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은 어렵고 불편하다. 오죽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죽을 ‘사’ 4층도 피할 만큼 터부시한다. 죽음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거부감이 들지만 이보다 더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것도 없다.
웰다잉이란 살아온 날을 아름답게 정리하고 편안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말한다. 최근에는 삶의 마무리 과정을 미리 준비하면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다는 면에서 웰다잉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2020년 보건복지부 노인실태보고서에 의하면 65세 이상 응답자의 90%가 임종 전후의 상황을 스스로 정리한 후 임종을 맞는 것이 ‘중요’ 또는 ‘매우 중요’ 하다고 응답하였다. 즉 노인의 대부분은 삶을 마무리하는 방법을 결정하고 좋은 죽음을 맞는 것을 의미있게 생각하고 있다.
일생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 장의 종이로 시작해서 한 장의 종이로 끝난다고 볼 수 있다. 부모님은 내가 태어났을 때 ‘출생신고’를 한다. 나는 기쁨의 울음으로 세상에 태어난 것을 신고하고 사망하게 되면 나의 자손들이 ‘사망신고’로 나의 삶은 마치게 된다. 태어날 때는 내가 울었지만 사망할 때는 타인의 울음으로 나의 삶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렇듯 삶과 죽음은 연결된 하나의 과정인데 우리는 입시·취업·결혼·출산·입학·퇴직·노후준비·여행 등 삶에 대해서는 많은 준비를 하면서도 막상 마지막 삶을 정리하는 죽음에 대한 준비는 소홀히 하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생애설계 분야의 권위자인 최성재 서울대 명예교수가 집필진으로 참여한 ‘활기찬 노후생활 준비와 인생의 꿈 실현을 위한 50+ 생애설계’ 가이드북(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 발간)에서 사람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노력하면 계속 발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평생 발달하기 위해서는 생애주기 단계마다 계획을 잘 세우고 그 계획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주체적인 삶을 계획 실행할 수 있도록 시간을 효율적으로 관리하여 자신의 삶을 원하는 방향으로 계획하고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는 것만큼 이보다 더 삶의 의미를 생각하게 하는 것도 없다. ‘몰입의 즐거움’으로 유명한 교수이자 심리학자인 칙센트미하이 역시 천재와 평범한 사람의 차이를 죽음을 바라보는 통찰에서 찾았다.
다양한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최선을 다하려는 공통적인 동기를 찾아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 이들은 다가올 죽음을 항상 의식하면서 최선의 삶을 살 것을 다짐했다.
서울대학교 황농문 교수의 저서 <몰입>에서도 죽음에 대한 통찰만큼 최선의 삶을 추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불멸의 생을 산다면 죽음에 대해서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그렇게 되면 삶의 의미도 없어진다는데 문제가 있다. 죽음이라는 개념이 없다면 삶이라는 개념도 성립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 신화의 ‘카를로스’신의 모습처럼 내가 살아 있는 시간이 유일한 기회이고 이 삶의 기회를 잘 보내느냐 그렇지 못하느냐가 죽음에 대해 내가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이자 최선의 삶이다.
우리 인생은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우리 삶은 가득 채워진 모래시계다. 약 100년이라는 나에게 주어진 시간의 모래가 빠져나가면서 점점 더 죽음을 향해가는 것이다.
하루는 1일 24시간 1440분 86,400초이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다. 100년이 주어졌건 50년이 주어졌건 주어진 하루하루의 삶을 잘 사는 것이 결국 웰다잉의 출발이자 올바른 실천이다.
삶의 어느 연령층에 속해 있더라도 생애주기 각 단계마다의 계획과 실천을 포함하고 있는 생애설계 시간관리를 통해 인생의 마무리까지 아름다울 수 있도록 각자의 웰다잉(well-dying)을 설계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장경순 한국생애설계사(CLP), 칼럼니스트, 현>BNK경남은행 은퇴금융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