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계가 지난해 모두 부진한 실적으로 ‘적자’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과거에는 일단 매출을 늘리고 규모의 경제를 일으키는 ‘성장성’이 이커머스 전반의 최대 화두였다. 이에 ‘계획된 적자’라는 표현이 일반적인 표현이었다. ‘이커머스=적자기업’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왔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코로나19 엔데믹과 소비자들의 오프라인 활동이 점점 더 많아지면서 이커머스에게는 녹록지 않은 시장이 펼쳐진다. 투자 조달과 주식 시장 상장이 막히자, 마냥 돈을 투입해 외형 확대만을 외치기 어려워졌다. 이에 올해 이커머스 업계 최대 화두는 적자를 줄이고, 내실을 강화하는 수익성 우선 전략을 전면에 배치하는 것이다.
산업통상자원부의 ‘2022년 12월 주요 유통업계 매출 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이커머스의 유통업 매출 구성비는 48.6%로 전년 대비 0.2%포인트 올랐다. 지난해 12월에는 전년 동월 대비 매출 신장률(4.3%)이 오프라인(9%)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온라인 사업이 녹록잖다는 지표다. 실제로 롯데와 신세계 등 전통의 유통기업은 이커머스를 강화하는 쿠팡이나 네이버에 맞서 최근 몇 년간 온라인 사업을 키워왔다. 현재까지의 성적은 씁쓸하다. 규모는 키웠지만, 좀처럼 적자가 줄지 않고 있다.
지난해 이마트가 29조3335억원으로 역대 최대 매출을 거뒀으나, 영업이익 1451억원으로 전년 대비 54.2% 감소했던 것도 온라인 사업이 부진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된 측면이 있었다. 이마트 주요 연결 자회사 중 SSG닷컴과 지마켓 두 곳만 적자 폭이 컸다. 신세계그룹 이커머스 사업의 핵심인 SSG닷컴은 지난해 매출액이 1조7447억원으로 전년보다 16.8% 증가했으나 영업손실은 1112억원이었다. 2020년 연간 영업손실은 469억원, 2021년 1079억원, 2022년 1112억원으로 적자 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신세계그룹 이마트에 인수된 이후 처음으로 연간 실적이 온전히 반영된 지마켓도 655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2020년까지 16년 연속 흑자를 내면서 이커머스 업계 ‘메기’였지만, 2021년 11월 이마트에 인수된 다음해인 2022년 대규모 영업손실로 고배를 마셨다.
지마켓 인수 이후 신세계그룹과의 통합 과정에서 유료멤버십 ‘스마일클럽’, 풀필먼트 서비스 ‘스마일프레시’, 간편결제 서비스 ‘스마일페이’ 오프라인 사용처 확장 등 주요 서비스에 대한 투자가 이뤄져 적자 폭이 늘었다는 설명이다. 100여 명 이상의 개발자를 채용하는 인력 투자도 있었다고 했다. 롯데그룹의 이커머스 사업부인 롯데온도 지난해 적자가 이어졌다. 지난해 매출은 1130억원으로 전년 대비 4.5% 상승했으나, 영업손실은 1560억원으로 전년과 동일한 수준이었다.
이커머스 원년멤버인 11번가는 지난해 연간 매출액이 전년 대비 41% 증가하며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와 함께 영업손실도 2배나 커졌다. 11번가의 2022년 연 매출액은 7890억원을 기록해 전년(5614억원) 대비 41% 증가했다. 이는 11번가 역대 최대 매출액 수치다. 다만 11번가의 4분기 영업손실은 455억원을 기록했고, 연간 누적 영업손실 1515억원으로, 전년(694억원)보다 약 2배가량 적자 규모가 확대됐다. 11번가는 적자 폭 확대에 대해 “지난해 ‘11번가 2.0’ 전환의 초석 마련을 위해 추진한 ‘슈팅배송’ 등 신규 비즈니스 출시와 준비 과정에서 단기적으로 성장을 위한 필수 투자비용이 발생했다”라고 밝혔다.
회사가 지난해 활발히 추진한 직매입 기반 익일배송 서비스 슈팅배송의 지난해 4분기 거래액은 직전 분기 대비 57% 증가했을 정도로 성장세가 가팔랐지만, 비즈니스와 관련한 비용도 꾸준히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업계 관계자는 “익일배송 서비스를 후발주자로서 안착시키고 있는데, 초기에 비용이 많이 든다. 비용이 드는 만큼 지표는 좋아지지만, 출혈은 클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출혈을 견딜 수 있을지 봐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신생기업으로 분류되지만, 이커머스 업계 유일한 흑자기업으로 박수를 받던 오아시스마저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오아시스는 지난해 3분기까지 77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왔지만, 4분기에 IPO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일회성 비용이 발생해 분기 기준 적자 전환했다. IPO를 위해 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마케팅 비용 등 일회성 비용이 커지는 것은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하지만 오아시스의 상장이 철회되면서 고스란히 부담으로 안겨졌다.
롯데와 신세계의 연간 적자는 전년과 비슷한 수준이거나 더 확대됐지만, 분기를 지날수록 더 좋은 지표를 선보였다는 것은 그나마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롯데온의 경우 4분기 실적에서 2021년 500억원에 육박하던 영업적자를 251억원이나 줄였다. 마진율이 높은 명품과 뷰티 등 특정 카테고리만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버티컬 서비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고객 생활 패턴에 따른 개인 추천 영역을 확대하면서 플랫폼 변신을 시도한 결과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롯데온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28.8% 증가한 360억원, 영업적자는 420억원을 기록했다. 특히 플랫폼의 잠재성을 엿볼 수 있는 월간 활성 이용자 수(MAU)가 성장세를 보이는 등 관련 지표가 좋다.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처음으로 롯데온은 MAU 200만 명을 넘어섰다. 단일 플랫폼 기준 경쟁사인 SSG닷컴의 MAU인 192만 명도 앞질렀다. 하루 평균 트래픽도 33만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 21.5%가 늘었다.
롯데온은 지난해 4월 온앤더뷰티, 9월 온앤더럭셔리, 11월 온앤더패션 등을 차례로 내놨다. 뷰티, 럭셔리, 패션 상품을 앱 전면에 내세워 판매한 결과, 지난해 4분기 뷰티 카테고리 매출은 704억원으로 31.4%가 늘어나는 고무적인 성과를 보였다.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도 동반됐다. 업계의 일반적인 흐름에 따라 시도하던 새벽배송 서비스는 지난해 4월 종료했고, 마트 근거리 배송도 효율화를 위해 배송차량 수를 18% 줄였다. 이를 통해 마트 물류 운영비만 15.8%까지 절감했다. 디지털 역량 내재화로 관련 비용도 크게 줄였다. 정보기술(IT) 용역비를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였고, 챗봇 고도화로 콜센터 운영비도 13.4% 감축했다. 롯데온은 오는 4월 말 뷰티, 럭셔리, 패션에 이어 키즈 카테고리 전문관을 론칭해 버티컬 전문몰로 안정적인 수익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한편 SSG닷컴도 손실 규모를 지난해 3분기에 151억원, 4분기에 183억원을 각각 줄였다. 식품 경쟁력 강화, 물류체계 고도화 등의 성과로 2개 분기 연속 적자 폭을 줄였다는 설명이다. SSG닷컴의 4분기 순매출은 4559억원으로 전년 대비 8.3% 늘었다. 특히 물류체계 고도화의 핵심은 물류 자동화율이 80%에 달하는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네오(NE.O·Next gener ation Online store)’와 이마트 내부 공간을 활용한 물류 전초기지인 PP(Picking&Packing)센터다. 이들 센터를 기반으로 전국 단위 당일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네오와 PP센터를 통해 하루에 처리하는 주문만 최대 15만 건이다. 주문 한 건당 고객이 담는 상품 수가 16개가량인 것을 고려할 때 하루에만 240만여 개 신선식품이나 생활필수품이 고객 집 앞으로 배송된다.
SSG닷컴은 올해 ‘쓱배송’ 서비스를 앞세워 온라인 장보기 시장에서 확고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자 한다. 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는 패션, 뷰티 두 카테고리를 프리미엄 카테고리로 육성해 차별화한다. 연내 이마트, 신세계백화점, 스타벅스 등 관계사 혜택이 결합된 ‘통합 멤버십 2.0’을 선보여 수익성을 키우겠다는 목표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이커머스 기업의 가장 큰 화두는 외형 확대였고, 외형 확대의 시기에 투자받은 돈으로 가입자를 늘리고 거래액을 증가시키기 위한 온갖 방법을 써왔다. 이른바 ‘적자 성장 구조’”라면서도 “비용이 수익보다 많은 데스밸리만 잘 견디길 바랐지만, 이제는 신규 투자를 받기도, 상장을 하기도 쉽지 않아진 금융 상황이다. 비용을 줄이는 게 최우선의 과제”라고 설명했다.
이커머스 업계의 수익성 확보 전략 고심이 깊어지는 상황에서도, 혼자 웃고 있는 기업이 있다. 쿠팡이다. 쿠팡은 지난해 2분기 연속 1000억원대 영업흑자를 기록하며 영업손실을 대폭 줄였다. 연간 흑자는 달성하지 못했지만, 역대 최대 수준인 26조원대 연 매출을 달성했다. 지난해 영업적자 규모는 1447억원(약 1억1201만달러)으로, 전년(1조7097억원)과 비교해 92% 줄었다. 올해는 2014년 로켓배송을 시작하며 쿠팡이 사업을 본격화한 지 9년 만에 연간 흑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높다.
초대형 물류 투자에 의한 규모의 경제 효과, 정보기술을 활용한 신선식품 재고 관리, 수년간 쌓아온 고객 데이터 기반의 고객 수요 예측 등이 수익 구조 개선의 비결로 꼽힌다. 먼저 꾸준한 물류망 투자가 분기 연속 흑자의 기반이 됐다는 분석이다. 전국 30개 지역, 100곳 넘게 보관·포장·배송 등 물류를 일괄 대행하는 풀필먼트센터(FC)를 끊임없이 지었고, 완벽하게 규모의 경제 구축에 성공했다. 쿠팡의 물류 인프라스트럭처는 축구장 500개 크기로, 물류 자동화 등 기술 투자에만 지난 2년간 1조2500억원을 투자했다.
신선식품 재고 손실을 전년도의 절반가량 줄인 것도 수익성 개선의 핵심이다. 여러 지역으로 신선식품 유통을 확대하면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특성상 재고 손실이 늘어난다. 쿠팡은 인공지능(AI) 머신러닝 기술 기반의 수요 예측으로 신선식품 재고 손실을 지난해와 비교해 50% 넘게 줄였다.
신선식품을 포함해 공산품까지 적재적소의 수요 예측이 가능한 것은 끊임없이 증가하는 유료 멤버십 가입자 덕이다. 쿠팡의 유료 멤버십 서비스인 ‘와우 멤버십’ 회원은 2021년 900만 명에서 지난해 말 기준 1100만 명까지 늘었다. 연령·성별 등 다방면에 걸친 고객 데이터 등 분석을 통해 수요를 예측해서 필요한 만큼 제품을 직매입하고, 최종 소비자와 가까운 센터에 재고를 배치한다. 업계 관계자는 “단순 계산해도 1000만 명의 유료 멤버십 가입자가 연간 만들어내는 매출만 6600억원”이라며 “유료 멤버십 가입자는 곧 안정적인 수익성의 기반이 된다”라고 강조했다.
홍성용 매일경제 컨슈머마켓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