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지나면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긴 잠에 빠졌던 생명들이 깨어나 활기를 되찾는 계절인 봄이 온다. 사람들은 겨울이 추울수록 따뜻한 봄을 더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가상자산 업계도 비슷한 상황을 겪는 중이다. 기나긴 ‘크립토 윈터(가상자산 시장 침체기)’를 지나며 ‘크립토 스프링(Crypto Spring)’이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의 바람이 통한 것일까. 긴 침체기를 겪던 가상자산 시장은 비트코인을 선두로 상승세로 돌아섰다. 지난 10월 23일 비트코인이 3만달러를 돌파한 것을 기점으로 가격이 꾸준히 오르며 연중 최고가를 경신하는 중이다. 11월 10일에는 테라-루나 사태 이후 18개월 만에 3만7000달러대를 기록했고, 11월 16일에는 3만7000달러 후반대까지 치솟으며 3만8000달러대까지 근접했다. 연초 1만6000달러대였다는 점을 고려해보면 1년 만에 120% 가까이 가격이 뛴 셈이다.
국내 시장에서도 비트코인 가격이 5000만원을 넘어선 것은 18개월 만이다. 하락장과 상승장이 번갈아 가며 랠리가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알트코인도 급등과 급락을 오가는 등 가상자산 시장이 다시 출렁이고 있다.
이번 가상자산 시장 가격 상승은 각종 호재가 더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업토버(Up+October)’, 비트코인 현물 상장지수펀드(ETF) 승인 신청, 2024년에 다가올 비트코인 반감기, 긴축에 대한 긴장감 완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인한 가상자산에 대한 수요 증가 등이 모두 맞물렸기 때문이다.
본래 10월은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상화폐 가격이 급격하게 상승하는 달로 불린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10번 찾아온 10월 중에 가상화폐 가격이 8번이나 강세를 보였다. 올해 역시 10월이 가격 상승장을 이끌며 업토버의 저력을 보여줬다.
외부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비트코인 등 주요 가상자산은 금리 인상에 영향을 받는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연내 금리 인상에 대한 신중론이 유지되는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파월 연준 의장이 매파적 발언을 하면 비트코인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다, 각종 경제 지표가 발표됐을 때 긴축에 대한 긴장감이 완화되는 수치가 나오면 다시 급등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11월 16일 비트코인 가격이 급등한 데는 전날 소비자물가지수(CPI)가 크게 둔화한 데 이어 이날 발표된 생산자물가지수(PPI)도 2년 반 만에 최저를 기록함에 따라 긴축 경계가 완화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으로 안전자산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며 가상자산 수요가 늘어난 것도 한몫했다. 다만 그 영향은 그다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년에 예정된 비트코인 반감기가 다가오고 있다는 점도 호재 중 하나로 여겨진다. 반감기는 과거 강세장을 촉발한 바 있다. 앞서 3번의 반감기인 2012년에는 8450%, 2016년에는 290%, 2020년에는 560% 각각 상승했다. 비트코인은 총 공급량이 2100만개로 제한돼 채굴 보상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를 4년마다 거친다.
많은 호재 속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 여부다. ETF는 인덱스펀드를 거래소에 상장해 주식처럼 사고팔 수 있도록 한 상품인데, 비트코인 선물을 기반으로 한 ETF는 이미 지난 2021년부터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에 상장됐다. 대표적인 비트코인 선물 ETF인 BITO(ProShares Bitcoin Strategy)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됐고, 2배 레버리지 및 하락에 베팅하는 ‘쇼트(Short)’ 상품도 있다.
하지만 선물과 현물은 성격이 다르다는 이유로 미국 증권 시장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은 매번 거절당했다. BITO는 CME의 비트코인 선물 계약만 구입하면 되지만, 비트코인 현물 ETF는 실제 기초자산인 비트코인까지 사야 하기 때문이다. 10월 중순 미국 SEC의 비트코인 현물 ETF 신청서 수정 요청이 연이어 나오자 투자자들은 비트코인 ETF에 대한 승인의 문이 열렸다고 판단했다. 실제로 가격 상승세가 시작된 10월 23일(현지시간)에는 SEC의 현물 ETF 승인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가격이 올랐다.
미 워싱턴 D.C. 항소법원은 SEC와 가상자산 투자업체 그레이스케일 인베스트먼트 간의 현물 ETF 승인을 둘러싼 분쟁에서 그레이스케일의 손을 들어줬다. 그동안 SEC는 17억달러 규모의 비트코인 트러스트를 현물 ETF로 전환하려는 그레이스케일의 신청을 가격 조작 가능성이 있다며 거부해왔다. 그러나 법원은 “SEC가 비트코인 선물 ETF를 허용했는데 현물 ETF를 허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
또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비트코인 현물 ETF가 미국증권예탁결제원(DTCC)에 상장됐다는 소식도 매수세에 불을 붙였다. DTCC에 이름을 올린 것 자체가 SEC의 승인을 전제한다는 의미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날 에릭 발츄나스 블룸버그 ETF 분석가는 “(비트코인 현물 ETF) 승인이 확실하거나 임박했다는 신호가 나왔다”라고 주장했다.
현재 미국에서는 자산운용사 10여 곳이 비트코인 현물 ETF 상장을 SEC에 신청한 상태다. 대표적으로는 1998년에 설립된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이 있다. 블랙록은 9조달러 이상의 운용자산을 보유하고 있는데, 그중 ETF는 전체 운용자산의 33%다. 블랙록과 같이 당국 대응 능력을 갖춘 대형 운용사들이 비트코인 ETF 승인에 참여하는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늦어도 내년 상반기에는 상장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비트코인 현물 ETF는 기관 자본 등 신규 수요를 대거 유입한다는 점에서 호재로 손꼽힌다. 미국 대형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비트코인 반감기는 가상자산 겨울(크립토 윈터)의 끝과 새로운 강세장의 시작을 의미하고, 현물 ETF 승인은 가상자산 대중화를 가속할 것”이라며 “이 둘은 가상자산 강세장을 촉발할 것”이라고 진단하기도 했다.
비트코인 ETF의 승인이 최고 6000억 달러의 신규 수요를 만든다는 분석도 있다. 크립토퀀트의 분석가는 비트코인 시가총액이 1조달러 이상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베틀 룬데 K33 글로벌 가상자산 시장 분석업체 선임분석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비트코인 현물 ETF가 승인되면 비트코인 가격은 100일 안에 4만2000달러(5651만원)까지 상승할 것”이라며 “현물 ETF는 비트코인 70만개(32조9000억원 규모)를 흡수할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일부 기관투자가들은 이미 비트코인과 암호화폐 펀드에 자금을 넣기 시작했다. 코인셰어즈에 따르면 지난 1년간 기관들은 10억달러 이상을 투입했는데, 2억4000만달러 이상을 비트코인에 투자했다. 이에 거래소에 있는 비트코인은 2023년 3월을 정점으로 지속해서 감소하고 있다. 거래소 보유량이 증가하면 매도될 수 있는 코인의 수가 증가한다는 의미다. 11월 가상자산 거래소의 비트코인 보유량은 2018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시장은 이를 강세 신호로 보고 있다. 다만 10월부터는 조금씩 증가하고 있다.
크립토 윈터가 끝나간다는 희망적인 관측도 나오지만 아직 과거 ‘불장’이라 불렸던 시기와 비교하면 거래량이 적다. 가상자산 ‘불장’으로 불렸던 2021년 4월 19일 전체 코인에 대한 24시간 거래량은 3006억9000만달러(약 404조6686억원)에 이르렀지만 11월 15일 거래량은 654억1000만달러(약 84조8413억원)에 그쳤다.
국내에서도 비트코인 관련 각종 호재로 가격이 급등하며 관심이 커지고 있다. 특히 비트코인 현물 ETF출시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현재 비트코인은 회계나 규제 등의 이유로 기관에서 매입할 수 없는 자산이지만 현물 ETF가 출시되면 기관 포트폴리오에 간편하게 편입될 수 있다. 주식이나 퇴직연금계좌 등을 통해 운영되는 자금이 비트코인으로 유입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장기적으로 비트코인 가격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현물 ETF 상장 이후 200억달러(약 26조원) 이상의 자금이 유입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코빗리서치센터의 정석문 센터장·최윤영 애널리스트는 최근 보고서에서 이런 관측을 언급하며 “이 수치는 보수적인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NH투자증권 리서치본부 투자전략부는 ‘2024년 비트코인이 온다’ 보고서에서 보수적인 시나리오하에서는 전 세계 ETF 운용자산(AUM) 중 100억달러가, 다소 낙관적인 시나리오에서는 금 ETF 총 AUM과 맞먹는 900억달러의 자금이 유입될 것으로 내다봤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들도 내년 상반기에 찾아올 크립토 스프링에 대비해 고객 점유율 확보 경쟁에 나서고 있다. 현재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는 업비트 독주 체제다. 업비트는 가상자산 거래소 중 수수료 무료 정책을 가장 먼저 시행한 결과 시장 점유율이 가장 높다.
이에 빗썸과 코빗도 수수료 무료 정책을 잇달아 시행 중이다. 빗썸은 지난 8월부터 수수료 면제 가상자산을 점진적으로 늘려오다 전면 무료를 선언했다. 그 결과 평균 앱 체류 시간과 신규 설치 건수가 증가해 시장 점유율을 끌어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뒤따라 코빗은 모든 가상자산, 고팍스는 일부 가상자산에 대한 거래 수수료를 전면 무료화했다. 하지만 거래 수수료가 수입의 전부인 가상자산 거래소의 수익 구조상, 이러한 경쟁 구조가 거래소 간 ‘치킨게임’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실제로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빗썸은 올해 3분기 매출이 크게 줄고, 영업이익과 순이익도 적자 전환했다. 거래량을 늘리기 위해 실시한 거래 수수료 무료 혜택이 부메랑으로 돌아온 것이다. 오는 4분기 실적도 수수료 전면 무료 실시로 인해 흑자 전환이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의 규모가 얼마나 커질지 가늠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거래소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다 결국 업비트만 살아남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박나은 기자