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훈련이 끝난 뒤 미 해군은 그동안의 해군 운용전략을 전면 수정할 정도로 큰 충격을 받았다. 항공모함 위주의 호위 전단을 꾸렸던 과거와 달리, 호위전단에 반드시 잠수함을 추가하도록 전략을 수정한 것. 훈련에 참가했던 일본 해상 자위대 역시 큰 충격을 받고 잠수함 전략개발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지난 2014년 10월 27일. 대우조선해양(대표 고재호)이 자리한 거제도 옥포조선소에서 뜻 깊은 행사가 열렸다. 미 해군을 비롯한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간담을 서늘케 했던 장보고함 3차 사업의 시작을 알리는 강제 절단식이 진행됐기 때문이다.
(위)미국이 구입한 209급 잠수함 (아래)대우조선해양 잠수함 유개도크
국내 기술로 개발되는 최첨단 잠수함
차세대 잠수함 개발 3차 사업(일명 장보고Ⅲ)은 2005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 결정됐다. 독일에서 제공하는 설계가 아닌 국내 기술력을 동원해 설계부터 조립까지 모두 국내에서 이뤄진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사실 장보고 사업은 진행되기까지 10여 년의 시간이 걸렸다. 2005년 사업결정 이후 2007년 본격적인 체계개발에 들어간 장보고Ⅲ는 6년에 걸쳐 설계에만 매달렸으며, 최근 방위사업청 주관으로 구성된 산학연 및 군 전문가 150여 명의 TF팀이 상세 설계검토(CDR: Critical Design Review)를 통해 실제 건조가 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이에 방위사업청과 대우조선은 지난 10월 27일 강제 절단식을 통해 실제 건조에 들어갔다. 국내 기술력으로 개발되는 장보고Ⅲ는 대당 8000억원이 넘는다.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대우조선은 장보고Ⅲ 2척을 우선 건조하는데, 계약 규모는 1조6700억원이라고 밝혔다.
가장 관심을 끄는 부분은 성능이다. 방위사업청과 대우조선이 밝힌 대로라면 동급 잠수함 중에서는 세계 최고 성능을 보유하고 있다. 설계상 수중 배수량은 3000톤급으로 일본의 소류급이나 호주의 콜린스(Collins)보다 작지만, 성능은 대단히 강력하다.
먼저 고성능 연료전지를 이용한 AIP(Air-Independent Propulsion)체계를 적용해 수중에서 최대 3주 이상 작전할 수 있고, 기존의 장보고급이나 손원일급보다 더 깊이 잠수할 수 있다. 잠수함은 잠항 및 잠수 능력이 필수적이다. 오랫동안 깊은 곳에 숨어 오직 단 한순간의 공격으로 상대방을 격침시키는 게 비대칭 전력의 핵심인 만큼, 기존 잠수함보다 더 좋은 성능을 보유해 잠대함 전력에서도 부족하지 않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장능력은 아예 체급을 뛰어넘는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다. 선체 중앙에 6기의 수직발사관을 탑재해 사거리 1500km에 달하는 천룡 함대지 순항미사일이나 현재 개발 중인 초음속 대함 미사일 등을 탑재할 수 있다. 또 함수의 533mm 어뢰발사관을 통해 잠대함 미사일이나 어뢰 등도 운용할 수 있어 무장 능력은 소류급이나 콜린스급보다 대단히 뛰어나다.
그러나 장보고Ⅲ가 방산업계와 군사전문가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로 추진기관의 변경 가능성 때문이다. 대우조선과 방위사업청에 따르면 장보고Ⅲ는 일단 기존의 디젤 엔진을 추진기관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기존 디젤 엔진을 개량한 만큼 더 강한 성능이 기대되지만, 여전히 스노클을 함 외부로 배출해야 하는 치명적인 단점은 그대로다.
주목할 부분은 추진기관 변경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설계 작업을 했다는 점이다. 결국 장보고Ⅲ는 개발 과정은 물론, 개발 이후에도 디젤 엔진을 떼어 내고, 다른 종류의 엔진을 장착할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렇다면 장보고Ⅲ에 장착될 새로운 엔진은 어떤 것이 있을까. 군사전문가들은 두산중공업과 한국원자력연구원이 개발한 한국 보급형 원자로 ‘SMART-P’를 주목하고 있다. SMART-P는 담수화 설비시설 및 중소형 도시 발전용으로 개발하고 있는 소형 원자로로, 사이즈는 작지만 효용은 뛰어나다.
특히 이 원자로가 러시아의 원자력 잠수함용 원자로 제작사인 OKBM의 설계도를 기본으로 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장보고Ⅲ의 원자로 추진기관 변경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제원을 따져 봐도 SMART-P를 장보고Ⅲ에 사용하기에 알맞다. 열 출력이 65MwT 수준이기 때문에 영국의 HMS 발리언트(Valiant·4200톤급, 70MwT), 인도의 아리한트(INS Arihant·6000톤급, 85MwT)와 비슷하며, 미국의 LA(USS Los Angeles·6000톤급, 120MwT)의 절반 수준으로 3000톤급 수준인 장보고Ⅲ의 추진기관으로 적합하다.
다만 사용되는 핵연료의 농축도가 20% 미만이 될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나 영국, 러시아의 핵잠보다 핵연료 교체 주기가 짧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이러한 원자로를 장보고Ⅲ 개량형의 동력으로 삼을 경우 기존 디젤 잠수함보다 압도적인 지속 잠항능력을 가질 수 있어 한국 해군의 수중 작전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꿀 수 있다.
핵추진 잠수함, 가능성은
그렇다면 장보고Ⅲ는 정말로 한국형 원자로를 심장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이에 대한 해답은 현재까지 ‘NO’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한 후, 미국과 한미원자력조약까지 체결해 독자적인 원자로 개발조차 미국과 협의를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개발계획을 승인해줄 리가 만무하다는 게 방위산업체들의 예상이다. 한 방위사업체 관계자는 “핵추진 잠수함 개발보다는 중형 디젤 잠수함을 다수 보유하면서 무기체계를 첨단화하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뿐 아니다. 비용도 만만찮다.
현재 개발 중인 장보고Ⅲ는 대당 가격이 9000억원에 달한다. 이 가격은 현재 설계과정에서 나온 가격이기 때문에 건조 과정이나 무장 체계를 장착하는 과정에서 얼마나 더 늘어날지 알 수 없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한국형 원자로를 설치하기 위해 설계를 변경할 경우, 장보고Ⅲ의 가격은 최소 1조5000억원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며 “여기에 핵추진 잠수함에 들어가는 각종 장비들이 추가될 경우 완성된 가격은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해군 역시 부정적인 반응이다. 현재 개발 중인 장보고Ⅲ가 3000톤급인 만큼 굳이 원자로를 설치할 이유가 없다는 게 해군의 판단이다. 방위사업청 내 해군 관계자는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할 수 있다면 해군력 증강에 더 없이 좋겠지만, 3000톤급이라면 얘기가 다르다”며 “강력한 비대칭 전력으로서의 핵추진 잠수함이라면 지금의 장보고Ⅲ보다 훨씬 덩치가 큰 5000톤급 이상의 잠수함을 건조해야 원자로를 장착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동급 최강의 공격성능부터 핵추진 잠수함으로의 변신 가능성까지 품고 있는 해군의 ‘장보고Ⅲ’가 과연 어떻게 개발될지 앞으로의 행보가 기대된다.
전 세계 480여 척 잠수함 중 60%가 동북아에?
바닷속에서 활동하는 잠수함은 대체 얼마나 많을까.
잠수함 자체가 군사비밀인 관계로 정확한 수량이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군사전문가들에 따르면 전 세계 잠수함의 수는 500여 대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중 미국과 러시아, 중국, 일본이 222척의 잠수함을 보유하고 있다. 여기에 한국과 북한이 각각 12척과 61척을 보유하고 있다.
잠수함은 배수량과 건조 목적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의 경우 209, 212, 214 등 숫자를 사용하는데, 잠수함을 건조한 독일 HDW조선소의 고유모델명을 그대로 사용한 경우다. 미국은 지명을 사용한다. 버지니아급과 오하이오급, 로스엔젤레스급 등 6가지로 구분한다. 중국은 주로 옛 왕조의 이름을 잠수함에 사용하고 있다. 송급과 진급, 한급 등 9가지로 분류된다.
반면 냉전시대로 인해 이름이 비밀에 부쳐졌던 러시아와 북한의 잠수함은 주로 이를 발견한 서방 국가들에 의해 다양한 형태로 이름이 붙여졌다. 로미오급, 줄리엣급, 유고급 등이 대표적이다. 규모에 따라 잠수함을 나눌 수 있다면, 건조 순서에 따라 다른 이름도 갖게 된다. 우리 해군이 209급 잠수함 1번함에 장보고를, 2번함 이종무, 3번함 나대용 등의 이름을 붙인 것이 대표적이다. 214급 잠수함의 경우 1번 손원일함, 2번 정지함, 3번 안중근함, 4번 윤봉길함 등 왜군 및 일본군과 싸운 위인들의 이름을 붙였다. 미국 역시 1959년 최초의 전략 원자력 잠수함을 만들며,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을 함명으로 사용했다.
냉전시대 개발된 최강의 전략원잠에는 ‘씨울프’란 동물이름을 사용했지만, 이후 모두 지명으로 대체했다. 전 세계 같은 방식으로 구분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원자력 잠수함이 그렇다. 가장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는 원자력 잠수함의 경우 공격용 잠수함을 ‘공격원잠(SSN)’, 수중 탄도미사일(SLBM:Submarine Launched Ballistic Missile)을 장착하면 ‘전략원잠(SSBM)’, 순항미사일을 장착하면 ‘순항미사일원잠(SSGN)’으로 분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