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트주의를 조롱하는 듯한 소위 ‘B-급 감성’이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비선의 개인이 국정을 농단하는 세태를 풍자라도 하듯, 더욱 확산되는 추세다. 사실 일류보다 이류, 삼류에 애정을 느끼고 상류층 문화보다 하층민의 거리감성에 열광하는 현상은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다. 미국 빌보드 차트 1위 곡인 ‘블랙 비틀즈’를 부르는 레이 스레머드는 천재 힙합 가수로 불리지만 온몸을 뒤덮은 문신과 피어싱, 반창고 그리고 술이나 약물에 취한 듯 읊조리는 모습은 불량청소년 그 자체다. 인기가수 브루노 마스의 신곡 ‘24K’의 뮤직비디오를 보면 전용기와 값비싼 장신구, 술과 쾌락을 탐하는 졸부를 등장시킨다. 이외에도 전 세계 대중문화를 선도하는 빌보드에는 감옥과 탈옥, 강도와 음란한 짓을 일삼는 바닥 인생을 그린 내용이 유독 많다. 전문가들은 b-급 감성과 하류 문화가 인기를 끄는 이유에 대해 팍팍한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며 위로를 받거나 단순한 재미와 자극적 요소를 추구하는 경향을 보이는 것으로 진단한다.
베트멍
▷패션계 뉴스메이커 베트멍은 누구
2014년 파리의 디자이너 7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브랜드다. 베트멍(vetements, 불어로 ‘옷’)은 오버사이즈, 해체와 재조합, 패치워크로 요약되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선보인다. 소매나 어깨를 과장되게 표현하는 것은 물론이고 패딩, 데님, 트레이닝복처럼 정형화된 아이템도 신선하게 재해석하는 역량을 보여왔다. 2017년 봄여름을 겨냥한 파리컬렉션에서 베트멍은 런웨이를 파리 라파예트 백화점 복도로 옮긴 것처럼 연출했다. 놀라운 것은 무려 18개의 브랜드와 한꺼번에 협업한 디자인을 쏟아낸 것. 그야말로 선보인 게 아닌 쏟아냈다는 표현이 적합해 보인다. 패션업계에서 단일 브랜드와의 협업은 다반사이지만 열 개도 넘는 브랜드와 뭉친 일은 ‘사건’으로 회자되고 있다. 모델도 베트멍 디자이너들이 인스타그램에서 인연을 맺은 일반인을 썼다고 한다. 베트멍의 7명 디자이너 중에서 대표디자이너를 맡고 있는 뎀나 바잘리아는 정통 패션하우스 발렌시아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전격 발탁됐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온 패션 아웃사이더가 파리패션의 심장부에 들어갔다고 떠들썩했다. 제도권 패션계 관행에 개의치 않고 파격에 파격을 이어가는 베트멍의 행보가 주목된다.
베트멍
▷ A급 패션 럭셔리의 하락
A급 패션으로 분류되는 유럽을 근간으로 한 명품(럭셔리)들이 하향세를 타고 있다. 매출 부진도 문제지만 사업의 구심점인 디자이너들이 너도나도 빠져 나가고 있다. 1년에 서너 차례 살인적(?)으로 일정이 돌아가는 패션 사이클에 지친 디자이너들이 ‘번아웃’을 호소하며 패션계를 떠나가고 있는 것. 실제로 인기 정상을 달리던 유명 디자이너 알렉산더 맥퀸은 우울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약물중독을 고백했던 존 갈리아노를 비롯해 다수의 디자이너들의 계속되는 창작활동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디오르를 맡고 있던 라프 시몬스와 발맹의 알바 엘바즈가 ‘패션계의 이단아’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떠난 것이 다른 디자이너들에게도 영향을 주고 있다. 이외에도 ‘벨루티’, ‘브리오니’ 등 많은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사임을 했다. 이처럼 A급 브랜드의 디자이너들이 최고의 자리에서 이탈하는 이유는 대중들이 먼저 빠져나가는 걸 감지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배가 난파하기 직전에 새가 먼저 알아채고 이동하듯이 시류에 민감한 디자이너들이 소비자 마음이 일류와 최고급 지향의 기성패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음을 직감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짝퉁 재해석한 베트멍 옷 사러 수백 명 몰려
요즘 가장 핫(HOT)한 디자이너를 꼽으라면 단연 베트멍이다. 옛 소비에트 공화국의 조지아 출신의 뎀마 바질리아를 포함해 7명이 의기투합해 만든 브랜드다. 내전을 겪은 사회주의 국가 출신의 뎀마는 서구 유럽풍의 기존 패션 관점에서 보면 완전히 상식을 깬 파격적 의상들을 선보여 이목을 집중시켰다. 택배업체 DHL의 로고가 선명하게 찍힌 샛노란 티셔츠 하나에 무려 330달러(약 37만원)에 달하지만 칸예 웨스트, 리한나, 저스틴 비버 등 해외 유명인사들이 선호하는 브랜드로 유명세를 탔다. 지난해 10월 베트멍은 한국산 자사 ‘짝퉁’ 제품을 재해석한 상품을 한국에서만 판매하는 웃지 못 할 이벤트를 실시한다. 베트멍은 미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경기도 남양주시에서 단 하루 동안 오후 2시부터 7시까지 ‘오피셜 페이크 캡슐 컬렉션’을 판매한다고 밝혔다. 전 세계 나라 중 한국에서만 판매하는 이 컬렉션 가격대는 100만원을 호가하는 베트멍의 일반 컬렉션과 같지만, 자사 카피 제품을 재해석했다는 특징이 있다.
베트멍의 대표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는 “한국은 디자이너 브랜드의 카피가 많은 나라 중 하나인데, 베트멍의 제품을 신선하게 재해석한 제품들을 많이 발견했다. 그래서 베트멍의 카피제품을 응용한 새로운 캡슐 컬렉션을 만들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국은 한국산 카피를 비꼰 행사였지만 전날부터 수백 명이 몰렸고, 700개 한정판은 한 시간 만에 동이 났다. 베트멍의 한국산 짝퉁을 다시 따라 만든 상품에 열광한 젊은 소비자들 심리에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많은 팔로워를 거느린 인스타그램의 스타 avanope는 샤넬, 디올, 루이비통 등 명품 로고와 패턴들을 이용해 직접 만든 짝퉁들을 올려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요즘 젊은 세대는 고가의 명품들을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제품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지 않고, 로고를 응용해 직접 만든 풍자적이고 유머러스한 상품에 더욱 열광한다. 명품 짝퉁을 입거나 신으면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고 쿨(cool)하다고 여긴다.
투쿨포스쿨 광고
▶B급 정서를 활용한 광고 쏟아져
대한민국은 지금 ‘B급 문화’를 찾는 ‘B급 감성’이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광고, TV프로그램에서 재미없는 말장난쯤으로 여겼던 아재 개그나 지질한 모습을 보여주는 ‘병맛 코드’가 유행하고 있다. 유투브 조회 수 200만을 넘긴 투쿨포스쿨 광고는 여학생에서 무당까지 다양한 여성들이 마스카라를 잘 바르려 사투를 벌이는 장면으로 인기를 끌었다. 이 브랜드는 다른 경쟁사와 달리 유명 스타를 내세우는 대신 화장품에 귀여운 공룡 캐릭터를 넣은 실험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기성 세대들은 “화장품에 공룡 캐릭터를 모델로 쓴다고?”의문스러워 했지만 이 제품을 사용하는 10대 후반부터 20대 초반 소비자들의 호기심을 이끌어 냈고 이는 매출로 연결됐다.
B급 감성 마케팅이 A급 매출 효과로 이어진 대표적 사례 중 하나가 신세계닷컴(SSG.com)의 영문 머리글자를 소리나는 대로 읽은 ‘쓱’ 광고다. 이 광고는 배우 공유와 공효진을 앞세워 쇼핑몰 설명은 단 한마디도 없이 “코트 하나 ‘쓱’ 해야겠어요”, “마음에 ‘쓱’ 들어” 등의 대사로만 구성됐지만 SNS상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각종 패러디 영상이 등장했고, 긍정적 반응은 가파른 매출 성장세로 이어졌다.
LG유플러스가 발연기 논란으로 혹평을 받은 장수원을 모델로 내세운 광고도 시청자들에게 큰 웃음을 주며 회사에 대한 인지도를 높였다. 광고 영상 말미에 LG유플러스의 메인 문구인 ‘Follow Me’를 ‘발로발로미’라고 외쳐 재미를 선사했다. 광고업계에서는 이러한 현상을 ‘키치 마케팅’이 시대와 맞아떨어졌다고 평가한다. 키치(Kitsch)란 독일어로 ‘저속품, 유치한 예술작품’이라는 뜻으로, 촌스럽고 유치한 감성에 오락성이 가미된 마케팅 기법이다.
광고업계 관계자는 “감각적이고 가벼운 것을 좋아하며 심각한 것을 거부하려 드는 젊은 세대의 취향을 저격한 것”이라고 최근의 현상을 설명했다.
▶B급 병맛 <마음의소리>, <라디오스타> 인기비결
웹드라마 <마음의 소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 <마음의 소리>는 원작 자체가 ‘B급 개그’로 워낙 유명한 작품이다. 방송 시작부터 ‘한국 콘텐츠 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제작하고 싶었다’는 문구로 웃음을 자아낸 것. 드라마는 시종일관 B급 감성을 펼쳐냈고, 여기에 카메오를 십분 활용한 패러디도 더해져 눈길을 끌었다. <마음의 소리>는 TV캐스트 조회 수 3만 건을 넘기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독한 개그를 콘셉트로 하는 <라디오스타> 토크쇼도 500회를 넘어섰다. 프로그램 초창기에는 방송이 사라질지 모른다며 MC들이 “다음주에 봐요. 제발~”하고 엔딩을 할 정도로 성공을 장담하지 못했다. 하지만 10년 넘게 이어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B급 감성을 제대로 살려 시청자들의 웃음과 공감을 자아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폭로와 독설의 독한 개그는 비슷한 포맷의 토크쇼들 사이에서 차별화에 성공했다.
[김지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