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정육 공장이 밀집해 있던 미국 뉴욕 맨해튼 837번가 ‘미트패킹’ 지역(Meatpacking District).
비린내가 진동하고 파리가 들끓던 이곳에 최근 패션, IT, 광고, 미디어 기업이 몰려들면서 뉴욕의 유행을 선도하는 명소로 거듭났다.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휘트니 미술관(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이 이쪽으로 이전했고 고급 가구점, 개성 있는 갤러리, 디저트카페가 잔뜩 생겨났다. 울퉁불퉁한 보도블록에 공장을 리모델링해 들어선 미슐랭 스타 셰프의 레스토랑도 찾아볼 수 있다.
이곳에 지난 2월 삼성전자의 체험형 마케팅센터 ‘삼성 837’이 문을 열었다. 총 6층, 5100m² 규모로 세워진 이곳은 제품을 판매하는 곳이 아닌, 삼성전자 제품을 체험해보는 공간이다. 한창 뜨고 있는 번화가에 대규모 홍보 시설을 마련한 것을 보면 미국 시장 공략에 대한 삼성의 의지가 읽힌다.
837은 번지수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삼성은 각 숫자에 나름대로 의미를 부여해뒀다. 8은 미국인들이 열광하는 분야(패션, 기술, 요리, 음악, 스포츠, 웰빙, 예술, 엔터테인먼트)를 뜻하며 이 분야와 관련한 이벤트를 하루 3번씩 7일간 펼친다는 뜻을 갖는다. 2월에는 기술 이벤트의 일환으로, 바르셀로나에서 열렸던 갤럭시S7의 공개행사도 이곳에서 생중계됐다.
삼성 837 입구에 들어서니 55인치 상업용 디스플레이 96개를 이어붙인 큰 스크린이 한눈에 들어왔다. 입구(지하 1층) 앞에 마련된 카메라로 셀카를 찍고 전송버튼을 누르면 초대형 스크린에 내 얼굴이 나온다. 수만 방문객들의 인스타그램 계정을 통해 모여진 이미지가 모자이크처럼 구현돼 내 얼굴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입구에서부터 각 층에 이르기까지 삼성전자는 공간 콘셉트를 전부 고객 경험(CX)에 맞췄다. 이 때문인지 현지인의 발걸음도 끊이지 않는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5개월 동안 약 20만 명의 뉴요커가 다녀갔다. 주말에는 1층에 마련된 가상현실(VR) 체험관에 자녀들을 데려오는 가족 단위 방문객들로 북적인다.
삼성전자가 생각하는 고객 경험이란, 프리랜서 디자이너가 최근 포브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잘 나타난다. 삼성 837 인기 명소인 ‘소셜 갤럭시’를 기획한 아티스트 ‘켄조’는 “진정한 브랜드 가치는 소비자의 체험에서 나온다”며 “유통망에서 브랜드 가치를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했다. 소셜 갤럭시는 300여 개 스크린으로 이뤄진 터널로, 방문객이 삼성 837 입구에서 인스타그램 계정에 로그인하면 그간 올린 사진과 게시물, 태그와 댓글을 비디오 아트로 구성해주는 체험관이다. 삼성전자의 디스플레이와 디지털 기기가 자연스레 방문객의 일상 속에 스며드는 것이다. 앞선 켄조의 말처럼 삼성전자는 이곳을 단순한 마케팅 센터가 아닌 ‘컬추럴 데스티네이션’, ‘디지털 플레이그라운드’로 불리길 원했다.
유통 매장이 아니기에 소비자가 제품을 구매할 순 없다. 하지만 모바일 제품부터 TV, 냉장고까지 삼성전자의 제품과 관련한 콘텐츠 경험, 문화행사를 맘껏 즐길 수 있다.
방문객들은 삼성 837에서 웨어러블 기기를 차고 요가 수업을 받으며 신체 활동을 체크하고, 오븐으로 빵을 굽거나 TV쇼를 관람하기도 한다. 전부 삼성전자 제품을 활용한 이벤트다.
2층에 당도하면 벽면에 새겨진 ‘The 837 Techie’란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기술자들을 친근하게 부르는 명칭과 함께 한 편에선 달콤한 도넛 냄새가 풍겼다. 이곳은 삼성전자 제품을 수리하거나 제품 구매 후 사용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공간이다.
신혜경 삼성전자 미주법인 부장은 “한 달 900여 건의 수리 요청을 받고 있으며 모바일 기기는 즉시 수리해줘 만족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소비자들은 제품을 고치는 동안 도넛을 먹으며 다른 제품을 둘러볼 수 있다. 기다리는 동안 지루하지 않게 했다는 게 신 부장의 설명이다.
삼성전자의 미주 법인이 뉴욕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뉴저지에 있었던 터라 바쁜 뉴요커들은 제품 수리나 상담을 받는 것에 부담을 느꼈을 것이다. 신 부장은 “맨해튼 시내에서 소비자를 직접 만나 좋은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1층과 2층이 제품 소비자를 만나는 공간이라면 3층부터는 조금 다르다. 삼성전자의 B2B(기업 간 거래) 고객을 위한 공간이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관계자가 아니라면 일반인이 드나들 순 없다. 하지만 제품 마케팅 공간과 마찬가지로 이곳 역시 최대한 고객사를 배려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화이트톤 인테리어로 꾸며진 접견실에는 모던한 의자와 테이블이 놓여 있어 편안한 느낌을 줬다. 한 미팅 룸에 들어서니 한쪽 벽면에 엄청난 크기의 터치패드형 디스플레이가 들어차 있었다. 이를 손바닥으로 조작하니 삼성전자 제품과 기술 설명이 이어졌다. 미팅 룸을 지나 발코니에 들어서면 미트패킹 지역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기분을 전환할 수 있다. 몇몇 고객사 관계자들은 미팅을 마치고 발코니에 마련된 의자에 몸을 누여 햇볕을 쪼이기도 했다.
삼성 837은 연중무휴로 평일 오전 11시부터 밤 9시,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밤 10시, 일요일에는 오전 10시부터 밤 8시까지 운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