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에 왔으면 해산물은 맛보고 가야지. 그냥 가믄 완전 섭해요. 저도 고성 사람은 아니지만 여 온 지 10년은 족히 됐으니 준 고성 사람이지. 여가 앞은 동해고 뒤는 설악이라 먹는 재미에 보는 재미도 최고예요. 우리 가게가 아니라도 좋으니 즐기다 가세요.”
첫걸음부터 전문가에게 제대로 걸렸다. 해파랑길 46코스의 시작점을 찾느라 두리번거리며 쭈뼛대고 섰더니 그 모습이 재미있었는지 유심히 살피던 횟집 사장님이 말을 걸어 왔다.
“어? 해파랑길 46코스? 아, 그 길은 여기 장사해변에서 시작돼요. 여기 해변 한번 둘러보고 저 위쪽으로 올라가 걸으면 되겠네. 밥 때인데 식사는 하시고? 우리 나 홀로 세트도 있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앉아버리면 죽도 밥도 안 된다는 생각에 냉큼 돌아서는 순간, 다 들릴 만큼 크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고리매도 맛있고 오늘 바다서 잡은 문어도 있는데, 그냥 가면 후회할 텐데….”
장사항에서 출발해 청간정, 천학정, 능파대를 지나 삼포해변에 이르는 해파랑길 46코스에 들어섰다. 무려 15㎞가 넘는 이 길은 고성의 해안선을 따라 걷는 길이다. 장사해변부터 켄싱턴, 봉포, 천진, 청간, 아야진, 교암리, 문암, 백도, 자작도, 삼포까지 수많은 해변과 항구, 해수욕장을 걷고 또 걷는다.
속초와 강릉의 해변이 거칠고 높은 파도로 유명하다면 고성의 바다는 북제주의 잔잔한 여름 바다를 닮았다. 그래서인지 모래사장이 넓고 긴 해안가에는 군데군데 멋들어진 카페가 객을 유혹한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마주한 해변가 카페는 그냥 지나치기 쉽지 않았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니 동남아 어느 섬 부럽지 않을 만큼 여유롭고 빼어났다. 그리고 잠시, 옆 테이블에서 들려오는 대화 한 토막….
“오늘 점심은 어떻게 할까?”
“오랜만에 고성에 왔으니 고리매에 문어 싸 먹을까봐 어때?”
어떻긴, 나도….
끝없이 펼쳐진 해변이 장관이다. 이토록 맑은 물과 높은 산이 어우러진 풍경이라니. 강원도 고성의 해변을 위아래로 가로지르는 해파랑길 46코스는 같지만 다르고 또 다채로운 길이다. 매년 3~4월이면 장사해변의 맑은 바다에는 바위에 붙어 자리는 ‘고리매’가 튼실한데, 잠수복 챙겨 입고 고리매 채취하는 이들이 간간이 눈에 들어온다.
봄볕에 말린 고리매는 김처럼 굽거나 튀겨 먹는데, 김보다 고소하고 바삭해 귀한 대접을 받는다. 게다가 자연산 아니던가. 비단 장사해변 말고도 바위가 많은 해변가엔 잠수복 차림으로 물질하는 이들이 많은데, 고리매를 뜯거나 문어를 잡는 이들이다. 그래서인지 해변가엔 한 집 건너 한 집이 맛집이다. 게다가 최근엔 해변가 목 좋은 곳에 빵공장을 비롯한 디저트 카페들이 들어서며 SNS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장사해변에서 약 4㎞를 걸어 도착한 봉포항은 ‘파도에 갈리는 맷돌바위’가 유명한 곳이다. 새롭게 주변을 정비해 찾기도 쉽고 직접 바위로 내려가 확인해볼 수도 있는데, 높은 파도가 칠 때면 주변 바위와 부딪쳐 맷돌 가는 소리를 내기도 한다. 봉포항 방파제 바로 앞에 섬처럼 자리한 커다란 바위는 밀물 때면 섬이 되는데, 썰물 때 나가지 못한 물고기, 바위틈에 숨은 문어, 해산물들이 많아 더없이 좋은 자연산 어장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바로 앞 회센터는 낮에도 술 한잔 기울이는 이들로 북적인다.
이곳에서 약 2~3㎞를 더 걸으면 만나게 되는 청간정(淸澗亭)은 관동팔경(關東八景·강원도 동해안의 8개 명승지) 중 하나다. 정자에 오르면 청간천과 천진천이 합류하는 지점의 바다가 눈에 들어오는데 강과 바다가 만나는 풍경이 고요하고 진중해 일출 명소로 손꼽히기도 한다. 1560년에 처음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1953년 이승만 대통령의 지시로 정자를 보수했고 1981년 최규하 대통령의 지시로 완전 해체해 보수하면서 지금의 휴게소와 주차장을 갖추게 됐다. 청간정의 현판은 이승만 대통령이, 정자 안쪽에는 최규하 대통령이 쓴 친필시판이 있다.
요즘 뜨는 해변을 꼽으라면 단연 아야진해변이다. 사계절 인파가 몰리는 곳인데, 특히 백사장 모래가 곱고 해변에서 약 30m까지 수심이 1.5~2m로 얕아 스노클링이나 스쿠버다이빙을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MZ세대의 새로운 놀이터랄까. 그래서인지 먹을거리도 보기에 좋고 먹기에도 좋은, 다분히 인스타그래머블한 메뉴가 많다.
고성의 맛
· 자연산 물회- 바다에서 갓 잡아 올린 자연산 가자미, 오징어, 해삼 등에 각종 채소와 초고추장이 어우러져 담백하고 신선하다.
· 명태맑은탕- 고성군의 대표 어종인 명태로 요리해 비리지 않고 시원하다. 칼슘과 단백질이 풍부한 저지방 음식이다.
· 도치알탕- 겨울철 별미 중 하나로 잘 익은 김장김치를 넣고 끓이면 얼큰하고 개운하다.
· 고성막국수- 얼음이 둥둥 떠 있고 굵은 무가 먹음직스러운 동치미를 떠 국수에 부어 먹는데 그 맛이 담백하다.
· 문어숙회- 고성 청정어장에서 잡히는 문어를 살짝 데쳐 기름장에 찍어 먹는다.
· 도루묵찌개- 12월 겨울이 제철인 도루묵은 알이 꽉 차 맛이 일품이다.
고성 축제
· 대문어축제- 매년 5월 대진항 일원에서 개최된다. 저도어장의 대표 어종인 대문어와 자연산 수산물이 주인공인 수산먹거리 축제다.
· 하늬라벤더팜- 매년 6월이면 보랏빛 라벤더가 만발한다. 다양한 라벤더 체험(향수, 향주머니, 비누 만들기 등)이 가능하고 향기음악회 등 공연을 즐길 수 있다.
[글·사진 안재형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51호 (2023년 4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