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하반기 공모주(IPO) 시장에 찬바람이 거세다. 증시에 입성한 새내기 종목 대부분의 상장 후 주가가 공모가 밑으로 곤두박질치면서 공모주 투자 매력이 줄고 있다. 중소형주가 부진한 흐름을 보인 영향도 있지만, 투자자들은 상장을 주간하는 증권사들이 기업 가치를 지나치게 높여 공모가를 책정한 게 가장 큰 원인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시장 분위기를 반전시킬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IPO 대어(大魚) 두산밥캣까지 상장을 연기하면서 공모주 시장은 빠르게 얼어붙고 있다. 연말을 앞두고 신규 상장 기업이 몰릴 것으로 보여 자칫 이 같은 시장 침체가 장기화되는 것 아니냐는 염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공모주 투자자들의 한숨은 점차 깊어지고 근심은 날로 커져만 가고 있다. 그럼에도 전문가들은 공모주 투자의 매력은 여전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다만 시장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직접 투자보단 펀드 가입을 통한 간접 투자가 유리하다고 말한다. 시장이 얼어붙을수록 옥석을 가리기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펀드를 통하면 성장성이 높은 공모주를 선별해낼 뿐 아니라,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게 강점이다.
▶상장 3개월 만에
반토막 난 종목까지 나타나
10월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하반기 이후 국내 증시에 신규 상장한 기업 19곳(스팩 제외) 중 12곳의 주가가 공모가 밑으로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코스닥에 상장한 바이오 전문기업 바이오리더스는 이날 공모가(1만5000원) 대비 46.9% 하락한 7960원으로 장을 마쳤다. 상장한 지 약 3개월 만에 주가가 사실상 반토막 난 셈이다.
같은 달 코스닥에 상장한 통신 및 방송장비 제조업체 장원테크와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자동차 부품 업체 두올도 이날 주가가 공모가 대비 각각 34.9%, 34.4% 떨어진 1만 1400원, 5580원을 기록했다. 올 상반기 해태제과와 용평리조트 등을 포함한 여러 새내기 종목들이 상장 직후 며칠씩 상한가를 기록했던 것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계속된 부진에 급기야 ‘공모주 쪽박’이라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9월 이후 이 같은 시장 분위기는 고조됐다. 지난 9월 9일 마감한 종합전선업체 LS전선아시아의 공모주 청약 경쟁률은 2.98대 1에 그쳤다. 곧이어 공모주 청약을 진행한 글로벌 스포츠브랜드의 운동화 제조업자개발생산(ODM) 업체 화승엔터프라이즈는 그보다 더 낮은 0.43대 1에 불과했다. 올해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기업으로는 처음 공모주 청약에서 미달을 기록했다. 계속된 중소형주 부진에 앞서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가 하락세를 보이면서 공모주 투자 매력은 급감했다. NH투자증권 관계자는 “연초 이후 대형주 중심으로 주식 시장이 상승세를 보이면서 중소형주가 대부분인 공모주 인기는 상대적으로 줄어든 상태”라며 “일반적으로 공모주 시장은 시장과 반대로 움직이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다.
또 IPO에 나선 기업들이 9월 이후 대거 몰린 점도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인 중 하나로 꼽히고 있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최근 몇 년간 공모주 시장을 보면 연말에 가까워질수록 IPO가 몰리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며 “수요에 비해 공급이 갑자기 늘면 수요예측이나 공모청약 등에서 흥행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에도 연말에 IPO가 대거 쏠리면서 공모 흥행에 실패하거나 아예 상장을 철회한 기업들이 속출하기도 했다. 10월 중 공모주 청약을 진행하는 기업은 14곳에 달한다.
▶‘공모가 뻥튀기’ 청약 부진 주가급락 초래
올 하반기 이후 새내기 종목들이 부진한 모습을 보이자 개인투자자들은 ‘공모가 뻥튀기’를 가장 큰 배경으로 지목하고 있다. 공모가를 확정하기 위해 실시한 기관 수요 예측 결과와 다르게 공모가를 높게 형성했기 때문에 상장 후 주가가 급락했다는 지적이다. 서울 강남에 거주하는 50대 전업투자자 A씨는 “최근 청약에 나선 기업들의 공모가가 기업가치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며 “상장 이후 주가가 하락할 게 불 보듯 뻔해 청약할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실제 한국투자증권과 하나금융투자가 공동 주간한 LS전선아시아는 수요 예측 이후 공모가를 기존 희망가(1만~1만1500원)보다 낮은 8000원으로 정했다. 하지만 수요 예측에 참여한 전체 기관의 신청 물량 76%가 8000원 미만의 가격을 제시했다. 공모가를 희망가보다 낮췄지만 기관투자가들의 눈높이는 그보다도 더 낮았던 것이다. 그 결과 9월 22일 유가증권시장 상장 첫날부터 LS전선아시아의 주가는 하락했고, 10월 11일에는 공모가 대비 15.1% 낮은 6790원으로 장을 마쳤다.
10월 4일 유가증권시장에 상장한 화승엔터프라이즈도 비슷한 사례다. 앞서 화승엔터프라이즈는 희망가로 1만4600~1만6500원을 제시하고 수요 예측을 진행했다. 당시 기관 신청 물량의 71%는 1만5000원 미만의 가격을 제시했으나 주간사는 이보다 높은 1만5000원으로 공모가를 확정했다. 화승엔터프라이즈 주가는 10월 11일 현재 공모가 수준이지만, 상장 첫날에는 공모가보다 낮은 1만4950원으로 장을 마감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최근 신규 상장한 기업들의 수요 예측 결과를 보면 대체로 경쟁률이 저조하거나 희망가보다 낮은 가격대에 신청 물량이 집중된다”며 “수요 예측 결과와 동떨어진 공모가 탓에 개인투자자들이 청약에 불참하는 사태가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공모가를 높이면 발행사(해당 기업)는 많은 자금을 조달할 수 있고, 주간사는 수수료 수익을 더 벌게 된다”며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개인투자자들이 떠안을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삼성바이오로직스 2공장 내부
▶상장 연기한 ‘IPO대어’ 두산밥캣 관심
올 하반기 공모주 시장 대어로 꼽혀온 두산밥캣은 10월 10일 상장 계획을 연기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이날 두산밥캣은 공시와 보도자료를 통해 “최종 공모가를 확정하기 위해 수요예측을 실시했으나 회사의 가치를 적절히 평가받기 어려운 측면 등을 고려해 이번 공모를 추후로 연기하기로 결정했다”며 “공모 물량을 줄이는 등 공모 구조를 조정해 이르면 오는 11월께 상장을 재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두산밥캣은 공모액이 약 2조원에 달하는 대형 IPO로 기관과 연초부터 개인투자자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아왔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을 위해 지난 9월 증권신고서를 제출하고, 10월 6일부터 이틀간 국내외 기관투자가들을 대상으로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공모 희망가는 4만1000~5만원으로 제시했다. 하지만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 대부분이 희망가보다 낮은 가격에 몰리면서 두산밥캣은 주간사와 협의 끝에 상장을 한 달간 연기하기로 했다.
10월 13일 두산밥캣은 공모 규모를 기존 49%에서 30%로 줄이고 공모가를 2만9000~3만3000원으로 낮춰 상장을 재추진했다. 눈높이를 낮춰 재도전하는 것이어서 이번 공모 흥행 여부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이번 결과가 상장 후 예상 시가총액이 10조원에 달하는 삼성바이오로직스와 넷마블게임즈 등 대기 중인 대형 IPO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금융투자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공모주 투자가 인기를 끌면서 올 들어 상장에 나선 기업들의 가치가 전반적으로 고평가된 면이 있다”며 “이 때문에 시장 분위기가 최근까지 급격히 침체되면서 IPO 예정 기업들의 고민도 커진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이 관계자는 “연말에 IPO가 대거 몰려 있어 이번에 상장을 재추진하는 두산밥캣이 침체된 분위기를 반전시킬지 귀추가 주목된다”고 부연했다.
▶공모형보다 사모형 펀드가
공모주 배정에 유리
시장이 침체기를 맞았지만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들은 여전히 공모주의 투자 매력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올 들어 신규 상장한 기업들의 주가가 대부분 공모가를 밑돌고 있지만, 시장 상황을 감안하면 크게 나쁜 수준이 아니라는 분석이다. 다만 시장 불확실성이 커져 우량 공모주를 선별해 투자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펀드를 통한 간접 투자가 유리하다고 조언했다.
김세찬 대신증권 글로벌마켓전략실 연구원은 “올 들어 공모주 투자 수익률은 시장 평균치에 비해 높았다”며 “공모주 투자 매력이 여전하다는 방증”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다만 청약 경쟁률에 따라 배정받는 물량이 제한적이어서 공모주펀드를 통한 간접투자를 추천한다”며 “공모주펀드는 총 투자금액의 10% 내외에서 공모주를 편입한다”고 덧붙였다.
또 하나금융투자 관계자는 “유망한 공모주는 청약 경쟁률이 높아 개인투자자들에게 배정되는 주식이 적을 수밖에 없다”며 “절대수익이 낮아지는 것이어서 공모주 펀드를 가입해 자산운용사가 청약 받는 공모주에 간접 투자하는 방식이 더 안전하고 유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더 많은 공모주를 배정 받으려면 사모형 공모주펀드에 가입할 것을 주문했다. 상장하는 기업이 대기업이 아닐 경우 공모주 물량이 많지 않아 규모가 큰 공모형 공모주 펀드는 몇 주 배정받지 못하고, 상장 후 주가가 올라도 펀드수익률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사모형 공모주 펀드는 이러한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 또 공모형 펀드는 한 종목을 펀드 자산의 10% 이상 살 수 없지만, 사모형 펀드는 이러한 규제 없이 보다 유연하게 운용할 수 있다.
다만 최근 공모주 펀드들의 수익성이 시장 악화로 예년보다 낮아지면서 해외 공모주 펀드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하이자산운용이 최근 출시한 하이 아시아공모주증권투자신탁(채권혼합)이 대표적이다. 이 펀드는 한국과 싱가포르,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홍콩, 일본, 대만, 호주 등 아시아 주요국에 상장된 저평가 공모주에 분산 투자해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고 있다.
상품 출시 당시 하이자산운용 관계자는 “국내 저금리 추세가 지속되면서 ‘금리+α’를 추구하는 상품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증가하고 있어 이에 적합한 펀드를 만들기 위해 고심해왔다”면서 “호텔롯데 상장 무산 이후 국내 공모주 펀드에 대한 관심이 감소함에 따라 새로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투자 대상을 해외 공모주로 넓힌 펀드를 선보이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