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민국'의 팬을 열광하게 마든 마블 히어로 영화 '이터널스'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영속적인 삶을 부여받은 '이터널스' 종족이 인류를 구원한다는 내용을 담은 클로이 자오 감독의 신작 히어로물이다.
한국계 배우 마동석이 안젤리나 졸리의 상대역이자 한국계 첫 '마블러(마블 히어로즈)'로 캐스팅돼 지대한 관심을 받은 '이터널스'를 지난 28일 열린 시사회를 통해 미리 엿봤다.
먼저 줄거리부터. 자연사 없이 영속적 생명을 부여받은 이터널스(영어 'Eternal'의 파생어·영원하다는 뜻)들은 기원전 5000년 전 우주선 '모다'를 타고 지구를 찾았다. 작살로 물고기 잡아 연명하던 고대 인류에게 중력을 조절하고 기술을 창조하는 선진 문명을 지닌 이터널스는 숭앙의 대상이었다. 분자를 변화시켜 물질을 바꾸거나 타인의 마음을 교란시키는 능력을 가진 '반신반인'이터널스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태동과 함께 농업혁명, 산업혁명 등 역사적 분기점마다 인류의 위대한 도약을 막후에서 도운 귀한 존재들이었다.
이터널스들은 '아리솀'이라 불리는 우주의 창조자에게 '인류 분쟁에는 개입하지 말고, 다만 그들의 발전과 생존을 도우라'는 명을 받은 터였다. 아리솀은 심판자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멸종한 줄 알았던 괴물 '데비안츠' 무리가 영국 런던 강둑에 등장하면서 7000년간 인간과 어울려 숨어 살던 이터널스가 다시 모인다. 하늘을 자유롭게 날며 눈에서 레이저빔을 쏘는 '이카리스', 물질을 순식간에 바꾸는 초능력을 가진 '세르시' 등 영웅들은 마치 눈으로 보는 오케스트라를 연주하듯 아름답게 전투한다. 그 과정에서, 데비안츠를 학살하는 이터널스의 모든 쟁투가 실은 아리솀의 불합리한 명령 때문임이 드러난다. 이터널스는 갈림길에 선다. '절대자에 순종할 것이냐, 인류 정의를 따라갈 것이냐.'
방대한 세계관을 장식하는 화면은 압도적이다. 데비안츠를 사냥하는 장면을 비롯해 이터널스가 구축하는 문명의 발전사 장면, 특히 '셀레스티얼'이라 불리는 은하의 설계자들이 지구 내핵에서 깨어나는 장엄한 장면은 기념비적이다.
하지만 '어벤져스' 시리즈의 세계관을 물려받은 '이터널스'가 마블의 전설을 이어갈지는 확실하지 않다.
정보가 부족한 관객에게 10명에 이르는 영웅 특성과 대우주의 창조관을 친절하게 설명하려다 보니 초반부 한 시간은 지루하다 못해 눈이 깜빡 감긴다. 또 어디선가 본듯한 기시감도 적지 않다. 질주하던 이층버스를 수직으로 뒤집는 장면은 영화 '다크나이트'를 연상케 하고, 무중력 우주선이 지구에 깃털처럼 착륙하는 장면은 영화 '프로메테우스' 등 우주물과 선명한 차이를 보여주지 못한다.
'어벤져스'를 충분히 의식하고 있으면서도, 이터널스 종족이 '어벤져스' 속 위기에서는 참전하지 않았다는 서사적인 연결고리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영화 후반부에서 보이듯 이터널스 다수는 인류애를 구현하려 절대자의 뜻을 따르지 않는 선한 심성을 지녔다. 인류 절반이 죽어나간 절대악 타노스의 '핑거 스냅' 즈음엔 아리솀의 명령 때문에 숨어 지냈다는 이카리스의 해명은 이 영화의 근원적인 설정에 고개를 갸우뚱하게 한다.
다만 '길가메시' 역을 맡은 배우 마동석과 '테나' 역의 안젤리나 졸리의 우정 깊은 호흡은 열광을 받을 만하다.
테나는 7000년을 산 기억의 무게에 짓눌려 피아를 혼동해 아군을 공격하는 해리현상이 발병하면서 부득이 환자로 격리된다. 길가메시는 "병들고 늙은" 테나를 보호하고자 인간세계에서 이탈해 자신을 희생한다. '불주먹'과 '뺨따귀'로 데비안츠를 물리쳐 테나를 보호하는 장면에선 길가메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배우 마동석의 또 다른 별명 '마블리(마동석+러블리의 합성어)' 캐릭터가 이번 영화에서 어떻게 변주됐는지를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방탄소년단(BTS)이 잠깐 언급되는 장면에선 대사의 센스에 박수를 치게 된다.
다양성을 잊지 않으려는 영화의 꼼꼼함도 찬사를 받을 만하다. 이번 영화에서 최후의 영웅은 백인 남성이 아니다. 리차드 매든이 연기한 이카리스가 극의 핵심적인 영웅으로 전면배치되는 대신, 감독은 동아시아계 여성 '세르시'를 최종 해결사로 등장한다. 세르시를 연기한 젬마 찬은 중국계 영국인 배우다. 흑인 남성의 동성애와 입양 등 성소수자 모습도 가감없이 담았다.
11월 3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