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한 무더기에 머리가 띵하다. 머리카락 뿌리까지 차갑다 못해 아린 계절…. 한 겨울 추위를 이겨내는 데 적합한 게 무엇일까 생각하다 서울 이태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런데 이곳, 따닥따닥 달라붙은 콘크리트 건물이 왠지 더 춥다… 고 생각하다 세련된 하얀 창틀에 이끌려 이탈리안 레스토랑 ‘피자 무쪼(PIZZA MUZZO)’에 들어섰다.
한쪽은 칵테일을 즐길 수 있는 바와 대리석으로 멋을 낸 테이블이 자리했고, 반대편은 마치 정원에 온 듯 푸릇푸릇한 식물로 마무리한, 조금 과장하면 정글스러운 인테리어가 이채로웠다. 자리 잡은 곳은 정글의 구석. 서너 곳의 DJ박스에서 내보내는 비트 빠른 곡이 주변을 채우자 이곳 추위는 이미 북극으로 달아나 버렸다. 그러니 이젠 제대로 즐길 시간이다.
▶이탈리아 요리와 와인의 당연한 어울림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어울리는 와인은 어떤 품종일까 고민하다 테이블에 올린 주인공은 이탈리아산 와인. 이탈리아 베네토 북동부에 자리한 와이너리 ‘비솔(Bisol)’의 스파클링 와인 ‘벨스타 컬트 프로세코 DOC(이하 벨스타)’와 시칠리아의 와이너리 플라네타(Planeta)에서 길러낸 ‘플라네타 라 세그라타 로쏘(이하 세그라타)’가 차례로 잔을 채웠다. 굳이 순서를 따지자면 스파클링 와인인 벨스타로 시작해 시칠리아 토착품종인 네로 다볼라에 멜롯과 쉬라, 까베르네 프랑이 블렌딩된 세그라타로 마무리했다. 우선 벨스타는 사과와 배 등 과일향에 풍부한 기포가 매력적이다. 피자 무쪼의 남홍운 셰프가 권해준 요리는 ‘카르토치오’. 쉽게 말하면 종이호일로 감싸 오븐에 익힌 해산물 스파게티인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해산물을 먹고 벨스타를 머금으니 온도 차 때문인지 입안에 좀 더 많은 기포가 느껴졌다.(최근 상대적으로 가격이 높은 샴페인의 대항마로 자리한 와인이 프로세코라면 가장 좋은 프로세코를 생산하는 와인너리 중 하나가 바로 비솔이다.) 이날 남 셰프가 테이블에 올린 요리는 총 세 가지. 레드와인에 하루 숙성시킨 멧돼지 고기를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야채와 쪄낸 후 라구소스, 카카오 가루를 첨가한 생면으로 마무리한 파스타 ‘멧돼지 라구소스’와 새우, 리코타 치즈에 토마토소스를 올려 화덕에서 구워낸 ‘감베리 피자’는 탄닌감이 부드러운 세그라타와 어울렸다. 옅은 붉은 빛 혹은 자줏빛에 가까운 세그라타는 은은한 과일향에 약한 담배향이 묘한 여운을 남겼다. 와인과의 마리아주에 빠질 수 없는 것 중 하나는 역시 음악. 볼륨이 높아질수록 당연히 목소리 톤이 높아졌는데, 덩달아 와인 향까지 짙어졌다. 이태원 특유의 분위기가 한몫한 것일까. 다소 시끄럽고 과한 몸짓, 목소리가 싫지 않았다.
Tip. 이탈리아 시칠리아 와인 시칠리아는 이탈리아 남쪽 지중해의 화산섬이다. 이탈리아 본토에 비하면 작다지만 제주도에 비하면 그 면적이 5배(2만5700㎢)나 되는 큰 섬이다. 그중 70%는 산악이며 여름에는 덥고 건조한 바람이, 겨울에는 따뜻하고 습한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를 갖고 있다. 섬의 중북부지역을 제외하곤 대부분 지역이 포도밭인데, 이곳에서 연간 약 10억 병의 와인이 생산된다. 기원전 그리스 시대부터 와인산업이 발전한 시칠리아는 네로 다볼라, 갈리오뽀, 인졸리아, 그레께또, 지비뽀, 그릴로, 민넬라, 프라빠또, 까리깐띠 등 고유의 토착품종을 갖고 있다. 그동안 시칠리아 와인은 질보다 양이란 선입관이 있었다. 하지만 플라네타 등 몇몇 와이너리의 노력으로 양질의 와인에 대한 재평가가 진행되고 있다.
[안재형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