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17일 오후 2시(현지시각) 중국 상하이 모터쇼 현장. 메르세데스-벤츠가 럭셔리 서브 브랜드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첫 전기차 ‘메르세데스-마이바흐 EQS SUV’를 세계 최초로 공개하자 장내가 술렁였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너도나도 전기차를 출시하며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시기에 첫 전기차라니. 어떤 이는 “한발 늦은 대응”이라고 했고 다른 이는 “새로운 마이바흐”라고 상반된 평가를 내렸지만 이들 모두 “럭셔리의 정점”이란 의견엔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투톤 컬러로 마무리된 이 차는 곳곳에 마이바흐 엠블럼과 레터링을 새겨 넣어 최상급 럭셔리 클래스란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다. 무엇보다 비행기의 퍼스트 클래스를 연상케 하는 뒷좌석은 그 야말로 호화롭다. 여기에 지속가능성에 대한 노력도 담아냈다. 메르세데스-벤츠 모델 최초로 실내 마감 소재에 베지터블 탠 가죽(Vegetable-Tanned Leather)을 썼고, 가죽 태닝 원료로 커피 원두 껍질을 사용했다. 이밖에 여러 부품과 소재가 재활용 알루미늄 등 자원을 절약하는 원료로 완성됐고, 배터리 또한 탄소 중립적으로 생산됐다. ‘좋은 것은 또한 반드시 아름다워야 한다’는 마이바흐의 신조가 그대로 적용된 셈이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벤츠의 럭셔리 서브 브랜드다. 국내에선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애마로 알려지기도 했다. 공식석상에 자주 마이바흐를 타고 등장했기 때문이다. 브랜드의 첫걸음은 10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마이바흐의 창립자이자 엔지니어였던 빌헬름 마이바흐와 그의 아들 칼 마이바흐가 “최고 중에서도 최고를 만들겠다”라는 각오로 ‘W3’를 내놓은 게 전설의 시초가 됐다.
1921년 9월 베를린 자동차 전시회에서 공개한 마이 바흐 모토렌바우(Maybach Motorenbau GmbH)의 첫 양산 모델인 W3는 독일 자동차 최초로 사륜 브레이크를 적용했다. 앞선 기술뿐만 아니라 고급 목재와 가죽으로 마감한 인테리어도 대중의 이목을 끌었다. ‘바퀴 달린 예술품’이란 말이 나온 이유다. 이후 1929년 말 ‘타입12’ 라 불리는 마이바흐 최초의 12기통 모델이 출시되며 독일 자동차 시장에 돌풍을 불러일으킨다. 금박의 더블 M엠블럼이 선명한 이 차는 ‘프리미엄 클래스’로 분류되며 당시 기업 임원과 고위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차가 됐다.
1년 뒤인 1930년, 마이바흐는 무게가 3t이나 되는 ‘체펠린 DS 7(Zeppeline DS 7)’을 출시하며 다시 한 번 세를 과시한다. DS는 엔진 구성을 뜻하는 더블 식스(Double Six)의 줄임말로 12기통 엔진을 탑재해 최대 시속 150㎞까지 주행할 수 있는, 당시로선 꽤 고성능 차량이었다.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타입12’와 ‘체펠린 DS 7’, 뒤이어 출시된 ‘체펠린 DS 8’은 총 200여 대가 판매되며 시대를 대표하는 럭셔리카가 됐다.
메르세데스-벤츠와 마이바흐의 역사는 1961년 다임러가 마이바흐 모토렌바우를 인수한 뒤 2002년 ‘마이바흐 57’과 ‘마이바흐 62’를 출시하며 시작된다. 벤츠는 이후 2014년 럭셔리 서브 브랜드 ‘메르세데스-마이바흐’를 설립한다. 벤츠의 기술력과 마이바흐의 럭셔리가 결합되며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시대를 대표하는 성공의 상징이 됐다. 첫 차를 선보인 지 100년이 흐른 2021년, 메르세데스-마이바흐는 마이바흐 최초의 SUV인 ‘메르세데스- 마이바흐 GLS’와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클래스’를 새롭게 선보였다. 올 4월 공개한 첫 순수전기차는 “전기차 시대에 새로운 럭셔리를 선보였다”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기에 마이바흐만의 한정판 모델도 업계의 관심사 중 하나다. 2023 서울 모빌리티쇼에서 공개된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 680 4MATIC 버질 아블로 에디션’은 패션아이콘인 버질 아블로와 협업한 모델이다. 그가 메르세데스-벤츠와 협업한 세 번째 프로젝트로 2021년 11월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기 전 완성돼 150대 한정 수량으로 전 세계에 출시됐다. 올해는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오뜨 부아튀르 에디션’ 출시가 예고돼 있다. 마이바흐 장인들의 자체 아틀리에인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마누팍투어’에서 제작된 양산형 콘셉트카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차량은 첫 단계부터 탄소중립을 지키며 최첨단 생산기지인 ‘팩토리56’에서 생산되고 있다. 마이바흐 측은 “최근 고객층이 점점 젊어지면서 럭셔리의 의미 또한 변화하고 있다”라고 전하며 “우수한 품질이나 특출한 소재 그리고 장인정신 같은 전통적인 가치에 대한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지만 젊은 고객들은 디지털화에 대한 기대 수준이 매우 높고 환경적인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라고 럭셔리와 첨단 기술력의 결합에 대한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일까. 국내 시장에서 메르세데스-마이바흐의 인기가 뜨겁다. 우선 실적이 이를 증명한다. 메르세데스-벤츠 코리아가 공시한 2022년 감사보고서를 살펴보면 지난해 매출액은 7조5400억원으로 전년 대비 23% 증가했다. 영업이익도 29% 늘어난 2818억원으로 집계됐다. 업계에선 “S클래스와 마이바흐, 전기차 등 고부가가치 차량의 판매에 집중한 결과 사상 처음 매출 7조원을 돌파했다”라고 분석한다. 매출뿐만 아니라 영업이익 역시 2003년 국내 진출 이후 20년 만의 최대치다. 실제로 지난해 벤츠의 베스트셀링카 중 최상위 모델인 S클래스는 1만3204대가 판매되며 전 세계 3위에 올랐다.
지난해 마이바흐 모델의 국내 판매량은 총 1961대. 전년 대비 147%나 증가했다. 중국에 이어 전 세계 2위에 해당 하는 기록이다. 올해도 이러한 상황은 계속되고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가 올 초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온라인으로 판매한 단 24대의 ‘더 뉴 메르세데스-마이바흐 S580 4MATIC 블루 스타 더스트 나이트’ 한정판 모델의 경우 판매 개시 1시간 30분 만에 완판됐다. 수억원대를 호가하는 차량의 판매가 늘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는 올해 마이바흐 센터를 착공할 예정이다. 한국 고객을 위한 마이바흐 전용 공간이다.
1846년 태어난 빌헬름 마이바흐는 어린 나이에 부모를 여의고 자선 단체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곳에서 기술자로 성장하게 된 마이바흐는 이를 눈여겨본 고틀립 다임러에 의해 자동차 엔지니어로 거듭났다. 12년이라는 나이 차이에도 두 사람의 친밀한 인연은 1900년 다임러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이어졌다. 1890년에 다임러가 새로운 회사인 DMG(Daimler Motoren Gesellschaft)를 세울 때 마이 바흐는 설계 책임자가 됐다. 두 사람이 함께 개발한 괘종시계 엔진을 바탕으로 세계 최초의 모터사이클이 탄생할 수 있었고, 자동차와 모터보트 등 엔진을 사용하는 여러 탈것에 다임러의 엔진이 사용됐다.
다임러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DMG의 기술 책임자로 자리를 지킨 마이바흐는 사업가 에밀 옐리넥의 요청으로 새로운 자동차 개발을 이끌었다. 큰 성공과 더불어 다임러의 이름을 높인 새 차에는 메르세 데스라는 이름이 붙었다. 1907년 DMG를 떠난 마이바흐는 1908년 체펠린 비행선의 엔진을 개발한 데 이어 자신의 이름을 딴 최고급 승용차 ‘마이바흐’로 명성을 이어갔다. 한편 아버지를 따라 자동차 업계에 들어선 칼 마이바흐는 빌헬름 마이바흐가 체펠린 비행선의 엔진을 개발했을 당시 기술 책임자로 개발 과정에 참여했다. 이후 그는 아버지가 세운 마이바흐에서 차량 개발을 담당하며 경력을 쌓았고, 자동차 엔지니어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