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영원함’의 상징이었던 다이아몬드 시장이 역사상 가장 극적인 격변기를 맞고 있다. 2022년부터 이어진 가파른 하락세가 겨우 바닥을 찍고 희미한 회복의 기미를 보이던 찰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전격적인 고율 관세 발표가 이 불씨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세계 다이아몬드 연마의 90%를 담당하는 인도와 주얼리 제조의 중심지인 중국이 관세 대상국에 포함되면서 글로벌 다이아몬드 산업은 새로운 위기를 맞았다. 이 전례 없는 보호무역 정책은 오랜 세월 형성된 다이아몬드 공급망에 지각변동을 예고했고, 글로벌 시장은 근본적인 구조 재편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다이아몬드 시장 침체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첫째, 글로벌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구매력 약화가 사치품 소비를 위축시켰다. 코로나19 시기에 일시적으로 나타났던 보복 소비 현상은 2022년 이후 급속히 사그라졌고, 지속적인 물가 상승과 고금리 환경은 소비자들의 지갑을 닫게 만들었다.
둘째, 중국 시장의 급변이 다이아몬드 수요에 직격탄을 날렸다. 한때 다이아몬드의 주요 소비국이었던 중국은 젊은 세대의 결혼 미루기 현상과 높은 청년 실업률, 부동산 시장 침체가 겹치면서 사치품 시장이 급격히 위축되었다. 특히 소형 다이아몬드 수요 감소는 전체 시장 공급망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셋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G7의 러시아산 다이아몬드 제재가 시장에 혼란을 불러일으켰다. 세계 다이아몬드 원석 공급량의 약 30%를 차지하는 러시아가 제재 대상이 되면서 공급망이 심각한 타격을 입은 것이다.
특히 러시아산 다이아몬드를 보유한 유통업체들이 재고를 서둘러 처분하려는 움직임이 두드러지며 시장에 단기적인 공급 과잉 현상이 나타났다. 넷째,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급성장이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을 압박했다. 가격 경쟁력과 윤리적 생산이라는 장점을 앞세운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특히 소형 다이아몬드 시장에서 급속히 점유율을 높였다. 여기에는 경험 소비를 선호하는 MZ 세대의 가치관 변화도 한몫했다.
그나마 시장이 미약한 회복세를 보이던 2025년 4월, 트럼프 대통령은 고율 관세부과를 발표했다. 인도와 중국 같은 주요 다이아몬드 가공국들이 관세 대상국에 포함되면서 글로벌 다이아몬드 시장은 큰 충격에 빠졌다. 세계 다이아몬드 연마의 90% 이상을 담당하는 인도에는 한시적 유예 기간이 적용되어 있지만, 이후 본격적인 관세가 실현되면 다이아몬드 가격 상승과 수요 감소라는 이중고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다이아몬드 가격 지수를 발행하는 라파포트 그룹의 창립자 마틴 라파포트는 이미 10%의 기본 관세가 반영되고 있는 상황에 관세가 다이아몬드 비즈니스의 상시적 요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세계 다이아몬드 소비의 약 40%를 차지하는 미국 시장의 변화는 전체 산업 지형을 흔들고 있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이 장기화될 경우, 가격 변동을 넘어 글로벌 공급망의 재편으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중국은 유예조차 없이 최고율 관세 폭탄을 맞았다. 세계 주얼리 제조의 핵심 축을 담당하던 중국 업체들은 막힌 미국 수출길을 피해 유럽과 아시아 시장으로 급선회하는 중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눈여겨봐야 할 점은 중국과 인도가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글로벌 생산기지라는 사실이다. 세계 생산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중국과 급성장 중인 인도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가 관세 장벽에 막히면 시장 판도는 바뀔 수밖에 없다. 그동안 ‘착한 가격’으로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을 빠르게 잠식했던 랩그로운 다이아몬드는 관세로 인한 가격 상승으로 경쟁력에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이러한 상황은 천연 다이아몬드 업계에 잠시 숨통을 틔울 수 있지만, 인도의 수라트와 뭄바이 같은 다이아몬드 가공 허브가 흔들리면 전체 공급망의 병목 현상 역시 피할 수 없다. 인도가 다이아몬드 가공 산업을 장악하게 된 배경에는 인건비 이점뿐 아니라 저금리 대출 지원과 수출 촉진 정책 같은 정부 차원의 전략적 지원이 있었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미국 내 다이아몬드 업체들은 새로운 기회를 맞았지만, 현실적 장벽도 존재한다. 엄격한 ‘Made in USA’ 규정과 원자재에 대한 관세는 실질적인 국내 제조 부흥을 가로막는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 또한 인도와 중국이 수십 년간 쌓아온 전문성과 인프라를 단기간에 따라잡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대체 재료 수요 증가와 제3국 시장으로의 공급망 재편이 가속화될 가능성이 크다. 업계는 관세라는 새로운 변수에 맞춰 전략을 재조정하는 과도기를 겪게 될 것이다.
다이아몬드 시장은 역설적 국면을 맞고 있다. 2025년 초의 회복 기미가 미국 관세 정책으로 불확실해진 가운데 희소성 높은 고품질 천연 다이아몬드는 이러한 혼란 속에서도 가치를 유지할 전망이다. 글로벌 다이아몬드 공급망이 재편되는 과정에서 가공업체들은 비용 상승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것인지 아니면 자체 흡수할 것인지 고민하며 새로운 생존 전략을 모색 중이다. 한편, 다이아몬드의 문화적 의미도 진화하고 있다. 전통적인 결혼과 약혼의 상징을 넘어 이제 다이아몬드는 개인의 성취와 자기 성장을 기념하는 도구로 확장되고 있다. ‘나를 위한 선물’이란 트렌드가 확산되면서 승진, 졸업, 창업 등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기념하는 다이아몬드 수요가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글로벌 다이아몬드 산업은 이제 가격 경쟁력, 윤리적 소비 가치, 투자 안정성이라는 세 가지 축을 중심으로 깊은 변화를 겪고 있다. 양극화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각 기업들은 자신만의 경쟁력을 재정립하고 변화하는 소비자 니즈와 복잡한 글로벌 무역 환경에 신속히 적응해야 한다. 특히 랩그로운 다이아몬드의 급성장이 천연 다이아몬드 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럭셔리 소비자와 일반 소비자의 요구 변화는 향후 시장의 중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다. 미국 관세 정책이 던진 새로운 도전에도 불구하고 다이아몬드 산업은 코로나19, 2008년 금융위기, 9·11 테러 이후에도 그랬듯이 결국 균형점을 찾아갈 것이다. 이 과정에서 시장 재편성과 소비자 행동의 변화에 민감하게 대응할 수 있는 기업만이 다가올 새로운 다이아몬드 시대의 주역으로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윤성원 주얼리 칼럼니스트·한양대 보석학과 겸임교수
주얼리의 역사, 보석학적 정보, 트렌드, 경매투자, 디자인, 마케팅 등 모든 분야를 다루는 주얼리 스페셜리스트이자 한양대 공학대학원 보석학과 겸임교수다. 저서로 <젬스톤 매혹의 컬러> <세계를 매혹한 돌> <세계를 움직인 돌> <보석, 세상을 유혹하다> <나만의 주얼리 쇼핑법> <잇 주얼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