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설마했다. 나중엔 황당했다. 그리곤 거리로 나섰다…. 시절이 하 수상하다. 소셜미디어는 이미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풍자와 패러디, 댓글이 점령했다. 자고 나면 들려오는 새로운 소식에 ‘드라마 같은 뉴스’가 한 달 넘게 이어지고 있다. 대통령의 지지도는 바닥인데 뉴스 시청률은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시국.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출판가에는 이른바 ‘시국 베스트셀러’가 등장했다.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이 국민적 분노를 일으키며 우리 사회를 다시 돌아보게 하는 책들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운명·정의란 무엇인가…
우선 정치·사회 분야의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눈에 띄게 늘었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지난 10월 14일부터 11월 7일까지 이 분야 판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37%나 껑충 뛰었다. 선봉에는 2014년 2월에 출간된 <대통령의 글쓰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에게 배우는 사람을 움직이는 글쓰기 비법>이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8년간 청와대 연설비서관실에서 일한 강원국 씨가 두 대통령에게 배운 글쓰기 비법을 40가지로 정리한 책이다. 최순실 관련 첫 보도가 전해진 지난 10월 24일부터 열흘간 이 책은 이전 열흘보다 무려 76배나 더 팔렸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해도 25배 늘었다. 출판사 측은 10월 마지막 주에만 2만 부를 새로 발행해 총 판매량이 10만 부를 넘어섰다고 전했다.
이 책은 11월 둘째 주 종합베스트셀러 2위(인터넷 교보문고)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방송인 김제동이 10월 마지막 주에 출간한 <그럴 때 있으시죠?>도 같은 기간 종합베스트셀러 4위(인터넷 교보문고)에 오를 만큼 인기다. 한 출판 관계자는 “시국 관련 발언에 거침없었던 그의 이력이 현시점의 분노와 이어지며 판매량을 늘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함세웅 신부와 주진우 기자가 서울, 부산, 대구, 대전 등지에서 강연한 내용을 엮은 <악마 기자 정의 사제>, 송민순 전 외교부 장관의 <빙하는 움직인다>, 정청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회의원 사용법> 등도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로 회자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이미 수년 전 출간된 정치관련 책들이 다시금 베스트셀러에 오르기도 했다. 11월 첫째 주 예스24의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을 살펴보면 2013년에 출간된 유시민 전 장관의 <어떻게 살 것인가>와 2011년에 출간된 <국가란 무엇인가>가 각각 3위와 13위에 이름을 올렸다.
2010년에 출간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이다>는 5위에, 국내 출간된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2014년 출간)가 6위, 한때 ‘박근혜의 입’으로 통했던 전여옥 전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2012년 출간)이 15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출판사 편집부에 근무하는 한 관계자는 “베스트셀러 순위에 정치·사회 분야 책들이 새롭게 강세를 띠면서 관련 분야가 아니라면 출간 시기를 조정하는 출판사도 늘고 있다”며 “총선이나 대선 기간에는 정치인들의 서적이 붐을 이루기도 하는데 그런 시기가 당겨지는 느낌도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실제로 서점가에는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에 잠룡이라 불리는 정치인들의 책이 출간되고 있다. 안희정 충남도지사의 <콜라보네이션>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의 <강진일기>가 11월 첫째 주 예스24의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10위권과 20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안재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