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인간 지능을 다 따라잡았거든요. 인간이 공부한 지식은 AI가 더 많이 알고 있습니다.”
지식생태학자 유영만 교수의 이 한마디는,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날카롭게 묻는다. 정보와 데이터가 넘치는 시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더 이상 ‘지식’ 그 자체가 아니다. 유튜브 지식채널 ‘지식전파사’에 출연한 유 교수는 AI 시대에 인간이 살아남는 길은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지혜와 해석, 그리고 질문의 능력에 있다고 단언한다.
“지식은 AI가 더 많이 알고 있다.”
유 교수는 “지금은 인공지능이 인간의 지식을 다 따라잡은 시대”라고 말한다. 어디를 가든지 내비게이션이 길을 안내해 주고, 궁금한 게 생기면 검색이나 챗봇이 바로 대답해주는 세상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뇌는 점점 사유하지 않게 되고, 이로 인해 “머리를 쓸 일이 없어졌다”고 그는 지적한다.
“사람의 머리가 앞으로 남아 있는 용도는 세 가지뿐입니다. 베개 베기, 모자 쓰기, 그리고 머리 수만 셀 때.” 유쾌한 표현 뒤엔 깊은 위기감이 담겨 있다. 유 교수는 이 같은 사고의 외주화 현상이 결국 인간의 뇌를 퇴화시키고 있다고 경고한다. “2024년 옥스퍼드가 선정한 올해의 단어가 ‘썩음’(rizz)이에요. 저는 그 원인이 AI라고 봅니다. 물어보면 다 알려주니까 사유의 시간이 사라졌고, 그 결과 뇌가 썩고 있어요.”
물음표에서 느낌표로 넘어가기까지의 사유의 거리는 사라지고 있다. 예전에는 질문이 생기면 도서관에 가거나 사람에게 물어보며 생각의 시간을 가졌지만, 이제는 질문이 생기자마자 AI에게 바로 묻는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더 이상 궁리를 하지 않는다”고 유 교수는 한탄한다. AI가 줄 수 있는 건 정답이지만, 인간이 던지는 질문은 점점 피상적이고 평면적인 것에 머무른다.
유영만 교수는 AI가 지식을 빠르게 계산하고 정리할 수는 있지만, 절대 만들 수 없는 것이 있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바로 ‘지혜’다. 지혜는 책상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땀과 눈물과 피눈물”로 얻는 체험의 산물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생각만 해본 사람은 당해본 사람을 못 당합니다. 인공지능은 절대 ‘당해본 적’이 없어요.”
지혜의 근거는 실전 경험이다. 실패를 겪고, 그 실패를 반추하면서 얻어낸 통찰은 AI가 절대로 흉내낼 수 없는 영역이다. AI는 논리적으로 정보를 종합할 수는 있어도, 인간의 마음 속 깊은 흐름을 이해하거나 공감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물 먹었니?’라는 말은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를 가질 수 있지만, AI는 이 함축과 중의성을 완전히 해석하지 못한다. “AI는 물리적 세계의 열 길 물속은 탐지할 수 있지만, 사람 마음 속 한 길은 못 본다”는 유 교수의 말은 AI의 한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래서 그는 ‘지식’의 시대가 끝나고 ‘지혜’의 시대가 왔다고 말한다. “지식으로 지시하던 시대는 끝났고, 지혜로 지휘하는 시대가 온 겁니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깊은 사유와 의미의 해석, 이것이 바로 AI 시대에 인간이 갖춰야 할 진짜 능력이라는 것이다.
지금까지 교육은 ‘정답’을 찾는 방식이었다. 시험 문제는 교사가 내고, 학생은 정해진 답을 외워서 쓰면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유영만 교수는 말한다. “AI가 정답을 더 잘 찾아주는데, 굳이 인간이 정답을 외울 필요가 있을까요?” 그래서 그는 수업에서 기말고사 문제를 학생들이 직접 내게 한다. 한 학기 동안 배운 것을 바탕으로 “문제를 내는 사람”, 즉 생각의 구조를 설계하는 훈련을 시킨다.
그는 그런 사람을 ‘문제아’라고 부른다. 문제를 잘 만드는 인재, 그게 진짜 창의적인 인재다. “우리는 남이 낸 문제에 답하는 연습만 해왔어요. 하지만 AI 시대에는 문제를 내는 능력이 훨씬 중요합니다.” 문제를 낸다는 것은 단순히 질문을 던지는 것이 아니라, 통념을 깨고, 기존의 가정을 의심하고, 새롭게 사고하는 능력을 뜻한다.
예를 들어 ‘선풍기에는 날개가 있다’는 전제에서 벗어나 “선풍기에 꼭 날개가 있어야 할까?”라고 질문한 사람이 바로 다이슨이다. 스타벅스에는 반드시 커피가 있어야 할까, 메뉴 없는 음식점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파격적 질문에서 혁신은 시작된다.
그는 덧붙인다. “확신은 부패합니다. 질문은 방부제입니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지식들이 과거의 산물일 수 있다는 경고다. 지식은 시간이 지나면 낡고, 고정관념이 되지만, 질문은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문이 될 수 있다.
AI 시대의 핵심은 결국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이다. 지식은 AI가 대체할 수 있지만, 질문은 그렇지 않다. 질문하고, 해석하고, 공감하고, 돌보고, 창의적으로 사유하는 것, 그것이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다. 유영만 교수는 말한다. “인공지능은 계산은 빠르지만, 사유는 못 합니다. 인공지능이 정답을 찾는 동안, 우리는 해답을 찾아야 해요.”
이처럼 AI와의 공존 시대를 고민하는 깊이 있는 통찰은 유튜브 지식채널 ‘지식전파사’에서 만날 수 있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