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있는 디즈니랜드에는 ‘어벤져스 캠퍼스’가 있다. 이곳은 마블의 영웅들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장소다. 길을 걷다 보면 스파이더맨이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뛰어다니고, 새롭게 등장한 캡틴아메리카인 팔콘이 손을 흔들며 말을 건넨다. 어벤져스 캠퍼스는 영화의 스토리라인과 직접 맞닿아있다.
새롭게 만든 놀이기구인 ‘스파이더맨 어드벤처’는 아이언맨인 토니 스타크가 스파이더맨인 피터 파커에게 새로운 공학단체를 만들어볼 것을 권유하면서 옛 스타크의 공장 건물 일부를 떼어준 영화 스토리에 착안했다. 스파이더맨 어드벤처 건물에는 스타크를 위한 주차 공간 표지판까지 있을 정도다. 모든 것을 섬세하게 갖춰 놓았다. 압권은 로봇이다. 스파이더맨 스턴트맨과 로봇이 30분 단위로 쇼를 한다. 스턴트맨이 텀블링을 하면서 건물 안으로 사라지면, 로봇 스파이더맨이 인간 스파이더맨으로 분장해 하늘을 나는 것이다.
▶스턴트 로봇이 스파이더맨으로 분장
지난 9월 열린 격년제 월트디즈니컴퍼니의 팬미팅인 ‘D23’에서 밥 체이펙 최고경영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어벤져스 캠퍼스가 멀티버스에 더 깊숙이 들어갈 것입니다. 이를 위해 어벤져스 캠퍼스를 확장할 계획이죠. 디즈니+는 단순한 스트리밍 서비스가 아니거든요. 디즈니는 물리적이고 디지털적인 세계를 혼합하는 차세대 스토리텔링 플랫폼입니다.”
콘텐츠 스토리→로봇 개발→디즈니랜드에 몰입형 경험 선사→상품 판매 확대→충성고객 증대라는 선순환인 플라이휠을 크게 돌리고 있는 대목이다. 실제로 체이펙 CEO가 강조한 ‘멀티버스’는 어벤져스 시리즈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 등장하는 다중우주 개념이다. 시공간이 여럿 있어 마치 다른 세상인데 같은 세상이다. 즉, 체이펙 CEO가 디즈니 역시 디지털과 물리적 세계를 오가겠다는 포부를 밝힌 것이다.
디즈니는 막대한 지적재산권(IP)을 보유하고 있다. 메가 브랜드만 놓고 보면 디즈니스튜디오와 스타워즈를 소유한 루카스필름, 마블의 어벤져스, abc, ESPN, 내셔널지오그래픽 등 수두룩하다. 이에 더해 디즈니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전 세계 12개의 테마파크에는 평균적으로 매년 1억4500만 명이 방문한다. 디즈니는 이에 대해 “이는 월드컵 경기장을 찾는 관중보다 2000배나 많은 숫자”라고 설명했다. 이런 선순환 구조에 2021년 매출액만 100조원이 넘는다.
디즈니가 로봇을 만드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디지털 콘텐츠와 물리적 리조트를 연결하기 위한 고리다. 디즈니는 이에 대해 ‘몰입형 스토리텔링(immersive storytelling)’이라고 평가한다. 고객이 상상과 현실을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 목적이다. LA 디즈니랜드에 있는 스파이더맨쇼가 대표적이다. 사람과 로봇이 몰래 교차로 나와 스파이더맨의 퍼포먼스를 연출한다. 아이들은 진짜 배우로 착각하고 사인을 해달라고 따라다닐 정도다. 로봇을 사용해 디지털과 물리적 세상을 혼합한 대표적인 사례다.
디즈니는 이를 위해 수년간 스턴트 로봇을 연구했다. 공중으로 로봇을 던졌을 때 마치 인간이 하늘에서 공중제비를 도는 것처럼 보이기 위한 일환이다. 실제로 스파이더맨쇼에 등장하는 스파이더맨은 20m에 달하는 높이를 안전선 없이 점프하는 장면을 연출한다. 물론 로봇이다. 해당 로봇은 스턴트로닉스(Stuntronics)라는 프로젝트에 따라 개발됐다. 로봇은 중심을 제어하는 것이 목적이다. 또 자율적으로 회전할 수 있다.
이를 한 단계 더 발전시켜 밧줄을 잡고 관절을 움직이면서 적당한 시간에 밧줄을 던지고 점프할 수 있도록 개발했다. 이를 위해 스윙 센서를 부착해 각도와 위치를 측정한다. 아울러 가속도계와 각도 측정기가 탑재돼 있으며, 야외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바람의 영향도 고려한다. 착지하는 순간 충격을 줄이고자 도착 지점에서 감속하도록 설계했다.
부품도 다르다. 하루에 수십 번씩 던져지기 때문에 3D 프린터로 수지 부품을 사용했다. 이는 센서 손상 없이 외부 표피만 망가지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해에는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에 출연한 ‘그루트’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로봇을 공개했다. 로봇 그루트는 앙증맞은 크기로 한 다리를 들어 올릴 수 있다. 디즈니는 해당 캐릭터를 디즈니랜드에 투입해 고객들에게 마치 영화 현장 한복판에 와있는 것 같은 경험을 선사한다는 방침이다.
▶로봇으로 몰입형 스토리텔링 강화
디즈니가 추구하고 있는 이머시브 스토리텔링은 2020년대 이후 급부상한 개념이다. 모든 기업의 꿈은 막강한 브랜드 파워를 보유하는 것이다. 막강한 브랜드를 소유하려면 그만큼 자신이 갖고 있는 스토리가 무엇보다 매력적이어야 한다. 따라서 고유의 콘텐츠에 몰입감을 더하고자 증강현실(AR) 가상현실(VR) 360° 비디오와 같은 새로운 테크놀로지를 접목한 것을 바로 이머시브 스토리텔링이라고 부른다.
이머시브 스토리텔링을 도입한 기업은 사실 디즈니뿐만은 아니다. 신발 업체 머렐(Merrell)은 고객이 어떤 신발을 신어야 적합한지 알려주고자 가상현실 세계를 만들기도 했다. 산비탈 산책로 등반 등에 어울리는 신발을 보여주기 위한 일환이다. 강력한 몰입감은 고객이 상상을 마치 현실처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포브스에 따르면, 이머시브 스토리텔링에서 테크놀로지는 이야기가 전달되는 방식과 청중과 상호 작용하고 경험하는 방식을 규정한다. 특히 고객의 감정과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요소들을 사용한다. 오늘날 마케팅의 초점이 제품에서 고객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디즈니는 올 들어 애플의 게임 담당자였던 마크 보존을 영입해 넥스트 스토리텔링·크리에이티브 경험 담당 부사장으로 임명한 바 있다. 이머시브 스토리텔링 전반에 걸쳐 연구를 하고 있다는 평가다. 당시 체이펙 CEO는 “지금까지 미디어의 정의를 무너뜨릴 때”라면서 “물리적이고도 디지털적인 스토리텔링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각종 디지털 콘텐츠를 물리적으로 구현하는 작업은 디즈니의 이미지니어링(Imagineering)이 맡고 있다. 이미지니어링은 상상하다(Imagine)와 엔지니어(Engineer)를 합한 단어다. 디즈니의 대표적인 연구개발(R&D) 조직이다. 이미지니어링은 테마파크 설계 담당인 WED엔터프라이즈와 부동산 담당 계열인 디즈니개발컴퍼니를 합병해 탄생한 조직이다.
고객 감동이란 아이디어는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가 일찌감치 고안했다. 월트 디즈니는 원래 1950년대에 모든 미국 대통령에게 경의를 표하는 로봇 퍼포먼스를 구상했는데, 당시 기술로는 어림도 없어서 1964년 처음으로 링컨 대통령이 나와 미국의 역사를 설명하는 ‘링컨과 함께하는 멋진 순간들’이라는 쇼를 창조했다. 이로 인해 오늘날 미국의 할아버지들이 당시 경험을 잊지 못해 손자들을 데리고 이 쇼를 보는 것이 꿈일 정도라는 소문마저 있다.
▶매출 증대 위한 선순환 바퀴 돌려
엔지니어링 기업은 건물과 빌딩을 짓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미지니어링은 일반 엔지니어링 회사와는 사뭇 다르다. 직원들은 예산을 초월해 대담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직원들의 담대함을 회사가 높이 평가한다는 설명이다. 모토는 ‘꿈꿀 수 있다면, 만들 수 있다(If it can be dreamt, it can be built)’다.
디즈니랜드는 1955년 7월에 문을 열었다. 이후 월트 디즈니 창업자는 1964년 뉴욕만국박람회와 1965년 세계박람회에서 매우 이색적인 아이디어를 선보였다. 놀이동산을 기술 중심으로 탈바꿈하자는 아이디어다. 바로 이것이 오늘날 이미지니어링의 시작이라는 설명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의 브렌트 스트롱 상무는 D23 이벤트에서 “디즈니 캘리포니아 어드벤처에 있는 어벤져스 캠퍼스를 확장한다”면서 “앞으로 많은 어린이들이 슈퍼히어로가 돼 어벤져스에 합류하는 꿈을 꿀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마이클 세르나 상무는 “어벤져스 캠퍼스에는 웹슬링어(web-slingers)라는 어트랙션이 있다”면서 “3D 안경을 착용하고 스파이더맨처럼 수영도 할 수 있고 거미줄을 뽑아낼 수도 있다. 컴퓨터 비전을 활용해 사람의 손을 인식해 게임에 적용한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웹슬링어는 다양한 히어로로 확장될 예정이다. 웹 테크 파워 칼럼니스트라고 불리는 새로운 건틀릿을 적용해 아이언맨이 착용하는 장갑인 리펄서를 잡으면 어트랙션에 곧장 동기화돼 고객이 아이언맨처럼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디즈니는 VR 글라스가 몰입도를 낮춘다는 판단하에 카메라를 활용해 입체를 구현하는 방법에 대해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또 디즈니는 식당에 있는 메뉴마저 영화 속에 나오는 음식으로 변경하고 있다. 어벤져스 캠퍼스 내에는 <가디언 오브 갤럭시>에서나 볼 법한 외계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디즈니가 이처럼 이미지니어링을 통해 바라는 것은 플라이휠이다. 플라이휠은 제프 베이조스가 고안한 단어로, 우리말로는 매출 확대를 위한 선순환 정도에 해당된다. 즉 콘텐츠 IP를 활용해 디즈니랜드 고객을 유치하고, 다시 고객들과 호흡해 상품까지 파는 것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의 레베카 캠벨 인터내셔널 콘텐츠·오퍼레이션 회장은 기자들과 만나 “디즈니 사무실에는 연필로 그린 플라이휠이 있다”면서 “창업자인 월트 디즈니는 예전부터 테마파크를 만들어 소비자들이 캐릭터들을 직접 만나고 영화에서 본 장면을 어트랙션을 통해 다시 느끼는 등 브랜드와 개인적인 경험을 갖기를 원했다”고 설명했다.
플라이휠은 내연기관 명칭에서 따왔다. 내연기관을 비롯한 엔진에는 왕복운동을 회전운동으로 변환해주는 과정이 필요한데, 플라이휠은 회전 에너지를 저장하는 데 사용되는 회전 기계 장치를 뜻한다. 떠 있는 바퀴와 닮아서 플라이휠이다.
이는 경영과 비슷하다. 플라이휠이라는 용어를 처음 쓴 사람은 제프 베이조스 아마존 창업자다. 그는 가격을 낮추고 회전을 빨리 할수록 매출이 늘어 선순환으로 이어질 것으로 믿었다. 플라이휠이 돌면서 고객이 만족하면 고객 수가 늘어나고, 다시 트래픽이 향상되고, 상품을 추가하면 고객이 더 만족하는 구조다.
아울러 캠벨 회장은 “테마파크가 없는 곳에서도 어떻게 새로운 경험을 제공할지, 그리고 향후 100년 동안 제공할 새로운 경험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고민 중”이라면서 “AR, 메타버스 등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