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책방·B급 상점·돌창고·섬이정원 등 핫플레이스 돌아보니 “남해 힐링여행 2박 3일도 짧네요”
문수인 기자
입력 : 2018.05.30 17:13:05
수정 : 2018.06.01 11:20:22
독일인 마을에서 내려다본 남해 바다 야경 <사진제공=남해군청>
한려수도를 끼고 있는 남해는 제주 못지않은 천혜의 자연 풍광으로 대한민국 대표 관광지이자 휴양지로 불린다. 특히 최근 대한민국 사회에 부는 ‘힐링’ 열풍에 남해는 ‘꼭 한번은 가봐야 할 곳’으로 꼽히고 있다. 육지와 다리로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제주보다 접근성이 오히려 더 좋은 측면도 있다. 남해는 볼거리도 많다. 이성계 장군의 건국 설화가 있는 금산의 유명 사찰 보리암, 독일 교포들의 정착촌인 독일마을, 개성적인 정원들이 있는 원예예술촌, 산비탈에 만들어진 좁고 긴 계단 형태의 다랭이논 등이 대표적이다. 지금이 제철인 멸치쌈밥은 남해의 진미다.
이처럼 볼거리, 먹을거리가 포진해 있지만 남해는 남모를 고민을 가지고 있다. 남해의 여행 인프라의 확장성에 대한 것이다.
실제 민승기 원예예술촌 대표는 지역신문인 남해미래와의 인터뷰에서 “남해는 천혜의 자연환경을 갖고 있지만, 문제는 경관 말고는 없다는 점”이라면서 “(최근 남해에서 촬영하는) ‘같이 삽시다’ 팀도 의외로 찍을 것이 없다고 하소연을 했다”고 전했다. <같이 삽시다>는 여배우들이 남해에서 살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찍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이 같은 고민들은 민 대표만 하는 것이 아니다. 기자가 2박 3일 일정으로 남해를 취재하는 과정 내내 들은 말이다. 이로 인해 지역 사회 전체의 탄력성도 많이 떨어졌다. 뻔하고 익숙한 남해의 관광 인프라에 머무는 관광보다는, 스쳐 지나는 관광만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해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 것도 여기에 한몫하고 있다. 남해의 65세 이상 노인 인구 비율은 약 34%로 대한민국에서도 고령화 비율이 높다. 이는 그만큼 젊은 인구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에 남해 곳곳에서는 ‘의미 있는’ 변화들이 조용히 일어나고 있다. 남해의 ‘진가’를 알아본 젊은 외지인들이 지역 곳곳에 조용히 자리를 잡으면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들은 주로 트렌디하면서 특색 있는 볼거리, 먹을거리들을 만들어 내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아직 남해 관광의 패러다임 자체를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이들로 인해 남해 전체 분위기도 살짝 활기차지고 있다. 반사효과로 지역 청장년층들도 이 같은 흐름에 주목하고 같이 호흡하려 하기 때문이다.
남해의 신여행 트렌드를 이끌고 있는 곳들을 현지에서 직접 추천을 받아 돌아봤다.
B급 상점 내부
아마도 책방에 놓여 있는 방명록과 전시된 책들
▶시골마을 한복판에 자리 잡은 아담한 책방, 상점
남해군 삼동면 지족에 2달 전 문을 연 ‘아마도 책방’. ‘이렇게 깊숙한 시골 동네에 서점이?’ 라고 할 정도로 의외의 장소에 자리 잡고 있다. 서점 위치도 그렇지만 속살도 여느 서점과는 다르다. 들어서는 순간 책을 파는 공간이라기보다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쉼터 같다. 곳곳에 주인장의 센스가 묻어 있다. 실내는 건축을 전공한 주인장이 직접 자재를 구입해 꾸몄다. 책 옆에 타자기로 직접 친 서평이 전시되어 있는가 하면, 방문객들이 자신의 자취를 남길 수 있는 방명록은 낙인 형식으로 준비돼 소소한 재미를 준다. 백미는 마련된 의자에 몸을 푹 파묻고 책을 읽을 수 있게 만든 2개의 방. 책을 파는 공간도 부족해 보이는 작은 시골 서점에서는 호화로운(?) 공간이다. 책방 주인 박수진(30) 씨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책을 편하게 읽다가 간다”면서 ‘너와 나 우리를 어루만져 주는 곳’인 서점의 모토가 이곳에서 구현되고 있다”고 했다. 이곳을 들른 상당수가 남해를 찾은 관광객임을 감안하면 책방을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셈이다.
박수진 씨가 남해의 한적한 시골에 책방을 열게 된 계기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서울 출신의 박 씨는 남해에 놀러 왔다가 이곳이 너무 좋아 정착을 결심했고, 시골에 책방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 책방 주인이란 직업을 갖게 됐다고 한다.
물론 처음엔 걱정도 있었다. “처음에 누가 찾아올까라는 걱정도 했지만, 의외로 책 판매가 이뤄진다”는 것이 책방 주인의 설명이다.
‘아마도 책방’ 같은 젊은 감각으로 탄생한 아기자기한 볼거리가 남해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불과 1~2년 사이다. 아마도 책방이 가장 최근에 나타났다. 이들은 큰 돈 들여서 홍보도 하지 않지만, 인스타그램 등 SNS의 힘을 통해 유명해졌다. 지난 12일 기자가 찾아간 시간이 책방 문을 닫는 6시가 거의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찾는 이들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남면 석교리에 있는 B급 상점도 최근 남해 새 볼거리의 선두주자 격이다. 이곳 역시 위치와 외관이 간단치 않다. B급 상점도 애써 찾지 않으면 “이런 곳에 가게가 있어?”라고 할 정도로 시골 동네에 있다. ‘아마도 책방’이 오히려 번화가(?)에 있다고 할 정도다. 이 상점은 시골 창고를 그대로 살려 만들었다. 지붕은 창고였을 때 자재로 사용됐던 슬레이트가 그대로 덮고 있다. 문만 파란색으로 칠해 포인트를 줬다. 이곳에서 파는 소품들은 실생활에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것들이다. 그런데 주말이면 100명이 넘는 이들이 이 가게를 찾는다.
이곳 주인은 4년 전 서울에서 남해로 귀촌을 결정한 우세진(40) 씨. 네 명이었던 가족이 이곳에 정착한 후 한 명이 더 늘었다.
서울에서 댄스학원을 운영했던 우 씨 역시 남해를 놀러왔다 풍광에 반해 정착했다. B급 상점은 거창한 계획 아래 만들었다기보다 생계를 위한 방편이었다. 솔직히 우 씨도 “누가 올까 싶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팔려고 내어놓은 품목이 나무로 만든 의자·책상 등 몇 가지가 전부였다. 그런데 지금은 주말이면 100명이 넘게 찾을 정도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기자가 상점을 찾은 시각이 영업을 막 개시한 10시를 조금 넘었지만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계속 이어졌다.
돌창고 전경
남해 ‘창고’의 변신 트렌드는 돌창고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돌창고는 말 그대로 돌로 만들어진 창고를 뜻하는데, 섬 지방에서 주로 볼 수 있다. 과거 육지와 교통이 단절된 시절 섬에서는 시멘트란 첨단(?) 건설 자재를 구하지 못해 돌로 창고를 만들었다. 남해 돌창고도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기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쌀이나 농기구 등의 저장 창고로 주로 쓰였던 돌창고가 최근 여행 트렌드에서 주요 포지션을 차지하게 된 것은 도예가 김영호 씨와 문화기획자 최승용 씨 때문이다. 두 사람은 삼동면 시문마을 돌창고를 보자마자 문화 공간 활용 측면에서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웃돈을 주고 어렵게 매입했고, 2016년 3월 돌창고를 문화예술전시공간으로 재탄생시켰다. 이른바 돌창고 프로젝트다.
▶인스타그램 등 SNS 통해 입소문
하지만 말이 ‘재탄생’이지 돌창고는 1960년대 처음 지어진 모습 그대로다. 문도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녹슨 철문이고, 지붕과 기둥도 옛날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현재 이곳은 지역 문화예술인들의 전시공간과 장터인 돌장으로 활용되는데, 월 2000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는다고 한다.
이 같은 분위기를 타고 두 사람은 이 달에 돌창고 2호점까지 열었다. 서면 대정마을의 돌창고를 활용한 것인데, 면적이 시문 마을의 것보다 더 크다. 복층으로 이뤄져 있어 전시공간과 교육장소로 활용되고 있다. 현재 남해에 남아있는 돌창고는 15개 정도다. 돌창고 프로젝트는 단순히 문화예술 전시 공간을 제공하는 것만은 아니다.
김영호 씨는 “수도권에 비해 부족한 문화 인프라를 조성해, 지역 젊은이들을 향유할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경제활동도 하게끔 하는 것이 숨은 목적”이라고 말했다. 김 씨는 돌창고를 “남해 마을 사람들의 소중한 것을 보관했던 견고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라면서 “남해에서 문화와 예술을 통해 삶의 방법을 찾는다면 남해의 문화를 우리의 행위와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곳에 대한 지역 사회의 반응 또한 뜨겁다.
남해군 출신이면서 지역에서 활동하는 미술화가인 김서진 씨는 “이런 공간이 있음으로 인해 창작에 더 동기부여가 되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남해에서 영화촬영지를 물색 중인 <색즉시공2>의 윤태윤 감독은 “사드 이전부터 중국과 로맨틱 코미디물을 준비하던 중 작품의 주요배경으로 나오는 장소 문제로 고민을 하던 차에 남해를 주목하게 됐다”면서 “남해의 자연환경이 준비 중인 작품과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아 영화의 주요배경을 남해로 옮기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윤 감독은 시나리오 작업을 위한 장소를 남해 현지에 마련하기 위해 알아보고 있다.
돌창고 프로젝트 등 새로운 문화 예술 아이템들의 등장에다가, 영화 촬영지 후보로까지 잇따라 거론되면서 남해군은 대한민국의 새로운 문화 예술의 중심지로서 조용히 떠오르고 있다. 돌창고와 관련해 한 가지 더 재미난 포인트가 있다. 시문마을 돌창고 옆에는 커피숍이 있는데, 이름이 재밌다. ‘애매하우스’, 애매하다 할 때의 그 ‘애매’다.
“돌창고를 둘러보러온 이들이 쉬면서 이야기할 공간이 없어 만든 곳인데 최근에는 이곳이 더 입소문이 나면서 주객이 전도돼 버린 듯한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커피숍 이름이 애매하우스”라는 것이 김영호 씨의 설명이다.
유럽식 향기 풍기는 섬이정원
2년 전에 남해 남면에 문을 연 섬이정원도 놓치면 아쉬워할 최근 남해 여행 트렌드를 이끄는 핫 플레이스이다. 그동안 남해에서 정원을 대표하는 곳은 원예예술촌이었지만, 섬이정원은 독특한 그만의 매력으로 남해서 반드시 들러야 할 ‘잇 아이템’이 되고 있다. 남해 고동산 중턱에 들어선 섬이정원의 입지는 차명호 대표에게 운명처럼 다가왔다.
차 대표는 “정원 조성을 위해 제주도를 먼저 답사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아 서울로 돌아가는 도중 남해에 들렀다”면서 “추천을 받고 보니 원하던 형태의 곳이어서 바로 땅을 샀다”고 말했다. 이때가 2007년, 2년 동안 전체 조성 계획을 세운 후 2009년부터 이곳에 본격적으로 나무와 각종 꽃을 심으며 정원을 조성했다. 차 대표가 현재의 위치에 반한 것은 정원 입지가 남해 특유의 계단식 논인 다랭이논이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평지에 정원을 조성하는 것보다 계단식 형태의 입지가 더 매력적인 정원을 조성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기 때문이라고. 차 대표는 “특히 층이 나 있는 지형은 정원을 다른 각도에서 다양하게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를 만들어 준다”면서 “남해 특유의 계단식 논들만 제공할 수 있는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차 대표는 정원 조성에서도 이 같은 특징을 살렸다. 돌담을 곳곳에 세웠고, 감상하다 보면 자연스레 정원 전체를 한 바퀴 돌아 나올 수 있게 꾸몄다. 연못도 중간에 손수 파 배치했다. 차 대표는 정원 조성을 위해 영국 네덜란드 등 정원 선진국들을 수차례 답사했다.
이러다 보니 남해 특유의 분위기에 유럽식 정원 향기가 더해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차명호식 정원이 탄생했다. 그 결과물 중 하나가 섬이정원의 곳곳에 그늘이 조성돼 있다는 것. “평지에 조성된 대부분의 정원을 관람할 때 힘든 부분이 ‘땡볕’이라는 점에 착안했다”는 것이 차 대표의 설명이다. 실제 각종 정원을 직접 답사를 해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부분이었다. 이 같은 세세한 노력 덕분에 섬이정원은 그냥 보고 지나가는 곳이 아닌, 이곳 주인장과 관람객의 소통의 공간도 되고 있다.
▶쌍방향 소통 이뤄지는 남해 新 여행지
그가 전하는 일화 한 가지. “정원 감상길에 소소한 즐거움을 주고자 빨간색 공중전화 부스를 놓았는데, 나중에 보니 어떤 관람객이 전화기를 가져다 놓았더라구요”
차 대표는 “전화 부스에 전화기까지 있으니 이곳서 찍는 사진 촬영 연출이 더 자연스러워졌다”면서 “애초 의도한 목적이 관람객의 호응에 더 완벽해진 셈”이라고 웃었다. 차 대표는 기자를 안내하는 중에도 관람객들에게 정원의 포인트를 알려주기 바빴다. 한 커플이 이동 방향을 잡지 못해 우왕좌왕하자 “저쪽으로 입장하는 것이 이쁘다”고 권하기까지 했다. 차 대표의 10년 공이 들어간 이 정원은 올 4월 기준 지난해 대비 2~3배 늘어난 관람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주말이면 300~400명이 다녀간다. 입소문에 의해서 이뤄진 성과다. 이 같은 볼거리와 더불어 먹거리에도 다채로움이 더해지고 있다. 남해의 자연풍경을 적극 활용한 이색 음식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이다.
하와이안 음식점 알로 하와이
남해 특산품 유자로 만든 카스테라를 파는 카페
최근 남해에서 음식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는 곳은 남면에 들어선 ‘알로 하와이’다. 하와이를 테마로 꾸며진 음식점은 흡사 하와이에 온 듯하다. 주인이 하와이에서 직접 공수해 온 각종 피규어 등이 입구에서 손님들을 맞이한다. 김선영 대표는 “평소 하와이를 좋아해 한국에서 식당을 하게 되면 꼭 하와이 콘셉트로 하고 싶었다”면서 “남해를 찾은 순간 평소 생각을 펼치기에 적당한 곳이라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다.
남해 바다에서 하와이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하는 이 전략으로 이 음식점은 지난해 중순 문을 열자마자 ‘대박’을 쳤다. 남해 일대에서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다는 말이 들릴 정도다. 알로 하와이에서 제공하는 음식 또한 남해에서는 그동안 볼 수 없었던 새우 퓨전 요리다.
상주은모래비치 해수욕장에는 이태리에서 유학을 한 셰프가 직접 운영하는 이태리회관도 있다. 이탈리아 가정식 요리를 제공하는 이 음식점은 근처에 즐비한 해산물 음식점과 대비해 유독 튄다. 호기심에 들어와 보는 이들도 상당한데, 맛 대비 가성비면에서 후한 점수를 받는다. 남해 지역민들사이에도 호평이다.
이태리회관 단골인 신옥환 세원건설 대표는 “남해에서 접하기 힘든 형태의 음식점이라 눈길이 갔는데, 가격 대비 맛도 훌륭해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남해 특산품인 유자를 활용해 만든 카스테라를 파는 ‘카페유자’ 등 톡톡 튀는 곳들이 곳곳에 생기면서 남해를 찾는 이들에게 다양한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포인트는 최근 1~2년 사이 뜨고 있는 이 같은 새로운 볼거리, 먹거리 들이 남해의 전통적 관광지인 독일인마을, 가천다랭이마을과 전혀 무관치 않다는 것이다.
얼핏 보면 구관광이 뜨고 신관광 자원이 대세를 이루는 것 같지만 서로 보이지 않게 시너지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B급 상점, 섬이정원, 돌창고, 알로 하와이 등이 가천다랭이마을과 독일인마을을 오가는 이동 선상에 있거나 근처에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대부분 남해를 찾아오는 이들은 이 두 곳을 반드시 들르는데, 이곳에 가는 도중 만나게 되는 새로운 볼거리와 먹거리들로 인해 남해 체류시간이 길어지고, 찍듯이 스쳐 지나는 여행지로서의 남해가 아니라 더 머물고 싶은 남해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남해 여행의 재미를 더해 주는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장이 바뀔 때마다 남해의 천혜의 자연 환경을 이용한 관광 육성 정책이 나오지만 매번 일회성으로 그치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이마저도 선거 결과에 따라 휘둘리기 십상이다. 실제 현 경남도가 추진하던 힐링 아일랜드 사업은 6월 지방 선거를 앞두고 탄력을 잃었다. 때문에 최근 이 같은 현상은 남해에게는 더없이 반가울 수밖에 없다. 남해를 찾는 대부분이, 또 현지에서도 심심찮게 나오는 목소리가 풍광은 화려한데 정작 볼 것이 몇 군데 없다는 것인데 이를 해소하기 위한 한 방안으로 모색해볼 만하기 때문이다.
남해 물건항에 정박된 요트를 지역 청년들이 보며 지나가고 있다.
▶최근 흐름은 외지에서 온 30~40대가 이끌어
지역 청·장년층 자극 효과도 낳아
남해에 부는 새 관광 트렌드 중 또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은 이들이 대부분 외지에서 온 30~40대의 젊은층이라는 점이다. 이들이 만든 볼거리, 먹거리를 소비하는 이들도 대부분 젊은 층이다. 기자가 짧은 시간이지만 들른 곳마다 20~30세대로 보이는 이들이 상당했다. 이는 초고령 사회 남해에 어느 정도 활력을 불어넣는 효과를 일으키는 동시에, 남해의 젊은 층들을 자극하는 ‘메기효과’도 내고 있다.
남해마늘연구소에 10여 년을 근무했던 정성훈(42) 제이씨엔팜 연구소장은 “최근 뜨고 있는 곳들을 찾아가보면 대부분 서울 등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것에 개인적으로 좀 많이 놀랐다”면서 “남해가 초고령 사회가 맞지만, 그에 못지않게 지역 청·장년층들의 지역 활동 욕구도 강한데, 젊은 외지인들이 남해를 활용해 보여주는 이 같은 모습들에 남해 청장년층도 자극이 되는 측면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밝혔다.
사실 40대인 정 소장도 남해의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한 도전에 나선 상태다. 남해마늘연구소에서 10년 넘게 마늘을 연구했던 정 소장은 최근 돌연 콩잎 재배에 꽂혔다. 그가 관심을 갖는 것은 일반 콩잎에 비해 에스트로겐 수치가 10배나 많은 파바톤 콩잎이다. 이 콩잎은 여성의 갱년기 증상완화에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 소장은 대량 재배를 통해 건강기능 상품화를 시도하고 있다. 정 소장은 “성공한다면 남해는 시금치와 마늘 외에 또 하나의 새로운 대표 농작물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현재 정 소장은 부산대 한방병원과 파바톤 콩잎의 갱년기 증상 완화 효과 를 증명하기 위한 임상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남해요트학교 정주원(40) 강사도 비슷한 케이스다. 우연히 마주한 요트에 빠져 아예 전업을 했고, 요트를 하기에 천혜의 환경을 지닌 고향에 요트 학교가 세워지자 아예 낙향을 결정했다. 정 강사는 “요트 활성화를 위해 그것도 남해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기자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면서 “남해에서 요트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 때마다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남해군은 2009년 요트학교를 설립할 정도로 국내 요트의 메카로 불린다. 젊은 남해를 소리나는 대로 적어 상호로 삼은 ‘절믄나매’는 퓨전 레스토랑이다. 30대의 남해 출신 셰프가 남해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음식을 내어 놓는다. 개업한 지 이제 세 달이지만 인기가 심상치 않다. 이 같은 지역 내 개인들의 노력 외에 이들 사이에서는 네트워크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내보자는 움직임도 본격적으로 일고 있다.
정 소장은 “남해는 지역 텃세가 강해 외지인들과 지역민들이 잘 어울리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라도 융화는 필요하고 이를 위해 서로 간의 네트워킹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선영 알로 하와이 대표는 “연결 커뮤니티가 있으면 지역 안착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남해 신관광지도 형성에 있어 전환점이 될 대형 프로젝트가 남해 미조면 송정리 설리 마을에 추진되고 있다. 올 7~8월 첫 삽을 뜨게 되는 대명리조트 건설이다. 그동안 남해 일대에는 사우스케이프, 아난티힐튼 등 고급 숙박시설만 있었을 뿐 대중적인 대규모 리조트 단지는 없었다. 일반 숙박시설로 펜션 등이 있지만, 우후죽순 격으로 생겨나 대규모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효과는 없었다. 하지만 대명리조트가 들어선다면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브랜드 인지도에다가 숙박시설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 남해를 찾는 관광객 증가 숫자가 확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객실은 총 365실로, 1200억원이 투입된다.
남해 대명리조트가 들어서는 설리마을 일대
▶설리마을 대명리조트 건설은
남해 여행 확산에 기여할 듯
하지만 정작 지역에서 기대를 거는 것은 따로 있다. 설리에 대명리조트가 들어서는 것을 계기로 이 일대를 ‘남해의 특색 있는 볼거리로 만들 순 없을까’ 하는 고민이다.
이 같은 움직임은 대명리조트의 건축 콘셉트에서 출발한다. 대명 측은 설리리조트를 이국적인 산토리니풍으로 짓기로 했다. 리조트 외관은 흰색으로, 지붕은 파란색으로 칠하는 형태가 될 전망이다. 조감도대로 된다면 외관 자체로 볼거리가 될 전망이다. 하지만 설리마을의 주변 환경과 고려해 볼 때 나 홀로 튀는 형태가 될 수 있어, 아예 설리 일대 전체를 산토리니풍으로 변모시키면 “어떻겠냐”는 지역 내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 남해 군민은 “설리 일대도 남해의 다른 지역처럼 만 형태이고, 그리 넓지 않아서 대명리조트의 콘셉트와 비슷하게 주변의 펜션·주택 등의 색깔이 통일된다면 남해의 푸른 바다 색깔과 어우러져 그 자체로 볼거리가 될 것 같다”면서 “지역 상생 차원에서 고민해볼 만한 프로젝트 같다”고 말했다.
실제 대형 리조트가 들어서면 지역 일대의 땅값이 오르고 관광객 유입증가로 인해 숙박 시너지 효과가 있지만 기존 소규모 펜션 사업자, 주민들은 달라진 환경에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대명 측은 “주민들에 대한 어업권 보상 등 일부 지원방안 등에 대해서는 현재 검토 중이지만, 지역 전체를 하나의 콘셉트로 통일하자는 것은 영역 밖의 일”이라면서도 “만일 그런 제안이 있다면 검토는 해볼 만하지 않겠냐”고 밝혔다. 남해군 측도 “외관을 통일하자는 것은 일종의 규제에 해당되긴 하지만 지역발전이란 측면에서는 괜찮은 아이디어 같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다만 군 측은 “남해는 보수적인 사회라 추진 과정이 쉽지 않는 것은 사실”이라고도 했다.
설리마을에서 펜션을 운영하고 있는 배형식 해담은 대표는 “리조트 건설로 관광객 유입효과는 분명히 있고 이로 인해 남해 전체가 활성화할 수 있을 것 같다”면서 “상생 측면에서 같이 성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처럼 남해의 관광지도가 바뀌곤 있지만, 독일인 마을 등 기존 유명 볼거리에 대한 인기는 여전하다. 지난 12일 찾은 독일인 마을은 비가 오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로 북적댔다. 마을 입구 길가의 상가 건물이 땅과 함께 40억원에 팔릴 정도로 투자 측면에서도 여전히 각광을 받고 있다. 전원주택지도 조용히 인기를 끌고 있다. 최근 남해 서면으로 이사를 갔다는 남해 군청의 한 직원은 “이사를 하고 보니 서울·대구 등 외지에서 와 전원주택을 짓고 사는 사람들이 상당해 놀랐다”면서 “투자를 위한 움직임은 아니지만, 남해가 지금보다 더 각광을 받으면 당연히 투자 측면에서도 메리트가 있지 않겠냐”고 했다. 체류형 관광지로 거듭나기 위한 남해의 변신이 자생적으로 조용히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