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가 수직증축 규제를 대폭 완화하면서 중층아파트의 리모델링 추진이 본격화되고 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에 위치한 대청아파트가 서울시 리모델링 기본계획 수립 후 첫 리모델링 주자로 나섰다.
서울시는 지난 12월 14일 도시·건축공동위원회를 열고 대청아파트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가능케 하는 ‘대치택지개발지구 지구단위계획 결정 및 특별계획구역 1-1 세부개발계획 결정’을 통과시켰다. 서울시가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수립해 50가구 이상 증축을 허용한 지 불과 1주일 만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규제에 막혀 진척이 없던 서울지역 중층아파트의 리모델링 추진이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남구 개포동 대청아파트
▶대청아파트 3개층 증축해 80가구 늘려
개포동 대청아파트는 리모델링을 통해 기존 15층 아파트를 3개 층 수직 증축해 18층 아파트 로 높이고 가구 수를 기존 822가구에서 902가구로 80가구 늘린다. 용적률은 기존 182%에서 299%로 늘어났고 주차대수도 490대에서 960대로 늘어난다. 39~60㎡의 소형평형으로만 구성된 아파트가 다양한 평형으로 거듭난다. 단지는 50~72㎡ 사이의 주택을 짓겠다는 계획이다. 902가구 중 348가구가 전용 70㎡대이고 전용 63㎡도 262가구가 배정됐다. 전체적으로는 전용면적이 40% 가까이 늘어났다.
대청아파트 바로 옆에 있는 1700여 가구 규모의 대치아파트 2단지도 리모델링을 추진하고 있다. 이번에 위원회가 서울주택도시공사의 임대아파트인 대치1단지와 대치2단지, 대청아파트를 하나로 묶은 특별계획구역을 3개로 쪼개 리모델링을 좀 더 쉽게 할 수 있게 했기 때문이다. 이번에 통과된 대청아파트는 특별계획구역 1-3에 포함됐고, 대치2단지 아파트는 1-2구역이다.
대치2단지의 한 주민은 “대치2단지는 1753가구에 달하지만 전용 39~49㎡의 소형면적으로만 이뤄진 데다가 용적률이 180%에 달해 길 건너 일원현대나 대우처럼 재건축을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전제한 후 “이 때문에 리모델링을 꾸준히 추진했는데 각종 규제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번 조치로 사업이 빨리 진행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8일 리모델링을 할 때 기존보다 50가구 이상 늘리는 증축을 불허하는 규정을 없앤 ‘2025 서울시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도시계획위원회에서 통과시켰다.
주차장 늘리는 리모델링도 지원. 사진은 강남 한 아파트 주차장
▶50가구 제한 폐지로 리모델링 숨통 트여
서울시가 지난해 5월 수직증축 리모델링을 3개 층까지 허용하기로 한 데 이어 50가구 한도 규정까지 폐지함에 따라 중층아파트들의 리모델링이 숨통 트이게 될 전망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그동안 안전문제 때문에 수직 증축에 대해 규제를 해왔다.
이번 조치로 가장 혜택을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곳은 재건축 연한인 20년이 안 된 중층아파트들이다. 50가구의 증축 제한 규정이 없어졌기 때문에 최고 3개 층 이내에서는 가구 수 제한없이 리모델링을 하고, 새로 생기는 가구는 일반분양을 통해 수익을 확보할 수 있게 됐다.
규제완화가 적용될 수 있는 대표 수혜단지로는 리모델링 첫 인가를 받은 대청아파트에 인접한 개포동 대치2로 조합설립인가를 마치고 건축심의 중이다. 개포동 대치2단지의 경우 현재 1753가구인 가구 수를 2010가구까지 늘려 일반분양하는 257가구를 통해 공사비 등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었는데, 그동안 50가구 이상 증축불가 규제에 막혀 표류해 왔다.
서초구 잠원동의 중층아파트와 반포동의 미도1차, 여의도에 위치한 목화아파트, 용산구 이촌동의 현대맨숀 등도 리모델링 추진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원구 상계동과 양천구 목동의 중층아파트도 리모델링 추진이 가능하다.
개포동 우성 아파트
▶서울시 168개단지 리모델링 수요 예상
서울시가 아파트 4136개 단지를 전수조사한 결과 이번 조치로 인해 168개 단지에서 증축형 리모델링 수요가 있을 것으로 분석됐다. 1870개 단지는 주차장 확충, 평면 확장, 커뮤니티시설 확충 등 맞춤형 리모델링이 가능할 전망이다.
그동안 리모델링은 증가 가구 숫자가 적어 수익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소규모 단지 몇 개와 한강 이남 아파트 몇 곳을 제외하곤 큰 호응이 없었다. 실제로 서울시에 따르면 공동주택 리모델링 제도가 도입된 지 15년이 지났지만 실제 사업이 완료된 곳은 13곳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번에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가 ‘2025 서울시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통과시키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안전등급 B등급 이상을 획득하면 최고 3개 층까지 수직 증축을 할 수 있게 했고, 증가 가구 숫자도 3개 층 범위 내에서 자유롭게 구성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증가 가구분은 일반분양으로 돌려 수익을 낼 수 있기 때문에 공사비 확보에 무리가 없을 뿐 아니라 추가 수익이 발생할 수도 있다.
저층 아파트의 경우 좀 더 기다렸다가 재건축을 하는 것이 유리할 수 있지만, 이미 용적률이 150%를 넘긴 중층 아파트의 경우 오히려 재건축보다 리모델링 수익성이 나을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리모델링을 할 경우 지구단위계획 내에 들어간 단지가 아니라면 용적률을 최대 400%까지 받을 수 있다. 재건축의 경우 아무리 높아도 300%를 넘기지 못한다.
재건축의 경우 기본계획 수립부터 안전진단, 정비구역지정, 추진위 및 조합구성, 사업시행인가, 관리처분계획 수립 및 인가까지 수반되는 절차가 워낙에 많고 복잡해 매몰비용이 상당하다. 반면 리모델링은 건물의 구조를 그대로 활용하면서 설비와 마감재만 교체할 수 있기 때문에 기간이 재건축보다 훨씬 짧아 확실히 비용이 덜 든다.
부수고 다시 짓는 재건축보다는 재생의 성격이 강한 리모델링을 통해 ‘도시재생’을 장려하겠다는 서울시 원칙에 따라 리모델링의 경우 횟수 제한도 없어진다. 영국이나 미국의 경우 주택연한이 평균 100년이 넘을 정도로 오랜 연식의 건물이 많은데, 이 자체가 의미 있는 도시경관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 주택 평균수명이 30년에 불과해 자원낭비도 심하고, 도시 경관도 조화롭게 만들 수 없다는 지적이 많았다. 서울시는 이번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통해 최대한 재건축까지 가는 기간을 늘리고, 대신 잦은 리모델링을 통한 수선 및 보수를 통해 오래된 가옥을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주차장 커뮤니티시설 늘리는 저비용형 리모델링도 지원
서울시는 또 수직 증축이 아닌 건물을 일부 보수하고 주차장이나 커뮤니티시설 등을 늘리는 저비용형 리모델링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지원할 방침이다. 특히 주차장과 커뮤니티 시설을 지역사회와 공유할 경우 주거동 리모델링에 드는 사업비는 낮은 이율로 융자를 해주고, 주차장 공사비의 일부를 지원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증축 주차면의 50%를 개방할 경우 주차장 공사비의 최대 70%까지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주차장뿐 아니라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 커뮤니티 시설 역시 개방할 경우 같은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기존 신축 위주의 재건축 사업은 자원 낭비나 이웃 해체 같은 부작용이 있는 반면에 리모델링은 원주민 재정착과 공동주택의 장수명화를 통한 지속가능한 도시재생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며 “서울형 리모델링을 활성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공동주택 리모델링 기본계획을 통해 기존에 도시 속 섬처럼 단절됐던 아파트 단지가 지역사회와 공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