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인하하면서 개인 투자자 자금의 흐름이 뚜렷하게 변화하고 있다. 안전성이 강조되는 채권과 원금 보장형 상품, 그리고 배당 매력이 부각되는 자산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모습이다. 아직 인하의 속도와 폭을 확신할 수 없다는 점에서 투자자들이 경계심을 놓지 않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장단기 미국채 ETF, 퇴직연금 전용 채권혼합형 ETF, 예금자 보호를 받는 지수연동예금(ELD) 등이 새로운 ‘핵심 투자처’로 주목받고 있다. 아울러 금·은 같은 안전자산과 리츠(REITs) 역시 분산투자 대안으로 거론된다.
국내 투자자의 미국 채권 보관액은 9월 10일 약 219억달러로 집계되며 사상 최대치를 새로 썼다. 지난 7~8월에만 20억달러 이상 늘었고, 9월 들어서도 불과 열흘 만에 5억달러 이상 순매수가 이어졌다. 미국의 고용지표 둔화와 CPI 하락세가 맞물리면서 연준의 9월 금리 인하 기대가 커졌고, 이에 따라 금리와 반대로 움직이는 채권 가격이 선제적으로 반응한 것이다.
대표 투자 창구는 단연 미국채 ETF다. 장기물에 투자하는 ‘KODEX 미국30년국채타겟커버드콜(합성H)’, ‘ACE 미국30년국채액티브(H)’는 금리 인하 시 레버리지 효과가 크지만 변동성도 만만치 않다. 반면 중기물에 투자하는 ETF는 가격 등락이 상대적으로 완만하다. 최근 삼성자산운용이 ‘KODEX 미국10년국채액티브(H)’를 상장하며 투자자 선택지가 넓어졌다.
다만 전문가들은 “현재 장기금리가 이미 저점에 근접해 있어 지나친 가격 상승을 기대하기보다는 듀레이션을 분산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퇴직연금 시장에서는 채권과 주식을 절묘하게 섞은 혼합형 ETF가 새로운 대세로 자리잡고 있다. 연금계좌에서 ‘안전자산’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투자자는 원금 안정성을 확보하면서도 주식 비중을 사실상 높일 수 있다. 최근 1년 새 퇴직연금 내 혼합형 ETF 순자산은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대표적인 상품으로는 미래에셋자산운용이 상장한 ‘TIGER 미국테크 TOP10채권혼합’이 있다. 시장이 흔들려도 비교적 안정적이라고 평가받는 미국 빅테크 기업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퇴직연금 내 100%까지 투자가능한 ETF다.
코스피200 미국채혼합 지수를 추종하며, 코스피200과 미국국채선물 10년물(환노출)에 4:6 비율로 투자하는 삼성자산운용의 ‘KODEX 200미국채혼합’ 역시 인기다. 자산배분을 통한 변동성 제어를 목적으로 설계돼 포트폴리오 변동성을 줄여주는 상품으로 평가받는다. 채권혼합형 상장지수펀드(ETF) 중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에 최대 50%까지 투자하는 ‘1Q 미국S&P500미국채혼합50액티브’ 역시 채권혼합 ETF 중 S&P500 비중이 높아 주목받는다.
전문가들은 혼합형 ETF가 금리 하락기와 증시 상승기를 동시에 겨냥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라고 말한다. 다만 특정 업종 편중이나 환율 변동성 등 상품별 리스크는 사전에 점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퇴직연금 내 혼합형 ETF 순자산은 1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예금 금리가 낮아지는 상황에서 지수연동예금(ELD)도 대체 투자처로 급부상했다. 상반기 판매액만 4조6000억원을 넘었고, 연간으로는 9조원 돌파가 예상된다.
ELD의 구조는 단순하다. 투자자가 맡긴 원금은 정기예금으로 운용하고, 그 이자로 주가나 금리 등 특정 지수에 연동된 파생상품을 매입해 추가 수익을 노리는 방식이다. 예금자보호법 적용을 받는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투자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
은행권의 경쟁도 치열하다. KB국민은행은 최고 연 11.5% 수익 구조를 담은 ‘KB Star 지수연동예금’을 판매 중이며, 하나은행은 9월 16일까지 ‘NEW 지수플러스 정기예금’을 모집한다. 신한은행은 기본 금리를 상향 조정한 ‘세이프지수연동예금’을 내놓으며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안전자산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높다. 특히 금과 은은 올해 들어 40% 안팎으로 오르며 사상 최고가 영역에 진입했다. 달러 자산 역시 꾸준히 매수세가 이어지고 있다.
투자 수단은 ▲KRX 금시장(양도세 비과세 혜택) ▲골드·실버 뱅킹(배당소득세 15.4% 적용) ▲ETF·ETN ▲금 신탁(연 1.5% 운용수익, 세금·수수료 부담 고려 필요) 등으로 다양하다. 전문가들은 통상 포트폴리오에서 금은 10% 내외, 달러표시 자산은 20~30% 수준을 유지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조언한다.
금리 하락의 수혜는 리츠에도 직접적으로 이어진다. 조달 비용이 줄어들면서 배당 여력이 확대되기 때문이다. 실제 미국 대표 리츠 ETF인 VNQ는 최근 급상승하며 기대를 선반영했다.
국내 상장 리츠도 배당 매력이 부각된다. 현재 시가배당률이 6~7%대에 이르러 예금·채권보다 높은 현금흐름을 제공한다. 다만 개별 리츠별로 공실률, 임차인 신용도, 장기 임대 계약 여부에 따라 수익성이 달라질 수 있다. 개별 종목 투자에 부담이 크다면 월분배형 리츠 ETF를 활용해 위험을 분산하는 것도 가능하다. 한편, 성장주 전망은 팽팽히 갈린다. 금리 인하가 보험적 성격에 그친다면 장기금리 하락 폭은 제한적이어서 성장주의 리레이팅 속도는 더뎌질 수 있다. 반대로 유동성 공급이 본격화된다면 AI, 반도체, 바이오, 로봇 등 성장 섹터는 다시 밸류에이션 확장 국면에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 실제 최근 외국인 자금이 반도체·방산·조선·증권주에 유입되는 흐름은 이 같은 기대를 반영한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투자자들이 주요하게 살펴봐야 할 지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듀레이션 관리가 중요하다. 채권 가격은 금리 변화에 반대로 움직이는데, 특히 만기가 긴 30년물 국채는 작은 금리 변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금리가 0.25%포인트만 움직여도 가격이 크게 요동칠 수 있다는 의미다.
따라서 모든 자금을 장기물에만 쏟아붓는 것은 위험하다. 30년물의 레버리지 효과는 크지만, 시장의 예상을 벗어난 흐름이 나오면 손실도 커질 수 있다. 10년물처럼 비교적 안정적인 중기물을 섞거나, 주식과 채권을 함께 담는 혼합형 ETF로 완충 장치를 마련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이유다.
둘째, ELD 약관 점검이다. ELD는 원금보장형 상품으로 인식돼 무심코 가입하는 투자자가 많지만, 세부 구조를 이해하지 못하면 기대했던 수익을 거두기 어렵다. 특히 ‘낙아웃’ 조건(기초자산이 특정 구간을 벗어나면 수익이 확정되지 않는 구조)이나 ‘디지털’ 조건(정해진 구간 안에 들어가야만 약속된 수익을 받는 구조)이 붙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겉으로 보이는 최고 금리에 현혹되기보다, 어떤 상황에서 얼마의 수익이 확정되는지를 꼼꼼히 따져야 한다. 또 만기 전에 중도 해지를 하면 수수료로 인해 원금이 깎일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하기 쉽다.
셋째, 연금계좌 규제 변화에 대한 모니터링도 필수다. 최근 퇴직연금 시장에서 혼합형 ETF가 급부상했지만, 제도적 틀이 언제든 바뀔 수 있다. 현재는 혼합형 ETF가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주식 비중을 사실상 크게 끌어올릴 수 있지만, 금융당국이 안전자산의 범위를 조정하거나 편입 한도를 제한한다면 투자 전략 전체가 달라질 수 있다. 퇴직연금 투자자는 세제 혜택과 안전성 덕분에 장기 자금을 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제도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다.
넷째, 금·은 투자 세제 차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금과 은은 대표적인 안전자산이지만, 투자 수단에 따라 과세 방식과 비용 구조가 다르다. 예컨대 KRX 금시장에서 매매하면 양도차익에 세금이 붙지 않는 반면, 은행 골드뱅킹은 매매 차익에 15.4% 배당소득세가 부과된다. ETF나 ETN으로 투자할 경우에도 금융투자상품 과세 체계가 적용돼 세금이 달라진다. 금 신탁은 운용 수수료가 연 1.5%가량 붙어 장기 투자 시 비용이 커질 수 있다. 따라서 단순히 ‘금값이 오른다’는 기대만으로 접근하기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수단이 무엇인지 꼼꼼히 비교해야 한다.
[이소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