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 | “양적완화로는 경제회복 어려워, 자유경제원칙 복원 위한 개혁이 해법”
이상덕 기자
입력 : 2016.11.09 15:26:58
수정 : 2016.11.09 15:32:39
‘인류는 1980년대 같은 경제 대호황기를 다시 맞이할 수 있을까. 아니면 저성장, 저소비, 저투자를 가리키는 뉴노멀(New Normal) 시대를 영원히 받아들여 이에 걸맞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일까.’
세계은행이 올해 6월 발표한 내년도 글로벌 성장률 전망치는 2.8%다. 1월 3.1%에서 다시 0.3%포인트를 하향 조정한 것이다. 세계 성장률은 갈수록 약해지고 있다. 이를 둘러싼 경제 현상 진단과 회복 방안을 놓고 석학들의 논쟁이 뜨겁다. 케인지언(Keynesian)의 대표 주자인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오늘날 경제를 구조적 장기침체(secular stagnation)로 진단했다. 전 세계 경제가 성숙 단계에 진입하면서 일반적인 정책 수단으로는 수요 창출이 어렵기 때문에 대규모 경기부양정책을 통해 성장률을 높이자는 제언이다. 하지만 통화정책 운용의 지침인 ‘테일러 준칙’을 창시한 세계적 석학인 존 테일러 스탠퍼드대 교수는 이 같은 진단과 해법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다. 왜 그는 케인지언의 주장에 찬성하지 않는 것일까.
매일경제신문과 럭스멘이 17회 세계지식포럼을 맞아 방한한 존 테일러 교수를 인터뷰와 세션(테일러준칙: 글로벌 금리 향방)을 통해 만났다. 존 테일러 교수에게 세계 경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물었다.
테일러 교수는 지도 한 장을 들어 보였다. IMF가 전망한 올해 글로벌 성장률이다. 빨간색이 칠해져 있는 국가는 성장률이 0~3%인 국가이고, 파란색은 3~10%인 국가다. 올해 글로벌 성장률 평균치는 3% 수준. 이에 대해 테일러 교수는 “지도에서 색깔이 다른 것은 개도국이냐 선진국이냐 같이 경제 규모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다”라면서 “한국·미국·일본·유럽 모두 0~3%에 있지 않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한 장의 사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사진은 새장 안에 독수리가 갇혀 있는 모습이다. 여기서 잠깐. 새장인 케이지(Cage)와 케인지언(Keynesian)은 운율이 비슷하다. 독수리는 미국을 상징한다. 테일러 교수는 “최근 이코노미스트지 커버에 사진 한 장이 실렸는데 거북이에 채찍질을 하는 미국인이었다”면서 “아무리 거북이(느린 경제 성장률)에 채찍질을 해도 달라지지 않는다고 누군가는 주장하지만 나는 달리 생각한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그는 “우리는 새장 안에 갇혀 있는 독수리를 날려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케인지언 때문에 세계 경제가 실패했다고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금리 인하해도 수요진작 성과 없어
테일러 교수는 미국의 사례를 들어 케인지언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우선 경기부양책의 효과다. 1882년부터 지금껏 발발한 금융위기와 그 극복 과정을 살펴보면, 위기 직후 2년간 경기 반등기에서는 연평균 6%에 달하는 성장률이 나타났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직후에는 2%에 그쳤다. 또 미국 기준금리는 1950~1990년 연평균 4%대에 달했지만 1995년 이후 지금까지 연평균 2%대로 떨어졌다. 기준금리 인하를 통해 수요 진작을 했지만 성과는 없었다는 설명이다.
또 다른 예도 들었다. 고용지표다. 미국의 인구 대비 경제활동인구 비중은 2000년 67%에서 현재 62.5%로 하락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오늘날 65.5%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3%포인트나 격차가 있는 것이다. 돈을 풀었어도 고용 여건은 개선이 안 됐다는 뜻이다.
테일러 교수는 소비 촉진도 되지 않았다고 힘을 줘 말한다. 그는 “금융위기를 전후해 케인지언들은 가계가 소비를 안 하고 저축을 하기 때문에 경제가 활성화되지 않고 있다고 진단했다”면서 “하지만 위기 이후 돈을 풀어 저축률을 1980년대보다 떨어뜨렸는데도 현재 소비가 살아났냐”고 반문했다. 성장, 고용, 소비 어떤 면에서도 경기부양정책의 약발이 먹히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양적완화는 버터플라이이펙트 초래
테일러 교수는 미국이 실시한 양적완화가 버터플라이 이펙트(butterfly effect)를 초래했다고 날선 비판을 했다.
양적완화는 기준금리가 제로에 도달한 직후 추가 경기부양을 위해 중앙은행이 시중에 유동성을 주입하는 방식이다. 테일러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양적완화 정책은 금융위기 직후 한시적으로만 실시했어야 했다. 미국은 2008~2009년에 1차 양적완화를 실시했고 이어 2010년에 2차, 2012년 이후 3차를 실시했다. 2~3차 양적완화는 ‘악순환’의 원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프로세스는 이렇다. 2008년 금융위기 극복 이후 미국이 양적완화를 지속하자 한술 더 떠 유로존이 동참했다. 그 여파로 일본 엔화만 매력이 높아졌고 달러당 엔화값은 2006년 120엔대에서 2010년 70엔대까지 치솟았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베 정부도 돈 풀기에 뛰어들어 엔화를 다시 120엔대까지 끌어내렸다. 그 결과는 어땠을까. 테일러 교수는 “미국, 유로존, 일본 등 핵심 경제축이 돈 풀기에 나서면서 자국 화폐가치를 떨어뜨리자 전 세계 중앙은행들도 수출을 걱정해 기준금리를 인하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오히려 돈이 풀려도 경제는 살아나지 않는 유동성 함정이 이렇게 초래됐다”고 강조했다.
-“경제반등 해법은 자유경제원칙 복원”
그렇다면 경제를 반등시키는 방법은 무엇일까.
자유주의 경제학자답게 테일러 교수는 개혁만이 정답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으로 그는 ▲통화·재정정책을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수행하고 ▲부정부패 없이 법 원칙을 준수하며 ▲시장 메커니즘을 작동시키고 ▲사회적 신뢰도를 높이며 ▲민간이 잘하는 영역에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 등 이른바 ‘경제적 자유를 위한 5대 원칙’을 실현할 것을 세계지식포럼에서 제안했다.
테일러 교수는 5대 원칙은 시대별로 국민의 요구에 따라 ‘진자’처럼 흔들린다고 설명했다. 1960~1970년대는 원칙에서 거리가 먼 시대였고, 1980~1990년대는 원칙이 강조된 시대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경제 원칙이 되돌아올 시점인데 그렇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것이 진짜 경제 위기라는 설명이다.
참고로 1981~1989년은 공화당의 영웅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집권기였고, 테일러 교수는 조지 부시 대통령 아래에서 미국 재무부 차관(2001~2005년)을 지냈다. 공화당원들은 레이건 시대를 황금시대(Golden Age)로 기억한다. 실제로 레이거노믹스는 성공적인 경제 운영책이었다. 실업률을 7.5%에서 5.4%로 낮췄고, 성장률은 평균 3.4%에서 최대 8.6%에 달했다. 레이건은 수요 촉진보다는 대규모 조세 감면 정책 등을 통한 자유 시장 경제 정책을 썼다. 테일러 교수는 우선 정부 예산을 정상으로 돌리자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가 100%를 넘었는데 현재 속도라면 2050년 500%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면서 “이런 경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또 그는 “재정확대정책을 실증 분석하면, 2008~2010년 경기부양책이 단행됐지만 효과는 미미했다”면서 “김진일 고려대 교수가 연구한 것인데, 부채를 줄이는 디레버리징(자기자본 대비 차입비율에서 차입비율을 낮추는 것)을 할 때 오히려 장단기적으로 효과적이었다”고 말했다. 통화정책도 원래대로 되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은 금리가 낮을수록 경제가 좋아진다고 착각한다”면서 “하지만 낮은 기준금리는 채권 금리를 떨어뜨려 연금소득자 등 노령층의 소득을 갉아먹고 결국 사회적 비용으로 되돌아올 것이다”라고 경고했다. 지나친 저금리는 축배가 아닌 독배라는 지적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의 경우 1960년대와 1980년대 물가상승률이 같은 4%대였지만, 기준금리는 각각 4.8%, 9.7%로 크게 달랐고, 성장 지표를 보면 경제는 1960년대보다 1980년대가 좋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부채·규제·통화·조세 등 4대개혁 추진해야
대신 5대 원칙하에서 4대 개혁을 실시하면 고성장 도래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고 거듭 강조했다. 부채 개혁(budget reform), 규제 개혁(regulatory reform), 통화 개혁(monetary reform), 조세 개혁(tax reform)이 그 해법이라는 것이다. 그는 “규제 정책을 담당하는 연방 공무원 수는 2008년 18만 명에서 오늘날 23만 명까지 늘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규제 개혁에 대한 저항이 강하다면 단기적으로는 조세 개혁을 통해 기업 투자 유인을 확대하는 것이 방법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표적 성공 사례로는 중국의 개혁 개방 정책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꼽았다. 그는 “중국이 현재 글로벌 강국으로 부상한 것이 경기 부양 정책 때문이냐”면서 “구조 개혁을 하고 개혁 개방을 펼쳤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FTA를 통해 경제 영토를 넓힌 한국도 대표적 개혁 사례로 꼽았다.
아울러 그는 “불황기에는 개혁이 쉽지 않고 호경기 때나 가능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민주주의하에서는 국민들이 어떤 선택이든 할 수 있다”면서 “역대 정책을 봐도 경제상황이 안 좋았을 때 개혁을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는 개혁이 고통스럽다는 인식은 잘못됐다고 강조했다. “개혁에 대한 회의주의는 경제 성장에 위험한 요소입니다. 너무 늦었다는 생각도 잘못됐습니다. 오히려 개혁이 성장과 국민들의 삶의 질에 보탬이 된다고 설득하는 것이 맞습니다” 포퓰리즘에 맞설 것을 강조하는 이유다. 그는 “경제학자의 정책 효과가 느려지면 이는 정치인들의 악몽으로 바뀐다는 말이 있다”면서 “그만큼 단기 정책에 매몰되지 않을 리더십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테일러준칙으로 본 적정 금리
테일러 교수는 테일러준칙의 창시자답게 중앙은행들이 테일러 준칙에 맞게 움직일 것을 강조했다. 1980~1990년대 미국을 비롯한 다른 나라들에 적용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유효하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테일러준칙이 지켜졌을 때 오히려 글로벌 경제가 더 잘 작동했다고 그는 보고 있다. 테일러 교수는 “일부에서는 미국의 적정금리가 3%(현재 0.25%)여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면서 “이미 테일러준칙은 2010년 이후 기준금리를 인상할 것을 가리키고 있다”고 말했다. 또 그는 한국의 적정 기준금리에 대해선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테일러준칙으로 보니 1.8%가 적정하다”면서 “현재 기준금리 1.25%는 낮은 수준이다”고 총평했다.
존 테일러 존 테일러(John Brian Taylor) 스탠퍼드대 교수는 통화이론의 대가다. 중앙은행이 기준금리를 결정할 때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에 맞춰 적정 수준을 정하도록 하는 테일러 준칙(Taylor’s rule)을 고안했고, 블룸버그마켓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로 선정된 바 있다. 1946년생으로 프린스턴대를 졸업하고 스탠퍼드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스탠퍼드대 경제학과 교수, 후버연구소 선임연구원을 맡고 있으며 미국 재무부 차관(2001~2005년)을 지냈다.
[이상덕 매일경제 경제부 기자 사진 류준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