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으로 넘어가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가 사라졌다!”
‘삼성페이 공화국’에 애플이 상륙했다. 현대카드 이용자는 지난 3월부터 애플 기기에 국내에서 발급받은 현대카드를 등록한 뒤 스마트폰으로 결제를 할 수 있다. 애플이 실물 카드가 없어도 경제활동이 가능한 ‘스마트폰 지갑 전쟁’에 참전한 것이다. 애플페이 상륙으로 간편결제 시장에 ‘춘추전국시대’가 열리면서 스마트폰 지갑의 왕좌를 노리는 페이 경쟁도 치열해졌다.
작년 6월 말 기준 간편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는 총 51곳이다. 기존 금융회사가 14곳이고 휴대폰 제조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 여기에 별도로 ‘전자금융업자’ 등록을 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35곳이다. 전금업자는 배민(배달의민족)페이·쿠팡페이·SK페이 등 각 회사 홈페이지에서 쓸 수 있는 지불결제 서비스를 제공하는 개별 회사들을 말한다. 앱 분석 서비스 기업 와이즈앱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삼성페이 월평균 사용자는 1545만 명으로, 전년 대비 8.5% 늘었다. 이어 BC카드 페이북(657만 명)과 신한카드 신한플레이(642만 명), KB페이(442만 명), 카카오페이(417만 명)가 뒤를 이었다.
애플페이 서비스는 아직 제한적이지만, 국내 스마트폰 시장까지 긴장시킬 정도로 화제다. 삼성페이의 간편함 때문에 갤럭시 스마트폰을 사용하던 이들이 아이폰으로 넘어가는 것을 고려하게 됐기 때문이다. 아직 의미 있는 교체 수요가 보이는 것은 아니지만, 장기적으로 영향력이 있을 것으로 통신업계는 보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국내 스마트폰 시장은 삼성이 84%, 애플이 13%를 점유하고 있다.
애플페이의 글로벌 이용자는 5억 명이 넘는다. 지난 2014년 출시됐고 현재 70여 개국에서 사용되는 세계 1위 간편결제 서비스다. 그러나 애플페이가 없는 국내 시장은 ‘삼성페이 천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애플페이 결제는 현대카드로만 가능하다. 전용카드 없이 현대카드라면 무엇이나 가능하지만, 해당 매장에 따로 근접무선통신(NFC) 단말기를 갖추고 애플페이 결제를 지원해야 가능하다. 현대카드에 따르면 주요 편의점과 백화점, 롯데마트·홈플러스·코스트코 등 대형마트, 투썸플레이스·폴바셋·이디야커피 같은 대형 가맹점에 시스템이 설치됐다. 다른 카드사들은 어느 정도 인프라스트럭처가 조성된 이후 애플페이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표면상으로는 인프라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실상은 수수료를 둘러싼 양측의 입장 차가 좁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업계는 말한다.
NFC 단말기 보급률이 아직 한 자릿수 수준인 것도 큰 장애물이다. 그동안 국내 결제 시스템은 주로 마그네틱 보안전송(MST)이나 집적회로 스마트카드(IC) 방식을 사용해 애플페이로 결제할 수 없었다. 삼성카드는 이 두 가지 방식 모두 결제할 수 있다. 게다가 갤럭시 시리즈에 탑재되어 있어 카드만 등록하면 간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 업계에서는 애플페이가 삼성페이와 비등하게 경쟁하려면 최소 70~80% 이상의 가맹점에 NFC 단말기가 설치되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버스와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는 것도 단점이다. 삼성페이가 ‘비교우위’를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어느 정도 있다는 이야기다.
삼성페이도 간편결제 시장 수성에 나섰다. 온오프라인에서 모두 간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저변을 넓히고, 소비자 혜택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삼성페이는 네이버페이와 협력해 양사 교체결제가 가능한 시스템을 개발하기로 했다. 삼성페이의 300만 개 오프라인 가맹점에서 네이버페이로 결제할 수 있고, 55만 개 네이버페이 온라인 가맹점에서도 삼성페이를 사용할 수 있게 된다. 두 회사는 시스템 통합 과정을 거쳐 올 상반기 중 서비스를 선보일 계획이다.
삼성페이는 카카오페이와도 같은 협력을 논의 중이다. 네이버페이와 카카오페이는 온라인 간편결제 시장 1, 2위 사업자다. 이번 협력으로 네이버페이 오프라인 가맹점은 12만 곳에서 300만 곳으로 훌쩍 뛰는 효과를 보게 된다. 삼성페이 역시 3150만 명에 달하는 네이버페이 이용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이득이다. 오프라인에서 삼성페이로 결제하면서 네이버나 카카오페이의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국내 페이 시장은 신용카드사가 제공하는 기본 혜택(할인·적립)에 각종 페이에 등록해 사용 시 추가 혜택을 볼 수 있는 구조다. 한 카드 업계 관계자는 “국내 소비자만큼 ‘슬기로운 카드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없다. 애플페이가 진출했던 기존 시장과 비교해 훨씬 깐깐한 고객들을 만나게 된 것”이라며 “삼성이 네이버·카카오와 손을 잡은 만큼, 애플이 파격적 마케팅에 나서지 않는 한 시장 침투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미 자체 페이 시스템을 갖춘 대기업들의 셈법도 복잡해졌다. 당초 현대카드와 함께 애플페이를 도입할 것으로 알려졌던 신세계그룹은 관련 시스템 구축을 연기했다. 이마트와 신세계백화점, 스타벅스 등에서 애플페이 결제를 하려면 더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신세계그룹은 자체 결제 서비스 ‘SSG(쓱) 페이’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는 현대카드와 스타벅스 상업자표시신용카드(PLCC)를 출시하는 등 협력관계를 이어왔지만 애플페이 도입에는 미온적이다. 유통 3사 중 롯데그룹이 NFC 교체를 마쳤고, 현대백화점도 곧 도입하겠다고 공언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현대차도 특허청에 ‘현대페이’ 상표권을 출원하면서 간편결제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업계에서는 현대페이가 현대차 온라인몰 상품 구매나 전기차 충전요금 결제 등에 먼저 적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쿠팡, 11번가 같은 대형 유통업체들은 자체 페이 결제 때 추가 적립을 해주는 식으로 ‘록인효과’를 만드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카드사들은 ‘따로 또 같이’ 전략을 쓰고 있다. 개별 페이를 내놓고 서로 경쟁하면서도 오픈뱅킹 같은 오픈페이 서비스로 세력 만들기에 나섰다. 현재 신한·KB국민·하나·롯데카드가 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간편결제 시장 주도권은 빅테크가 쥐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에 따르면 네카토(네이버·카카오·토스) 등 전자금융업자들의 시장점유율은 지난 2016년 27%에서 지난해 상반기 50%로 늘었지만, 같은 기간 카드사들은 57%에서 26%까지 떨어졌다.
40대 맞벌이 직장인 윤 모 씨는 최근 장지갑을 카드지갑으로 바꿨다. 윤 씨는 “요즘 온라인으로 쇼핑하는 곳은 네이버 스마트스토어, 쿠팡, 컬리 정도이고 오프라인에서는 삼성페이로 다 되니 굳이 카드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더라. 현금도 축의금이나 부의금 낼 때 빼고는 거의 안 쓰는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간편결제 시장은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국내 하루 평균 간편결제 서비스 거래액은 작년 상반기 7232억원이다. 2020년 상반기 4009억원에서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하루 평균 이용 건수 역시 2020년 1293만 건에서 지난해 2317만 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2021년 기준 국내 간편 결제 서비스의 선불 충전금 규모는 약 2조9934억원에 달한다.
빅테크와 유통사들은 간편결제를 넘어 ‘선구매 후지불(BNPL)’ 서비스를 적극 홍보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한 뒤 다음 달에 갚는, 일종의 외상거래 서비스다. 금융거래 이력이 부족해 신용카드를 발급받을 수 없는 사회초년생 등 금융 소외계층들이 소액 신용거래를 할 수 있게 해준 것이다. 신용점수 등을 보지 않는 대신 한 달 한도는 30만원으로 많지 않은 편이다.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후불결제 서비스 가입자는 토스(비바리퍼블리카)가 153만 명, 네이버파이낸셜이 66만 명으로 나타났다.
수십 곳의 페이 사업자들이 등장하고 각종 선불충전제도가 도입되면서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30대 직장인 이 모 씨는 “커피전문점 선불카드, 구독 서비스 선불충전금, 작년에 시작한 소액투자까지 여기저기 돈이 쪼개져 있다는 느낌이 든다”면서 “일일이 찾아서 쓰지 못해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경우도 있고, 적립금을 쓰기 위해 쓸데없는 지출을 하는 때도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3년간 소비자들이 선불업체에 금액을 충전한 뒤 미처 사용하지 못한 금액이 약 12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모두 고스란히 선불사업자 수익으로 돌아갔다. 양정숙 의원실이 금융감독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7개 선불사업자들의 충전금 중 효력이 지난 금액은 지난해에만 422억원으로 집계됐다. 2021년에는 443억원, 2020년은 320억원으로 최근 3년 합계액이 1165억원에 달한다.
이렇게 소비자들이 쓰지 않은 돈은 선불업체가 챙겼다. 가장 많은 ‘낙전 수입’을 거둔 곳은 티머니로 537억원을 가져갔다. 이어 마이비 126억원, 로카모빌리티(캐시비) 113억원, 에스엠하이플러스(하이패스) 98억원, DGB유페이 53억원, 한국문화진흥(컬쳐랜드) 35억원 순이었다. 양 의원은 “상법상 선불 충전금 소멸 시효가 5년이다. 소비자가 사용하는 걸 잊거나 해당 카드를 분실해 5년 동안 사용하지 않으면 남아있는 금액은 자동으로 선불업체에게 돌아간다”면서 “일부 사업자가 선불 충전금에 적용하는 유효기간을 폐지한 바 있는데 이런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찬옥 매일경제 금융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