되고 국가의 생산 활동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여기서 뒤처지면 스마트폰 태동기에 생태계를 선점한 해외 기업들이 이익을 독식한 것과 같은 양상이 재현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최근 미국 빅테크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AI 기술 혁명이 한 국가의 ‘AI 주권’을 좌우할 수 있는 중대한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과거 스마트폰 태동기에 네이버와 카카오가 해외 기업으로부터 검색·포털 시장을 지켜냈지만 새롭게 열릴 AI 생태계에서는 전혀 다른 시나리오가 펼쳐질 수 있다.
황순민 매일경제 디지털테크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