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지도를 펴고 부지런히 선을 긋는다. ‘일대일로(一帶一路)’라는 이름으로 세계 곳곳에 뻗어 나가는 길이다. 철로를 놓고 항만에 크레인을 세운다. 단순한 교통망이 아니다. 그것은 곧 관계이고, 때로는 외교적 언어다. 시진핑 주석이 권좌에 오른 직후 2013년 시작된 일대일로는 어느덧 10년을 훌쩍 넘겼다. 참여국가는 150여 개국, 누적 투자 규모는 1조달러를 넘어섰다. ‘21세기의 실크로드’ 격이지만 도로·항만 건설 그 이상이다. 중국의 국제정치 지렛대이자 자국 중심 자산 운용의 묘수다.
케냐에 놓인 철도, 파키스탄의 발전소, 라오스의 고속철도는 모두 중국의 ‘호의’를 상징한다. 마뜩찮은 미국과 유럽에선 “채무 함정 외교”라며 노골적으로 경계한다. 어떤 나라엔 성장사 다리지만, 다른 나라 눈엔 족쇄로 비치는 셈이다. 중국은 서방의 불편한 시선을 무대 위로 올려 바꾸려는데 진심이다. 9월 16∼17일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열린 ‘일대일로 미디어협력포럼’에서 드러난 바다. 87개 국가·국제기구에서 165개 매체의 언론인·대표자를 200여 명이나 불러 “공동 번영” 합창을 연출했다. 단순 홍보를 넘어 글로벌 미디어의 렌즈를 빌려 세련되게 중국 이미지를 재가공하고 서사를 통제하려는 의도다. 무대를 장악하는 순간, 의혹은 흐려지고 박수 소리가 커질 수밖에 없다. 현장에서 보니 이게 바로 중국식 ‘관계 기술’의 정수가 아닐까 싶다.
중국에 비해 미국은 지나치게 직설적이다. 트럼프 2.0 시대로 접어든 뒤 협상은 모두 ‘딜’과 ‘압박’으로 다가온다. 한미 정상회담이 끝난 지 며칠도 안 돼 조지아주에서 한국기업 파견 근로자 300여 명을 불법체류 혐의로 대거 체포한 데서 극명해졌다. 관세·비자·노동 단속까지 총동원된 미국식 외교 언어는 ‘규율·법’ 딱지를 붙였지만 당하는 입장에선 협박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중국이 다리를 놔주고 무대에 올려 편을 만들려 든다면, 미국은 무대 위 조명을 틀어쥐고 누구를 밝히고 누구를 그림자 속에 묻을지를 결정하려는 꼴이다. 중국은 “함께 성장하자”는 낭만적 합창을 앞세우는데 미국은 “질서 유지” 북소리만 울린다.
수치로 봐도 차이는 확연하다. 지난 2022년 중국의 대외 인프라 금융은 670억달러에 달했다. 같은 해 미국 해외개발금융공사(DFC)의 대외 지원액은 90억달러로 7분의 1 도 안된다. ‘양보다 질’이라 할 수도 있지만 절대 규모의 격차는 부인할 수 없다. 중국은 빚을 지우긴 해도 다리를 놔주는데, 미국은 주는 것 없이 규율만 앞세워 시장을 쥐락펴락 하니 주변에서 볼멘소리가 나오지 않을 리 없다.
그 사이에 낀 한국이 애처롭다. 내줄 걸 다 내주는데도 기업 발목이 잡히고 근로자에겐 족쇄가 채워지니 난감하다. 결국 무대는 ‘유혹의 기술’을 펴는 중국과 ‘압박의 기술’을 쓰는 미국이 부딪치는 공간에서 짜일 터다. 길을 어디에 놓을지, 불을 어디에 켤지는 강대국의 손끝에 달려 있다. 그래도 한국은 그 사이에서 길을 찾아야만 한다. 외교는 관계의 공학이다. 중국과 미국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판을 짜는 지금, 기회의 손을 잡으면서도 덫을 피하는 기술, 그게 한국에겐 절실하다.
[장종회 월간국장 매경LUXMEN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